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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밝은 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서정적이며 사려 깊은 문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등단 이후 줄곧 폭넓은 독자의 지지와 문학적 조명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존중과 이해, 합일과 구별

가족이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라는(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흔한 믿음은 내 마음에도 있다. 나는 가족과의 관계가 나쁜편도 아니고, 내 삶의 방식에 태클을 놓는 사람도 없다(내가 아들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내가 조금 무너진다고 해서 가족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확실히 이런 믿음은 나에게 위안이 된다. 내 불안의 일부를 분명하게 경감시켜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마 이런 무조건적인 '존중'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가족과 같이 있을 때 나는 완전하게 충만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아주 편안했지만 또 어색했다고 말한다면 잘 표현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자체로 존중 받기'는 분명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일텐데. 이상했다. 혹시 내가 스무살부터 16년을 넘게 혼자 살았기 때문일까? 아주 어렸을적 부터 개인주의의 신봉자였기 때문일까? 나에게 가족과 관련된 눈물이 나올만한 비극적인 에피소드도, 따듯했던 순간도, 대단한 상처랄것도 없기 때문일까? 가장 나빴던 순간이라고 해봐야 여기서 이야기 할 만큼 특별할 것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냥 흔한 갈등들을 그럭저럭 덮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인걸까?

아니다... 내가 가족에게 묘한 어색함을 느꼈던 이유는, 온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존중에 빈틈이 있어서라기 보다 내 욕심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존중 뿐 아니라 '이해'까지 바랬다. 존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조건들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이 뭔지 정확히 파악해주길 바랬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같은 세계 안에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생각들이 머무는 세계와는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그게 잘못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그들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사실 전형적인 자의식 과잉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 자의식을 영원히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외로워했다. 나는 가족에게 받아들여졌으나 만족하지 못했고(이런면에서 보면 내 외로움은 가짜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 욕심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나는 가만히 있질 못했고 항상 말이 많았다. 이해를 받으려면 일단 나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을 평가하거나 때로는 얕잡아보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런 피드백을 원했다. 적당히 나쁜말을 해도 좋으니 내 생각을 진지하게 들어주길 바랬다. 그러나 이해를 받겠답시고 취했던 일련의 태도들은 이해는 커녕 존중마저도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내가 굳이굳이 '이해'가 아닌 오직 받아들여지기만을, '존중'만을 바랬다면 어땠을까? 세상에는 존중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겸허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밝은 밤>의 등장 인물들도 그랬다.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아무나 붙잡고 떠들어댈 정도로 천박한 이해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내가 어린아이 같은 '구별'의 욕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밝은 밤>의 사람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세계와의 '합일'을 진정으로 원할 수 있다면, 그 뒤에 오히려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나를 존중해주는 가족들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방진 마음도 사라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