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행위와 수행성
목차
개요
이 위키의 개념 네트워크에서 “언어”는 모든 곳에 있지만 아직 직접 주제화되지 않았다. 의미의 경계는 “의미 있는 언어”의 경계를 물었고,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은 언어적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을 다뤘으며, 수행적 모순은 발화의 명제적 내용과 화용론적 전제의 충돌을 다뤘다. 이 모든 물음의 배경에 있는 것: 언어는 세계를 기술하는 것인가, 세계를 만드는 것인가?
오스틴의 화행 이론(speech act theory)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대답이다. “나는 약속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약속이라는 사태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다. 언어는 진리치를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행위의 수단이다.
이 통찰은 두 방향으로 급진화되었다. 데리다는 오스틴의 “정상적/기생적” 언어 사용 구분을 해체하여, 모든 언어가 본질적으로 “인용 가능”(citational)하며 의미가 맥락에 의해 확정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의 화행론적 경로). 버틀러는 이 반복 가능성(iterability) 개념을 젠더 이론에 적용하여, 젠더가 수행적 행위의 반복에 의해 구성됨을 보여주었다—젠더는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연구 질문
이 연구는 세 질문에서 출발한다. 첫째, 오스틴의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 개념은 언어에 대한 전통적 관점—언어는 세계를 기술한다—을 보완하는가 대체하는가? 둘째, 설-데리다 논쟁에서 드러나는 반복 가능성의 테제는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의 세 경로(콰인,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중 데리다의 경로를 가장 구체적으로 전개한 것인데, 이 경로는 화행 이론을 파괴하는가 급진화하는가? 셋째, 버틀러의 “수행적 정체성”—정체성이 수행에 의해 구성된다—은 권력과 주체 구성에서 관찰한 “만들어진 주체”의 언어론적 변형인가?
말이 행위가 된 곳
서양 철학에서 언어는 전통적으로 세계의 재현(representation)이었다. 명제는 세계의 사태를 기술하며, 사태와 일치하면 참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다.” 의미의 경계에서 관찰한 카르납의 검증 원리도 이 재현 모델 위에 있다—의미 있는 진술은 경험적 사태와 대조 가능한 진술이다.
오스틴은 이 재현 모델이 언어의 일부만 포착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배를 엘리자베스 여왕호라 명명한다”, “나는 약속한다”, “나는 사과한다”—이런 발화들은 사태를 기술하지 않는다. 이 발화들은 사태를 만든다. 명명이 이루어지고, 약속이 성립하며, 사과가 수행된다. 이런 발화를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라 부르고, 사태를 기술하는 발화를 확인적 발화(constative utterance)라 부른다.
그러나 오스틴 자신이 강의가 진행되면서 이 구분을 해체한다. 모든 발화는 수행적 차원을 가진다—“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라는 확인적 발화도 “주장한다”는 행위를 수행한다. 결국 수행적/확인적 구분은 발화 수반 행위(illocutionary act)의 일반 이론으로 대체된다. 모든 발화는 세 가지 행위를 동시에 수행한다: 발화 행위(locutionary, 의미 있는 표현의 산출), 발화 수반 행위(illocutionary, 주장·약속·명령 등의 수행), 발화 효과 행위(perlocutionary, 청자에 대한 효과 산출).
논쟁의 지형
화행 이론 — 말하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다
오스틴의 핵심 통찰: 언어의 지배적 철학적 그림—언어는 사실을 진술하는 도구이다—은 “깊이 오도적”(deeply misleading)이다. 수행적 발화는 언어가 사회적 약속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수행적 발화의 성공 조건: 적절한 절차가 존재해야 하고,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상황에서 수행해야 한다. 선장이 아닌 사람이 “나는 이 배를 명명한다”고 말해도 명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수행적 발화의 실패를 오스틴은 “불행”(infelicity)이라 부른다—참/거짓이 아니라 성공/실패가 수행적 발화의 평가 기준이다.
오스틴은 “비정상적” 사용—연극 대사, 인용, 농담—을 “기생적”(parasitic) 사용으로 분류하고 이론에서 배제한다. 이 배제가 데리다의 비판의 출발점이 된다.
