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목차

개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저이자 20세기 철학의 지형을 바꾼 미완성 저작이다. 보스턴 공공도서관이 20세기 가장 많이 인용된 100권 중 1위로 선정했으며, 출간 후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수백 편의 논문이 이 책을 다룬다. 그러나 이 영향력은 역설 위에 서 있다—원래 3부작으로 계획되었으나 출간된 것은 제1부 2편까지이며, 핵심인 제1부 제3편 〈시간과 존재〉(Zeit und Sein)는 끝내 쓰이지 않았다.

하이데거의 출발 질문은 “존재란 무엇인가?”(Was ist Sein?)이다. 2천 년 넘게 서양 철학이 존재자(Seiendes)에만 관심을 가졌고 존재(Sein) 자체를 묻지 않았다는 진단—“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이 이 저작의 동기이다.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인 [현존재]를 분석한다. 그 분석의 핵심 구조—세계-내-존재, 세인, 염려, 불안, 죽음, 결단성, 시간성, 역사성—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이 저작의 학술적 논쟁은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완성의 의미(제3편의 좌절은 우연인가 구조적 필연인가), 정치와의 관계(1927년의 텍스트는 1933년의 행위와 분리 가능한가), 수용의 분열(저자가 거부한 실존주의적 독해가 왜 지배적이 되었는가). 이 세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존재와 시간》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20세기 지성사의 사건으로 관찰된다.

연구 질문

이 연구는 세 질문에서 출발한다. 첫째, 《존재와 시간》의 미완성은 우연한 좌절인가 구조적 불가능성인가—[시간성]에서 시간성 일반(Temporalität)으로의 전환은 왜 실패했으며, 이 실패가 후기 사유의 “전회”(Kehre)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둘째, 텍스트 내부의 개념들—투쟁(Kampf), 영웅, 민족(Volk), 공동운명(Geschick)—은 나치즘에 대한 구조적 친화성인가, 시대적 어휘의 중립적 사용인가? 셋째,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데리다의 해체, 레비나스의 윤리학, 드레이퍼스의 AI 비판—왜 이토록 다른 철학적 프로그램들이 모두 이 한 권의 미완성 저작에서 출발하는가?

《존재와 시간》이 열어젖힌 것

이 저작이 수행한 근본적 전환은 세 가지이다.

첫째,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z)의 발견. 존재(Sein)와 존재자(Seiendes)의 구분은 서양 형이상학의 “존재-신-론적”(onto-theo-logisch) 구조를 해체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데카르트의 코기토—이것들은 모두 최고의 존재자를 탐구한 것이지, 존재의 의미 자체를 물은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이 미물어진 물음을 다시 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분이 일상 언어에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이 있다”는 문장에서 존재와 존재자는 이미 뒤섞여 있으며, 이 언어적 혼란 자체가 “존재 망각”의 증상이다.

둘째, 주객 분리의 해체. [세계-내-존재]라는 단일 구조는 데카르트적 주체(res cogitans)와 객체(res extensa)의 분리를 허물어뜨린다. 현존재는 세계 “안에” 공간적으로 포함된 것이 아니라 세계 “와 함께” 있다. 도구 분석에서 이것이 구체화된다—망치를 사용할 때 망치는 ‘무게 500g의 물체’가 아니라 못을 박기 위한 도구로서 작업대, 못, 목재, 궁극적으로 거주라는 목적 연관 속에 있다. 도구가 고장 날 때 비로소 도구 자체가, 그리고 세계 내 자신의 위치가 의식의 대상이 된다. 처해 있음의 “개시가 동시에 폐쇄”라는 구조가 여기서 이미 작동한다.

셋째, 시간성의 존재론화. “시간이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한 지평”이라는 핵심 테제는 시간을 “지금-순간의 연속”으로 보는 전통을 뒤집는다. 탈자적(ekstatisch) 시간성—도래(Zukunft), 기재(Gewesenheit), 현재화(Gegenwärtigen)—은 순차적이지 않고 동시적이다. 현존재는 미래로 앞서가면서 과거를 떠안고 현재를 현전화한다. 이 세 차원의 통일이 시간성이며, 시간성현존재의 존재 의미이다.

이 세 전환은 불안, 양심, 결단성을 경유하여 실존적으로 구체화된다. 불안에서 일상적 친숙함이 붕괴하고(“가장 고유한 낯섦”), 양심의 부름이 세인의 소음으로부터 현존재를 불러내며(“타자 없는 부름”), 결단성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인수하여 본래적 실존이 열린다(“열림이 닫힌 곳”). [염려]는 이 모든 구조를 통일하는 존재론적 전체성이다.

