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스: 모빌스 그룹
구체적인 내용(본인들의 퇴사 -> 회사 설립 -> 각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 이야기)은 무난평범해서 그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브랜딩의 의의나 일과의 브랜딩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점은 좋았다. 결과적으로 브랜딩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일-브랜딩의 관계는 삶-의미의 관계와 같고, 삶에서 '먹고 살기' 넘어서는 '의미’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일에서도 '돈 벌기’를 넘어서는 일의 의미, 즉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때, 삶의 의미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단순하게 말해보자면 '텅 빈 우주와 인간의 실존 사이의 구멍을 메꿔주는 서사’다. 이 '서사’가 없거나 충분치 않을 때 사람들은 삶의 무의미함 즉 공허를 느낀다. 사람들이 소속감, 정체성, 개성, 이야기 같은 개념들을 소비하고 또 내 삶의 일부로 들여오고 싶어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이 빈 공간을 '서사’로 메꿔 공허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을 둘러싼 다른 요소들(사상, 신념, 예술, 종교, 연애, 정체성, 학벌, 지역, 인종, 취향 등등등등)과 마찬가지로, 일의 본질 역시 '인간에게 서사 부여하기’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일의 생산자와 소비자 둘 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생산자는 생산을 통해 자신의 사상이나 정체성이라는 내 서사를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인정 받아 존재감을 인정받고 영향력을 확대한다. 소비자는 특정 사상이나 정체성이 담긴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해서 스스로 생산하지 못한 자기 서사의 빈 공간을 메꾸게 된다. 같은 사상이나 정체성을 공유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생기는 연대감, 소속감을 통한 추가적인 서사 생성은 덤이다.
그런 측면에서 브랜딩이란 애초에 인간 관계 맺기 혹은 예술 등의 개념과 공통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느낌이다. 그 공통점이란 스스로 자기 서사를 생성해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서사의 예시를 제시해주고 이 중에 맘에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생산자는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그 댓가로 돈, 내 생각이 먹힌다는 자기 확신(존재감, 효용감), 세상에 내 생각을 퍼트리는 영향력을 얻는다. '소비자’라는 말은 '서사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수집가’ 같은 말로 바꾸어도 같은 뜻이 된다. 내 삶의 의미를 타인에게 외주 주어서 납품 받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외주’라는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까짓거 외주 좀 주면 아무렴 어떤가? 더구나 생산자라고 해서 대단히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생산자들도 정말 생산자라기 보다는 큐레이터에 가깝다. 물론 큐레이팅도 생산의 한 종류라고 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일과 일의 의미에 대해서 했던 내 이런저런 생각이, 삶과 삶의 의미라는 내 기존 관심사와 통일성 있게 수렴되는 것 같아 즐거웠다. 나도 내 생각을 적당하게 벼려 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인정을 받고 싶다. 덕분에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래는 그냥 읽다가 마구잡이로 생각난 메모들…
- 이런식의 라이프스타일과 미학이 대중화 되어서 모두가 소박하게 자기 일과 인생의 문제에만 전념한다면 구조는 어떻게 바꾸지?
- 유쾌하게 일한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유머감각이 맞아야 한다.
- 스스로 '비주류의 멋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은 꼭 '나는 힙스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 무언가를 '틀에 가두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는 '예전 틀 말고 새 틀 가져와’라는 말에 가깝다. 사람이 정말로 모든 '틀’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을까?
- 현재의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의 틀을 관조적으로 볼 수 있게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거나, 현재의 틀 바깥의 예시를 들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