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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창작자에게 마음으로부터 전해오는 시인의 서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시인 지망생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내는 릴케의 5년간의 편지글이 담겨있다.

편지가 결국에는 조언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내가 이 사람의 조언대로 살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진득하게 듣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작가는 우리가 고독을 발견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취하게 될 태도에 대해서 유려하게 표현해 준다. 특히, 바로 아래 인용은 '이해를 통한 위로'의 정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고통을 아름답게 울리는 탄식으로 견뎌내십시오. 당신과 가까운 존재가 멀게만 느껴진다고 했는데, 이는 당신의 주변이 점차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당신과 가까운 존재가 멀리 느껴진다는 말은 당신 주변이 이미 별 아래에 이를 정도로 광대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그들 앞에서 자신감과 침착함을 보이십시오. 의심 때문에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고,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당신의 신념과 기쁨으로 그들을 겁주지 마십시오. 당신이 계속해서 다른 존재로 변한다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순박하고 정직한 공통점, 그들과의 공통점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삶과는 다른 그들의 삶의 방식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친근하기만 한 고독을 두려워하는 나이든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십시오. (...)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말고 이해를 기다리지 마세요. 다만 유산처럼 당신에게 전달된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 당신의 고독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고향이 되겠지요. 낯선 상황에 둘러쌓이더라도 말입니다. 당신은 고독에서 모든 길을 찾을 테지요. 50-52p

너무 아름답기만 한 수사가 몰입을 조금 방해하기는 한다. 그래도... 항상 공감은 커녕 이해도 받지 못한다는 느낌?까지도 익숙하게 체념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런 생각을 가져봤던 사람이라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위로가 진짜 위로가 될 수 있으려면, 이 사람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아래처럼, 자기 생각을 섬세하고 정돈된 문장으로 드러낼 때 생기게 된다.

다시 고독을 이야기하자면, 고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선택하거나 놓아줄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독합니다. 그렇지 않은 척 자신을 속이고 행동할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가 고독한 존재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그것을 전제로 한 발 내디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몸을 가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을 지탱하고 보호하는 모든 점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것은 사라지고 먼 것은 하염없이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나 변화 없이 자기 방에서 나와 높디높은 산꼭대기에 선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불안, 형용하기 어려운 존재에 내맡겼다는 체념이 그를 파괴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떨어지거나 우주로 내동댕이쳐지거나 폭발해서 수천 조각으로 찢어지리라 생각할 테지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설명하기 위해 그 의 뇌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며내야 할까요? 이처럼 사람이 고독해지면 모든 거리감과 기준이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 중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며, 산꼭대기에 선 사람처럼 낯선 상상과 모든 인내심을 뛰어넘는 이상한 감각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경험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최대한 넓게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것, 유례없는 것조차도 그 안에서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용기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가장 기이한 것, 가장 놀라운 것, 가장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용기를 가지고 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 엄청난 손해였습니다. 95-96p

물론 모든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통한 초월'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나 '진정성 있는 삶'을 향해 '성장'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 같은 세계관(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끼리라도 생각하는 대안은 정반대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쪽은 궁핍하고 다른 한쪽은 넘쳐흐르다 보니 먹는 욕구의 깨끗한 속성이 혼탁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깊고 소박한 욕구들도 탁해지고 말았습니다.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욕구들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은 자신을 위해 그런 욕구들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으며 명료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남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는 개인이 아니라 고독한 개인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동물과 식물의 내면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과 그리움의 고요하고 영원한 형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식물을 바라보듯 동물을 바라봅니다. 동물들이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짝을 이루고 번식하고 성장하는 모습을요. 동물은 육체적 쾌락이나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나 고통 따위보다 훨씬 크고 의지나 저항보다 훨씬 강력한 욕구 때문에 성적인 행동을 합니다. 아, 우리 인간이 지구상의 가장 작은 생명체에도 깃든 이런 비밀을 조금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더 진심으로 견디며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느낀다면! 47p
고독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 마세요. 그러한 소망을 조용히 심사숙고하여 도구로 사용한다면, 당신의 고독이 넓은 대지 위로 펼쳐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습의 도움으로) 모든 일을 쉽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쉬운 해법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만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운 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78p
삶이 반으로 쪼개진 더미들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젊은이들은 반씩 쪼개진 더미를 공동체라고, 행복이라고, 그리고 미래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잃고, 그러다가 타인을 잃고, 앞으로 다가올 다른 많은 사람마저 잃고 맙니다. 드넓은 공간과 수많은 가능성을 잃고, 조용한 예감에 찬 것들을 포기하고,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것과 결실을 맺지 못하는 혼란을 맞바꿉니다. 혼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약간의 메스꺼움과 실망, 빈곤이 있을 뿐이지요. 결국 젊은이들은 가장 위험한 장소에 세워진 공동 대피소처럼 깔려 있는 수많은 관습 가운데 하나로 도망칠 따름입니다. 인간의 경험 중 이토록 많은 관습의 장비를 갖춘 분야는 없습니다. 다양하게 발명된 구명대, 보트 그리고 튜브가 즐비합니다. 사회적 관념은 갖가지 종류의 대피소를 만들었습니다. 81p

최근 읽은 조지 오웰/장강명 에세이도 그렇고, 맨날 책에서만 친구 찾으니까 개찐따 중2병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