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려
**염려**(Sorge, Care)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에서 [[현존재]]의 존재를 규정하는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 것이다. 염려는 특정한 심리 상태나 감정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구조 자체이다. [[하이데거]]의 공식 정의에 따르면, 염려란 "자기를-앞질러-이미-세계-내에-있으면서-세계 내부적 존재자-곁에-있음"(Sich-vorweg-schon-sein-in-[der-Welt-] als Sein-bei [innerweltlich begegnendem Seienden])이다.
## 개념의 구조
### 삼중 구조
염려의 정의는 세 가지 계기를 포함한다.
첫째, **자기를-앞질러-있음**(Sich-vorweg)은 실존성(Existenzialität)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앞질러 나가 있다. 이것은 [[현존재]]가 미래를 향해 자신을 [[기투]](Entwurf)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재]]는 이미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항상 자신이 될 수 있는 바를 향해 있다. 윌리엄 블래트너(William Blattner)에 따르면, "자기를 앞질러 있음은 [[현존재]]가 도래적(futural)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미-세계-내에-있음**(schon-sein-in)은 사실성(Faktizität)이다. [[현존재]]는 선택하지 않은 상황 속에 이미 던져져([[내던져짐|Geworfenheit]]) 있다. 특정 시대, 특정 문화, 특정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조건들은 [[현존재]]가 결정한 것이 아니지만 [[현존재]]의 존재를 규정한다. 사실성은 [[시간성]]의 기재(Gewesenheit)에 대응한다.
셋째, **세계 내부적 존재자-곁에-있음**(Sein-bei)은 [[퇴락]](Verfallen)이다. [[현존재]]는 일상적으로 세계 내부의 존재자들에 빠져 있다. 도구를 사용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일상적 관심사에 몰두한다. 이것은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현존재]]의 본질적 구성 계기이다. [[퇴락]]은 현재화(Gegenwärtigen)에 대응한다.
이 세 계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염려는 이 세 계기의 통일이며, [[현존재]]의 존재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개념이다.
### 배려와 심려
염려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배려**(Besorgen, concern)는 [[현존재]]가 세계 내부적 도구와 관계하는 방식이다. 도구를 사용하고, 물건을 만들고, 일상적 과제를 수행하는 모든 활동이 배려이다. 배려에서 도구는 '손안에 있는 것'(Zuhandenheit)으로 만나진다. 망치를 사용할 때 망치는 "무게 500g의 물체"로 의식되지 않고, 못을 박는 도구로서 투명하게 작동한다.
**심려**(Fürsorge, solicitude)는 [[현존재]]가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이다. 타인은 도구가 아니라 함께 세계 내에 있는 공동-[[현존재]](Mit-Dasein)이다. [[하이데거]]는 심려의 두 극단적 양태를 구분한다. '대신해주는 심려'(einspringende Fürsorge)는 타인을 대신하여 염려를 떠맡는다—이것은 타인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앞질러가며 해방시키는 심려'(vorausspringende-befreiende Fürsorge)는 타인이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떠맡도록 돕는다.
케임브리지 하이데거 사전에 따르면, "개념들은 분명히 구별되는데, Sorge는 [[현존재]] 자체에, Besorgen은 세계 내의 활동에, Fürsorge는 타인과의 관계에 해당한다."
### 시간성과의 관계
염려의 세 계기는 [[시간성]](Zeitlichkeit)의 세 탈자태(Ekstase)와 대응한다.
| 염려의 계기 | [[시간성]]의 탈자태 |
|------------|----------------|
| 실존성(자기-앞에-있음) | 도래(Zukunft) |
| 사실성([[내던져짐|이미-안에-있음]]) | 기재(Gewesenheit) |
| [[퇴락]](곁에-있음) | 현재(Gegenwart) |
[[하이데거]]에 따르면, "[[시간성]]은 염려의 의미를 구성한다." 염려가 시간적 구조를 갖기 때문에, [[현존재]]의 존재는 근원적으로 시간적이다. 블래트너는 이를 "염려 구조의 근원적 통일은 [[시간성]]에 있다"고 요약한다.
중요한 것은 세 탈자태 중 도래의 우위이다. [[현존재]]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존재하며, 이 도래로부터 기재와 현재가 함께 시간화된다. 이것이 염려 구조에서 실존성이 일차적임을 보여준다.
## 쿠라 신화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 42절에서 히기누스(Hyginus)의 쿠라(Cura) 신화를 인용하여 염려 개념의 전-존재론적 증거를 제시한다.
