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투
**기투**(Entwurf, Projection)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실존적 구조를 표현한다. 독일어 'Entwurf'는 'werfen'(던지다)의 파생어로, 문자 그대로 '밖으로 던짐'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projection', 'project', 'design'으로 번역된다. 기투는 [[내던져짐]](Geworfenheit)과 함께 "던져진 기투"(geworfener Entwurf)라는 통일 구조를 이루며, [[현존재]]의 이중적 존재 방식을 구성한다.
## 개념의 구조
### 기투의 의미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투는 [[이해]](Verstehen)의 실존론적 구조이다. "이해는 가능성들에로의 기투라는 구조를 갖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능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며, 이 '가능성을 향해 봄'이 기투이다. [[현존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지평에서 파악한다.
기투의 어원적 의미가 중요하다. 독일어 'Entwurf'와 동사 'entwerfen'의 기본 의미는 무언가를 '밖으로' 또는 '앞으로' 던지는 것이다. 일상적 용법에서 이 단어들은 '설계하다', '초안을 그리다'의 의미를 갖는다. [[하이데거]]는 이 어원적 '던짐'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전용한다. 영어 'projection'과 'project'에서 '던짐'의 의미는 거의 사라졌지만,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기투는 미리 생각해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강조한다: "기투는 생각해낸 계획을 향해 자신을 처신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모든 [[현존재]]는 [[현존재]]인 한 이미 자신을 기투했으며, 존재하는 한 기투하고 있다." 기투는 반성적 행위가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방식 자체이다.
### 이해와 기투
[[이해]](Verstehen)는 기투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이데거]]에게 [[이해]]는 인식론적 파악이 아니라 실존론적 구조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음'(Können)의 관점에서 여는 것이다. 이해는 [[현존재]]의 '할 수 있음-있음'(Seinkönnen)의 실존범주이다.
이해는 기투하면서 [[현존재]]의 존재를 두 방향으로 던진다. 첫째, "무엇을-위함"(Worumwillen, for-the-sake-of-which)을 향해, 둘째, 세계의 유의미성(Bedeutsamkeit)을 향해. "이해는 [[현존재]]의 존재를 그것의 '무엇을-위함'과 유의미성, 즉 그것의 현재 세계의 세계성 양자 모두에 동등한 근원성으로 기투한다."
"무엇을-위함"은 [[현존재]]가 자신을 이해하는 바—학생으로서, 부모로서, 예술가로서—이다. 이것은 완료할 수 있는 목표나 확정된 기획이 아니라, [[현존재]]가 그것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기투하면서 자기 자신이 된다.
### 가능성으로서의 현존재
기투의 구조에서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가능성(Möglichkeit)이다. [[하이데거]]의 유명한 표현에 따르면, "현실성보다 가능성이 높이 서 있다." [[현존재]]는 무엇인지(본질)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될 수 있는지(가능성)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논리적 가능성(양자택일)이나 우연적 가능성(아무것이나 일어날 수 있음)과 다르다. 실존적 가능성은 [[현존재]]가 그것을 향해 기투하면서 그것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마크 싱클레어(Mark Sinclair)의 분석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가능성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한 것의 가능한 것으로서의 현실성'(energeia tou dunatou hê dunaton)에 대한 재해석에 기반한다.
[[현존재]]는 사실적으로 있는 것보다 항상 '더 많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있는 것보다 '더 많지'는 않다. "[[현존재]]는 존재-가능으로서 사실적으로 있는 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현존재]]의 가능성은 사실성(Faktizität)에 본질적으로 속한다. 기투는 무한한 가능성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던져진 조건 위에서 유한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던져진 기투
### 기투와 내던져짐의 통일
[[현존재]]는 "던져진 기투"(geworfener Entwurf)이다. 이것이 《[[존재와 시간]]》 제1편 5장의 핵심 주장이다. [[현존재]]는 [[내던져짐|던져져 있으면서]](내던져짐)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기투). 이 두 계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내던져짐]]은 [[현존재]]의 수동적 측면이다. [[현존재]]는 선택 없이 특정 시대, 특정 문화, 특정 신체 속에 있다. 기투는 [[현존재]]의 능동적 측면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기획한다. 그러나 수동성과 능동성의 구분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던져진 기투는 하나의 현상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투와 [[내던져짐]]은 샴 쌍둥이이다: 기투는 항상 던져져 있고, [[내던져짐]]은 항상 기투적이다." 기투는 공중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던져진 상황 위에서 기투한다. [[내던져짐]]은 정태적이지 않다. 던져진 조건은 기투를 통해 전유되고 변형된다.
