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년 전부터 많이 쓰던 말인 '자기 PR'은 이제는 '셀프 브랜딩', 더 좁게는 '인플루언서', 더 좁게는 '유튜버' 같은 말로 대체된 것 같다. 예전에는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끼던 것과 달리, 요새는 누구나 스스로 연예인이, 인플루언서가 되길 바라고,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곧 '커리어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때보다 개인의 '꿈 찾기', '커리어 개발'에 관심이 많은 요즘 같은 때, '대 연예인의 시대'가 열린(지 한참된)것 같다고 느껴진다. 나도 커리어 개발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인데, 그 말은 즉 인플루언서 되기를 어느정도 동경하고 있고, 또 동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가 없다는 지방을 떠나 도시로 왔고, 이런 현상은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하는 '지방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내가 느끼기엔 역시나 '개인'의 '성장'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란? 나를 정의할 정체성, 즉 자아 찾기에 해당한다. '성장'이란?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오늘을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공동체에서는 대체로 둘 다 허락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개인 대신 평범한 '그들 중 하나'가 있다. 성장 대신 어제와 같은 날이 오늘도 이어지길, 즉 어제에 머무르길 바란다. 전통 사회의 이런 환경은 우리들에게 시대의 사명(?) 수행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 불안을 안겨준다. **우리 세대에게 '멋 없는 삶'을 사는 것 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없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이런식으로 개인과 성장을 얻고, 그 대가로 각자의 고향을 버려온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열린 새 세상이, 대해적시대가 점점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면? 더 이상 개인에게 특별하게 부여할 정체성이나 성장의 기회가 고갈되고 있다면? 인간이 개발한 독특한 서사의 수, 부여할 수 있는 의미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개성을 얻고 싶은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성장하고 싶은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렇듯 우리의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지는데, 돌아갈 고향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에 놓인 셈이다. 사실 이미 이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서울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회의 땅일까? 낙오자들의 시체 더미로 운영되는 마천루일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더더욱 극단적인 경쟁과 자기계발 속으로 뛰어들어 기존의 이상향을 밀어붙이는 것(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속할 커뮤니티를 찾는 것(경쟁에서 져도 괜찮은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때, 전통적인 공동체로 돌아간다는 옵션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개인주의, 도시화, 자아 찾기에 대한 믿음은 시대의 사명 즉, 상식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도시인으로서의 자신을 환영해줄, 자기 정체성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전통적이지 않은 공동체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도시에서 만들고 찾는 공동체가 대체로 문화적 취향이나 교양 수준, 혹은 '열심히 살기' 같은 자기계발을 확장한다는 느낌으로 구성되는 것 같다. 이런 공동체는 선별된, 세련된, 교양있는, 매력적인 사람들, 즉 가치가 높은 개인들이 모여모여 베타적, 엘리트적 냄새를 풍길 수 밖에 없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런 가치를 동경하기라도 해야 한다. 이런 공동체는 '세련되었기 때문에' 각자 개인 존중이 전제된 '느슨한 관계'를 이상향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느슨한 관계'라는 말 자체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어느정도 포기한 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전통적 공동체와 현대적 개인은 어느정도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 개인을, 정체성을, 성장을, 꿈을, 자기계발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공동체는 결국 개인 중심으로, 공동체로서의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는 것이다. [[20210530 혼자서도 행복하기]]
그래서 내 생각에는... 그동안 합리주의의 이름 아래 꾸준히 감소하던 전통 종교인 비율이, 그동안의 경향을 뚫고 중요한 역할을 되찾으며 다시 대중화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교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세세히 자격을 따져가며 베타적으로 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느정도 이상적인 인간상, 사회상을 제시한다. 모두를 품으려 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공동체와 유사하지만, 사회적 안전감 이외에 아무런 이상향도 제시하지 않는 것과는 대비된다. 즉 종교는 어떤 사회적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임임과 동시에(도시인들의 사명감 충족), 누구에게도 베타적이지 않는 안전한 커뮤니티(기존 느슨한 관계의 한계 극복)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현대적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덩달아 높아지는 불안 때문에 유행하는 명상, 요가, 마음수련, 임상심리학 등에 이어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모습은 종교의 대중화로 가는 과정 중 하나 처럼 보일 때도 있다. 물론 '맹목적 광신'이라는 현대인이 종교인에게 가진 아주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종교를 가진다면 실제로 내 삶이 달라지게 될까? 나에게 남은 전통적 공동체인 가족은 나를 맞아주는 고향이지만 동시에 내 손으로 지켜야 하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온전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란 이제는 없는 셈이다. 보통 종교는 인간의 이런 약점을 공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