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초반에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본인이 받은 피해에는 지랄맞을 정도로 민감하지만 가해에 대한 의식은 전혀 없거나 '내가 그만큼 피해를 받았으니 이정도 가해는 정당하다'는 일관된 태도는, 놈년들의 대가리를 하나씩 깨부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자의식 과잉과 낭만의 냄새가 지독한 '우리는 하나야', '운명적으로 이어져있는 영혼이야' 따위의 대사도 납득할 만한 것 같다. 자기처럼 미친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가 힘들기는 할테니까.
그러나 더 생각해볼수록, 그 미친 사람들과 나 사이에 선을 분명하게 긋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물론 결은 다르지만)내가 겪었던 '유사 히스클리프'와 그의 요새였던 '유사 워더링 하이츠', 그리고 '유사 캐서린'과의 경험에서 내가 취한 태도는 어땠는지? 너무 화가났고 그만큼 괴로웠지만, 한 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후회와 씁쓸함이야 물론 남았지만, 받은 만큼의 상처를 돌려줄 때의 악마같은 쾌감은 분명하게 있었다. 스스로에게 섬뜩함을 느낄만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하나씩 천천히 망가져갔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증오는 권태가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에 역병처럼 들어와 뱃속에 붙어있던 분노를 게워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분노는 사랑만큼이나 사람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컨텐츠가 되어준다. 히스클리프라는 바이러스는 차례로 캐서린 언쇼, 헤어튼, 에드거, 이사벨라, 린턴(히스클리프의 아들), 캐서린 린턴을 거쳐가며 그들의 흐리멍텅한 일상에 불을 지피는 장작이 되었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나도 그랬을 것이다). 딱 한 명, 넬리만 빼고.
그는 차마 아씨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는지 입을 틀어막으면서 애절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더라고요. 그러다가 동정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듯 꼼짝하지 않고 뚫어지게 절 쳐다보면서 재차 묻더군요.
"어떻게 죽었냐고?" 그가 대담한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때는 누군가 그를 지탱해 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애를 쓰더니만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 끝까지 떨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에요.
'불쌍한 사람 같으니.'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도 남들처럼 가슴으로 느끼면서 아파하고 있잖아. 왜 그렇게 숨기려 드는 거지? 아무리 자존심을 내세워도 하나님은 못 속인다고! 자기가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나님에게 맞서지만 하나님은 결국 당신을 무릎 꿇려 눈물 흘리게 만들잖아!' 252p
히스클리프에게 솔직한 마음을 차분하게 맞이하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넬리처럼 증오를 연민으로 맞설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다면... 넬리는 심지어 히스클리프가 땅에 묻히는 순간에도 옆에 있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분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한 친구를 두고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내가 왜 그래야 하지?'라는 대답부터 떠오르는 나는 약하다. 스스로가 역병의 환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ps 읽으면서(특히 1권에서) 콕토 트윈즈의 트레져가 자꾸 생각나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