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

목차

개요

역사성(Geschichtlichkeit, historicity)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 제2편 5장에서 전개한 개념으로, 현존재가 시간 “속에서”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다. 하이데거는 Geschichte(역사적 사건)와 Historie(역사학)를 구분하며, Geschichtlichkeit를 전자의 존재론적 근거로 위치시킨다. 역사성은 시간성에 근거하되 특히 기재(Gewesenheit)와 밀접하게 연관되며, 운명(Schicksal), 공동운명(Geschick), 유산(Erbe), 반복(Wiederholung) 등의 하위 구조를 통해 전개된다.

그러나 이 개념에는 다른 어떤 실존론적 구조에도 없는 특이성이 있다. 하이데거 자신이 1936년 뢰비트에게 자신의 “역사성” 개념이 나치 정치 참여의 “기초”였다고 인정한 것이다. 형식적 존재론으로 설계된 개념이 가장 구체적인 정치적 내용으로 채워진 사례—이것이 역사성 개념의 학술적 논쟁을 지배하는 사태이다.

연구 질문

이 연구는 세 질문에서 출발한다. 첫째, 역사성의 형식적 구조—운명, 공동운명, 민족—는 나치즘에 대한 구조적 친화성을 내장하는가, 아니면 하이데거 개인의 오용인가? 트라우니의 “존재사적 반유대주의”(seinsgeschichtlicher Antisemitismus)는 이 물음을 존재론의 내부로 밀어넣는다. 둘째, 반복(Wiederholung)은 과거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인가, 과거로의 회귀인가—키에르케고르의 ‘앞으로 회상된’ 반복과 데리다의 반복-변형(itérabilité) 사이에서 하이데거의 반복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셋째, 형식적 역사성은 물질적 역사를 포섭하는가 비워내는가—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제기하는 역사성 자체의 역사적 지방성을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사유할 수 있는가?

역사성이 열어젖힌 것

역사성의 근본 구조는 ‘뻗쳐 있음’(Erstreckung)이다. 현존재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수동적으로 놓여 있지 않고, 양 극단을 향해 능동적으로 뻗친다. 이 뻗침의 구조가 ‘발생’(Geschehen)이며, 발생의 존재론적 조건이 역사성이다. Hanly(2017)가 분석하듯, 탄생과 죽음의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다—죽음을 향한 존재가 현존재의 시간적 지향을 구조화한다면, 탄생은 “전혀 다른 출발점”을 요구하는 불가접근적 한계이다.

역사성은 시간성의 구체적 양태로서, 특히 기재에서 시간화한다. 그러나 기재는 도래 및 현재와의 탈자적 통일 속에 있으므로 역사성도 세 시간적 차원의 통일이다. 본래적 역사성의 구조는 세 계기로 전개된다. 운명(Schicksal)—선구적 결단성 속에서 던져진 가능성을 자기 것으로 인수하는 것. 공동운명(Geschick)—“공동체의, 민족의 발생”으로서, 개인의 운명이 그 안에서 미리 인도되는 집단적 차원. 반복(Wiederholung)—과거의 현존재가 직면했던 가능성을 되찾아 자기 상황에서 새롭게 기투하는 것.

이 구조에서 유산(Erbe)과 전통(Tradition)의 구분이 결정적이다. 유산은 살아 있는 가능성들의 저장고이고, 전통은 유산이 경직되어 “원래 그런 것”으로 절대화된 형태이다. 하이데거는 전통의 “파괴”(Destruktion)를 통해 전승(Überlieferung)을 회복하려 한다. 역사주의가 모든 것을 상대화하여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데 반해, 하이데거의 역사성은 결단성을 통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진리를 열어밝히는 구조를 제시한다.

논쟁의 지형

존재론인가 정치신학인가 — Geschick에서 Volk로

역사성 논쟁의 핵심에는 뢰비트의 증언이 있다. 1936년 로마에서 뢰비트가 하이데거의 나치 지지가 그의 철학 본질에서 나온다고 제안했을 때, “하이데거는 유보 없이 동의했고, 자신의 ‘역사성’ 개념이 정치적 ‘참여’의 기초였다고 설명했다.” 이 증언은 역사성을 순수한 존재론적 구조로 읽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지속적인 반론으로 기능한다.

《검은 노트》(Schwarze Hefte, 2014년 출간)의 편집자 트라우니는 이 문제를 “존재사적 반유대주의”(seinsgeschichtlicher Antisemitismus)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아니라 존재사 내부의 구조적 배제이다—그리스인과 독일인만이 “존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유대인은 이 가능성에서 영구히 배제된다. 트라우니에 따르면, 이것이 일반적 반유대주의보다 “더 나쁜” 이유는 하이데거가 자신의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것과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존재론적 차원에서 정당화된 배제.

