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단성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개념의 구조]]
> - [[#Entschlossenheit의 어원]]
> - [[#열려-있음으로서의 결단]]
> - [[#양심 갖기를 원함]]
> 3. [[#결단성의 구성 요소]]
> - [[#양심의 부름]]
> - [[#탓이 있음(Schuldigsein)]]
> - [[#불안에의 준비]]
> 4. [[#선구적 결단성]]
> - [[#죽음으로의 선구]]
> - [[#자기의 항상성]]
> - [[#전체 존재 가능]]
> 5. [[#상황과 순간]]
> - [[#상황(Situation)]]
> - [[#순간(Augenblick)]]
> - [[#행위와 실천]]
> 6. [[#실존주의적 맥락]]
> - [[#키르케고르의 선택]]
> - [[#사르트르의 결단]]
> - [[#실존적 헌신]]
> 7. [[#비판과 논쟁]]
> - [[#공허한 결단주의 비판]]
> - [[#정치적 함의 문제]]
> - [[#윤리적 공백]]
> 8. [[#현대적 적용]]
> - [[#리더십과 의사결정]]
> - [[#실존치료적 함의]]
> - [[#일상에서의 결단]]
> 9. [[#관찰자의 기록]]
> 10. [[#같이 읽기]]
## 개요
**결단성**(Entschlossenheit)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현존재]]가 [[세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실존 양태를 가리킨다. 영어로는 'resoluteness', 'resolve', 'determination'으로 번역되며, 한국어로는 '결단성', '결의성', '열어 밝힘'으로 옮겨진다.
결단성은 단순한 결심이나 의지적 결정이 아니다. [[하이데거]]에게 결단성은 양심의 부름을 듣고 자신의 '탓이 있음'(Schuldigsein)을 받아들이며, [[불안]]에 준비된 채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케임브리지 하이데거 사전에 따르면, 결단성은 "익명적 정체성과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는 대신, 자기 자신만의 개별적 존재 기획을 유지하고 안내하도록 행위의 구체적 상황을 조직하는 변양된 세계-내-존재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어 'Entschlossenheit'가 문자 그대로 '열려-있음'(un-closedness)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세인]] 속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에 닫혀 있다. 결단성은 이 닫힘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결단한 [[현존재]]에게만 '상황'(Situation)이 열리고, '순간'(Augenblick)이 가능해진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결단성은 [[세인]]의 규범에 순응하는 것을 극복하고 "자기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를 "공허한 결단주의"라 비판했고, 일부 연구자들은 결단성 개념과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 사이의 연결을 지적한다.
## 개념의 구조
### Entschlossenheit의 어원
독일어 'Entschlossenheit'는 동사 'entschließen'(결정하다, 결심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일상 독일어에서 이 단어는 "결연함", "단호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 단어의 어원적 구조를 활용하여 특수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ent-'는 부정 또는 분리를 나타내는 접두사이고, 'schließen'은 '닫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Ent-schlossenheit'는 문자 그대로 '닫혀 있지 않음', 즉 '열려-있음'(un-closedness)을 함축한다. [[하이데거]]는 이 어원적 의미를 철학적으로 전유한다.
[[하이데거]]는 'Entschlossenheit'(결단성)와 'Erschlossenheit'(개시성/열어 밝혀져 있음)의 언어적 유사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두 개념은 [[하이데거]]가 '진리'(Wahrheit)라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결단성은 [[현존재]]의 가장 본래적 개시성이다.
### 열려-있음으로서의 결단
결단성의 핵심은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이다. [[세인]] 속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닫혀 있다. [[세인]]이 제공하는 해석, [[세인]]이 미리 결정해놓은 가능성들만 본다. 자기 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율이다.
결단성은 이 닫힘을 열어젖힌다. 결단한 [[현존재]]는 [[세인]]의 해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기투]]한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결단성은 [[세인]] 속의 자기상실로부터 불러 세워지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단성이 [[세인]]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명시적으로 말한다: "결단성은 본래적 자기-있음으로서 [[현존재]]를 세계로부터 떼어놓지 않으며, 자유롭게 떠다니는 '나'가 되도록 고립시키지도 않는다." 결단한 [[현존재]]도 여전히 [[세계-내-존재]]이고 타인과 함께 있다. 달라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계이다.