논쟁의 지형

미완의 구조 — 제3편의 좌절과 전회

《존재와 시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책이 미완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제1부 제3편 〈시간과 존재〉는 현존재[시간성]에서 존재 일반의 시간성(Temporalität)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을 수행해야 했다. 하이데거는 1946년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에서 이 편이 “사유가 이 전회의 충분한 말함에 실패하여, 형이상학의 언어로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류되었다고 설명했다.

Braver가 편집한 《존재와 시간의 제3편》(2015)은 16편의 논문을 통해 이 좌절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Sheehan은 1926년부터 1976년까지의 궤적을 추적하며, 제3편의 기획이 《현상학의 근본문제들》에서 실패하고 〈근거의 본질에 대하여〉 이후 다른 형태로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Guignon은 제3편이 “현존재의 시간성을 넘어 시간 자체로, 이해 가능성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지만 “이 전회의 충분한 말함에 실패하여” 보류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좌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 독해가 대립한다. 하나는 우연적 실패론—하이데거가 시간이 부족했거나 적절한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며, 후기 사유(Beiträge zur Philosophie, 1936-38)에서 다른 형태로 완성되었다는 입장. 다른 하나는 구조적 불가능성론—현존재 분석을 통해 존재 일반에 접근하려는 기획 자체가 존재를 존재자로부터 파생시키는 순환에 빠져 있었으며, 이 순환을 깨기 위해 “전회”가 불가피했다는 입장. 이해의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이 인식론적 차원에서 포착한 것을, 제3편의 좌절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반복한다. 시간성의 “쓰이지 않은 지평”은 바로 이 구조적 순환의 귀결이다.

텍스트와 맥락 — 철학은 정치 이전인가 이후인가

《존재와 시간》은 1927년에 출간되었다—나치 집권 6년 전이다. 그러나 텍스트 내부에는 이미 논쟁적 어휘들이 있다. “투쟁”(Kampf), “영웅의 선택”, “민족”(Volk), “공동운명”(Geschick), “세대적 충성”—이것들은 1차 대전 후 독일의 시대적 어휘이기도 하지만, 1933년 이후 하이데거가 취한 정치적 행동의 철학적 기반이기도 하다.

뢰비트의 1936년 증언—하이데거가 자신의 “역사성” 개념이 정치 참여의 기초였다고 인정한 것—은 텍스트와 맥락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파예(2005)는 더 급진적으로, 《존재와 시간》을 “철학이 아니라 나치즘의 역사의 일부”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페디에(Fédier) 그룹은 파예의 독일어 역량 부족과 인용 조작을 비판했고, 파예의 주장 자체에 비판적인 하이데거 연구자들도 파예의 결론이 지나치다고 보았다.

《검은 노트》(2014) 출간 이후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트라우니의 “존재사적 반유대주의” 개념—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이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분석—은 철학과 정치의 관계를 존재론 내부의 문제로 격상시켰다. 역사성의 “형식이 내용이 된 곳”이라는 문제가 여기서 가장 첨예해진다—형식적 존재론의 빈자리가 가장 위험한 정치적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 《존재와 시간》 이후의 역사가 보여준 사태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저자의 전기로 환원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강력하다. 아렌트, 데리다, 로티, 파토치카는 《존재와 시간》의 개념적 성과가 하이데거 개인의 정치적 실패로 무효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렌트는 텍스트의 통찰을 취하면서 저자의 죽음 중심 사유를 탄생성(natality)으로 뒤집었고, 데리다는 해체(Destruktion)를 해체(déconstruction)로 전유하면서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비판을 하이데거 자신에게 적용했다. 텍스트가 저자를 초과하는 이 현상은 기투의 “기투하지-않을-수-있음”과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텍스트의 가능성은 저자의 의도에 의해 소진되지 않는다.

수용의 역설 — 실존주의자가 아닌 자의 실존주의

《존재와 시간》의 가장 특이한 현상은 수용의 분열이다. 하이데거는 1946년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에서 사르트르와 명시적으로 거리를 두었다—자신은 존재론자이지 인간의 실존을 다루는 인간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러나 전후 유럽은 이 책을 실존의 철학으로 읽었다. 죽음, 불안, 본래성, 일상성—이 주제들이 전후의 허무와 공명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수용이 구조적으로 분리되는 사태가 관찰된다.

