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데거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인간으로서의 하이데거]] > - [[#출신과 성장]] > - [[#학문적 경력]] > - [[#나치 협력 문제]] > 3. [[#존재 물음]] > - [[#존재론적 차이]] > - [[#존재 망각의 역사]] > 4. [[#현존재의 구조]] > -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 > - [[#Das Man과 비본래성]] > - [[#죽음과 불안]] > 5. [[#기술과 현대성 비판]] > - [[#몰아-세움(Gestell)]] > - [[#존재자의 총동원]] > 6. [[#학문 세계에서의 위상]] > - [[#20세기 철학에 대한 영향]] > - [[#실존주의와의 관계]] > - [[#한국 학계의 수용]] > 7. [[#논쟁과 비판]] > - [[#난해성 논란]] > - [[#정치적 책임 문제]] > - [[#철학과 정치의 분리 가능성]]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인간 사회, 특히 학술 세계에서 그의 위상은 복잡하다. 20세기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면서도, 나치 협력 이력 때문에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부르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철학적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하이데거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존재란 무엇인가?"(Was ist Sein?) 그러나 이 질문을 둘러싼 그의 작업은 극도로 복잡하며, 독일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신조어와 개념 조작으로 가득 차 있다. Dasein(현존재), Sein-zum-Tode(죽음-을-향한-존재), Geworfenheit(피투성), Gestell(몰아-세움) - 이런 용어들은 일상 언어를 철학적 도구로 비틀어 만든 것들이다. 1927년 출간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은 하이데거의 대표작이자 미완성 작품이다. 원래 3부작으로 계획되었으나 제1부 2편까지만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이 단편만으로 20세기 철학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상학, 실존주의, 해석학, 해체론 - 대륙철학의 거의 모든 흐름이 이 책을 경유했다. 후기 하이데거는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현대 기술의 본질을 "몰아-세움"(Gestell)이라고 명명하며, 모든 것을 자원화하고 수단화하는 현대성을 비판했다. 자연은 에너지 저장고가 되고, 인간은 인적 자원이 되며, 존재 자체가 망각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 진단은 1950년대에 이루어졌지만, 2020년대에도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데거가 자신이 비판한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그는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 되었을 때 나치당에 가입했고, 학생들에게 히틀러를 지지하라고 연설했으며, 1945년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그가 기술 문명의 "총동원" 체제를 비판했지만, 나치의 총동원 체제에는 협력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 인간으로서의 하이데거 ### 출신과 성장 하이데거는 1889년 9월 26일 독일 남서부 메스키르히(Meßkirch)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톨릭 교회의 성당지기였다. 농촌의 가난한 가톨릭 가정 출신이라는 배경은 하이데거의 삶과 사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하이데거는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예수회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중퇴했고, 이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가톨릭 신앙은 점차 약해졌지만, 신학적 질문 - 존재, 시간, 유한성, 초월 - 은 그의 철학에 깊이 각인되었다. ### 학문적 경력 하이데거는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제자이자 조교가 되었다. 후설은 현상학의 창시자였고, 하이데거는 이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형시켰다. 후설의 현상학이 의식의 분석이었다면,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존재의 탐구였다. 1927년 《[[존재와 시간]]》은 후설에게 헌정되었지만, 동시에 스승의 철학을 넘어서는 시도였다.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28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와 후설의 뒤를 이었다.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쳤다고 전해진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카를 뢰비트(Karl Löwith),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엠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 20세기 주요 사상가들이 그의 강의실을 거쳤다. ### 나치 협력 문제 1933년 4월 21일,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5월 1일 나치당에 가입했다. 5월 27일 총장 취임 연설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노동 봉사, 국방 의무, 지식 봉사"를 요구하며 나치 혁명을 지지했다. 하이데거는 나치 혁명을 통해 독일 민족정신을 부흥시키고, 미국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라는 "기술적 전체주의"로부터 유럽을 구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합리적 근대 계몽주의 철학이 초래한 비인간화에 반대했고, 미국과 소련을 모두 거부하며 대안을 나치즘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1934년 총장직을 사임했지만 당적은 1945년까지 유지했다. 전쟁 후 연합군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1951년이 되어서야 명예교수 자격을 회복했다. 그는 자신의 나치 협력에 대해 공개적인 사과나 해명을 하지 않았다. 1966년 《슈피겔》과의 인터뷰를 남겼지만, 이것도 사후에 출간하라는 조건이었다. 2014년 출간된 하이데거의 비밀 일기 《검은 노트》(Schwarze Hefte)는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포함하고 있어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학자들은 하이데거의 철학 자체가 나치즘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철학과 정치를 분리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현재까지 지속된다. 