### 양심 갖기를 원함
결단성의 실존적 구조는 '[[양심]] 갖기를 원함'(Gewissen-haben-wollen)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양심]]의 부름을 듣고 응답하려는 태도이다.
[[하이데거]]는 결단성을 여러 방식으로 공식화한다: "자신의 가장 고유한 탓이 있음을 향한 침묵하는 자기-[[기투]], [[불안]]에 준비된 채로"; "[[염려]] 자체의 본래성"; "실존적 증언에서의 본래적 존재 가능"; "자신의 가장 고유한 탓이 있음으로 불려 나옴을 스스로에게 허락함".
양심 갖기를 원함은 특정한 도덕적 지침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다. 양심의 부름은 내용이 없다.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양심 갖기를 원함은 자신의 존재론적 탓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 탓이 있음으로부터 행위하려는 태도이다.
## 결단성의 구성 요소
### [[양심]]의 부름
결단성으로의 전환은 '[[양심]]의 부름'(Ruf des Gewissens)을 통해 일어난다. [[하이데거]]에게 [[양심]]은 도덕적 판단 기관이 아니다. [[양심]]은 [[현존재]]를 [[세인]]의 소음에서 불러내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부름이다.
양심의 부름은 침묵한다. 어떤 발화도 없다. 내용도 없다. "양심의 부름에서—[[하이데거]]의 담론적 소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시—부름은 어떤 발화도 피한다. 전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부름은 단지 부를 뿐이다. [[세인]]-자기를 본래적 자기에게로 부른다.
부르는 자와 불리는 자가 모두 [[현존재]] 자신이다. [[현존재]]가 자기 자신을 부른다. 부르는 자는 [[세인]]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 [[현존재]]의 "섬뜩한" 깊이에서 온다. [[불안]] 속에서 드러나는 근본적 무근거성이 [[현존재]]를 자기에게로 부른다.
양심의 부름을 "듣는 것"은 선택이다. 모든 [[현존재]]가 부름을 받지만, 모든 [[현존재]]가 듣는 것은 아니다. [[세인]]의 소음 속에서 부름은 묻힌다. 부름을 본래적으로 듣는 것, 즉 "네가 탓이 있는 바로 그것으로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결단성의 시작이다.
### 탓이 있음(Schuldigsein)
양심이 알려주는 것은 [[현존재]]의 '탓이 있음'(Schuldigsein, being-guilty)이다. 독일어 'Schuld'는 '빚', '책임', '죄'를 동시에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 단어의 형식적, 존재론적 의미를 추출한다.
[[하이데거]]는 탓이 있음의 형식적 정의를 제시한다: "무언가의 결여에 대한 근거-있음." 여기서 '결여'(Mangel)와 '근거'(Grund)가 핵심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거 없이 책임이 있다. 선택하지 않은 존재를 떠맡아야 한다.
[[현존재]]의 탓이 있음은 구체적 잘못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 구조이다. [[현존재]]는 던져져 있다(Geworfenheit). 특정 시대, 특정 문화, 특정 조건 속에 선택 없이 존재한다. 이 던져진 존재가 자신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근거 없는 근거, 무화(nullity)의 근거—이것이 탓이 있음이다.
"자신의 가장 고유한 탓이 있음을 결단하여 떠맡으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결코 자신의 실존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 자기가 되기를 선택한다." 결단성은 이 탓이 있음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불안에의 준비
결단성은 [[불안]]에 "준비되어 있음"(bereit für die Angst)을 포함한다. [[불안]]은 [[세인]]의 안정을 무너뜨리는 근본 기분이다. 결단한 [[현존재]]는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결단성은 [[불안]]을 실존적 가능성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들에 스스로를 기투하려는 [[현존재]]의 의지이다." 결단성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불안]]을 실존적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적 [[현존재]]는 [[불안]]을 회피한다. 불편하기 때문에 다시 [[세인]]의 안정으로 도피한다. 결단한 [[현존재]]는 [[불안]]과 함께 머문다. [[불안]]이 드러내는 것—[[현존재]]의 무근거성, 유한성,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직면한다.
