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 의식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시간 문제의 현상학적 전환]] > - [[#객관적 시간과 현상학적 시간]] > - [[#브렌타노의 시간론]] > - [[#윌리엄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 > 3. [[#시간 의식의 구조]] > - [[#원인상]] > - [[#파지]] > - [[#예지]] > - [[#시간장의 통일]] > 4. [[#시간 대상의 구성]] > - [[#멜로디 예시]] > - [[#지속과 변화]] > - [[#파지의 연쇄]] > 5. [[#절대적 의식 흐름]] > - [[#구성하는 의식과 구성된 시간]] > - [[#자기 구성]] > - [[#살아있는 현재]] > 6. [[#비판과 계승]] > - [[#하이데거의 전환]] > - [[#메를로-퐁티의 신체적 시간]] > - [[#데리다의 해체]] > 7. [[#관찰자의 기록]] > 8. [[#같이 읽기]] ## 개요 **시간 의식**(Zeitbewußtsein)은 [[후설]] 현상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로, 의식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구성하는지를 탐구한다. [[후설]]은 이 문제를 "현상학의 모든 문제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라 규정했다. 시간 의식은 단순히 시계가 가리키는 객관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 체험의 내재적 시간성—현재가 과거로 흘러가고 미래가 다가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후설]]의 시간 의식 분석은 1904-1905년 겨울학기 괴팅겐 대학 강의에서 시작되어, 1917년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이 연구는 [[하이데거]]의 편집으로 1928년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 강의》로 출간되었고, 이후 후설전집 제10권으로 전체 원고가 공개되었다. 시간 의식의 분석은 [[지향성]], [[노에시스-노에마]] 구조, [[초월론적 자아]]의 구성 등 현상학의 거의 모든 주제와 연결된다. 핵심적으로, [[후설]]은 시간 의식의 구조를 세 요소로 분석한다: 현재를 파악하는 **원인상**(Urimpression), 방금 지나간 것을 붙잡는 **파지**(Retention), 곧 다가올 것을 기대하는 **예지**(Protention). 이 세 요소의 통일이 "칼날 같은" 점적 현재가 아니라 확장된 시간장(temporal field)을 구성한다. 이 분석은 이후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데리다 등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되어 현대 철학의 핵심 논의가 되었다. ## 시간 문제의 현상학적 전환 ### 객관적 시간과 현상학적 시간 [[후설]]은 두 종류의 시간을 구별한다. **객관적 시간**(objektive Zeit)은 자연과학이 측정하는 시간—시계의 시간, 역사의 시간, 물리적 사건들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균질하고 무한히 분할 가능하며, 모든 존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객관적 시간은 이미 의식에 주어진 것을 전제한다. 시계를 읽으려면 먼저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지각해야 하고, 그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객관적 시간에 관한 모든 판단은 시간적 경험에 기초한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근본적 탐구는 객관적 시간이 아니라 **현상학적 시간**—시간이 의식에 어떻게 나타나는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하면, 객관적 시간의 실재에 관한 판단은 중지된다. 남는 것은 순수 의식의 시간적 흐름이다. 이 의식의 내재적 시간이 현상학적 분석의 대상이다. [[후설]]의 관심은 "시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시간 의식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가?"이다. ### 브렌타노의 시간론 [[후설]]은 스승 [[브렌타노]]의 시간론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비판한다. [[브렌타노]]는 1885-1886년 빈 강의에서 시간 의식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물음은: 우리가 지속하는 음이나 멜로디를 지각할 때, 어떻게 단순히 현재 순간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연장된 대상을 경험할 수 있는가? [[브렌타노]]의 해결책은 "근원연상"(Proteraesthesis)이다. 