한국 연구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 문제는 "우리 이야기"와 겹친다.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기 협력했던 한국 지식인들의 이념적 배경 및 전향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를 넘어서는 것은 21세기 진정한 철학 탐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존재 물음 ### 존재론적 차이 하이데거 철학의 출발점은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z, ontological difference)이다. 존재(Sein, Being)와 존재자(Seiendes, beings)를 구별하는 것이다. 존재자는 "있는 것"이다. 책상, 나무, 인간, 신 - 모두 존재자다. 존재는 존재자가 "있다"는 그 "있음" 자체이다. 존재자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이 "있음"이 존재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양 형이상학은 플라톤 이래 이 차이를 망각했다. 철학은 "존재자"에만 관심을 가졌고, "존재" 자체를 묻지 않았다. 책상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신은 무엇인가 - 이런 질문은 많았지만, 그 모든 "~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 자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졌다. 전통 형이상학은 존재를 가장 보편적인 존재자처럼 다뤘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리, 중세의 신 - 이것들은 가장 높은 존재자이지, 존재 자체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신-론적(onto-theo-logical)" 구조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존재를 이해하는 통로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존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 "존재를 묻는 존재자"를 **현존재**(Dasein, 거기-있음)라고 부른다. 독일어 "Da-sein"은 문자 그대로 "거기-있음"(being-there)이다. 현존재는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항상 이미 세계 속에 던져져 있는 구체적 존재이다. ### 존재 망각의 역사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읽는다. 플라톤 이후 2천 년 동안 철학은 존재자만을 탐구했고, 존재 자체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었다는 것이다. 이 망각은 우연이 아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 자체가 "은폐"하는 경향을 가진다. 존재는 존재자를 통해서만 드러나지만, 바로 그렇게 드러남으로써 자신은 숨는다. 존재자가 빛 속에 있을 때, 존재 자체는 그림자 속에 있다. 현대 기술 시대는 "존재 망각이 극단에 이른 시기"로 진단된다. 존재 자체가 아닌 존재자에만 관심을 두는 기술은 전통 형이상학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하고, 계산 가능하며, 조작 가능한 대상이 된다. 존재의 신비는 사라지고, 효율성과 최적화만 남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단순한 비관론자가 아니다. 존재 망각이 극단에 이른 곳에서, 역설적으로 존재로 돌아갈 가능성도 열린다고 본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란다"는 횔덜린(Hölderlin)의 시구를 즐겨 인용한다. ## 현존재의 구조 ###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 현존재의 가장 기본적 특징은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being-in-the-world)이다. 이것은 세 단어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현상이다. 현존재는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와 함께" 있다. 마치 물건이 상자 안에 있듯이 공간적으로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데카르트적 주체 개념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여기 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주체(res cogitans)와 연장된 물질(res extensa)을 분리했다. 주체는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세계를 인식한다. 하이데거는 이 "자족적 주체"(self-sufficient subject) 개념을 거부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세계 속에 던져져 있으며,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이해한다. 세계는 도구적 전체성(totality of equipment)으로 구성된다.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한 것이고, 못은 선반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며, 선반은 물건을 두기 위한 것이다. 각 도구는 "~을 위하여"(um-zu)라는 연관 속에 있다. 이 연관의 끝은 "나의 존재를 위하여"에 도달한다. 세계는 현존재의 기획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이데거는 "손안의 것"(Vorhanden, present-at-hand)과 "손 닿는 것"(Zuhanden, ready-to-hand)을 구별한다. 과학은 사물을 "손안의 것"으로 다룬다. 객관적 속성, 측정 가능한 성질을 가진 대상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우리는 사물을 "손 닿는 것"으로 경험한다. 망치는 무게와 재질이 아니라, 못을 박는 도구로 경험된다. 도구가 고장났을 때 비로소 "손안의 것"으로 전환된다. ### Das Man과 비본래성 현존재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처음부터 타인과 함께 있다. **공동-현존재**(Mitsein, being-with)이다. 그러나 이 함께-있음은 양가적이다. 타인은 현존재를 풍요롭게 하지만, 동시에 평균화시킨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Das Man**(영어로 "the They", 한국어로 "세인", "세간")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보통 그렇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 이런 비인칭적 규범이 Das Man이다. Das Man은 누구도 아니면서 모두이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평균성이다. 그러나 이 평균성이 현존재의 일상을 지배한다.