이것이 결단성을 "침묵하는"(verschwiegene) 것으로 만든다. 결단한 [[현존재]]는 [[세인]]의 잡담에 참여하지 않는다. [[불안]]이 드러낸 것을 말로 덮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탓이 있음과 함께 있다.
## 선구적 결단성
### 죽음으로의 선구
'선구적 결단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 anticipatory resoluteness)은 결단성의 완전한 형태이다. 죽음으로의 선구(Vorlaufen zum Tode)와 결단성이 통일된 것이다.
매쿼리-로빈슨 번역은 'vorlaufende Entschlossenheit'를 'anticipatory resoluteness'로 옮긴다. 패티슨은 "죽음을 향해 앞서 달려가며 결단하는 것"(resolute running ahead toward death)으로 번역한다. 이 대안적 번역은 활동적 의미를 강조한다.
죽음으로의 선구는 죽음을 지금 현재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을 예기함으로써 [[현존재]]는 자신을 특정하고 유한한 가능성들의 집합으로 정의된 존재로 개시한다. 이 가능성들 각각은 불가피하게 무화에 빠지기 쉽다." 죽음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 나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으로 직면한다.
[[하이데거]]는 강조한다: "죽음을 예기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자신의 기획을 선택할 자유를 얻는다."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현존재]]는 [[세인]]의 지배에서 해방된다.
### 자기의 항상성
선구적 결단성에서 [[현존재]]는 '자기의 항상성'(Ständigkeit des Selbst, constancy of the self)을 획득한다. 안정되고 개별화된 세계-내-존재 방식이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선구적 결단성에서 사람들은 기획과 기분을 통합하여 '자기의 항상성'—안정되고 개별화된 세계-내-존재 방식—을 달성한다." 예기와 결단성이 함께 작용하여, 자신의 세계에서 물려받은 가능성들을 결단하고 이를 개별적 방식으로 전유한다.
항상성은 고정성이 아니다. 결단은 매 순간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 번 결단했으니 항상 본래적"인 것이 아니다. 항상성은 반복되는 결단의 통일이다. 상황이 변해도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것, 그러나 경직되지 않고 상황에 응답하는 것이다.
### 전체 존재 가능
선구적 결단성은 [[현존재]]의 '전체 존재 가능'(Ganzseinkönnen)을 가능하게 한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선구적 결단성은 본래적 전체 존재 가능으로서의 [[현존재]]의 개시이다."
결단성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결단성이 죽음으로의 선구와 통일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결단성은 선구적 결단성으로서만 본래적으로, 전체적으로 그것인 바이다." 선구적 결단성은 결단성의 "완전한 분절"이다.
이 전체성은 [[현존재]]의 [[시간성]] 전체를 떠맡는 것이다. 과거(던져진 존재), 미래(죽음을 향한 존재), 현재(상황 속에서의 행위)—이 세 차원이 선구적 결단성에서 통일된다. 선구적 결단성은 본래적 [[역사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 상황과 순간
### 상황(Situation)
결단성에서 '상황'(Situation)이 열린다. 상황은 단순한 환경이나 상태가 아니다. 결단한 [[현존재]]에게만 열리는 구체적 행위의 장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결단하며 자신을 열어젖히는 이러한 가능성 속에 [[하이데거]]가 상황이라 부르는 것이 놓여 있다." 상황은 "결단성에서 개시되는 '거기'"이다. 던져진 세계-내-존재로서 [[현존재]]는 결단성 속에서 이미 상황 안에 있다.
[[세인]] 속의 [[현존재]]는 상황을 보지 못한다. 오직 "일반적 사정"만 본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한다", "보통 그런 경우에 그렇게 한다"—이런 일반적 규칙만 적용한다. 결단성은 이 일반성을 깨뜨리고 구체적 상황의 요구를 본다.