### 유한한 초월성
던져진 기투의 구조는 [[현존재]]의 유한한 초월성을 표현한다. [[현존재]]는 자신을 넘어선다(초월). 그러나 이 초월은 무한하지 않다. 던져진 조건에 의해 제약된다.
[[사르트르]]는 이 구조를 "사실성과 초월성"으로 전유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 따르면, 자기는 완전히 자유롭지도(사실성 바깥에 있는 것처럼) 완전히 결정되지도(전적으로 사실성으로 환원되는) 않는다. 자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동시에 사실성이면서 초월성인 "이중 속성"이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차이도 주목할 만하다. 사르트르는 더 급진적 자유를 강조한다. [[하이데거]]의 [[내던져짐]] 분석에서 자유는 항상 던져진 조건에 의해 구체화된다. 블래트너(Blattner)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항상 이미 세계와 내 삶 속에 '던져져' 있는데, 내가 그것에 중요하게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조율들이 나의 기투의 '끌림'(drag)을 위치시키고 구체화한다."
### 기투의 지평
던져진 [[현존재]]는 특정한 사실적 가능성들에로만 기투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열려 있지 않다. 중세에 태어난 사람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다. 특정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 신체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 기투한다.
그러나 이 제약은 가능성의 부정이 아니라 조건이다. [[현존재]]는 이미 있는 바로부터 될 수 있는 바를 향해 나아간다. 던져진 상황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준다. 순수한 자유, 모든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은 환상이다. 동시에 순수한 결정론도 [[현존재]]의 구조를 포착하지 못한다.
## 기투와 시간성
### 도래(Zukunft)
기투는 [[시간성]]의 세 탈자태 중 도래(Zukunft)와 대응한다. 도래는 단순히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기투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면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블래트너의 분석에 따르면, "도래의 탈자는 [[현존재]]의 앞으로 밀고 나아감이고, 지평은 [[현존재]]가 밀고 나아가는 바, 즉 그것의 가능성들이다." 기투는 본질적으로 도래적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기투하면서 미래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도래는 시간적 순서에서의 '나중'이 아니다. 블래트너의 "도달 불가능성 테제"(Unattainability Thesis)에 따르면, [[현존재]]의 가능성은 미래에 '도달할' 목표 상태가 아니다.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은 언젠가 완료될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현존재]]가 그것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자신을 음악가로 이해하는 것은 미래의 가능한 상태를 가져오려는 시도가 아니다."
### 기투와 시간성의 통일
기투는 도래에만 속하지 않는다. 기투는 [[시간성]] 전체의 통일과 연관된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기투하면서(도래), 자신이 던져진 바를 떠맡고(기재), 상황 속에서 행위한다(현재).
[[염려]](Sorge)의 첫 번째 계기—"자기를-앞질러-있음"(Sich-vorweg)—가 기투에 대응한다. [[현존재]]는 자신보다 항상 '앞에' 있다. 이 '앞에 있음'이 기투의 시간적 의미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앞질러 있기 때문에 기투한다.
순간(Augenblick)에서 세 시간적 차원이 통일된다. 결단한 [[현존재]]는 자신의 도래를 향해 기투하면서, 기재를 반복하고, 상황을 현재화한다. 순간은 이 세 차원의 탈자적 통일이다.
## 기투와 이해의 양태
### 눈앞의 것(Vorhandenes)과 손안의 것(Zuhandenes)
기투는 존재자가 드러나는 방식을 규정한다. [[하이데거]]는 두 가지 근본적 존재 양태를 구분한다: 눈앞에 있음(Vorhandenheit)과 손안에 있음(Zuhandenheit).
손안에 있음은 도구가 사용될 때의 존재 양태이다. 망치를 사용할 때 망치는 "무게 500g의 물체"로 의식되지 않는다. 못을 박는 도구로서 투명하게 작동한다. [[현존재]]는 도구를 그것의 가능성—무엇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기투한다. 드레이퍼스의 '숙련된 대처'(skillful coping) 해석은 이 차원을 강조한다.
눈앞에 있음은 도구가 고장 나거나 이론적 관조의 대상이 될 때의 존재 양태이다. 이때 도구는 가능성의 연관에서 벗어나 순전한 대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파생적 양태이다. 근원적으로 세계 내부적 존재자는 손안에 있는 것으로 만나진다.
### 주시(Sicht)와 투명성(Durchsichtigkeit)
기투의 성격을 [[하이데거]]는 "주시"(Sicht)라 부른다. 이해는 기투하면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적 관조가 아니다. 실천적 상황에서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주시는 여러 양태로 분화된다. '둘러봄'(Umsicht, circumspection)은 배려(Besorgen)에서 도구적 연관을 파악하는 주시이다. '살펴봄'(Rücksicht)은 심려(Fürsorge)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주시이다. '투명성'(Durchsichtigkeit)은 [[현존재]]가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주시이다.