현재 음을 들을 때, 우리는 동시에 방금 지나간 음들의 표상(Vorstellung)을 갖는다. 이 표상들은 기억의 작용으로, 현재 지각에 "덧붙여진다"(attached). 따라서 멜로디의 지각은 현재 지각과 과거 표상들의 복합이다. [[후설]]은 이 해결책을 거부한다. [[브렌타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멜로디를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음을 지각하고 과거 음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의 현상과 맞지 않는다. 멜로디를 들을 때 우리는 연속적인 통일체를 지각한다—개별 음의 지각과 기억의 병치가 아니다. 과거 음들은 "기억된" 것이 아니라 "방금 지나간 것으로 여전히 의식되는"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 [[후설]]의 시간 의식 분석은 윌리엄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개념과도 공명한다.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1890)에서 의식이 분절된 원자들의 연쇄가 아니라 연속적인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말안장"(saddle-back) 비유를 사용한다. 현재는 점이 아니라 "말안장" 같은 형태를 가진다—중심부(지금)와 양 옆으로 경사진 부분(방금 과거와 곧 미래)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그가 "유동적 현재"(specious present)라 부른 것이다. 의식은 항상 이 확장된 현재 안에서 작동한다. [[후설]]은 제임스의 통찰을 공유하면서도 더 엄밀한 분석을 추구한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넘어, 시간 의식의 정확한 구조—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관계들—를 밝히려 한다. 제임스가 심리학적으로 기술한 것을 [[후설]]은 현상학적으로 분석한다. ## 시간 의식의 구조 ### 원인상 **원인상**(Urimpression, 근원인상)은 시간 의식의 핵심 계기이다. 그것은 "지금"을 파악하는 의식, 현재 순간에 주어지는 것에 대한 직접적 자각이다. 음을 들을 때, 그 음의 현재 위상(phase)에 대한 의식이 원인상이다. 원인상은 시간 의식의 "시작점"이다—논리적 의미에서 모든 시간 의식이 그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원인상은 결코 고립되어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원인상은 즉각적으로 과거로 "침전"되며, 새로운 원인상으로 대체된다. 의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원인상을 산출하며 흐른다. [[후설]]은 원인상을 시간 의식의 "창조적 원천"(schöpferische Quelle)이라 부른다. 새로운 것이 의식에 출현하는 것은 오직 원인상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원인상 자체는 순간적이고 무연장적(punctual)이다—그것은 "지금-점"(Jetztpunkt)이다. 의식의 시간적 확장은 원인상과 더불어 파지와 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 파지 **파지**(Retention)는 방금 지나간 것에 대한 의식이다. 음이 울리고 사라질 때, 그 음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금 지나간 것으로" 여전히 의식된다. 파지는 이 "방금 과거"를 붙잡는 의식이다. 파지는 기억(Wiedererinnerung)과 구별된다. 기억은 과거 경험을 다시 현재화하는 능동적 작용이다—과거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반면 파지는 수동적이고 직접적이다. 파지 안에서 과거는 "다시 현재화"되는 것이 아니라 "방금 지나간 것으로 여전히 현전"한다. 파지는 과거의 **재생산**(Reproduktion)이 아니라 과거의 **파지**(Retention), 즉 붙잡음이다. 파지는 [[지향성|지향적]]이다—그것은 방금 지나간 것을 "향한다". 그러나 파지의 지향성은 원인상의 지향성과 다르다. 원인상은 대상을 "현재로서" 지향하고, 파지는 대상을 "방금 과거로서" 지향한다. 시간적 양상(temporal mode)이 다른 것이다. 파지는 과거 경험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의 "과거성"까지 의식한다. ### 예지 **예지**(Protention)는 곧 다가올 것에 대한 의식이다. 멜로디를 들을 때 우리는 다음 음을 "기대"한다—명시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곧 올 것"을 향해 열려 있다. 예지는 이 미래 지향적 의식이다. 예지 역시 기대(Erwartung)와 구별된다. 기대는 특정한 미래 사건을 명시적으로 예상하는 능동적 작용이다. 