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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언젠가 다시 읽고 다른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전집의 정본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 비평 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전 23권)을 완역한 책으로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와 함께 먼저 출간됐다.영…

니체는 초인이 되고 싶어했고 사람들에게 초인 철학(이라기보단 복음에 가깝지만)을 설파하려고 했다. 그 초인 철학이라는 걸 아주 간단히 말해보자면,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 혹은 무의미에도 불구하고 그 삶(운명)을 기꺼운 마음으로 긍정하고, 노예의 윤리(바깥에서 정해진 것, 절대적인 것, 약자가 선)가 아닌 주인의 윤리(본인의 욕망을 긍정하기, 나에게 좋은 것이 곧 선)를 만들고 실천하는 강자가 되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상당히 영웅적이었고, 그 파급력만큼 나를 포함한 수많은 개인들을 감동시켰다. 자연스럽게 조던 피터슨 같은 '니체 키드'들도 양산(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니체 빌런들은 잠시 차치하도록 하자)되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다. 사실 니체 본인이 하는 말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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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강자(초인)들의 사회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꽤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약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니체 키드들도 약해빠졌다. 아니, 니체 본인 조차도 약했을 걸? 본인이 왜 약한지, 왜 지금까지 약하게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감히 그 입으로 '강자들의 사회'를 만들자는 말을 하다니? 우스꽝스럽다.

이런 약자들이 '강함'을 역설한다고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본인이 얼마나 많은 행복과 쾌락속에 절여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강해지자'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살 속 깊은 곳 까지 촘촘히 박혀있는 공기와도 같은 행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지금 당장 본인이 누리는 문명이 주는 혜택의 목록, 나를 보호해주는 보편적인 윤리 혹은 법의 목록,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지 않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공공질서와 이웃이 내게 주는 배려의 목록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본인이 정말 이것들을 포기할 수 있다면, 권태 속에서 '종말의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굶어죽기를 선택하겠다면(그게 니체가 말하는 귀족이니까)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처럼 문명 바깥으로 나가 살면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이상하게 <나는 자연인이다>를 틀어야만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이나 사막이나 광야라던지 아무튼 황폐한 자연 속에 고독하게 서있는 것을 참 좋아하던데, 니체 키드들은 과연 어떨지?

극단적으로 '자연인'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도시에 살면서 실천할 수 있는 귀족, 주인, 반행복적인 무언가를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고작해야 상대적인 불행, 상대적인 강함일 뿐이다. 무정부상태 혹은 자연상태의 말 그대로 (니체가 그렇게 좋아하는)'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한 모습,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의 모습에 불과하다. 겨우 이정도의 강함을 얻겠다고 '강해지자'를 외치고 있는 걸까? 겨우 이정도의 강함을 얻게 되면 그렇게 원한다는 '인간 갱생 프로젝트: 강자 만들기'를 성공시킬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목표는 '강한 사람 되기' 그 자체가 아니라 '나는 약한 너희들과 달라'라는 구별짓기에 가깝다. 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차라투스트라는 특정한 A가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더라도 아주 추상적인 표현만을 사용한다. 그런데 너희 X, Y, Z들은 가짜고 노예고 천민이라고 말할 때는 아주 구체적으로 사람, 집단, 행동, 생각을 콕 집어 말한다. 이런식의 화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항상 'A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X, Y, Z가 아니다'에 초점이 가있다(내가 그런 사람이라 그 마음을 잘 안다 ㅋㅋㅋ 어쩌면 이 글도 니체 키드와 나를 구별짓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걸지도?). 구별짓기의 목표는 본인의 자의식을 인정받는 것이다. 물론 자의식을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음 자체를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에 따른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면, 구별짓기가 목표인 것도 일관성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초인'은 존재하지도 않고 아무도 원하지도 않는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문명과 윤리는 (니체 키드를 포함한)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한다. 그걸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떠나서 말이다. 그러니까 주인이니 귀족이니 염병하지 말고 도덕을, 문명을,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걸 더 좋게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 지금이 맘에 안들면 사람들을 규합해서 수정할 수 있잖아. 그것도 결국 '주인 윤리'고 '힘에의 의지' 아니야? 이쯤되니 니체가 '합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한데... 아무튼, 이제는 영웅 포르노에 중독된 차라투스트라의 전도사들(이상하게 꼭 니체 키드들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열심이던데)은 그만 보고싶다.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루피나 아이언맨 같이 혼자서도 다 때려뿌수는 짱쎈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떨까?

소년만화 보고 있으면 뽕이 차오르긴 하지... 인정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