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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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꽤 많은 고전의 특징 중 하나는 당연한 소리를 길게 풀어서 쓴다는 것이다. <자유론>도 내게는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당연한 소리를 길게 풀어서 쓰는 것’이라는 말이 꼭 나쁜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가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밀은 관습과 여론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를 역설한다. 어떤 생각이 다수를 등에 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의 다른 어떤 생각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거나, 다 아는 얘기를 굳이 어려운 말로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엔 대부분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지 않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입으로 ‘존중’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에도, 실제로는 무관심에 가까운 상대주의적인 태도에 그치거나, 혹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의견을 내심 업신여기는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 태도 모두 밀이 생각하는 최선과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존중이라는 것 자체도 밀에 의하면 최선의 태도가 아니다. 최선의 태도란, 제한 없는 자유 토론을 통해서 단 하나의 주체적 목소리(가능성)도 빠트리지 않고 철저하게 검증하여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절실하게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무제한 자유 토론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혹은 인간적 한계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불가능하지 않나?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진짜 언제나 진리에 수렴하는 방향으로 흘러갈까? 아니 그 전에, 수렴 가능한 진리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고 또 어느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밀의 주장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네이버 뉴스를 펼치고 이런저런 기사를 빠르게 훑어보자. 누구는 토론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답이 없어 보인다. 이런 문제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아무리 토론을 치열하게 한들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밀이 저런 순진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네이버 뉴스나 페이스북의 댓글 창을 못 봤기 때문일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존재한다. 이 중 어떤 것들은 어디로든 수렴하지 않는 문제처럼 보인다: 패션의 유행은 돌고 돈다든지... 그러나 정의, 국가, 법 등과 같은 문제들은 그게 진리냐 아니냐를 떠나서, 크게 보면 부당한 비극을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아마 앞으로도,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점점 수렴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요동치는 사회의 부작용을 줄여주는 것, 그리고 수렴하는 속력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자유 토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행동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없는지, 저런 상황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간섭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결국 토론을 통한 탐구 혹은 합의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니 당장 좌절감이 들더라도 방법 자체를 회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여건과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치열하게 생각하고 표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발제

효율적인 자유 토론을 위해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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