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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읽기: 허경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읽기: 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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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 불안-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2년간 약을 먹었다. 그러나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약을 끊을 때 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 단 한번이라도 이 병 때문에 스스로를 미덕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자마자 죽을병은 아니라는 생각에(몇달간 뇌나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에 시달렸다) 매우 안심했다. 의사 역시 나를 그런식으로 대한적은 없었다. 첫 진료에서 그는 '지나치게 걱정에 시달려서 문제가 생기는 사람도 있지만, 별다른 원인 없이 갑자기 생기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2년간 일관되게 노련한 친절함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나는 별 걱정 없이 시키는대로 약을 먹었다. 그리고 2년 후 거의 완치되어 약도 끊었다.

이렇게 보자면 '광기(의 억압)의 역사'는 현대로 올 수록 (푸코 입장에서)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이제는 불안이나 우울 같은 속성들이 '부도덕'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결함'이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일상(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울이나 불안은 치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안이나 우울을 일종의 '결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넓은 의미의)정치적 권력 작용의 결과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빈맥, 수면장애, 공황, 무기력 같은 증상들은, 내 기준에서는 인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든 비슷하게 문제가 되는 실질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푸코가 빈맥이 고통인 이유도 특정한 사회적 맥락이 있어야지만 가능한거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솔직히 별로 의미있는 말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공황이나 무기력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는 존재한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공황이나 무기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사회적인 권력 작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쳐도,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어떤 정신병을 '결함'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인간 스스로를 기계적인 무엇(이성에게 포섭된다고 말하는)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이고, 이게 문제다"라고 말한다면, 실제로 기계적인 무엇이 어느정도 맞다고 말하고 싶다. 내 병은 왜 생겼나?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자율신경계의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불안장애의 경우는 교감신경 항진)이다. 그러면 밸런스를 맞춰주는 기전(약)을 처방하면 해결된다. 이게 기계적인게 아니면 뭔지? 그렇다면 공황이나 무기력이 아닌 다른 광기들은? 기계적, 생물학적 문제가 전혀 아닐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나?

만약 푸코의 주장을 "마녀, 동성애, 우울증 따위의 현상을 정상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보편적 진리(이성으로 광기를 규정하기)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의 유럽이 가진 구조적 인식의 틀이 작용한 결과이다. 즉 정치와 권력이 작용한 결과라는 말이다." 정도로 이해한다면, 2023년의 현대 시민 1의 입장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데는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솔직히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느낌? 그래서 드는 생각: 정말 이 정도의 주장일까? 더 급진적이진 않으려나? 예를 들어 쾌락 살인마의 광기를 정상화의 대상으로 보거나 사회에서 격리하여 지워버리려는 시도 역시 타도해야 할 권력 작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나? 차라리 그랬다면 더 재밌을 거 같은데...

그러다보니, 실은 푸코가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은 예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술을 제외했을 때, '광기의 풍부한 모습을 되살리자'라는 푸코의 목적이 실제의 삶과 세상에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내 머리로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코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광기의 복권'을 실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낸 좀 더 자세한 묘사가 있다면 보고 싶다. 또 푸코가 '좋은 시절'로 평가하는 르네상스 혹은 그 이전 시대가 광기를 어떻게 다뤘는지, 그래서 실제 구체적인 삶이 어떠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면 푸코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쨌거나 도덕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구성되고, 이 때 이 도덕은 곧 당대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흔히 '현재의 시스템은 현재의 기득권에게 부역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뉘앙스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푸코의 이런식의 생각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을 보면 나도 기본적으로는 구조주의자인가? 흠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나를 포함한 요새 세대의 마음속에는 대부분 이런식의 구조적 사고방식이 어느정도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세대는 이런 경향이 더 강화될 것 같고 말이다.

ps 그런데 왜 하필 '광기'일까? 이성과 광기, 미덕과 악덕 뿐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시대와 사회로부터 구성된 정치적 결과라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광기의 역사>가 아니라 그냥 <모든것의 역사>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