투명성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 구조를 들여다본다. 이것은 자기-이해의 본래적 양태이다. [[현존재]]는 자신을 기투하면서 자신에게 투명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세인]]의 해석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투명성은 은폐된다.
### 해석(Auslegung)
기투는 해석(Auslegung)으로 발전한다. 해석은 이해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기투된 가능성들이 명시적으로 분절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해석은 "알-구조"(Als-Struktur, as-structure)를 갖는다. 무언가를 무언가'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망치를 '못 박는 도구로서' 파악하는 것이 해석이다. 이 '로서'가 해석의 본질적 구조이다.
해석은 "선-구조"(Vor-Struktur)를 전제한다. 선-가짐(Vorhabe), 선-봄(Vorsicht), 선-파악(Vorgriff)—이것들이 해석의 선구조이다. 해석은 무전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미 기투된 가능성들이 해석의 토대이다. 이것이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scher Zirkel)이다.
## 본래적 기투와 비본래적 기투
### 비본래적 기투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세인]]의 가능성들을 향해 기투한다. "사람들이 하는 것",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런 익명의 가능성들이 기투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것이 비본래적 기투이다.
비본래적 기투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있지 않다. [[세인]]이 미리 열어놓은 가능성들 안에서 움직인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율이다. "누구나 타자이며,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비본래적 기투도 기투이다. [[현존재]]는 존재하는 한 기투한다. 비본래성은 기투의 부재가 아니라 기투의 특정 양태이다. [[현존재]]는 비본래적으로도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 다만 그 가능성이 [[세인]]에 의해 미리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 본래적 기투
본래적 기투는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기투하는 것이다. [[세인]]의 가능성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능성을 본다. 이것은 [[결단성]](Entschlossenheit)의 구조이다.
[[결단성]]에서 [[현존재]]는 양심의 부름을 듣고 자신의 탓이 있음(Schuldigsein)을 받아들인다. 던져진 존재를 자기 것으로 전유하고, 그 위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기투한다. 이것이 본래적 자기-기투이다.
선구적 [[결단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에서 기투는 완전한 형태를 갖는다.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면서 [[현존재]]는 [[세인]]의 지배에서 해방된다.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 삶의 가능성을 결단적으로 기투한다. "죽음을 예기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자신의 기획을 선택할 자유를 얻는다."
## 기투와 세계
### 세계-기투
기투는 세계를 열어젖힌다. [[현존재]]는 세계를 기투하면서 세계 안에 있다. "이해는 [[현존재]]의 존재를 그것의 '무엇을-위함'과 유의미성, 즉 그것의 현재 세계의 세계성 양자 모두에 동등한 근원성으로 기투한다."
세계의 유의미성(Bedeutsamkeit)은 기투의 상관자이다. 도구들의 지시 연관—무엇을 위한 무엇—이 세계의 구조를 이룬다. 이 연관 전체가 [[현존재]]의 기투와 함께 열린다. 세계가 먼저 있고 [[현존재]]가 나중에 기투하는 것이 아니다. 기투와 세계는 동시적이다.
세계-기투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내부적 존재자들은 [[현존재]]의 기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자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가능성의 연관 속에서, 의미의 지평 위에서—는 기투에 의해 규정된다.
### 기투와 진리
[[하이데거]]에게 진리는 근원적으로 개시성(Erschlossenheit)이다. 기투는 진리의 조건이다. 존재자가 진리 속에서 드러나려면 먼저 가능성의 지평이 열려야 한다. 이 지평을 여는 것이 기투이다.
"[[현존재]]는 '진리 안에' 있다." 이 명제는 [[현존재]]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존재]]는 기투하면서 존재자가 드러날 수 있는 터전을 연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현존재]]는 "비진리 안에" 있다. 기투가 은폐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가능성을 향한 기투는 다른 가능성들을 닫는다.
## 드레이퍼스의 해석
### 숙련된 대처로서의 기투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는 《세계-내-존재》(1991)에서 기투를 '숙련된 대처'(skillful coping)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드레이퍼스에 따르면, 기투의 핵심은 [[현존재]]가 세계 내의 가능성들을 신체화된 기술로 파악하는 것이다.
드레이퍼스는 기투가 표상적 계획이 아님을 강조한다. 숙련된 장인이 도구를 사용할 때 그는 명시적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상황의 요구에 직접 응답한다. 이 전반성적(prereflective) 관여가 기투의 본래적 양태이다.
