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노예
4 min read

주인과 노예

기질이 노예인 사람들이 있다. 가슴이 텅 비어있어서 누가 빈 곳을 채워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 사람들. 자기가 원하는게 뭔지 몰라 남들이 대신 정해준 것을 원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본인이 쓸모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불안과 좌절에 짓눌려, 당장 그 감정을 해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 복잡한 머릿속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나만 믿고 따라와'라는 말로 대가리에 달린 클리토리스를 어루만져줄 주인을 찾는 사람들. 자기 언어가 없어서 주인님이 내려준 성경 말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심지어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의 이유 조차, 물어보면 주인님의 말을 그대로 읊는것 밖에 못하는 사람들.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인이 서걱서걱 팔다리를 자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아니, 어쩌면 자기 팔다리가 다 잘려나가도, 주인님이 매일매일 내 귀두를 만져주기만 한다면 팔다리 따위야 개의치 않아할 사람들. 그래서 오늘도 노예에게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좆밥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니 불안을 막을 수 있다, 저렇게 하면 니가 진짜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대신 날 믿고 따라오지 않으면 넌 자살한다'라는 딸딸이를 하사해 주시는 주인님께 가슴 깊이 감사하는 사람들. 몸통만 남아 굴러다녀도, 혼자서는 아무데도 가지 못해도, 영원히 주인님 품에 안주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사람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보다, 방 안에서 오늘의 딸딸이를 받기를 선택하는 사람들. 좁은 방에 갇혀, 팔다리가 없어 통나무가 되어버린 몸뚱이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우리 주인님은 니 귀두보다 내 클리토리스를 더 많이 만져준다는 사실을, 내가 주인님께 더 인정받고 사랑받는 노예라는 사실을 서로 자랑하고 또 거기에 안심하는 사람들. 결국 죽을때까지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말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노예라는 사실을, 정말로, 진심으로,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마음이 정말 너무 너무 아프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노예를 갖고 싶었다면 주인과 이야기 했어야 했다. 당연하게도 노예에게는 스스로를 처분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노예와 이야기하려고 했으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리가. 정말 멍청한 선택이었다. 누굴 탓할까.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할 수 밖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지. 그 로마법이라는게 아무리 개좆같은 법이라고 해도, 그 법에 대가리가 절여진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룰에 맞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했어야 할 행동은 평범한 인간끼리 주고 받는 대화와 설득이 아니었다. 더 강한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예를 사오거나, 원래 주인을 짓밟고 뺏어오거나, 내가 만져주는 딸딸이가 더 기분 좋을거라는 확신을 줬어야 했다. 노예가 가지고 있는 걱정과 불안을 정확히 붙잡고 흔들어 교묘히 이용했어야 했다. 지금 주인이 그러는 것 처럼.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정말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