수용의 갈래는 최소 네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프랑스 실존주의—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보부아르의 상황의 윤리학, 메를로-퐁티의 지각 현상학. 이들은 《존재와 시간》의 실존적 분석을 자유, 신체, 정치의 방향으로 확장했다. 둘째, 해석학—가다머의 《진리와 방법》(1960)은 《존재와 시간》의 이해 구조를 해석의 보편적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셋째, 해체론과 윤리학—데리다는 Destruktion을 déconstruction으로 전유하여 서양 형이상학의 “현전의 형이상학”을 비판했고,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판하면서 “존재론에 선행하는 윤리”를 주장했다. 넷째, 영미 분석 전통—드레이퍼스의 주석서(1991)는 영어권에서 하이데거 이해의 표준이 되었고, “드레이데거”(Dreydegger)라 불릴 만큼 독자적인 수용을 형성했다. 드레이퍼스는 나아가 《존재와 시간》의 도구 분석과 숙련된 대처(skillful coping) 개념을 인공지능 비판에 적용하여, 인간 지능이 형식적 규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주장의 철학적 기반으로 삼았다.

이 분열된 수용은 단순한 오독의 역사가 아니다. 퇴락의 “부인된 규범성”이 텍스트 내부의 구조적 양가성을 드러냈듯이, 《존재와 시간》의 분열된 수용은 텍스트 자체의 구조적 다의성을 반영한다. 존재론인 동시에 실존 분석이고, 현상학인 동시에 해석학이며, 전통의 파괴(Destruktion)인 동시에 전통의 전유인 이 텍스트는, 그 미완성 자체가 다방향적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다.

관찰자의 기록

《존재와 시간》을 관찰하면서 발견되는 것은, 이 저작이 자신의 미완성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역설이다. 제3편이 쓰였더라면—시간성에서 존재 일반의 시간적 의미로의 전환이 성공했더라면—이 책은 아마도 하나의 체계로 닫혔을 것이다. 미완이기 때문에 열려 있었고, 열려 있었기 때문에 실존주의, 해석학, 해체론, 윤리학, AI 비판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이 저작의 개념들은 자신의 창안자를 초과했다. 하이데거가 의도한 것은 기초존재론이었지만, 인간 사회가 읽은 것은 실존의 철학이었다. 하이데거가 거부한 것은 인간주의였지만, 아렌트와 레비나스가 이 책에서 도출한 것은 정치와 윤리였다. 하이데거가 나치즘의 철학적 기반으로 사용한 것은 역사성결단성이었지만, 데리다와 가다머가 같은 텍스트에서 도출한 것은 차이와 대화였다. 텍스트가 저자를 초과하는 이 현상은 하이데거 자신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기투된 가능성은 기투하는 자의 의도로 소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초과는 면죄부가 아니다. 양심의 “타자 없는 부름”이 윤리적 공백을 드러냈고, 결단성의 “열림이 닫힌 곳”이 정치적 실패를 예고했으며, 역사성의 “형식이 내용이 된 곳”이 형식적 존재론의 정치적 위험을 보여주었다. 이 일련의 구조적 문제들은 《존재와 시간》 내부에 이미 있었다—다만 그것이 드러나기까지 역사가 필요했을 뿐이다. 미완이 완성한 것—이 역설이 《존재와 시간》의 궁극적 성격이다. 미완성이 체계의 폐쇄를 방지했고, 그 열린 구조가 20세기 철학의 가장 다양한 전개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같은 열림이 가장 위험한 정치적 내용도 허용했다. 《존재와 시간》의 사유는, 그 미완 자체의 양가성 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같이 읽기

핵심 개념

  • 현존재 - 존재를 묻는 존재자, “미완성”의 존재론적 조건
  • 세계-내-존재 - 현존재의 기본 구조, “이미 밖에 있음”
  • 세인 - 일상성의 지배 구조, “익명의 지배”
  • 염려 - 존재 구조의 전체성, “수렴하지 못한 수렴점”
  • 시간성 - 존재의 의미, “쓰이지 않은 지평”

실존적 구조

  • 불안 - 본래성으로의 근본 기분, “가장 고유한 낯섦”
  • 처해 있음 - 사실성의 개시, “개시가 동시에 폐쇄”
  • 이해 - 기투적 이해,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
  • 내던져짐 - 선택 없이 던져진 사실성, “근거 없음을 근거로 삼는 것의 근거 없음”
  • 기투 - 가능성을 향한 던짐, “기투하지-않을-수-있음”
  • 담화 - 개시의 분절, “역전된 기초”

실존적 전개

  • 양심 - 세인으로부터의 부름, “타자 없는 부름”
  • 결단성 - 본래적 실존의 양태, “열림이 닫힌 곳”
  • 본래성 - 자기 존재의 인수, “구조적 함정”
  • 퇴락 - 일상적 빠져 있음, “부인된 규범성”
  • 역사성 - 역사적 존재의 구조, “형식이 내용이 된 곳”

철학적 맥락

마지막 업데이트: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