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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와 실천

즐겨보던 철학/문학 유튜버가 돌연 채널에 정치 성향을 공개했다. 그 사람의 구체적인 성향 자체에도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놀랐던 부분은,

  • 정치적 성향이 (어느쪽이든)뚜렷하다는 사실 자체
  • (어느쪽이든)어떤 것이 옳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
  • (어떤 성격이든)집회까지 참여하는 것 자체

였다. 이게 왜 놀랄 일? 그 사람은 밀란 쿤데라의 미친듯한 빠돌이었다. 그리고 이전 영상에서는 최근 일어났던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특정 사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쿤데라의 참존가를 인용하기도 했다. 민감한 주제였지만 참존가를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밀란 쿤데라를 아버지로 부른다는 사람이, 어떻게 특정한 정당이, 정책이, 이념이 옳다며 어떻게 저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을지? 죽은 밀란 쿤데라가 그날 본인의 모습을 보다면 뭐라고 했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을까?

한 명의 독자로서 밀란 쿤데라를 감히 한 줄로 요약해도 된다면, '이데올로기로부터의 거리두기'라고 할 것 같다. 모든 무거움(이데올로기)가 한낱 농담에 불과했음을, 그럼에도 그 농담 같은 무거움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썼다고 말이다. 쿤데라는 이 문제를 너무나 탁월하게 우리의 생활에 녹여 묘사했다.

하지만 또 읽으면서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거리두기는 판단을 영원히 유보하는 것이고 이는 곧 실천하지 못함(혹은 않음)과 동의어일텐데, 이는 만약 어떤 사람이 엄격한 가벼움(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 안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하자면 투표도 하면 안 된다.

무거움은 곧 광기, 맹신, 농담이다. 그 본질을 느껴봤던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게 거리를 두면 실천과 멀어진다. 하지만 무거움은 동시에 의미, 가치이기도 하다. 그럴때면 다시 거리를 좁히고 실천에 나서게 된다.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과, 그 간극이 일으키는 긴장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쪽으로 가도 문제고 저쪽으로 가도 문제인 딜레마, 어쩌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날의 영상과 글은... 이 간극과 딸려오는 긴장감을 너무 쉽게 또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한쪽에 몸을 던져버린 것 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 실천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또 무거움에 몸을 던질때는 던지더라도, 이런식의 고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구독도 하고 월마다 적지만 돈도 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구독을 취소할 생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