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나는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래머로서 일을 하다보면, 내가 지금 작성하는 코드와 기능 안의 세계에 생각이 갇히기 쉽다. 그래서 중요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술과 개발이 중요한게 아니라 고객과 비즈니스가 중요한 것이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되뇌이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뒤의 삶과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고 말한다. 습관적으로 '왜?'를 묻고 어떤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내 기질 때문이었을지, 기술 뿐 아니라 사업 역시 수단에 불과하다는 책의 메세지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평소에도 언제나 더 많은 성장을 목표로 하는 모든 기업들에 대해서, '어떻게 사업의 성장 같은게 목적이 될 수 있지?' 같은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의 성장에 기여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구성원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다는 사실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특히나 코파운더로서 일하던 도중에는 더 심했다. 누구보다 사업적 목표를 강조하고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사람이, 도리어 그 가치관을 의심하고 있다면? 회사에서 이런류의 고민을 털어놓기는 어렵다. 어떤 목표 지향적인 사람들은 이런식의 생각을 히피스러운 것으로 일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메세지는, 내 죄책감을 덜어주고 내가 내 믿음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근거로 남을 것 같다. 마침 창업한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셈이다.
결국 좋은 사업가는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 중 하나의 모습에 불과하다. "당신은 왜 일을 합니까?"는 "당신은 왜 살고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떤 정념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다. 사업이 수단이라면 삶의 의미를 이루기 위해서 꼭 사업을 선택할 필요도 없고 제도권 정치나 비영리단체 같은 선택지도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계속 사업이라는 수단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싶은 것일까? 결국 돈 때문일까? 역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내 기질은 동시에 큰 문제도 만들었는데, 바로 그 '왜?'에 대답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게 일이라면 그 일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게 내 삶이라면? 위에서 말했듯 "당신은 왜 일을 합니까?"는 결국 "당신은 왜 살고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 왜 살지?"에 스스로 대답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꼬리의 꼬리를 문 연쇄적인 '왜?'의 끝에 닿는 곳이 결국 '그냥'일 뿐이라면, 그 때 밀려드는 무력감과 슬픔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실은 결론이랄것도 뻔한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죽지 않을테니 살아야 하고, 살아 있으면 스스로의 정념에 휘둘리고, 그러다보면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그 의미가 '그냥' 위에 쌓아올린 사상누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면 '왜?'라는 질문에 대답을 들어야 행동할 수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왜?'를 만들게 된다. 이상하다고? 어쩔 수 없다. 세계와 단절된 이방인으로서의 한계니까... 그러니 내가 만든 내 의미를 의심하지 말자. 스스로 의미를 만들지 않는 이유랍시고 '세계의 공허'라는 거창한 구실을 동원하지도 말자. 내 가치관을 이루는 정념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구체화하자. 그 정념을 지지 받고, 영향력을 넓히려는 욕망에 충실하자. 하... 말하다보니까 존나 니체 같아서 열받지만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