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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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갓 대학을 들어간 20살 즈음의 나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의 친구라기 보다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데 언제나 더 열심이었다. 그렇게 군대에 가기 전 까지는 (아마도)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했고, 그런 사실을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곤 했다. 당시의 생활이라는 것은 즐거운 무엇이라기 보다는 매일 긴장하고 또 안도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어쩌다 그 시절에 접했던 요조의 이야기들, 그의 필사적인 봉사, 비위를 맞추기 위한 거짓말, 어쩐지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문화적으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부끄러움, 따위의 것들은 나에게 꽤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물론 당시에도 본인을 인간 실격이라고까지 묘사하는 요조의 죄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갓 무대에 오른 미숙한 '어릿광대'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보고 그에게 공감하며 같이 마음을 졸였다.

12년 뒤의 나는 더 이상 착하지 않다. 아마 당연히 적도 있겠지. 그동안 사람들을 피하기 보다는 만나고 빈정대는데 더 익숙해진 비겁한 사람이 되었지만, 동시에 아직까지도 여전히 매일을 괴롭히는 상상이 있다. 특히 회사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던 도중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들, 바로 내가 이유없이 사람들을 때리거나, 책상을 뒤엎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튼 뭔가 미친 짓거리를 하는 장면이다. 맥락없이 끼어드는 이런 상상들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란다.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던 것일까?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것일까? 전혀 아니다. 실은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모습, 나를 피하게 될 상황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지금 내가 있는 위치, 지금 내 상황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상누각에 가까운지 실감하게 된다.

저는 그곳에서, 막 존경받을 참이었습니다. 존경받을 거라는 생각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어떤 녀석에게 들켜 박살이 나고 죽도록 망신을 당하는, 바로 그것이 제가 내린 '존경받는' 상태의 정의였습니다. p150

12년만에 읽은 요조는 혐오스러운 인간이었다. "씨X 왜 그러고 사냐"며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실은 나도 이런 마음이 동족 혐오라는 것을 안다. 스무살의 내가 동정의 감정으로만 요조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동족 혐오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혹은 뻔뻔함)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의 내가 그동안의 나와 요조를 용서하게 될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내가 요조의 외줄에서 내려오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전집 제9권은 <인간 실격>이다. 「인간 실격」,「굿바이」 등 15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제9권은 다자이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보고 느끼며 글을 써내려갔는지 시기 순으로 훑어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