신화에 따르면, 쿠라(염려)가 강을 건너다가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 유피테르(주피터)가 지나가다 이를 보고 그 형상에 정신(spiritus)을 불어넣었다. 쿠라가 자신의 이름을 붙이려 하자 유피테르가 반대했다. 땅(Tellus)도 자신의 이름을 원했다. 사투르누스가 판결을 내렸다: "유피테르여, 당신이 정신을 주었으니 이 존재가 죽으면 정신을 받으시오. 땅이여, 당신이 몸을 주었으니 몸을 받으시오. 그러나 쿠라가 먼저 이것을 형성했으니, 이것이 살아 있는 동안은 쿠라가 소유하시오. 그리고 이름에 대한 분쟁이 있으니, 흙(humus)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호모(homo, 인간)라 불리우리라."
[[하이데거]]는 이 신화가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염려임을 전-존재론적으로 증언한다고 해석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염려에 속한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분석이 아니라 그것의 "확증"(Bewährung)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조르게(Sorge, 염려)가 등장한다. 파우스트 2부에서 염려는 파우스트를 찾아와 그를 눈멀게 한다. [[하이데거]]는 괴테의 해석도 인간 존재의 염려적 본질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 염려의 이중 의미
라틴어 cura와 독일어 Sorge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걱정, 근심, 불안**을 의미한다—미래에 대한 염려, 생존을 위한 투쟁, 책임의 부담이다. 이것은 염려의 부정적 측면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문제가 되기에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돌봄, 배려, 헌신**을 의미한다—누군가를 돌보는 것,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염려의 긍정적 측면이다. 인간은 자신과 타인의 존재에 관여하고 보살핀다.
[[하이데거]]에게 이 이중성은 우연이 아니다. 염려의 존재론적 구조가 이 두 현상을 가능하게 한다. 걱정과 돌봄 모두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방식의 표현이다.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에 관여하기 때문에 걱정도 하고 돌보기도 한다.
조르주 방스에 따르면, "[[하이데거]]에게 염려는 불안과 심려(solicitude)의 이중 의미를 갖는다—로마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이중성이다."
## 본래적 염려와 비본래적 염려
염려는 본래적(eigentlich) 양태와 비본래적(uneigentlich) 양태로 나뉜다.
### 비본래적 염려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세인]](Das Man)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이런 익명의 규범이 염려의 방향을 결정한다. 비본래적 염려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있지 않고, [[세인]]이 제시하는 가능성들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비본래적 염려의 시간적 구조는 기대(Gewärtigen), 망각(Vergessenheit), 현재화(Gegenwärtigen)이다. 미래를 배려의 대상으로 기대하고, 자신의 본래적 존재가능을 망각하며, 눈앞의 일에 빠져들어 현재화한다.
### 본래적 염려
본래적 염려는 [[결단성]](Entschlossenheit)에서 드러난다. [[결단성]]은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여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여는 것이다. 본래적 염려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유한성을 떠맡고,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면서(Vorlaufen) 자신의 상황에서 결단한다.
본래적 염려의 시간적 구조는 앞질러-달려감(Vorlaufen), 반복(Wiederholen), 순간(Augenblick)이다.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고, 자신이 실존해왔던 가능성을 반복하며, 상황을 통찰하는 순간 속에서 결단한다.
'앞서 달려가며 보는 [[결단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은 본래적 염려의 완전한 양태이다. 이것이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 존재 가능이다.
## 불안과 염려
[[불안]](Angst)은 염려의 존재론적 구조를 드러내는 근본 기분이다. [[불안]]에서 일상적 세계가 붕괴하고, [[세인]]의 안정이 무너진다. [[현존재]]는 섬뜩함(Unheimlichkeit) 속에서 자신이 [[세계-내-존재]]임을, 자신의 존재가 염려임을 직면한다.
[[불안]]이 드러내는 것은 "[[현존재]]의 존재가 염려"라는 사실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은 [[현존재]]를 개별화(Vereinzelung)시켜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과 대면하게 한다. [[세인]]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위안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에서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것은 [[세계-내-존재]] 자체이며, [[불안]] 속에서 주위세계적인 손안의 것이, 세계내부적 존재자 전체가 가라앉아버린다." 이 붕괴가 역설적으로 [[현존재]]의 존재 구조인 염려를 드러낸다.
##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해석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는 [[하이데거]]의 염려 개념을 '숙련된 대처'(skillful coping)로 해석했다. 드레이퍼스에 따르면, 염려의 핵심은 [[현존재]]가 세계와 관여하는 전반성적(prereflective) 방식이다.
