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에 대한 편지: 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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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대한 편지: 존 로크

관용이란 무엇일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 생각이 교회나 구원에 관한 것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나와 다른 사람을 모두 없애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교리에 어긋나는 짓이고, 교리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옳은 구원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면 무의미한 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크는 우리 서로 제발 그만 좀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한다. 이상한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자유를 침해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을 없애자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누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너무 옳은 말이라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는 와중에도 묘한 불편함(?)이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로크는 왜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 관용의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했을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가 믿음이라는 것에 무관심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창 열을 올려 싸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 그 싸움의 주제는 어쩌면 목숨 만큼이나 소중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로 들어와 “둘 다 잘한 것 없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 사실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 뿐이다. 물론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타죽는 사람을 하루에 몇 번 씩 본다면 나라도 저런 말을 할 것 같다. 그래서 교회와 공화국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로크에게 직접 반론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로크가 말한 정도의 관용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용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마땅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존중(관용)은 사회를 행복하게 해주지만, 그것이 항상 좋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 주는 한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내 의견을 품어주면 내 의견이 특별히 더 세련될 필요도, 논리적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쩌면, 깊이있게 토론하고 부딫히면서 고민했어야 할 바로 우리들의 문제들에 무관심해졌을 수도 있다.

발제

관용은 문제를 해결에 있어서 언제나 좋은 수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