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데거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인간으로서의 하이데거]] > - [[#출신과 교육]] > - [[#후설과의 관계]] > - [[#나치 시기]] > - [[#전후와 말년]] > 3. [[#존재와 시간]] > - [[#존재 물음의 재개]] > - [[#현존재 분석]] > - [[#세계-내-존재]] > 4. [[#실존의 구조]] > - [[#도구적 존재와 손안의 것]] > - [[#세인과 비본래성]] > - [[#불안과 죽음으로 향함]] > - [[#본래성과 결단성]] > 5. [[#후설 비판과 현상학의 전환]] > - [[#의식에서 현존재로]] > - [[#이론에서 실천으로]] > - [[#시간성의 재해석]] > 6. [[#전회와 후기 사유]] > - [[#존재의 역사]] > - [[#기술에 대한 물음]] > - [[#언어와 시작]] > 7. [[#나치 논쟁]] > - [[#사실과 해석]] > - [[#검은 노트]] > - [[#철학과 정치]]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존재론적으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은 서양 형이상학 전통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자 새로운 존재론의 시도로서, 사르트르, 가다머, 데리다, 푸코 등 20세기 대륙철학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이데거의 핵심 물음은 "존재란 무엇인가?"(Was ist Sein?)이다. 그에 따르면 서양 철학은 플라톤 이래 존재 자체를 물었지만, 실제로는 존재자(Seiende)—존재하는 것들—만을 다루었다.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 즉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z)가 망각되었다. 하이데거는 이 망각된 물음을 다시 제기한다. 존재를 묻기 위해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를 분석한다. 현존재는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 즉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며, 이 관심 속에서 존재 자체가 드러난다. 현존재 분석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존재와 시간》의 기획이다. 그러나 이 기획은 미완으로 남았고, 하이데거는 이후 "전회"(Kehre)를 통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은 철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1933년 나치당에 입당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서 히틀러 체제를 지지한 것, 그리고 전후에도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그의 철학적 유산에 지속적인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 인간으로서의 하이데거 ### 출신과 교육 마르틴 하이데거는 1889년 9월 26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가톨릭 가정에 태어났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하이데거는 성당 관리인이었다. 하이데거는 콘스탄츠와 프라이부르크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처음에는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 190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911년 건강 문제로 사제직 준비를 포기하고 철학으로 전향했다. 1913년 《심리학주의의 판단론》으로 박사 학위를, 1915년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초기 작업에서 스콜라 철학과 [[후설]]의 현상학이 만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군 복무 후 1919년부터 [[후설]]의 조교로 일했다. [[후설]]은 하이데거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겼고, 《존재와 시간》은 [[후설]]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철학적 관계는 점차 긴장 관계로 변했다. ### 후설과의 관계 하이데거와 [[후설]]의 관계는 복잡하다. [[후설]]은 하이데거를 발견하고 지원했으며, 자신의 현상학적 방법을 전수했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조교로 일하면서 현상학을 깊이 배웠고, [[후설]]의 미간행 원고들에 접근했다. 그러나 《존재와 시간》은 [[후설]]에게 헌정되었으나 내용적으로는 [[후설]] 비판이었다. [[후설]]은 《존재와 시간》을 읽고 실망했으며, 하이데거가 현상학을 왜곡했다고 느꼈다. 두 사람의 철학적 차이는 점차 커졌다. 1928년 [[후설]]의 은퇴 후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1930년대 나치 시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후설]]은 유대인으로서 나치 정권에 의해 박해받았고, 하이데거는 나치당에 입당했다. [[후설]]이 1938년 사망했을 때 하이데거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 나치 시기 1933년 5월 1일 하이데거는 나치당(NSDAP)에 입당했다. 4월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선출된 직후였다. 총장 취임 연설 "독일 대학의 자기 주장"에서 하이데거는 나치 운동과 독일 대학의 사명을 연결시켰다. 총장 재임 기간(1933-1934) 동안 하이데거는 대학 내 나치화 정책을 시행했고, 히틀러 체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1934년 4월 총장직에서 사임했지만, 나치당원 자격은 1945년까지 유지했다. 