드레이퍼스의 해석은 AI 비판과 연결된다. "인간의 기술과 이해는 규칙 기반 표상이나 시뮬레이션으로 환원될 수 없다. 실천적 맥락 속으로의 이 전반성적 던져진 기투—일상 활동에서의 직관적 전문성과 같은—는 형식적 모델링을 벗어난다." 기투의 신체화된 성격이 컴퓨터 모델과의 결정적 차이이다.
### 비판적 검토
드레이퍼스의 해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드레이퍼스가 기투를 '숙련된 신체적 조정'으로 환원함으로써 [[현존재]]의 자기-관계적 차원을 놓친다고 주장한다. 기투는 단순히 세계와의 대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구조이다.
테일러 카먼(Taylor Carman)은 드레이퍼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 해석을 발전시켰다. 카먼에 따르면 '일차적 이해'가 숙련된 활동이 아니라 가능성을 향한 기투적 봄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일차적 이해'는 숙련된 활동이 아니라, 가능성의 관점에서의 기투적 봄이다."
## 사르트르와의 비교
### 사르트르의 기획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하이데거]]의 기투 개념을 '기획'(projet)으로 전유했다. 《존재와 무》(1943)에서 사르트르는 인간 실존을 근본적으로 기획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 모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갖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기투/기획하면서 자기 자신이 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항상 자기 자신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했다. 가능성으로서 인간 실존은 미래의 예기, 기대, 기투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더 급진적 자유를 주장한다. [[하이데거]]의 [[내던져짐]] 분석에서 기투는 항상 던져진 조건에 의해 제약된다. [[사르트르]]는 사실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유의 본질적 제약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사실성을 자유의 제한으로 보지 않는다. 자유는 오직 사실성의 상황에서, 그 상황의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과 함께할 때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 나쁜 믿음과 비본래적 기투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mauvaise foi) 개념은 [[하이데거]]의 비본래적 기투와 유사점을 갖는다. 나쁜 믿음은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에 "처해진" 존재이지만, 이 자유를 회피하려 한다. 마치 결정된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개념적 차이도 있다. [[하이데거]]의 비본래성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현존재]]의 본질적 구성 계기이다.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은 자기기만의 형태로,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이데거]]가 존재론적 기술을 목표로 한다면, 사르트르는 윤리적 요청을 포함한다.
## 현대적 적용
### 실존치료에서의 기투
기투 개념은 실존치료(Existential Therapy)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메다드 보스(Medard Boss)의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은 [[하이데거]]의 기투 개념을 직접 적용한다.
실존치료에서 내담자의 문제는 종종 기투의 왜곡이나 제한으로 이해된다. 우울증은 가능성을 향한 기투의 폐쇄로, 불안장애는 기투의 과부하로 분석될 수 있다. 치료의 방향은 내담자가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기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적 맥락에서 기투 개념의 적용은 주의를 요한다. "기투하라"는 요청이 또 다른 형태의 [[세인]]의 명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담자 자신의 몫이다.
### 성과사회와 강제된 기투
현대 [[성과주의]] 사회는 기투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한병철(Byung-Chul Han)의 분석에 따르면, 성과사회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기획을 강요받는다. "잠재력을 실현하라", "자기 자신이 되라"—이런 명령들이 현대의 [[세인]]이다.
흥미로운 역설은, 기투 자체가 강제될 때 그것이 비본래적이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세인]]이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금지했다면, 현대의 [[세인]]은 "더 많이 기투하라"고 명령한다. 자기실현 자체가 강박이 된다. 기투의 상품화에서 이 역설이 극단화된다.
### 디지털 시대의 기투
디지털 기술은 기투의 조건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준다. 정보 접근의 민주화, 원격 협업, 대안적 공동체 형성이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은 기투를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있다. 추천 시스템이 "당신이 좋아할 것"을 결정하고, 소셜 미디어가 가능성의 범위를 규정한다. [[현존재]]가 자신의 가능성을 기투하는 대신, 알고리즘이 가능성을 미리 선별한다.
디지털 시대의 본래적 기투가 무엇인지는 미해결 문제이다.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면, 기술적 조건 위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기투하는 것은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
## 비판적 검토
### 내용의 공백
기투 개념의 주요 비판은 내용의 공백이다. [[하이데거]]는 무엇을 기투해야 하는지에 대해 침묵한다. 기투의 형식만 제시하고 내용은 비어 있다. 하버마스의 "공허한 결단주의" 비판이 여기에 적용된다.
그러나 옹호자들은 이 공백이 의도적이라고 반론한다. [[하이데거]]는 보편적 규범을 제시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보편적 규범이 [[세인]]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진정한 기투는 원리의 적용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의 발견이라는 것이다.