"이 상황에서 결단하며, [[현존재]]는 '이미 행위하고 있다'." 상황은 이론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에서 열린다. 결단한 [[현존재]]는 분석하기 전에 이미 행위한다.
### 순간(Augenblick)
'순간'(Augenblick, moment of vision)은 본래적 현재의 양태이다.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를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 용어를 키르케고르와 루터로부터 빌려왔다.
일상적 시간은 "지금들"의 연속이다. 지금이 지나가고 또 다른 지금이 온다. 이것은 비본래적 시간 이해이다. 순간은 이와 다르다. "순간은 지금으로부터 이해될 수 없다. 순간은 점으로 취해진 지금이 아니라, 탈자(ecstasis)이다."
순간에서 시간의 세 차원이 통일된다. "순간은 본래적 시간성의 탈자적 순간으로, 여기서 시간의 세 시제가 하나로 합쳐진다. 시간을 지금-순간들의 연속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자기 자신의 시간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처음 경험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결단성에서 현재는 가장 가까운 관심사의 대상들에 대한 산만함에서 끌어내어질 뿐 아니라, 미래와 기재(Gewesenheit) 속에 붙들려 있다. 본래적 시간성 속에 붙들려 있고 그 자체로 본래적인 이 현재를 우리는 '순간'이라 부른다."
### 행위와 실천
결단성은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강조한다: "본래적 또는 '가장 고유한' 자기는 '자신이 선택한 존재 가능으로부터, 그 자체 안에서 행위한다. 오직 이 방식으로만 그것은 책임질 수 있다.'"
그러나 결단성은 특정한 행위 내용을 지시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게 "초월적 또는 일반적 원리도 없고, 행위와 결정에 윤리적 토대를 보장해줄 본래성의 내적 핵심도 없다." 결단성은 형식적이다. 무엇을 결단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결단할지의 문제이다.
윤리학적 해석에 따르면, "결단과 행위에서 우리가 절대적 확실성의 초월적 위치에서가 아니라 항상 오직 그 자리에서만(in situ)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강한 인식과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성과 의무에 대한 인정이 있다. 따라서 하이데거적 결단성은 우리 결정의 불확실하고 취약한 한계성을 인정한다."
## 실존주의적 맥락
### 키르케고르의 선택
결단성 개념의 철학적 선구자는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이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에서 실존적 선택의 문제를 다루었다.
키르케고르에게 "선택하지 않는 것도 결과를 수반하는 선택의 형태이다. 사람들은 매우 많은 맥락에서 불가피하게 선택에 직면한다." 선택의 불가피성과 그에 따른 책임이 인간 실존의 핵심이다.
키르케고르의 '비약'(leap) 개념은 [[하이데거]]의 결단성과 공명한다. 심미적 실존에서 윤리적 실존으로, 윤리적 실존에서 종교적 실존으로의 전환은 이성적 계산이 아니라 결단적 비약을 통해 일어난다.
키르케고르는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믿는 내용의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헌신의 강도('주관적 진리')"라고 주장했다. 이 "무한한 열정"(infinite passion)의 강조는 실존주의 전통에서 결단과 헌신의 중요성으로 계승된다.
### 사르트르의 결단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결단과 선택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강조점은 다르다.
사르트르에게 "현상학적 차원에서, '나쁜 믿음'은 결정의 순간을 유예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실존하는 자가 선택의 도전에 직면할 때, 그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선택과 연관된 책임을 피하기 위해 결정의 순간을 연기하려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는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자신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결정을 통해 언제든 우리 삶을 변형시킬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통해 특정 정체성을 유지한다면, 이는 매 순간 그 정체성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실존적 헌신
실존주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헌신(commitment)의 강조는 공통적이다. "강도와 헌신이 본래적 존재의 핵심이라는 생각은 모든 유형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공유된다."