사임의 이유는 논쟁적이다—나치 정책과의 갈등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행정적 어려움이었는지. 전후 탈나치화 심사에서 하이데거는 "동조자"(Mitläufer)로 분류되었고, 교수직을 금지당했다. 1951년 금지가 해제되었으나, 정교수직 복귀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공개적으로 나치 시기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이 침묵은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전후와 말년 교수직 금지 기간에도 하이데거의 사유는 계속되었다. 1950년대부터 강연과 세미나를 재개했고, 주요 저작들이 출간되었다. 《숲길》(1950), 《강연과 논문》(1954), 《동일성과 차이》(1957), 《언어로의 도상에서》(1959)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하이데거는 1976년 5월 26일 메스키르히에서 사망했으며, 가톨릭 장례를 치렀다. 그의 전집(Gesamtausgabe)은 현재 100권 이상으로 출간 중이다. 생전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철학적 영향력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 존재와 시간 ### 존재 물음의 재개 《존재와 시간》의 첫 문장은 존재 물음이 망각되었다는 진단이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 망각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철학은 존재에 관해 물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자들—신, 자연, 정신, 물질—을 다루었다.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 즉 "존재론적 차이"가 핵심이다. 존재자는 "있는 것"이고, 존재는 "있음" 자체이다. 나무, 돌, 인간은 존재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있다"는 것, 이 "있음"은 무엇인가? 존재는 존재자처럼 파악될 수 없다.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양 형이상학은 존재를 "현전"(Anwesenheit)으로, 즉 눈앞에 있음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의 한 양상일 뿐이다. 존재의 의미는 시간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시 제기하고 그 지평으로서 시간을 드러내는 것이 《존재와 시간》의 과제이다. ### 현존재 분석 존재의 의미를 묻기 위해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를 분석한다. 이 존재자가 **현존재**(Dasein)이다. 'Dasein'은 독일어로 "거기-있음"을 의미하며, 하이데거는 이 용어를 인간 존재를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현존재의 특징은 자신의 존재가 자신에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돌이나 나무는 자신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고 걱정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런 물음들이 현존재의 특징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zu sein hat). 현존재 분석은 존재론(Ontologie)과 구별되는 "실존론적 분석"(existenziale Analytik)이다. 실존론적 분석은 현존재의 존재 구조—실존범주(Existenzialien)—를 기술한다. [[후설]]의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이 의식의 구조를 다루었다면,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은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다룬다. ### 세계-내-존재 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다. 이것은 현존재가 이미 항상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현존재에게 외적으로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자체를 구성한다. 이것은 [[후설]]과의 결정적 차이이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은 세계의 존재 정립을 "괄호에 넣어" 순수 의식에 도달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세계를 괄호에 넣는 것은 현존재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세계-내-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내-존재는 세 계기를 갖는다: "세계"(Welt), "세계-안에-있음"(In-Sein), "누가"(Wer). 세계는 존재자들의 총합이 아니라, 의미 연관의 전체이다. "안에-있음"은 공간적 포함이 아니라 친숙함, 관여함, 배려함이다. "누가"는 현존재 자신이며, 이것이 본래적인지 비본래적인지가 문제이다. ## 실존의 구조 ### 도구적 존재와 손안의 것 일상에서 현존재는 먼저 사물들을 이론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다. 망치는 먼저 "눈앞에 있는 것"(Vorhandenes)—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손안의 것"(Zuhandenes)—사용의 도구—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도구적 존재"(Zeugssein)라고 부른다. 도구는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망치는 못을 위해 있고, 못은 판자를 위해 있으며, 판자는 집을 위해 있다. 