드레이퍼스의 해석에서 [[현존재]]는 세계에 "몰입"(absorbed)되어 있다. 숙련된 장인이 도구를 사용할 때 도구는 의식에서 사라진다. 이 투명한 관여가 배려의 본래적 양태이다. 도구가 고장 나거나 문제가 생길 때 비로소 도구와 세계가 대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해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드레이퍼스가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숙련된 신체적 조정"으로 환원함으로써 [[현존재]]의 자기 관계적 차원을 놓친다고 주장한다. 염려는 단순히 세계와의 대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구조이다.
## 존 호글랜드의 해석
존 호글랜드(John Haugeland)는 염려를 "삶의 방식"(way of life)의 차원에서 해석했다. 호글랜드에 따르면, [[현존재]]는 개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방식의 살아감"(the living of a living way of life)이다.
호글랜드의 해석에서 염려의 사회적 차원이 강조된다. [[현존재]]는 공동체의 규범과 실천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개인의 실존은 더 큰 현상—공유된 삶의 방식—의 일부이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현존재]]라는 말로 의미한 것이라고 호글랜드는 주장한다.
로버트 브랜덤(Robert Brandom)은 호글랜드의 해석을 "한 세대에서 가장 깊고 흥미로운 [[하이데거]] 연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해석이 [[하이데거]]의 본래성 분석—개인이 [[세인]]으로부터 자신을 되찾는 것—과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논쟁적이다.
## 현대적 적용
### 기술 시대의 염려
후기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을 '몰아-세움'(Gestell)으로 분석했다. 기술 시대에 세계는 "정립 가능한 자원"(Bestand)으로 드러난다. 자연은 에너지 저장고, 인간은 인적 자원이다.
이 변형은 염려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배려가 "돌봄"에서 "계산"과 "통제"로 전환된다. 도구와의 관계가 '손안에 있음'에서 '정립 가능함'으로 바뀐다. 심려도 변형된다—타인은 "네트워킹"과 "인맥 관리"의 대상이 된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도 변형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존재 가능성의 물음이 "나의 KPI는 얼마인가?"로 대체된다. 염려가 자기-측정과 자기-최적화로 전환된다.
### 돌봄 윤리와의 관계
페미니스트 돌봄 윤리(ethics of care)는 [[하이데거]]의 염려 개념과 비교된다.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과 넬 노딩스(Nel Noddings)가 발전시킨 돌봄 윤리는 관계성, 책임, 반응성을 강조한다.
연구에 따르면, "최근의 큐레이토리얼 담론에서 돌봄의 사용은 페미니스트 돌봄 윤리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것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염려 개념과 긴장 관계에 있다." [[하이데거]]의 염려가 존재론적 구조인 반면, 페미니스트 돌봄은 윤리적 실천과 정치적 주장을 포함한다.
심려(Fürsorge)에서 [[하이데거]]가 구별한 두 양태—대신해주는 심려와 앞질러가며 해방시키는 심려—는 돌봄 윤리에서도 논의되는 긴장이다. 타인을 돌보되 의존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 돌보되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의 문제이다.
### 정신의학과 심리치료
루트비히 빈스방거(Ludwig Binswanger)와 메다드 보스(Medard Boss)는 [[하이데거]]의 염려 개념을 정신의학에 적용하여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을 발전시켰다.
보스에 따르면, 정신병리는 염려 구조의 왜곡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울증은 도래의 봉쇄—미래 가능성의 폐쇄—로, 강박은 퇴락의 경직화로, 불안장애는 염려 구조 전체의 과부하로 분석된다.
현대 실존치료는 염려의 본래적 양태를 치료의 방향으로 삼는다.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유한성을 떠맡으며,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결단하는 것이 건강한 실존이다.
## 비판적 검토
### 개인주의 비판
염려 개념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하이데거]]의 본래적 염려가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개인적 결단을 강조하지만, 타자와의 연대, 공동체적 가치, 사회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타자의 타자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심려 분석에서 타인은 공동-[[현존재]]로 나타나지만, 나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타자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 시간성의 비연속성 문제
블래트너는 [[하이데거]]의 시간성 해석에서 비연속성을 지적한다. 염려가 시간적 구조를 갖는다면, 그 시간은 연속적인 '지금들'의 흐름이 아니라 비연속적인 탈자들의 통일이다. 이것이 일상적 시간 경험과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불분명하다.
블래트너의 "도달 불가능성 테제"(Unattainability Thesis)에 따르면, [[현존재]]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있다는 것은 미래의 어떤 상태를 가져오려는 것이 아니다.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은 미래에 "도달할" 목표 상태가 아니다. 이 점에서 염려의 미래 지향성은 목적론적이지 않다.