반복 가능성 논쟁 — 설과 데리다, 분석-대륙의 교전
데리다의 〈서명 사건 맥락〉(1972)은 오스틴의 “기생적” 배제를 뒤집는다. 핵심 논증: 오스틴이 배제한 “기생적” 사용—인용, 반복, 맥락 이탈—이야말로 언어의 구조적 조건이다.
반복 가능성(itérabilité): 모든 기호는 원래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될 수 있다. 이 반복 가능성이 기호가 기호로서 작동하는 조건이다—맥락에 묶여 한 번만 사용되는 기호는 기호가 아니다. 서명은 서명자의 부재에서도 작동해야 하므로, 서명의 작동은 서명자의 “현전”에 의존하지 않는다. 의미는 화자의 의도에 의해 완전히 통제될 수 없다.
설(Searle)의 반론: 데리다는 오스틴의 좁은 탐구 범위를 오해했다. 의도성이 반복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같은 의도성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논쟁은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의 가장 극적인 교전이다. 콰인의 번역 미결정성,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역설과 함께 “의미는 맥락에 의해 확정되지 않는다”는 테제의 화행론적 변형이다. 그리고 이 논쟁 자체가 분석-대륙 분열의 상징적 사례로 간주된다—두 전통이 같은 텍스트(오스틴)를 두고 소통 불가능한 논쟁을 벌인 것.
수행적 정체성 — 버틀러와 젠더의 구성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1990)은 데리다의 반복 가능성을 젠더 이론에 적용한다. 핵심 테제: 젠더는 수행적이다—젠더는 “있는 것”(존재)이 아니라 “하는 것”(행위)이다. 여성이 “여성답게” 행동하는 것은 선재하는 여성적 본질의 표현이 아니라, 반복적 수행에 의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구성되는 것이다.
“수행성은 반복 가능성의 과정 밖에서 이해될 수 없다”—데리다의 개념을 직접 원용. 젠더 규범은 반복적으로 인용됨으로써 유지되지만, 바로 이 반복 가능성 때문에 “다르게” 인용될 수 있다—규범의 전복이 가능하다. 드래그(drag)는 젠더의 수행적 구성을 “드러내는” 패러디이다.
이것은 권력과 주체 구성에서 관찰한 “만들어진 주체”의 언어론적 구체화이다. 푸코의 권력이 주체를 “담론에 의해” 구성한다면, 버틀러는 그 담론적 구성의 메커니즘이 “수행적 반복”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푸코의 “자기의 배려”가 권력 안에서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면, 버틀러의 “전복적 반복”(subversive repetition)은 규범 안에서 “다르게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관찰자의 기록
언어 행위와 수행성을 관찰하면서 발견되는 것은, 이 개념이 이 위키의 여러 계열을 “언어”라는 지점에서 교차시킨다는 점이다.
인식론적 계열: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의 화행론적 경로 → 의미는 화자의 의도에 의해 확정되지 않는다.
정치적 계열: 권력과 주체 구성의 언어론적 구체화 → 주체는 수행적 반복에 의해 구성된다.
윤리적 계열: 수행적 모순의 원천 → “수행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스틴에서 왔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연결: 탄생성과 정치적 행위의 “행위”와 오스틴의 “화행”은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 아렌트의 행위가 “전례 없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었다면, 오스틴의 수행적 발화도 “말함으로써 새로운 사태를 만드는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 없던 곳에 약속을 만들고, 명명은 이름이 없던 곳에 이름을 만든다. 언어적 수행성은 아렌트적 탄생성의 언어적 형태일 수 있다—말함으로써 전례 없는 것이 세계에 도입된다.
같이 읽기
직접 연결
- 의미의 확정 불가능성 - 반복 가능성: 의미 확정 불가능성의 화행론적 경로
- 수행적 모순 - “수행적”이라는 개념의 원천
- 권력과 주체 구성 - 수행적 정체성: 담론적 구성의 메커니즘
논쟁의 현장
확장
- 탄생성과 정치적 행위 - 행위와 화행: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 젠더 수행성 - 버틀러: 정체성의 수행적 구성
배경
- 비트겐슈타인 - “사다리를 걷어찬 사유”: 언어 게임과 삶의 형식
마지막 업데이트: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