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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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우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시작해야겠다, 후-우.

모든 것들은 그 기능과 그 능력에서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35

'이상 국가'를 설명한답시고 시종일관 읊어대는 기능과 역할, 목적 추구를 위한 합리적 행동들. "자연적인", "분명한", "본성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등등...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이런 숨 막히는 '당위'들의 세계를 이상 국가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서로에게 이득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역할)관은 무겁고 촌스럽고 또 우스울 정도로 비장하다. 아니 그 전에,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 그 '자족'이란 거 할 수 있는 거 맞나?

“우리는 '자족성'을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행복이 바로 그렇게 자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p32-주석46

직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엔지니어고, 엔지니어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방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문제라는 것은 기능 혹은 목적에 대한 장애물을 의미하고, 따라서 장애물을 없앤다는 것은 누군가를 어떤 목적으로 수월히 나아가게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엔지니어 각자의 삶은 기능이나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과는 별개로 내 엔지니어로서의 삶은, 유희적이고 심지어 무용하기까지 한 일종의 예술적 작업 과정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밀하게 고민하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까닭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유희와 (내가 다른 곳으로 눈만 돌리면 무용해질) 나의 작품을 위해서다. 이른바 당위라는 것은 고작해야 내가 무언가에 골똘히 몰두할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엔지니어뿐일까? 어쩌면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라고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직업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수단이 되고, 우리는 목적 잃은 수단으로 가득 찬 공급 과잉의 세계를 떠돌게 된다. 도대체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델포이 칼을 만든 대장장이처럼, 자연은 그 어떤 것도 그렇게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의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p30
자연은 결코 아무런 헛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p34

뭔가를 대단히 착각한 것 같다. 자연이 벌인 일이야말로 모두 진정으로 헛되다. 반대로 인간은 (자신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목적이라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저마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그 이야기는 어느 연극 속의 대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인간의 삶에 본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냐고 묻는다면, 어느 때는 배우로서 연극에 몰두하여 본인의 무용함을 망각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무대 밖으로 쫓겨나와 관객이 되어 유희를 관조하는, 그 정도의 시간 때우기라고 말하고 싶다. 선, 덕, 탁월함, 이득, 유용, 인류의 진보 같은 것들이란, 이 망각과 유희의 진자 안에서 어쩌다 우연히 튀어나온 부산물 따위에 불과하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조차도 최고의 선 보다는 자기 사상을 무결하게 다듬고 완성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결국 '폴리스'라는 것도, 우리에게 이런저런 배역을 제안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이 지독한 농담이었음을 때때로 망각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정치학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현실 국가의 문제를 그 주제로 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이 천병희 교수(단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