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8 min read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예전에 읽으면서 메모를 하다보니 통째로 옮겨적은 부분.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 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룸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 없기 때문이야. 보잘것 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 없는 인간일수록 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이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인간들로 끓어 넘치는 곳인지를 말이야... //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아인슈타인을 보고도 뭐야 개똥 같이 생겼잖아. 팔짱을 낄 인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세상은 그런 곳이야.
너는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은 네가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 너만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이 극복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이를테면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사람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은 아예 가질 않아. 자신을 받쳐줄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말이야. 보잘것 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것 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룰 봐줄 수 밖에 없는 거라구.
그래서 와와 하는거야. 조금만 이뻐도 와와, 조금만 돈이 있다 싶어도 와와 하는 거지. 역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 없는 인간들에겐 그래서 ‘자구책'이 없어. 결국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면서 평생을 사는거야. 평생을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이 세계의 비극은 그거야. 그렇게 서로를 부끄러워 하면서도 결국 보잘것 없는 인간들은 보잘것 없는 인간들과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지. 영화나 보면서 드라마나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돈 좀 더 벌어와라, 얼굴이 그게 뭐냐 하면서 말이지... 어쩌자는 걸까? 1년에 한 번 씩 예수가 온다한들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봐.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는 문제일 뿐이야.
보잘것 없는 인간들에게 내면이 중요하니, 인간에겐 고귀한 영혼이 있다느니 말을 늘어놓는건 "선생님 자위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하는 아이에게, "그럼 공부에 집중해 보지 않겠니? 자위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자위는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단다. 정 참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하길 바래."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그렇군요, 그래서 청결이 중요한 것이군요." 하고는 모두가, 어제보다 한 번 더 자위를 해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너도, 그 친구도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거고... 그 친구를 사랑한다면 이제 너와 그 친구과 함께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야. 즉 그런 이유로 "자위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적은 없어요. 손도 늘 청결한 편이었고..."로는 극복이 될 수 없다는 거지.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란 그런거야.
기적이 그런거라면, 하고 내가 말했다. 왜 이렇듯 다들 불행한거죠? 그게 인간이야, 지팡이로 바다를 갈라 보여준다 한들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기적을 원하는게 인간이지. 끝없이 자위를 해야하고 끝없이 손을 씻어야 하는게 인간이야. 자위를 너무 하면 몸에 해롭지 않나요 걱정하는게 인간이지. 그리고 돌아서면 자위도 안하는 척 하는게 인간이야. 휴지는 휴지대로 진창 써놓고 뭐야 휴지가 떨어졌잖아 하는게 인간이라구. 왜 며칠 전에 매장에서 청바지 훔치다 잡힌 고등학생 있지? 남들도 다 입고 있어서... 너무 입고 싶었어요 하고 눈물 줄줄 흘리는 그게 보편적인 인간이야. 모두가 그 정도는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또 그걸 입어야만 행복하다 느끼는 거야. 관념이지. 그리고 상상력이야.
// 현실적으로 살고있다 다들 생각하지만, 실은 관념속에서 평생을 살 뿐이지.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아, 라는 말은 나는 그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어 라는 말과 같은 것이야.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돈다 거품을 물던 인간도, 아내의 사타구니에 무쇠팬티를 채우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인간도, 모두가 당대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를 벗어나지 못했던 거야. 옛날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다들 낄낄거리지만 돌아서서 대학을 못 갈바엔 죽는게 나아! 다들 괴로워하는 거지. 돈이 최고야, 예쁘면 그만이지 모두 당대의 상상력에 매몰되기 마련인거야. 맞아. 현실은 그렇지 않아. 지금의 인간은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 현실은 언젠가 결국 아무도 입지 않는 시시한 청바지와 같은 것으로 변하게 될 거야. 늘 그랬든 또 인간은 보편적인 성장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 그러니까 미리,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않고선 인간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이를테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 와 같은 상상이지. 모두가 현실을 직시해, 태양이 돌잖아? 해도 와와, 하지 않고, 미리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거야. // 그래서 신은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신거야.
바로, 사랑이지.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의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하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인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