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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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그에게 중요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광고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커리어?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 모델 같은 멋진 연인을 두고 싶었던 욕망? 그는 저것들을 모두 얻고 답답한 가슴을 쳤다. 나도 딱히 말 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이미 파묻혔거나 곧 파묻힐 뼈들 뿐이다. 평소엔 무심했지만 이제 끝날 때가 되어서야 찾는 뼈들! 우리는 흔히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았다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곤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 소중하지도 않았고, 다만 외로움을 피해 기댈 곳을 찾는 비겁한 마음을 감추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항상 끝날 때가 되어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때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 때 웃어줬어야 했는데, 눈을 보고 말할 걸, 그 땐 왜 그랬지? 등등... 이 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후회와 반성과 다짐? 물론 가능한 설명이지만, 아무래도 '자조'에 좀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 따위에 잔뜩 열을 올리며 법석을 떨던, 그러면서 남들에게 상처나 주던 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창피해서 나오는 쓴 웃음과 텁텁한 슬픔. 어쩌면 끝이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연약하다는 사실을 끝이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그 동안 크고 작은 '끝'들을 만나오며 수많은 자조들을 남겨왔다면, 삶이 끝나갈 때 느끼게 될 것 역시 짐작이 가겠지.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p167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하지만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밀려드는 고통 앞에서 그저 서서 버티고만 있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서서 버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우리는 이럴 능력도 없고 저럴 능력도 없다. 단순한 운명 앞에서 우린 철저하게 무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길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옆으로 누웠다 곧게 누웠다 자세를 바꿔가며 신음한다. 물론 아무런 소용도 없는 짓이다.

“(…) 아, 미안해요, 정말로. 나도 징징거리는 건 혐오하는 사람인데." "우리 모두 그렇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 울잖아요." p94

그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과 안정감만이 중요했지만, 둘 중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그의 실수였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누가 알까? 그게 정말 실수였는지는 결과를 보고 말할 수 밖에 없을텐데. 나도 그처럼 많은 실수를 했고 가슴도 많이 쳤다. 그러나 나는 심지어 그의 이름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내 이름을 줘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오늘도 그 주에서만 오백명이 넘는 그가 흙바닥에 파묻혔을 테니까...

에브리맨
1998년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그리고 펜/포크너 상을 유일하게 세 번 수상한 작가,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 오래전 해적판으로 몇몇 소설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판권 계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