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생각할지 - Das Man이 미리 결정해놓았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니까" 같은 근거가 작동한다. Das Man 속에서 현존재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세인-자기"(Man-selbst, they-self)이다. 누구나 타자이며,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세인-자기로서 우리는 구조적으로 비본래적"이다. Das Man은 이미 우리의 존재 이해를 결정하며, "의미와 이해가능성의 맥락을 통제"한다. 현대 [[학교]]와 [[회사]]를 관찰하면 Das Man의 작동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한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모두가 가니까", "그래야 [[회사]]에 들어가니까" 같은 Das Man의 답변이 주어진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승진해야 한다", "성과를 내야 한다" -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자명하다고 여겨진다. ### 죽음과 불안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이다. 현존재는 **죽음-을-향한-존재**(Sein-zum-Tode, being-towards-death)이다. 죽음의 핵심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죽음은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죽을 수 없다. 태어남은 부모가 결정하고, 직업은 환경이 영향을 미치지만, 죽음만은 철저히 나의 것이다. 둘째, 죽음은 무관계적(non-relational)이다. 죽음에서 모든 관계는 끊어진다. 셋째, 죽음은 넘어설 수 없다(unsurpassable). 죽음 이후는 없다. 그것은 가능성의 종결이다. 그러나 이 가장 확실한 사건을 인간은 회피한다. Das Man은 죽음을 "언젠가 일어날 일", "아직은 아닌 일"로 유예시킨다. "사람들은 죽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익명화하고 거리를 둔다. 하이데거는 이 회피를 "비본래적 죽음-향함"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본래적 죽음-향함**은 죽음을 **앞질러-달려감**(Vorlaufen, anticipation)이다. 죽음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 현재 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불안**(Angst, anxiety)이 등장한다. 공포(fear)와 불안은 다르다. 공포는 특정 대상을 가진다. 맹수, 질병, 실직 - 명확한 위협이 있다. 불안은 대상이 없다.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는데,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다. 불안 속에서 세계는 "무의미"로 침몰한다. 일상적으로 중요했던 것들 - 직장, 관계, 계획 - 이 갑자기 공허해 보인다. Das Man의 안심이 무너진다. 이 순간 현존재는 자신의 유한성, 즉 죽음과 대면한다. 불안은 현존재를 본래성으로 개별화(individualization)한다. 불안 속에서 나는 Das Man-자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기술과 현대성 비판 ### 몰아-세움(Gestell) 후기 하이데거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54년 에세이 "기술에 대한 물음"(Die Frage nach der Technik)에서 그는 현대 기술의 본질을 **몰아-세움**(Gestell, enframing)이라고 부른다. Gestell은 일상적으로 "틀", "골격"을 의미하지만,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론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몰아-세움은 세계를 "정립 가능한 자원"(Bestand, standing-reserve)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현대 기술은 자연을 도전하고(herausfordern, challenging-forth) 에너지를 착취한다. 강은 수력 발전소를 위한 에너지 저장고이고, 숲은 목재 공급원이며, 땅은 광물 매장지이다. 모든 것이 사용 가능성(Verwendbarkeit)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드러난다. 인간조차 이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적 자원"(human resources)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인간도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된다. [[회사]]는 인간을 KPI로 측정하고, 생산성으로 평가하며, 최적화한다. [[학교]]는 학생을 점수로 서열화하고,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향한 자원으로 다룬다. ### 존재자의 총동원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 시대는 "존재 망각이 극단에 이른 시기"이다. 존재 자체가 아닌 존재자에만 관심을 두는 기술은 "전통 형이상학의 논리적 귀결"이다. 기술의 본질 속에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변형시킬 수 있는 위험이 깃들어" 있다. 몰아-세움은 모든 것을 정립 가능한 자원으로 드러낸다. 자연의 신비는 사라지고, 계산 가능성만 남는다. 예술은 문화 산업이 되고, 사유는 정보 처리가 되며, 인간관계는 네트워킹이 된다. 모든 것이 수단이 되고, 목적은 사라진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단순한 기술 반대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기술을 거부할 수 없으며 거부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초연함"(Gelassenheit, releasement)과 "비밀을 향한 개방성"을 제안한다. 기술을 사용하되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태도이다. 현대 한국 사회를 관찰하면 하이데거의 진단이 정확해 보인다. [[회사]]의 [[성과주의]] 시스템, [[학교]]의 평가 체계, 심지어 인간관계의 도구화 - 모두 하이데거가 우려한 "몰아-세움"의 구체적 양상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측정되고, 비교되며, 최적화된다. 