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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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우리는 ‘홀로 행복한 인간’이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꿈꾼다. 그 꿈은 ‘자유’, ‘독립’, ‘의존하지 않음’, ‘고독’ 같은 단어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개념들을 꽤나 성스럽게 다루는 것 같아 보인다. 이게 바로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성숙한 인간의 태도이며 삶을 관통하는 어떤 도(道)라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도’를 추구하고 싶어졌던 걸까?

아마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전처럼 어떤 ‘집단’에 ‘나’를 의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부터일것이다. 민족, 국가, 가족, 종교, 나이(세대), 학교/직장의 간판 따위의 전통적인 집단이 해체되고(젠더, 커리어는 그나마 아직 간당간당하게 남아있다), 능력, 외모, 취미, 취향 같은 훨씬 개인적인 가치에 집중하게 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기존 가치관이 나에게 ‘가짜 나’를 강요하기 때문에 ‘진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새 가치관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사실 순서가 뒤바뀐 측면이 있다. 우선 전통적인 가치관이 도태되고 무너져내려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떤 이득을 주기는 커녕 손해만 안겨주게 되었다. 그래서 새 세대의 사람들은 더이상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명함이나 자격증 따위에 편하게 몸을 뉘일 수 없게 되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모든 것이 해체되어 아무것도 나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외부에게서 눈을 돌리고 스스로 정체성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내부 완결성을 지닌 나르시스트가 되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새 유행 역시도 여전히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건 새 유행이 등장이 자연스럽다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우리 할아버지 세대나 자기 취향을 날카롭게 벼려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요즘 세대가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관점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유행이 너무 지나 촌스러워 보인다는 것 뿐? 둘 다 정체성 없이 살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자연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모종의 기만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찬양하는 고독과 개인주의의 개념들은 남들로 하여금 우리를 강해보이게 하고 스스로 강하다고 믿는데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래서는 영원히 외롭다. ‘건강한 관계’나, ‘홀로 행복한 인간’ 따위가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행복이라는 것은 부족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 결점을 보듬어주는 사랑과 동정심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홀로 행복한 인간’은 나르시스트의 비대한 자아에게 주는 먹이이다. ‘어른스러운 관계’는 사실 두 나르시스트의 독백, 즉 ‘관계 없음’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정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래서 정체성이라는 가면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쓰면 된다. 하지만 강해진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냥 멋있어질 뿐이다.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까지 어떻게하면 더 멋있어질까 궁리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