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돌아가기
벌써 10년도 훨씬 전에, 처음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유명한 첫 문장: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은 나에게도 충격을 줬다. 단순히 그 자극적인 단어 선택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에 막연하게만 느끼던 공허한 기분이 바로 이거였구나,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따위의 생각을, 책장을 넘길 때 마다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동시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문제를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굴었다. 잔뜩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빨리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알게된 것들을 투박한 언어로 떠들었다. 당시 나는 꽤나 심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파발이 되어 이 신비롭고 끔찍한 비밀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기도 했다. 다시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전형적인 촌놈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해줘도, 다들 시큰둥 하거나 무슨 그런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냐며 오히려 타박을 줬다.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늘은 이걸 해야 해", "내일은 저걸 해야 해"라는 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다니면서, 내가 왜 태어나고 죽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있다니? 답답한 마음에 이야기가 빙빙 도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그러니까 내가 외로웠던 이유는, 내 언어가 충분히 세련되지 못해서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시지프 신화>를 읽었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딱 잘라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나와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 기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그 차이가 평생을 따라다닌 내 부끄러움과 외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내가 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는지를. 그 노력이 사람들 앞에서 결실을 맺은 날 마저도, 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혀에 쓴 맛이 돌았었는지를.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 머리속에 벌레가 기어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던 이유 마저도 혼자가(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싫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다가 결국에는 상처만 잔뜩 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내 머리속의 벌레가 다른 사람을 싫어하듯이 그 사람마저 싫어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기껏 한다는게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지 않게 선을 조정하곤 하다가도, 어쩌다 이렇게 너무 성공?해 버릴 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라는 사실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