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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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이성과 감성은 상호 배제 관계가 아니다. 이성적인 사람이 감성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둘 다 없을 수도 있고 둘 다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감성적’이란 단어를 자신의 부족한 ‘이성적’ 능력을 감추기 위해, ‘이성적’이란 단어는 자신의 싸이코패스적 기질을 면피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안타깝다. 왜냐하면 이런 맥락에서의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해 봤자, 실제로는 그다지 섬세하지도 못한 감수성을 가졌고, ‘이성적’이라는 사람들 역시 별로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능력 다 가지지 못했다.

반대로 매우 논리적이고 침착한 사람도 남이 어떤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예술에 빠지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타인의 감정에 너무 쉽게 공감하는 것 같은 사람도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문제 해결에 임할수도 있다. 영화, 문학, 음악 평론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인 언어 구사력과 섬세한 감수성이 모두 필요하다. 사실 말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들이다. 심지어 (이미 눈치 챘겠지만)’이성적’ 혹은 ‘감성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개념 자체도 너무 넓고 모호하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이런 맥락에서의 ‘이성적’, ‘감성적’이라는 묘사는 사실, 잘생기지 않은 사람에게 ‘남자답네’ 혹은 ‘착하게 생겼네’라는,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 ‘귀엽네’라는 묘사와도 같다. 물론 누구에게도 잘생기거나 예뻐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착하게 생겼다’는 말이 튀어나온 후, 모두가 어디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암묵적인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번개처럼 빠르게 화제가 전환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스스로에게 그런 딱지는 안 붙이고 싶을텐데. 아무튼 그런 포지션을 스스로 자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