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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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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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아질수록 남들에게 내 나이를 공개하기를 꺼리게 된다. 아마도 내 나이가 많아진 만큼 따라 늘어난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 할까 봐 겁이 나는 것 같다. 10년 전에도 나는 지금처럼 멍청한 인간이었으나, 어린 나이는 나에게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었고 그래서 당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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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금씩 달라지는 나이와 관련된 태도 중 하나는, 바로 나이를 먹을수록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지금보다 훨씬 민감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나와 내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마치 양자 얽힘 상태처럼 결정되지 못한 채로 부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선택을 한다는 것은, 그 얽힘 들이 풀리고 결정된 상태의 속성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였다. 그래서 그때는 나이를 먹으면서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이 결정될 때마다 설레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씩 그렇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직 내 인생이 완성된 것도 아니고(아마 죽기 직전이라도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아있는 얽힘 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고, 예측이 가능한 만큼 궁금증도 사라졌다. 아마도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해 봐야 연봉을 더 올린다든지, 아파트의 평수나 자동차의 배기량을 늘린다든지, 삼겹살 대신 소고기를 먹는 정도의 선택일 것이다. 내 삶의 근본적인 형식은 대부분 정해졌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를수록 나에게 나이는 점점 더 무의미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