### 개인주의 문제
기투 개념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기투는 개인의 가능성, 개인의 결단, 개인의 자기-이해에 집중한다. 타자와의 연대, 공동체적 가치, 사회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하이데거]]는 공동존재(Mitsein)를 분석하지만, 기투는 근본적으로 '각자의 것'(je meines)이다. 레비나스의 비판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타자의 타자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타자를 향한 기투, 타자와 함께하는 기투의 구조는 [[하이데거]]에서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다.
### 역사적 조건의 문제
기투 분석이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추상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기투가 특정 시대, 특정 사회의 조건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는지가 불분명하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이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기투의 가능성 자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정 계급, 젠더, 인종에게 열린 가능성과 닫힌 가능성이 다르다. 기투의 존재론적 분석이 이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할 수 있다.
## 관찰 노트
기투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기투와 [[내던져짐]]의 통일 구조가 인상적이다. [[현존재]]는 수동적으로 던져져 있으면서 능동적으로 기투한다. 이 이중성이 인간 실존의 독특성을 포착한다. 순수한 수동성(완전한 결정론)도 순수한 능동성(절대적 자유)도 [[현존재]]의 구조를 기술하지 못한다.
둘째, 기투가 반성적 계획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현존재]]는 존재하는 한 이미 기투하고 있다. 기투는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방식 자체이다. 이것은 전통적 '의지' 개념과의 결별을 함축한다.
셋째, 비본래적 기투도 기투라는 점이 중요하다. [[세인]]의 가능성을 향한 기투도 기투이다. 본래성은 기투의 유무가 아니라 기투의 양태에 관계한다. 이 점에서 비본래성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적절하지 않다.
넷째, 기투와 세계의 관계가 흥미롭다. 기투가 세계를 열어젖힌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의 창조가 아니다. 존재자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기투에 의존한다. 이 미묘한 균형이 [[하이데거]]의 실재론과 관념론의 경계에서의 위치를 보여준다.
다섯째, 기투의 현대적 변형이 관찰된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기투는 강제된다. "자기 자신이 되라"가 명령이 될 때, 기투의 본래성은 역설적으로 상실된다. 디지털 기술은 기투의 조건을 다시 변화시키고 있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기투의 내용은 어디서 오는가—개인의 결단에서인가, 역사적 유산에서인가, 아니면 양자의 상호작용에서인가? 본래적 기투는 어떻게 가능한가—[[세인]]의 가능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가? 기투의 사회적 조건은 어떻게 분석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기투 개념은 [[하이데거]]의 정치적 실패와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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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기투 분석의 출처
-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기투와 [[시간성]]의 심화
- 존재와 무 - [[사르트르]]의 기획 개념
### 근본 개념
- [[현존재]] - 기투하는 존재
- [[세계-내-존재]] - 기투가 드러나는 전체 현상
- [[염려]](Sorge) - 기투를 계기로 포함하는 존재 구조
- 실존성 - 자기를-앞질러-있음
- [[내던져짐]](Geworfenheit) - 기투와 대립하면서 통일되는 계기
- 사실성 - [[내던져짐]]의 존재론적 표현
### 기투의 구조
- [[이해]](Verstehen) - 기투의 실존론적 양태
- 가능성(Möglichkeit) - 기투의 대상
- 무엇을-위함(Worumwillen) - 기투의 방향
- 유의미성(Bedeutsamkeit) - 세계 기투의 상관자
- 해석(Auslegung) - 기투의 분절
### 관련 개념
- 주시(Sicht) - 기투의 성격
- 투명성(Durchsichtigkeit) - 자기 이해의 주시
- [[본래성]] - 기투의 본래적 양태
- [[결단성]] - 본래적 기투의 실존적 구조
- [[시간성]] - 기투의 시간적 의미(도래)
- [[역사성]] - 기투의 역사적 차원
### 철학적 맥락
- [[하이데거]] - 기투 개념의 창안자
- 아리스토텔레스 - 가능성 개념의 원천
- [[사르트르]] - 기획으로 전유
- 메를로-퐁티 - 신체적 차원의 보완
- 드레이퍼스 - 숙련된 대처로 해석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성과주의]] - 강제된 자기-기투
- [[회사]] - 기투가 측정되는 공간
- [[학교]] - 기투가 규범화되는 제도
- 디지털 사회 - 기술적으로 매개된 기투
### 심리치료적 적용
-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 - 빈스방거와 보스
- 로고테라피 - 프랭클의 의미치료
- 실존주의 상담 - 기투의 치료적 탐구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