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 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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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 반작용

내가 나를 찾겠다며 이런저런 생산적인 일이 떠오르고 집중도 잘 될 때는 바로 회사에 있을 때다. 회사는 ‘내’가 가장 위협받는 환경이고, 그래서 ‘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으면 의외로 손쉽게 나를 놓아버린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 삶을 ‘반작용의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작용의 삶을 사는 사람은 작용에 대한 반발이 삶의 원동력이다. 만약 그 작용이 개인을 지우려는 폭력적인 시도라면, 나는 나를 지키겠다는 분노와 간절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언뜻, 어쨌거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좋은 상황이 아니냐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 사실은 나를 위협하는 무언가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모순적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했을 때 ‘반작용의 삶’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100% 순수하게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삶을 y = f(x)라고 한다면, 100% 순수하게 반발로만 구성된 삶은 y = -f(x)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입력을 넣으면 출력이 나오는,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런 삶(y = f(x)든, y = -f(x)든)이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내가 정한 것들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100%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 여러 이유에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나는 ‘작용의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