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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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예의 바르고 진보적인 인간은 허영을 부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끝없는 요구를 해야 하며 자신을 증오할 정도로까지 자신을 경멸해야 한다. p72

섬세하고 똑똑하지만 무능력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존심을 지켜야 할까?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1. 멍청한 대중들을 마구 경멸한다.
  2. 그 대중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기 자신을, 대중들을 경멸했던 것 보다 더 심하게 경멸한다.
  3. 그리고 대중과 자신을 동시에 경멸하므로써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더 경멸한다.
  4. 위를 반복한다.

위 방법의 핵심은, 대중이나 자신을 향하는 모든 경멸이 아주 섬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본인만 더욱 멍청하고 무능력해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성공한다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는데, 바로 지하 생활자의 경우다.

그는 무능력한데다가 추잡하고 야비한 미친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섬세하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그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지하 생활자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지탱해주던 몇가지 줄기들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추잡하고 야비하고 무능력해보이는 미친 짓거리들을, (그게 추잡해 보일 것이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할 수 있었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뻔하게도, 내가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줌에 쥐어지지도 않는 내 자그마한 자의식을 위해, 나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또 그런것들 때문에 고통받는 나에 대한 연민을 받기 위해, 본 것인지 들은 것인지 구별도 가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잖은 설교를 지껄이고, 그러면서 얼마든지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일수도 있는 인간이다. 게다가 내가 만약 취업에 실패했다면? 연애에 실패했다면? 돈이 없어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면? 볼 것도 없이 나는 지금보다도 더 추잡하고 야비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니다, 결코, 나는 결코 그런 절망을 목격한 적이 없다! p159

나와 당신들이 이렇게 된 것은 다 이야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들의 자의식이라는 것도 책 속 어딘가 적혀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나 멋들어진 연설 따위로 부터 만들어졌을 뿐이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를, 파묻혀 죽을 것 같이 많은 이야기들, 세상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고 지금도 꾸역꾸역 토해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한 순간이라도 이야기로부터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삶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답을 주고 지침이 되어 준다. 얼마나 안정감있고 평안한 삶인가?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실제 삶과 이야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졌고, 결국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기껏해야 우리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짜깁기 해 구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p197
우리는 사산아들이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아버지들로부터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취향을 발전시키고 있다. 곧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나는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 p197

그래 다 좋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섬세하게 스스로를 경멸했는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다. 어쨌든 간에...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일까?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을...

지하로부터의 수기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또예프스끼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창작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