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안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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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안 기다리며

내가 그나마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언젠가 부터, 아마 대충 스무살이 지나고 나서부터일까? 평범하고 재미없는 내 일상조차도 항상 기다릴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의 술자리, 썸을 타던 사람과의 문자, 학교의 행사, 면접 결과 발표날, 이직한 회사의 첫 출근일, 속으로 맘에 들어하던 사람과의 회식 자리, 처음 나가는 독서모임, 친구들과 가는 해외 여행, 회사 동기들과의 몇년만의 만남, 퇴사 기념 파티, 신경쓰이던 사람으로부터의 갑작스러운 연락, 소개팅 약속과 애프터 신청... 내 볼품없는 달력에 하나하나 다 늘어놓기 어려울 만큼 많은, 하지만 그만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벤트들을 촘촘하게 적어나갔다. 나는 항상 그렇게 무언가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왔다.

기다리던 순간이 실제로 찾아왔을 때 역시 행복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순간들은 몇 시간 남짓이기 마련이었고, 곧 끝나버릴 쇼의 시작을 유쾌하게 맞이할 수 있는 담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끝이 다가올 수록 나는 초조해졌고 우울해졌다. 그러다 쇼가 막을 내리면, 즐거웠던 장면들은 연기가 자욱한 꿈이 되어 흩어졌다. 꼭 직전의 우울이 복선이었다는 듯이.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행복은 언제나 거기에, 기다림에 있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꼭 모든것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과 함께. 내가 바래왔던 즐거움이, 막연했던 허전함의 근본적 원인이,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그동안 몰랐던 비밀이, 모든 것을 바꿔버릴 충격적인 이벤트가, 나를 명쾌하게 만들어 줄 삶의 고귀한 의미가... 다가올 미래에 있을 거라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나는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능케 했던 것은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 모든 행복을 그 '기다림'에 전부 걸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저 내 사정일 뿐이었다.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면,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들 역시 (사람 그 자체가 그렇듯이)태어났다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면, 내가 기다려왔던 것이 어떤 '좋은 것'이 아니라,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고된 여정을 잘 버틸 수 있게 만드는 무대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면, 아무리 절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들 흔들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베팅했던 '기다림'의 손실은 커져 갔지만 나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다림'이 아니면 어디에 베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마치 도박에 빠진 사람처럼 머릿속에는 '혹시?' '한 번 만 더?' 같은 생각이 꿈틀대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나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파산에 다다랐고,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기다릴만한게 남아있지 않다.

사람이 뭔가를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곧 바닥을 박박 긁어서라도 쥐똥만한 희망을 만들어 가슴에 품고 다니겠지. 하지만 그동안 기다려왔던 고도의 얼굴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쓰면서도 웃긴다. 본적도 없는 얼굴이 희미해진다니.

나는 창밖을 본다. 밖에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차가 지나간다. 걸어간다, 지나간다,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