도구들은 "~을 위해"(Um-zu)의 연관 속에 있다. 이 연관의 전체가 "유의미성"(Bedeutsamkeit)이며, 이것이 세계의 구조이다. 이론적 관찰—눈앞에 있음—은 파생적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도구를 사용하지, 관찰하지 않는다. 도구가 고장나거나 없어질 때 비로소 그것이 "눈앞에" 드러난다. [[후설]]의 현상학이 이론적 관찰에서 출발한다면, 하이데거는 실천적 사용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현상학의 존재론적 전환이다. ### 세인과 비본래성 현존재는 일상에서 대부분 **세인**(das Man, 그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세인"은 모든 사람이면서 아무도 아닌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일상에서 우리는 세인이 하는 대로 하고, 세인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한다. 세인의 지배 아래서 현존재는 "비본래적"(uneigentlich)이다. 비본래성은 현존재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세인-자기"(Man-selbst)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인은 현존재를 "평균성"(Durchschnittlichkeit)과 "평준화"(Einebnung)로 이끈다. 눈에 띄는 것, 다른 것, 뛰어난 것은 억제된다. 그러나 비본래성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비본래성이 현존재의 "퇴락"(Verfallen)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존재론적 구조이지 윤리적 평가가 아니다. 모든 현존재는 처음에 비본래적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비본래성에 "머무르는" 것이다. ### 불안과 죽음으로 향함 비본래성에서 본래성으로의 이행은 **불안**(Angst)을 통해 가능하다. 불안은 두려움(Furcht)과 다르다. 두려움은 특정 대상에 대한 것이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다. 불안에서 세계 전체가 무의미해지고, 세인의 안정감이 무너진다. 불안은 **죽음으로 향함**(Sein-zum-Tode)을 드러낸다. 죽음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다. 아무도 나 대신 죽어줄 수 없다. 죽음에서 현존재는 세인의 대리 가능성을 넘어서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 죽음으로 향함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서 달려감"(Vorlaufen)—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그 빛 아래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죽음을 앞서 달려감으로써 현존재는 세인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 본래성과 결단성 **본래성**(Eigentlichkeit)은 현존재가 자기 자신을 소유하는 방식이다. 본래적 현존재는 세인이 제공하는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다. 본래성은 세인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세인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래성으로의 이행은 **결단성**(Entschlossenheit)이다. 결단성은 특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결단하는" 것이다. 결단성에서 현존재는 자신이 "던져진"(geworfen)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투한다. "앞서 달려가는 결단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은 죽음으로 향함과 결단성의 통일이다. 자신의 유한성을 앞서 달려가 받아들이면서, 현존재는 자신의 "상황"(Situation)에서 본래적으로 행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존재와 시간》이 제시하는 본래적 실존의 형태이다. ## 후설 비판과 현상학의 전환 ### 의식에서 현존재로 하이데거의 [[후설]] 비판은 다층적이다. 첫째, [[후설]]은 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은 데카르트적 주체의 변형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에서 출발하여 사유하는 실체를 발견했다. [[후설]]의 [[초월론적 자아]]는 이 실체적 자아를 [[지향성|지향적]] 의식으로 대체했을 뿐, 주체-객체 도식은 유지된다. 하이데거는 이 도식을 넘어서려 한다. 현존재는 먼저 의식이 아니라 세계-내-존재이다. 의식은 현존재의 한 양태일 뿐이며, 더 근원적인 것은 세계와의 관계이다. [[현상학적 환원]]이 세계를 괄호에 넣어 의식에 도달한다면,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에서 출발한다. 둘째, [[후설]]은 존재의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 [[후설]]은 의식에 나타나는 것—현상—을 분석하지만, 존재 자체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현상학은 존재론이 되어야 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적 방법은 존재론의 방법"이다. ### 이론에서 실천으로 [[후설]]의 현상학은 이론적 태도를 우선시한다. [[지향성]]의 기본 모델은 지각—대상을 보는 것—이다. [[본질직관]]도 "직관"이며,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은 의식의 관찰에 기초한다. 이론적 관찰이 현상학의 출발점이다. 