파예(Faye)는 더 급진적으로, 하이데거가 “나이브한 학자”가 아니라 나치즘의 자임한 “정신적 지도자”였으며 나치즘이 철학 자체에 도입되었다고 주장한다. 1933년 총장 연설에서 하이데거가 언급한 “독일 민족의 역사적 사명”은 역사성 개념의 직접적 정치적 적용이었다. Aho는 이에 대해 방어적 독해를 시도한다—역사성에서 본래적 개인은 “항상 이미 본래적 함께-있음”이며, Volk는 생물학적 인종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어는 하이데거 자신의 증언과 《검은 노트》의 텍스트적 증거 앞에서 점점 약화되고 있다.

결단성의 “열림이 닫힌 곳”이 하이데거 개인의 결단에서 관찰된 현상이라면, 역사성에서는 개념 자체의 구조가 문제이다. 운명-공동운명-민족이라는 계열은 형식적으로는 어떤 내용도 허용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특정한 내용—민족적 사명, 영웅의 선택, 세대적 충성—을 구조적으로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심의 “타자 없는 부름”이 윤리적 공백을 드러냈다면, 역사성의 Geschick는 그 공백을 민족적 내용으로 채울 준비가 되어 있는 형식이다.

되찾음인가 회귀인가 — Wiederholung의 방향

반복(Wiederholung)은 역사성의 핵심 구조이면서 가장 논쟁적인 개념이다. 하이데거는 반복이 “지나간 것을 되돌리는 것도, 현재를 이미 사라져버린 것에 결박하는 것도 아니”라고 명시한다. 반복은 과거의 현존재가 직면했던 가능성에 “응답”하여 현재의 상황에서 새롭게 기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되찾음’의 방향성은 구조적으로 불확정적이다.

키에르케고르의 Gjentagelse(1843)는 하이데거의 직접적 원천이다—독일어 번역 제목이 Wiederholung이었고, 하이데거가 이 판본을 읽었다. 키에르케고르에게 “반복과 회상은 같은 운동이되 방향이 반대이다. 회상된 것은 과거를 향하고, 진정한 반복은 앞으로 회상된다.” 이 ‘앞으로의 회상’은 하이데거의 반복에서 보존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복이 실존적-종교적 도약이라면, 하이데거의 반복은 실존론적 구조이다—내용 없는 형식.

데리다의 반복-변형(itérabilité)은 다른 방향에서 하이데거의 반복을 문제시한다. 데리다에게 반복은 “필연적으로 변형하는 반복”이며, 동일성의 귀환이 아니라 차이(différance)의 운동이다. 이상적 동일성의 존재 자체가 반복의 구조에 의존하며, 이 반복은 시간적·공간적 차연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하이데거의 반복이 과거의 가능성을 “되찾아” 현재에서 새롭게 기투한다고 할 때, 데리다는 묻는다—되찾아진 것은 “같은” 가능성인가? 반복 속에서 변형되지 않는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는가?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죽음 중심 사유 자체를 뒤집는다. 아렌트에게 “탄생성(natality)이야말로 형이상학적 사유와 구별되는 정치적 사유의 중심 범주”이다. 하이데거의 역사성이 기재와 반복을 통해 과거를 향하는 반면, 아렌트의 탄생성은 전례 없는 시작의 가능성을 연다. 역사적 존재의 조건이 죽음이 아니라 탄생이라면, 역사성의 구조 자체가 역전된다—과거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전례 없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역사적 행위의 핵심이 된다. 아렌트에게 이 역전은 단순한 이론적 선호가 아니라 전체주의의 경험에서 도출된 정치적 필연이다.

역사 없는 역사성 — 형식적 존재론이 물질적 역사를 만날 때

역사성의 세 번째 논쟁은 형식성과 구체성의 간극이다. 하이데거의 역사성은 모든 현존재에 적용되는 보편적 존재론적 구조로 제시된다. 그러나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2000)는 “역사화한다는 행위 자체가 탈주술화된 공간, 세속적 시간, 주권에 관한 특이하게 유럽적인 가정들을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역사성 개념은 보편적 존재론을 표방하지만, 그 자체가 특정한 역사적—유럽적, 근대적—조건의 산물이다.