본래성으로의 길에서 "[[하이데거]]에게 본래성은 '결단성'을 요구한다. 자신의 역사적 '유산'에 의해 열린 특정 범위의 가능성에 대한 헌신이다." 이 헌신은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니라 물려받은 가능성의 전유이다.
본래적 결단성은 "표면적 새로움보다 역사적 유산에 선택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하이데거]]의 '반복'(Wiederholung) 개념과 연결된다. 과거의 가능성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새롭게 전유하는 것이다.
## 비판과 논쟁
### 공허한 결단주의 비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하이데거]]의 결단성 개념을 "공허한 결단주의의 결정론"이라 비판했다. 하나의 결정을 다른 결정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 비판에 따르면, "결단성이 이론적으로 양심의 부름이지만, 실제로 양심이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게 해주는, 합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준이 전혀 없다." 모든 결단이 동등하다면, 나치 독재자의 말과 행위도 "다른 형태의 결단성만큼이나 좋다." 푸시핀에 대한 결단성이 시에 대한 결단성만큼 좋고, 나치즘이 이타주의만큼 좋다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적 도덕적 책임 개념의 "궁극적 패러디"라는 비판도 있다. 칸트가 지적 성숙과 완전히 합리적인 도덕 원리 선택에 기반한 도덕적 책임을 제시했다면, [[하이데거]]의 결단성은 내용 없는 형식에 그친다는 것이다.
### 정치적 함의 문제
결단성 개념과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 사이의 연결이 지적된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자유'로서의 결단성과 '비전의 순간'에 대한 준비는 나치 동원에서의 영웅적 희생과 인도하는 의지에 대한 복종의 기대를 반영한다."
결단성 개념은 "군대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병사가 임박한 죽음에 직면하여 희망 없는 투쟁에서 적과 맞서면서 자신의 삶을 확인할 결정을 내리도록 요청받는다. 실존철학에서 그토록 중요해지는 [[하이데거]]의 '결단성' 범주는 참호에서 적과 맞서는 병사의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33년 총장 취임 연설에서 [[하이데거]]가 대학의 [[현존재]]를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의지"에 종속시켰다는 점도 지적된다. 결단성과 본래성 개념이 정치적 복종의 정당화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 윤리적 공백
결단성 개념이 윤리적 내용을 결여한다는 비판은 광범위하다. [[하이데거]]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침묵한다. 결단의 형식만 제시하고 내용은 비어 있다.
그러나 옹호자들은 이 공백이 의도적이라고 반론한다. [[하이데거]]는 보편적 도덕 원리를 제시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보편적 원리가 [[세인]]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진정한 윤리적 행위는 원리의 적용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의 결단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 자신은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1946)에서 윤리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기술 시대의 위험과 관련하여 "근원적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근원적 윤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 현대적 적용
### 리더십과 의사결정
결단성 개념은 경영학과 리더십 연구에서 재해석된다. 케임브리지 비즈니스 윤리 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리더십에서 본래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존재의 근거 없는 열림을 인정하고 행위와 결정에서 이를 결단하며 고려하는 것을 요구한다."
경영 의사결정에서 결단성의 함의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성과 의무에 대한 인정"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절대적 확실성의 초월적 위치에서가 아니라 항상 오직 그 자리에서만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강한 인식"이 있다.
현대 조직에서 의사결정은 종종 [[세인]]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그렇게 결정한다", "시장이 그렇게 요구한다", "모범 사례가 그렇다"—이런 익명의 규범이 결정을 지배한다. 결단성 개념은 이러한 타율적 결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한다.
### 실존치료적 함의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결단성 개념은 치료적 목표로 재해석된다. 내담자가 [[세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결단하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방향이다.
롤로 메이(Rollo May), 어빈 얄롬(Irvin Yalom) 등의 실존치료사들은 결단과 선택의 문제를 치료의 핵심으로 삼는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 치유의 경로이다.
그러나 치료적 맥락에서 결단성의 적용은 주의를 요한다. 내담자에게 "결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단성은 강요될 수 없으며, 양심의 부름을 듣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담자 자신의 몫이다.