하이데거는 실천적 관여가 더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먼저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다. 망치는 먼저 "손안의 것"이지 "눈앞의 것"이 아니다. 이론적 태도는 실천적 관여가 붕괴될 때 비로소 등장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파생적 양태에서 출발하여 근원적 양태를 놓쳤다. 이것은 [[지향성]] 개념의 전환을 함축한다. [[후설]]의 [[지향성]]은 의식-대상 관계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는 현존재-세계 관계이다. 전자가 인식론적이라면, 후자는 존재론적이다. 현상학은 의식 분석에서 존재 분석으로 전환된다. ### 시간성의 재해석 [[후설]]의 [[시간 의식]] 분석은 원인상-파지-예지 구조로 시간을 분석했다. 하이데거는 이 분석이 여전히 "현전 형이상학"에 묶여 있다고 비판한다. [[후설]]은 "지금"—현재—을 시간의 기본 단위로 삼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변양으로 이해한다. 하이데거는 시간성(Zeitlichkeit)을 현존재의 존재 의미로 재해석한다. 현존재의 시간성은 "탈자적"(ekstatisch)이다. 현존재는 항상 자기 밖으로—미래로, 과거로, 현재로—"탈자"한다. 미래(Zukunft)는 "자기에게로 다가옴"이고, 과거(Gewesenheit)는 "~이었음"이며, 현재(Gegenwart)는 "~곁에 있음"이다. 중요한 차이는 미래의 우선성이다. [[후설]]에게 시간의 근원은 "살아있는 현재"이다. 하이데거에게 시간의 근원은 미래이다. 현존재는 먼저 자기 앞에 있음(Sich-vorweg-sein)으로서, 미래를 향해 기투한다. 본래적 시간성은 죽음으로 향함에서 드러나며, 죽음은 가장 고유한 미래이다. ## 전회와 후기 사유 ### 존재의 역사 《존재와 시간》은 미완으로 남았다. 계획된 3부 중 1부의 절반만 출간되었다. 1930년대 이후 하이데거의 사유는 "전회"(Kehre)를 겪는다. 전회는 현존재 분석에서 존재 자체의 사유로의 이행이다. 전회 이후 하이데거는 "존재의 역사"(Seinsgeschichte)를 탐구한다.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는 존재 망각의 역사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데카르트의 주체, 니체의 힘에의 의지—이것들은 모두 존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은폐하면서 드러낸 것이다. 존재는 스스로를 "보냄"(Schicken)으로써 역사 안에 나타난다. 그러나 각 시대의 존재 이해는 동시에 존재의 은폐이다. 현대 기술 시대는 존재 망각의 극단이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유는 이 망각을 사유하고, 존재가 다시 드러날 가능성을 탐구한다. ### 기술에 대한 물음 《기술에 대한 물음》(1953)은 하이데거 후기 사유의 핵심 텍스트이다. 기술(Technik)은 단순히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기술은 현대의 "세계 개시 방식"—존재자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현대 기술의 본질을 하이데거는 "몰아세움"(Gestell)이라고 부른다. 몰아세움에서 모든 존재자는 "부품"(Bestand)으로 드러난다—주문에 응하고, 저장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강은 수력발전의 에너지원으로, 숲은 목재 자원으로 드러난다. 인간 자신도 "인적 자원"이 된다. 기술은 위험이지만, 위험 속에 "구원하는 것"도 있다. 기술의 본질을 사유함으로써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하이데거는 예술—특히 시작(詩作)—에서 기술과 다른 존재 드러남의 가능성을 본다. ### 언어와 시작 후기 하이데거에서 언어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존재는 언어 안에 거주하며, 인간은 언어를 통해 존재와 관계한다. 특히 시(詩)가 중요하다. 시인—특히 횔덜린—은 존재를 "명명"한다. 시적 언어는 도구적 언어와 다르다. 도구적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시적 언어는 세계를 열어젖힌다. 시작(Dichtung)은 존재의 원초적 언어이다. 하이데거의 후기 텍스트들은 그 자체로 "시적"이다. 학술적 논증보다 명상적 사유, 어원학적 탐구, 시 해석이 중심이 된다. 이 스타일 변화는 철학의 본성에 대한 그의 변화된 이해를 반영한다. 철학은 논증이 아니라 사유이며, 사유는 시작과 가깝다. ## 나치 논쟁 ### 사실과 해석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1933년 나치당 입당, 총장 취임 연설에서의 나치 지지, 유대인 동료들에 대한 차별적 조치, 히틀러 지지 발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논쟁은 해석에 관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은 일시적 "오류"였는가, 아니면 그의 철학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옹호자들—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오토 푀겔러—은 나치 가담이 철학적 "오류"이며, 철학 자체와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위르겐 하버마스, 에마뉘엘 레비나스, 빅토르 파리아스—은 나치즘과 하이데거 철학 사이에 내적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후 하이데거의 침묵이 논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하이데거는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1966년 《슈피겔》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행위를 설명했지만, 이것이 사과인지 변명인지는 논쟁적이다. ### 검은 노트 2014년 《검은 노트》(Schwarze Hefte)가 출간되면서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1931년부터 1970년대까지 작성된 이 개인 노트들에는 반유대주의적 발언들이 포함되어 있다. 