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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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는 자주 내 여행의 목적이 된다. 바다의 잔물결이 빛에 부딫혀 하얗게 쪼개질 때, 그 때의 바다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얗고 가느다란 물결선과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인 파란 일렁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다, 바다는 온갖 행복과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동안 육지에서 뭘 하겠다고 법석을 떨며 살아온 것일까? 삶의 비밀이 사실 여기 이 바다에, 변하지도 않고 어딜 가지도 않아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데.

우리는 세계 이곳 저곳을 돌며 다양한 바다를 보게 된다. 하지만 사실 바다는 하나 뿐이다. 강원도에서 봤던 바다, 제주도에서 만났던 바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한 바다도 모두 같은 바다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인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자기 안에 품어 그저 ‘바다’로 만든다. 당연하게도 바다는 나도 품을 수 있다. 울고, 웃고, 화를 내다 용서하는 내 보잘 것 없는 어제, 오늘, 내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품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내가 더 이상 ‘나’가 아니라 ‘바다’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 순간에, 형연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너무나 넓어서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수평선 뿐인 바다. 아름다운 짙은 푸른색은 사실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래까지 뻗어 있는지 알려주는 표시다. 내가 바다가 된다면 저 넓고 깊은 어딘가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겠지. 그 곳에는 다툼도, 슬픔도, 공허도 없다. 심지어는 의지도, 자유도, 의식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라지고 대신 오로지 바다만 남는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섭다. 왜지? 사실은 보잘 것 없던 내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걸까? 그래서 지키고 싶었던 걸까? 아니다. 그보다는 그저 내 자아가 물에 잠겨 사라질 것이 본능적으로 겁이나 도망치려는 것이다.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는 언제나 세계와 함께라고 했던가. 물루는 바다로 들어가기를, 태평양 한 가운데에 홀로 놓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바다’됨’이 주는 안락함을, 분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기를 상상하면서도, 동시에 내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내 연극의 막이 내리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설사 그 연극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가지만, 어째서인지 바다에 발을 담그지 않고 언제나 바라만 보게 된다. 해변에 서서 발밑으로 파도가 밀려들면 신발이 젖지 않게 뒤로 물러선다. 그러다 해가 질 즈음이 되면, 몸을 돌려 바다를 등지고 돌아온다. 해가 지면 바다가 주는 공포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수없이 바다를 보겠지만, 결코 바다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돌아가는 곳은 바다가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 지은 사람의 집, 사람들끼리의 사소한 다툼 속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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