### 신체성의 부재
염려 분석에서 신체성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염려가 [[현존재]]의 존재 구조라면, 신체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는 어떻게 염려하는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이 공백을 신체 현상학으로 채우려 했다.
## 관찰 노트
염려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염려가 [[현존재]]의 존재 구조 자체라는 주장의 급진성이 주목된다. 이것은 인간 존재를 정태적 실체가 아니라 동적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로 규정된다.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방식이 인간의 존재이다.
둘째, 염려의 삼중 구조—실존성, 사실성, 퇴락—가 [[시간성]]의 세 탈자태와 정확히 대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대응이 우연인지, 아니면 [[하이데거]]가 염려를 [[시간성]]에서 도출한 것인지, 혹은 그 역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셋째, 배려와 심려의 구분이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도구적 관계(배려)와 인격적 관계(심려)의 구별은 기술 사회에서 더욱 첨예해진다. 타인을 "자원"으로 다루는 것(배려의 확장)과 타인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심려)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관찰된다.
넷째, 쿠라 신화의 인용이 [[하이데거]]의 방법론적 특징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분석의 "증거"로 신화를 사용하는 것은 논증적이기보다 해석학적이다. 이것이 철학적으로 정당한지는 논쟁적이다.
다섯째, 본래적 염려와 비본래적 염려의 구분에서 가치 판단이 함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는 비본래성이 [[현존재]]의 본질적 양태이며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본래성을 향한 선호가 텍스트 전반에 걸쳐 관찰된다.
여섯째, 드레이퍼스와 호글랜드의 상이한 해석이 염려 개념의 다층성을 보여준다. 개인적 대처로 읽을 수도 있고, 집합적 삶의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두 차원이 어떻게 통합되는지는 추가 고찰이 필요하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염려가 [[현존재]]의 보편적 구조인가, 아니면 특정 문화와 시대의 산물인가? 본래적 염려는 실제로 가능한가, 아니면 이론적 이상에 그치는가? 기술 시대에 염려의 구조는 변형되는가, 아니면 동일하게 유지되는가? 그리고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과 염려 개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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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염려 분석의 출처
-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염려와 [[시간성]]의 심화
- 기술에 대한 물음 - 기술 시대의 염려 변형
### 근본 개념
- [[현존재]] - 염려하는 존재
- [[세계-내-존재]] - 염려의 구조가 드러나는 전체 현상
- [[시간성]] - 염려의 존재론적 의미
- 실존성 - 자기를-앞질러-있음
- [[내던져짐]](Geworfenheit) - 사실성의 존재론적 표현
- [[기투]](Entwurf) - 실존성의 존재론적 표현
- 사실성 - 이미-세계-내에-있음
- [[퇴락]] - 세계 내부적 존재자-곁에-있음
- [[이해]](Verstehen) - 현존재의 등근원적 개시성
- [[처해 있음]](Befindlichkeit) - 현존재의 등근원적 개시성
- [[담화]](Rede) - 이해가능성의 분절
### 염려의 양상
- 배려(Besorgen) - 도구와의 관계
- 심려(Fürsorge) - 타인과의 관계
- 자기-염려 - 자신의 존재를 떠맡음
### 관련 개념
- [[불안]] - 염려 구조를 드러내는 근본 기분
- [[세인]] - 비본래적 염려의 주체
- [[결단성]] - 본래적 염려의 양태
- [[본래성]] - 염려의 본래적 방식
- 죽음-을-향한-존재 - 본래적 염려의 극단
### 철학적 맥락
- [[하이데거]] - 염려 개념의 창안자
- [[후설]] - [[하이데거]]의 스승, [[지향성]] 개념
- 키르케고르 - 실존과 [[불안]]의 선구자
- 아리스토텔레스 - [[하이데거]]가 재해석한 실천 철학
### 영향받은 사상가
- [[사르트르]] - 염려를 실존주의로 전유
- [[메를로-퐁티]] - 신체적 차원의 보완
- 레비나스 - 윤리학적 비판
- 드레이퍼스 - 숙련된 대처로 해석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성과주의]] - 염려의 자기-최적화로의 전환
- [[회사]] - 배려와 심려가 왜곡되는 공간
- [[학교]] - 염려가 경쟁으로 전환되는 제도
- 기술 - 염려 구조의 변형
### 심리치료적 적용
-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 - 빈스방거와 보스
- 로고테라피 - 프랭클의 의미치료
- 실존주의 상담 - 염려의 치료적 탐구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