《검은 노트》에서 하이데거는 유대인을 "세계 유대성"(Weltjudentum)이라는 개념으로 언급하며, 근대성의 "뿌리 없음"과 연결시킨다. 이것이 생물학적 반유대주의인지, 아니면 "형이상학적" 반유대주의인지는 논쟁적이다. 어느 쪽이든 반유대주의가 하이데거의 사유에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검은 노트》 출간 이후 하이데거 연구는 재평가를 요청받고 있다. 리처드 월린의 《폐허 속의 하이데거》(2023)는 《검은 노트》를 포함한 새로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이데거의 유산을 재검토한다. ### 철학과 정치 하이데거 논쟁은 철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 물음을 제기한다. 위대한 철학자가 정치적으로 그릇될 수 있는가? 정치적 그릇됨이 철학을 오염시키는가? 철학과 삶은 분리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양하다. 일부는 철학과 정치를 분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는 나치즘과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른 이들은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존재 사유 자체에 전체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현존재의 "결단성"이 파시즘적 결단과 구별되지 않는다. 중간적 입장도 있다. 톰 록모어는 하이데거의 나치즘이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것은 회피될 수 없고 하이데거 철학에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결정하는 지속적 과정의 일부로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 관찰자의 기록 하이데거를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후설]]과 하이데거의 관계가 스승-제자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후설]]은 하이데거를 발견하고 후계자로 키웠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을 비판했다. 헌정과 비판이 공존한다. [[후설]]의 장례식에 불참한 것은 이 관계의 파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존재와 시간》이 미완으로 남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계획된 3부 중 1부의 절반만 출간되었다. 존재의 의미를 시간에서 밝힌다는 기획은 완수되지 않았다. "전회"가 이 미완성의 결과인지, 아니면 새로운 통찰인지는 논쟁적이다. 셋째, 나치 가담과 철학의 관계가 지속적인 물음으로 남아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나치 가담은 이 유산에 지속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검은 노트》 출간 이후 이 물음은 더욱 첨예해졌다. 철학자의 삶과 철학을 어떻게 관계짓는지가 하이데거 연구의 핵심 문제로 남아 있다. 넷째,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비판자들에게까지 미쳤다는 점이 관찰된다. 사르트르, 레비나스, 데리다, 푸코—하이데거를 비판하거나 거리를 둔 철학자들도 그의 물음을 공유했다. 존재 물음, 형이상학 비판, 기술 비판—이것들은 20세기 후반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다섯째, 후기 하이데거의 스타일 변화가 주목된다. 《존재와 시간》의 체계적 분석에서 후기의 명상적, 시적 사유로의 이행. 이것이 철학의 심화인지 신비주의로의 퇴행인지는 해석자에 따라 다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존재와 존재자의 "존재론적 차이"는 정확히 무엇인가? "전회" 이전과 이후의 하이데거는 연속적인가 단절적인가? 나치즘과 하이데거 철학 사이에 내적 연관이 있는가?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은 현대 기술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가? 그리고 하이데거 이후의 현상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1927년 주저 - 기술에 대한 물음 - 후기 핵심 텍스트 - 숲길 - 후기 논문 모음 - 검은 노트 - 개인 노트, 논쟁의 중심 ### 핵심 개념 - 현존재 -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 - 세계-내-존재 - 현존재의 근본 구조 - 손안의 것 - 도구적 존재 방식 - 세인 - 비본래적 존재 방식 - 본래성 -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 - 죽음으로 향함 - 본래성의 조건 - 몰아세움 - 현대 기술의 본질 ### 후설 현상학과의 관계 - [[후설]] - 스승이자 비판 대상 - [[현상학적 환원]] - 하이데거가 비판한 방법 - [[초월론적 자아]] - 하이데거가 거부한 개념 - [[지향성]] - 세계-내-존재로 재해석 - [[시간 의식]] - 탈자적 시간성으로 전환 ### 관련 철학자 - 사르트르 - 실존주의적 수용 - 가다머 - 해석학적 계승 - 데리다 - 해체론적 전유 - 레비나스 - 윤리적 비판 - 아렌트 - 제자이자 연인 ### 철학적 맥락 - [[브렌타노]] - 간접적 영향 - 딜타이 - 해석학적 영향 - 니체 - 형이상학 비판의 선구자 - 횔덜린 - 시적 사유의 원천 ### 현대적 적용 - 해석적 현상학적 분석(IPA) - 연구방법론 - 기술철학 - 기술 비판의 원천 - 환경철학 - 거주 개념 - 정치철학 - 나치 논쟁의 맥락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02 1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