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 클래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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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 클래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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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리를 걷고 카페에 앉을 때마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떠올려 보면, 나라는 놈도 알 만 하다. 한번도 일어난 적 없고 앞으로도 일어날 리 없는 일을 기대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우습기 짝이 없다.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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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늦었다. 벌써 곧 서른이다. 쿨해 보이는 나이는 다 지나갔다. 나는 이제 배도 나온다. 아직은 겨울이기도 하고 해서 별문제는 없지만... 또 쪽팔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경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끼고 싶어 하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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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끼리끼리 잘 노는 것 같은데... 나는 꼭 옷장에 맞지 않는 옷들만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는데 특히 힙스터(혹은 그런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가 막히게 알고 모여서 잘 노는거 같더라. 물론 보통은 패션으로 본인들을 구분 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거겠지만. 패션은 그렇게 매니악한 분야도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어필이 잘 되고, 굳이 나서서 보여주는 민망한 상황 없이도(나 이런 음악 듣는다고 먼저 알려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얘길 꺼낸다는게 얼마나 민망하고, 또 먼저 꺼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그런 이야길 한단 말인가?) 손쉽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지? 아무튼 내 주변에는 왜 나 같은 놈들이 없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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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터넷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스노브 행세를 하기에는 내 취향이나 글빨이 형편없다는 게 문제다. 맞지 않는 사람들과 계속 산다는 것은 단순히 외로울 뿐 아니라, 정작 내 맘에 드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지 모른 채로 지낸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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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나한테 컨텐츠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뭔가 하고는 싶은데 막상 할 건 없다는 게 현실이다. 알맹이는 없으면서 겉치레만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우스꽝스럽다. 이제는 먹고사는 걱정에 많이 사라져버린 예전의 우울했던 마음들은? 누우면 잠들기 바쁘다며 잃어버린 그 답답함 들은? 우울하고 답답하다는 게 내용은 될 수 없겠지만 동기는 될 수 있다. 나는 동기를 상실했다. 매일 밤 빈 텍스트 필드를 띄워놓고 도대체 이 답답함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서 고민하던 순수한 중2 시절은 다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 별로 우울하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다. 그 대신에 바빠졌고, 피곤해졌고, 항상 짜증이 나 있으며, 다음 집은 어떻게 계약해야 하지 따위의 고민에 몰두해 있다. 이게 건강한 사회인이고 효자고 중산층이고 전문 기술직이고 하여간 TV에서 늘려야 된다고 노래를 부르는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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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돈 버는 건 좋다. 커피 한잔 먹을 때 마다 남은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지 않아도 된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없이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뭔가 이렇게 쓸데없는 헛소리들을 쓰고 있는 이유도, 무언가 타이어 바람 빠지듯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게 두려워서 붙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솔직히 안간힘은 오바다. 절박해 보이는 게 더 멋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해 봤다. 아무튼 내가 내 일에 능숙해 질수록 예전의 나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예전에는 매일매일이 우울했고 심지어는 매일매일이 우울하다는 사실도 우울했는데, 지금은 그게 그립다니 웃기는 꼬락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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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를 맞춘다는 건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그랬고, 지금 하는 전공을 선택할 때도, 첫 번 째 회사를 선택할 때도, 두 번 째 회사를 선택할 때도, 아무튼 중요한 선택 앞에서 난 항상 중간을 골랐다.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한다면 참 멋있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겁이 너무 많아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게 양쪽에 어중간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아마 빨라도 40, 50은 되어야 뭔가 만족할 만한 상태에 놓일 것 같다. 간을 보느라 속도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겠지. 아무튼 시간은 벌써 참 많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