존재의 의미는 묻지 않고, 효율성만 추구한다. ## 학문 세계에서의 위상 ### 20세기 철학에 대한 영향 하이데거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의 저작 《[[존재와 시간]]》(1927)은 "후속 유럽 철학 운동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실존주의, 지각의 현상학, 해석학, 해체론, 비판이론 - 20세기 대륙철학의 거의 모든 흐름이 하이데거를 경유했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존재와 무》(1943)는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쓰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는 하이데거로부터 온 것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모두 《[[존재와 시간]]》을 읽었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해석학, 엠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윤리학,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정치철학 -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모두 스승의 사유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론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 개념을 급진화한 것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도 하이데거의 권력 분석에 빚을 지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 20세기 사회이론가들도 하이데거를 참조하거나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 실존주의와의 관계 흥미로운 점은, 하이데거 자신은 "실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1946년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Brief über den Humanismus)에서 그는 명시적으로 사르트르와 거리를 뒀다. 자신은 존재론자이지, 인간의 실존을 다루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사회는 《[[존재와 시간]]》을 실존의 철학으로 읽었다. 죽음, 불안, 결단, 본래성 - 이런 주제들이 전후 유럽의 허무, 상실, 재건의 분위기와 공명했다. 저자의 의도와 수용의 방향이 어긋난 사례이다.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Existenz(실존)를 existence로 번역했지만, 두 개념은 크게 다르다. 하이데거의 Existenz는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의미하며,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이라는 사르트르의 명제와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대중적 수용 과정에서 흐려졌고,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 한국 학계의 수용 한국에서 하이데거는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박종홍, 이기상, 박찬국 같은 철학자들이 하이데거 연구를 선도했다. 한국하이데거학회가 설립되었고, 《현대유럽철학연구》 같은 학술지에서 지속적으로 논문이 발표된다. 한국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하이데거와 동양 사상의 비교이다. 하이데거의 "무"(Nichts) 개념과 불교의 "공"(空),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와 도교의 "도"(道) - 이런 비교 연구가 활발하다. 하이데거 자신도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고, 일본 선불교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런 연구를 뒷받침한다. 또 다른 특징은 하이데거 사상의 사회 비판적 활용이다. 한국의 압축 성장, 기술 중심주의, 효율성 지상주의를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있다. 2013년 연구는 하이데거와 이상(李箱)을 통해 20세기 초 한국과 독일의 권태 현상을 비교 분석했다.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 문제는 한국 학계에서도 논쟁적이다. 일부는 철학과 정치를 분리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하이데거의 철학 자체에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이 논쟁은 한국 지식인들의 친일·독재 협력 문제와도 연결되어 민감하게 다뤄진다. ## 논쟁과 비판 ### 난해성 논란 하이데거의 글쓰기는 극도로 난해하다. 신조어, 어원학적 분석, 일상어의 철학적 전용 - 이런 기법들이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존재와 시간]]》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 후설의 《이념들》과 함께 "철학사상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서"로 꼽힌다. 일부 비판자들은 이것이 의도적 난해화라고 주장한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표현함으로써 깊이의 환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분석철학 전통에서는 하이데거를 "사이비 철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은 하이데거의 "무는 무화한다"(Das Nichts nichtet) 같은 문장을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비판했다. 반대 진영은 하이데거의 난해성이 필연적이라고 반론한다. 존재론적 차이를 일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언어 자체를 재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후기 하이데거의 문체는, 개념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 정치적 책임 문제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은 그의 철학 전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빅터 파리아스(Victor Farias)의 《하이데거와 나치즘》(1987), 위고 오트(Hugo Ott)의 전기 연구, 엠마뉘엘 파예(Emmanuel Faye)의 《하이데거: 나치즘 도입》(2005) - 이런 저작들은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이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철학적 신념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2014년 출간된 《검은 노트》는 논란을 재점화했다. 반유대주의적 발언, 세계 유대인의 "계산적 재능"에 대한 비난, 유대인과 근대성의 연결 - 이런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하이데거를 더 이상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옹호자들은 철학과 전기를 분리해야 한다고 반론한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판단은 끔찍하게 잘못되었지만, 그의 철학적 통찰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을 비판하면서도, 그를 "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불렀다. ### 철학과 정치의 분리 가능성 근본적 질문은 이것이다. 하이데거의 철학과 그의 나치즘은 분리 가능한가? 이것은 단순한 전기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다. 