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심히 공부 하(려고 하)는 이유
1
요즘 들어 더 이것저것 들춰보고 있다. 물론 그래봐야 힐끗거리는 수준이지만, 어쨌거나 어딘가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뭐가 그리 불안한가?
내 (한국)나이도 벌써 28이다. ‘나이가 얼마인가?’는 ‘그동안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있었는가?’와 같은 의미다. 성과/시간 = 능력이라면 시간의 증가량 보다 성과의 증가량이 더 많지 않으면 능력은 점점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면서 높은 성과를 이룬(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성장하고 있는) 노동자는 우리나라 안에서 찾아도 지천에 널려있다. 쉽게 말하자면, 노동자로서 경쟁력을 상실한 내 모습이 두려운 것이다.
‘경쟁력을 상실한 나’를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면, 길은 자영업뿐인데, 이는 업계 노동자 사이에서의 경쟁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싸움이다.
-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해도, 이직이 어려우므로 회사가 내 생존권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회사의 온갖 불합리한 대우(어쩌면 인간적 모멸까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게다가 그렇게 참고 다녀도 능력 없는 노동자는 금방 잘리게 마련이다.
- 업계 동료 혹은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어려우므로 끝없는 자존감 하락이 예상된다.
경제적인 문제와 자존감 문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존감 문제도 크지만, 경제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 곧바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역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도 점점 넓어진다.
그래, 결국 최대한 자유롭게 살기 위해 하는 거다. 내 능력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고, 의식주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그러나 사실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어느 정도 즐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나 남으로부터 피해 받는 일을 줄이려고.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한다고 일단락 지을 수 있겠지.
2
하지만 허탈한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있으나 무엇을 위한 자유는 없다는 게.
방금 나열한 이유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중에는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 인생의 도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없다. 쉽게 말하면 전부 환경 설정 같은 목표들뿐이다. 인생이라는 집을, 편하고 예쁘게 꾸미는 일인 것이다.
집을 꾸미면서 아마 어려운 일도 많을 테지만, 원하는 물건을 들여놓거나 할 때는 즐거울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심지어 몇 년 이상을 참고 기다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물건을 들여놓고 나면 우리는 뭘 하는가? 아마 의자에 앉아서 빙 둘러 가며 집을 감상하거나, (전부터 늘 그랬듯) 밥을 먹고, (전부터 늘 그랬듯) 일을 하고, (전부터 늘 그랬듯) 잠을 자겠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집을 다 꾸몄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시간이 다 되어서 더 이상 꾸미기가 불가능한 순간이 올 뿐이다.
물론 위에서 나열한 것들은 내가 편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다. 누구는 ’하고 싶은’ 것들로만 인생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건 있다. 노래를 잘 하고 싶고, 기타를 잘 치고 싶고, 그래서 공연을 하고 싶다. 많이 행복할 것 같다.
그럼 공연을 질리도록 하고 나면 죽어도 좋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전히 살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연을 질리도록 한 것도 결국 집을 꾸미는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을 질리도록 한 후에도 여전히 집 꾸미기는 계속된다.
실용적인 측면에 중점을 맞춰서 집을 꾸미던, 심미적인 측면에 중점을 맞춰 집을 꾸미던, 집 꾸미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도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죽음뿐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은 평생을 작품에 몰입하며 살다 갔다. 첫 번째 작품, 두 번째 작품, 세 번째 작품... 하지만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그 예술가는 어딘가에 도달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죽어도 작품들은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도, 그것들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술가 입장에선 달라지는 게 없다. 그저 또 다음 작품을 준비할 뿐이다.
결국 삶이라는 건 그냥 집을 꾸미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에서 내쫓기는 과정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결과도 없다. 그렇게 28년을 살아왔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