### 일상에서의 결단
일상적 삶에서 결단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이데거]]에 따르면 대부분의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세인]] 속에서 보낸다. 결단성은 예외적 순간이다.
한국 사회를 관찰하면, 결단의 순간이 특정한 계기에 집중되는 패턴이 보인다. 입시, 취업, 결혼, 이직—이런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 인간은 결단을 요청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조차 종종 [[세인]]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사회가 요구하니까".
진정한 결단은 [[세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서 발견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직 물음의 구조만 제시한다.
## 관찰자의 기록
결단성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결단성의 형식적 성격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내용 없는 형식은 보편성을 확보하지만, 동시에 어떤 결단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갖는다. 하버마스의 "공허한 결단주의" 비판이 이 점을 지적한다. [[하이데거]]가 나치 결단을 했을 때, 그의 철학은 이를 막을 어떤 기준도 제공하지 못했다.
둘째, 결단성과 일상성의 관계가 복잡하다. [[하이데거]]는 결단성이 [[세인]]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결단한 [[현존재]]가 어떻게 [[세인]]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불분명하다. 결단성이 지속 가능한 상태인지, 순간적 경험인지도 질문이다.
셋째, 양심의 부름이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하이데거]]는 양심의 부름이 내용 없이 침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침묵하는 부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세인]]의 목소리와 양심의 부름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넷째, 결단성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세인]]의 목소리는 더욱 강력해졌다.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선택"을 추천하고, 소셜 미디어가 "좋아요"로 가치를 측정한다. 이 환경에서 결단성이 가능한지,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는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
다섯째, 결단성과 책임의 관계가 주목된다. [[하이데거]]는 결단한 [[현존재]]만이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단의 내용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어떤 결단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역설은 해소되지 않는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결단성은 윤리적 기준 없이 가능한가? 양심의 부름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세인]]의 목소리와 양심의 부름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결단성은 지속 가능한 상태인가, 순간적 경험인가? 그리고 [[하이데거]]의 정치적 결단은 그의 결단성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결단성 개념의 출처
-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 - 윤리와 결단의 관계
- 이것이냐 저것이냐 -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선택
### 근본 개념
- [[현존재]] - 결단하는 존재
- [[세계-내-존재]] - 결단한 현존재도 유지하는 기본 구조
- [[염려]](Sorge) - 결단성이 본래적으로 드러내는 [[현존재]]의 존재 구조
- [[세인]] - 결단성의 대립항
- [[본래성]] - 결단성을 통해 도달하는 양태
- [[불안]] - 결단성의 기분적 조건
- [[양심]]의 부름 - 결단성의 계기
- [[기투]] - 결단성에서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던지는 것
### 결단성의 구조
- 탓이 있음(Schuldigsein) - 결단성이 받아들이는 것
- 상황(Situation) - 결단성에서 열리는 것
- 순간(Augenblick) - 본래적 현재
- [[시간성]] - 결단성의 시간적 의미
- [[역사성]] - 결단성의 역사적 전개
- 선구적 결단성 - 결단성의 완전한 형태
- 죽음-을-향한-존재 - 선구적 결단성의 조건
### 철학적 맥락
- [[하이데거]] - 결단성 개념의 창안자
- 키르케고르 - 실존적 선택의 선구자
- 사르트르 - 자유와 결단
- 칸트 - 도덕적 자율성과의 대비
### 비판과 논쟁
- 하버마스 - 공허한 결단주의 비판
- 아도르노 - 본래성 담론 비판
- 나치 협력 문제 - 정치적 함의
- 윤리적 공백 - 내용 없는 형식의 문제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회사]] - 조직에서의 의사결정
- [[학교]] - 규범화된 선택
- [[성과주의]] - 강요된 결단
- 리더십 - 결단적 리더의 문제
### 심리치료적 적용
- 실존치료 - 결단과 선택의 치료
- 로고테라피 - 의미와 결단
- 롤로 메이 - 실존심리학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 15: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