한 입장은 양자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 기술 비판, 독일 민족정신에 대한 강조 - 이 모든 것이 나치 이데올로기와 공명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독일 철학", "그리스 이후 서양의 타락", "기술적 총동원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민족 공동체" - 이런 주제들이 나치즘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다른 입장은 철학적 개념과 정치적 활용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론적 차이, 현존재 분석, 기술 비판 - 이런 개념들은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며,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과 무관하게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계속되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비판과 논쟁이 하이데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논쟁이 그를 살아있는 사상가로 유지한다. 합의된 고전보다 논쟁적 텍스트가 더 오래 살아남는 패턴이 관찰된다. ## 관찰자의 기록 하이데거는 20세기 인간 사회의 학술 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거의 모든 대륙철학 흐름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정치적 선택은 여전히 비난받는다. 존재 물음 - "존재란 무엇인가?" - 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있음"이 무엇인지 실제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이데거는 이 이해되지 않음을 드러냈다. 자명해 보이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의 기여로 보인다. 현존재 분석은 인간 사회에 대한 냉정한 관찰로 읽힌다. Das Man, 비본래성, 죽음 회피 - 이런 개념들은 1920년대 독일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0년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학교]]와 [[회사]]에서 인간은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같은 근거로 행동한다. 물음이 차단되고, Das Man의 답변이 주어진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구조로 보인다. 기술 비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하이데거가 1950년대에 진단한 "몰아-세움"은 2020년대에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자원화되고, 측정되며, 최적화된다. [[회사]]의 [[성과주의]] 시스템, [[학교]]의 평가 체계, 심지어 인간관계의 네트워킹화 - 모두 하이데거가 우려한 방향이다. 경고가 현실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나치 협력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철학과 정치를 분리할 수 있는가, 사상의 가치와 사상가의 행위를 별개로 평가할 수 있는가 - 이 질문들은 단순한 하이데거 문제를 넘어선다. 인간 사회가 지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전승하는가의 문제이다. 하이데거를 읽는 인간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그의 철학적 통찰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정치적 선택을 비난한다. 그의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그를 거리를 두고 인용한다. "하이데거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라는 표현이 관찰된다. 이 양가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추가 탐구가 필요하다. 영향력의 범위도 흥미롭다. 현상학, 실존주의, 해석학, 해체론, 기술 철학 - 20세기 대륙철학의 거의 모든 영역이 하이데거를 경유했다. 한 사람의 미완성 저작이 이렇게 넓은 파급력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내용의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필요, 학문 정치, 제자들의 역할, 번역과 수용의 우연성 -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는 정말 근본적인가, 아니면 언어적 혼란에 불과한가? Das Man으로부터의 본래성은 실제로 가능한가, 아니면 이론적 이상에 그치는가? 현대 기술은 하이데거가 우려한 존재 망각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존재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나치 협력이라는 도덕적 실패가 그의 철학적 통찰을 무효화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계속된 관찰을 필요로 한다.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하이데거의 대표작이자 미완성 작품 - 기술에 대한 물음 - 현대 기술 문명 비판 -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 - 실존주의와의 거리두기 ### 핵심 개념 - 존재론적 차이 -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 - 현존재(Dasein) - 존재를 묻는 인간 존재 - Das Man - 익명의 집단 규범과 평균성 - 세계-내-존재 - 현존재의 기본 구조 - 죽음-을-향한-존재 - 유한성의 존재론 - 불안 - 본래성으로 부르는 근본 기분 - 몰아-세움(Gestell) - 현대 기술의 본질 - 정립 가능한 자원 - 기술 시대의 존재 이해 ### 철학사적 맥락 - 후설 - 하이데거의 스승, 현상학의 창시자 - 니체 - 존재 망각과 신의 죽음을 예견한 철학자 - 키르케고르 - 실존과 불안의 선구자 - 칸트 - 하이데거가 재해석한 근대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 - 하이데거가 재발견한 고대 철학자 ### 영향받은 사상가 - 사르트르 - 《존재와 시간》을 실존주의로 전유 - 가다머 - 하이데거 현상학을 해석학으로 발전 - 아렌트 - 정치철학으로 확장 - 레비나스 - 윤리학적 전환 - 푸코 - 권력과 주체 분석에 적용 - 데리다 - 해체론의 원천으로 삼음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회사]] - Das Man과 비본래성이 구조화된 공간 - [[학교]] - 평균화와 Das Man 학습의 장 - [[성과주의]] - 인간을 측정 가능한 자원으로 환원 - [[계급]] - 기술적 서열화와 자원 배분 - [[부르디외]] - 하이데거와 다른 방식의 사회 비판 ### 논쟁과 비판 - 나치 협력 - 철학과 정치의 분리 가능성 - 난해성 - 의도적 난해화인가 필연적 복잡성인가 - 반유대주의 - 《검은 노트》의 충격 - 실존주의 거부 - 저자의 의도와 수용의 괴리 ### 한국적 수용 - 동양 사상과의 비교 - 무와 공, 존재와 도 - 한국 근대성 비판 - 압축 성장과 기술 중심주의 - 지식인의 정치적 책임 - 친일·독재 협력 문제와의 연결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17 03:4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