코젤렉의 메타역사적 범주—‘경험공간’(Erfahrungsraum)과 ‘기대지평’(Erwartungshorizont)—은 하이데거의 형식적 시간성을 구체적 역사적 범주로 번역하려는 시도이다. 코젤렉은 하이데거의 시간성 분석을 수용하되, 그 공간적 차원을 보충한다—“모든 역사적 현존재는 내부와 외부의 공간으로 분열되어 있다.” 근대(Sattelzeit, 1750-1850)에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진보’의 시간이 탄생했다는 코젤렉의 테제는, 하이데거의 형식적 역사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역사적 시간 경험의 구체적 변동을 드러낸다.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더 근본적이다. 역사성이 현존재의 보편 구조라면, 경제적 생산양식, 계급, 젠더와 같은 구체적 역사적 조건은 어디에 있는가?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적”(ontisch) 문제로 분류하지만, 이 분류 자체가 탈역사화의 메커니즘이다. 처해 있음의 “개시가 동시에 폐쇄”였다면, 역사성의 형식적 보편성은 물질적 역사의 구체성을 개시하는 동시에 폐쇄한다. 가다머의 ‘효과사적 의식’(wirkungsgeschichtliches Bewußtsein)은 이 간극을 해석학적으로 매개하려 한다—이해 자체가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인정. 그러나 가다머 역시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물질적 조건의 분석을 해석학적 의식 내부로 흡수하며, 그 외부를 사유하지 않는다.

기투에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가 기투의 사회적 조건을 폭로했듯이, 역사성에서도 같은 구조가 작동한다. 어떤 유산이 어떤 집단에게 “살아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 있고 어떤 집단에게 닫혀 있는지는 계급, 인종, 젠더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하이데거의 역사성은 이 차별적 접근의 구조를 사유할 도구를 제공하지 않는다—형식적 보편성이 물질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관찰자의 기록

역사성을 관찰하면서 발견되는 것은, 이 개념이 존재와 시간의 다른 어떤 실존론적 구조보다 자기 자신에 의해 시험받았다는 점이다. 하이데거의 역사성은 현존재가 자신의 역사적 상황에서 유산을 되찾고 운명을 인수한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하이데거 자신이 이 구조에 따라 행동했다—1933년 독일의 “역사적 사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인수하고, 민족의 공동운명에 합류하며, 그리스적 시원을 독일적 “다른 시작”으로 반복하려 한 것이다. 역사성 개념은 자신의 창안자에 의해 가장 충실하게 실행되었고, 그 결과는 철학사의 가장 심각한 정치적 실패였다.

이 자기-시험의 결과는 형식성의 역설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이해의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이 인식론적 차원에서, 기투의 형식적 비움이 실천적 차원에서 포착한 것을, 역사성은 정치적 차원에서 반복한다. 내용 없는 형식—운명, 유산, 반복—은 어떤 내용도 거부하지 않으며, 바로 그 빈자리가 가장 위험한 내용을 소환한다. 퇴락의 “부인된 규범성”이 가치 판단을 수행하면서 부인하는 구조였다면, 역사성의 형식성은 정치적 내용을 허용하면서 부인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역사성의 실패가 역사성의 무효를 의미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죽음 중심 사유를 탄생성으로 뒤집었고, 코젤렉은 형식적 시간성을 구체적 역사적 범주로 번역했으며, 차크라바르티는 역사성의 유럽적 지방성을 폭로하면서도 그 해석학적 전통의 “불가결성”을 인정했다. 역사성 개념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변형되어 살아남았다—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하이데거 자신의 반복 개념이 예고한 대로. 형식이 내용이 된 곳—역사성의 형식적 존재론이 가장 구체적인 정치적 내용에 의해 점거된 이 사태는, 존재와 시간의 실존론적 분석이 자기 자신의 역사적 조건을 사유하지 못한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간성의 “쓰이지 않은 지평”이 존재론 내부의 미완이었다면, 역사성의 실패는 존재론과 정치 사이의 미완이다.

같이 읽기

근본 구조

  • 현존재 - 역사적 존재, “미완성”의 존재론적 조건
  • 시간성 - 역사성의 근거, “쓰이지 않은 지평”
  • 내던져짐 - 역사적 상황에 던져져 있음, “근거 없음을 근거로 삼는 것의 근거 없음”
  • 기투 - 역사적 가능성을 향한 던짐, “기투하지-않을-수-있음”

실존적 전개

  • 결단성 - 본래적 역사성의 실존적 구조, “열림이 닫힌 곳”
  • 본래성 - 역사성의 본래적 양태, “구조적 함정”
  • 세인 - 비본래적 역사성의 전통적 지배, “익명의 지배”
  • 처해 있음 - 역사적 상황의 개시 구조, “개시가 동시에 폐쇄”

해석학적 전개

  • 이해 - 역사적 이해의 순환,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
  • 퇴락 - 전통의 경직화, “부인된 규범성”
  • 존재와 시간 - 역사성 분석의 원천
  • 하이데거 - 역사성 개념의 창안자이자 가장 문제적 실행자

마지막 업데이트: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