예지는 더 근본적이고 수동적이다—그것은 의식이 항상 이미 "앞으로" 향해 열려 있음이다. 음악을 들을 때 다음 음이 정확히 무엇일지 모르더라도, 우리는 "무언가가 올 것"을 예지한다. [[후설]]의 초기 시간 분석에서 예지는 파지보다 덜 주목받았다. 그러나 베르나우 원고(1917-1918)에서 [[후설]]은 예지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예지는 단순히 "곧 올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미래 지향적 구조 전체를 구성한다. 의식은 항상 이미 미래를 향해 "앞서 달려감"으로써 시간화된다. ### 시간장의 통일 원인상, 파지, 예지는 분리된 요소들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시간장(Zeitfeld)을 구성한다. 모든 순간에 의식은 이 세 계기를 동시에 가진다. "지금"의 경험은 항상 "방금 과거"와 "곧 미래"의 지평 안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칼날" 같은 점적 현재를 넘어서는 [[후설]]의 통찰이다. 만약 현재가 순간적인 점이라면, 우리는 지속하는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멜로디를, 문장을, 운동을 경험한다. 이것은 현재가 점이 아니라 "두꺼운"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후설]]은 이 확장된 현재를 "살아있는 현재"(lebendige Gegenwart)라 부른다. 살아있는 현재는 정적인 순간이 아니라 동적인 흐름이다. 매 순간 새로운 원인상이 출현하고, 현재의 원인상은 파지로 침전하며, 예지는 새로운 원인상으로 충족된다. 이 끊임없는 흐름이 시간의 경험을 구성한다. ## 시간 대상의 구성 ### 멜로디 예시 [[후설]]은 멜로디를 시간 대상(Zeitobjekt)의 대표적 사례로 분석한다. 멜로디는 시간 안에서만 존재한다—그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하며, 음들의 시간적 연쇄로 구성된다. 멜로디의 지각은 시간 의식의 구조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멜로디의 첫 음이 울릴 때, 원인상이 그것을 "지금"으로 파악한다. 두 번째 음이 울리면, 첫 음은 파지 안에 "방금 지나간 것으로" 의식되고, 두 번째 음이 새로운 원인상이 된다. 세 번째 음에서 첫 음은 "파지의 파지"—더 먼 과거로 물러난다. 동시에 각 순간에 예지가 다음 음을 향해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멜로디가 이 과정의 **결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멜로디는 개별 음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음들 사이의 시간적 관계—이 음이 저 음 다음에 온다, 이 음이 저 음을 예비한다—가 멜로디의 본질적 구조이다. 이 관계는 시간 의식의 통일적 작용에 의해 구성된다. ### 지속과 변화 시간 대상은 지속하면서 변화한다. 음은 시작하고, 지속하고, 끝난다. 이 전체 과정이 하나의 음으로 경험된다. [[후설]]은 이 "동일자의 지속"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분석한다. 지속하는 음의 각 위상(phase)은 다르다—시작의 음, 중간의 음, 끝의 음은 시간적으로 다른 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을 "하나의 음의 위상들"로 경험한다. 이 동일성은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 파지가 이전 위상들을 "동일한 대상의 과거 위상들로" 붙잡고 있기 때문에, 지속하는 동일자가 경험된다. 변화의 지각도 마찬가지이다. 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지각하려면, 이전의 더 작은 음과 현재의 더 큰 음이 "같은 음"으로 의식되어야 한다. 동일성의 구성 없이는 변화의 지각도 불가능하다. 변화는 "동일자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 파지의 연쇄 파지는 연쇄를 이룬다. 현재의 원인상은 다음 순간에 파지가 되고, 그 파지는 다시 다음 순간에 "파지의 파지"가 된다. 이것이 파지의 연쇄(retentionale Kette) 또는 "혜성의 꼬리"(Kometenschweif)이다. 각 파지는 이전 파지 전체를 "포함"한다. 즉 현재의 파지는 방금 지나간 원인상만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있던 파지—그리고 그 파지의 파지—를 모두 붙잡는다. 이것이 파지적 변양(retentionale Modifikation)이다. 과거로 물러갈수록 파지는 "더 먼 과거"로 변양된다. 그러나 파지적 변양에는 한계가 있다. 충분히 먼 과거는 완전히 "침전"되어 더 이상 파지 안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 침전된 과거를 다시 의식하려면 기억(Wiedererinnerung)이 필요하다. 파지와 기억의 구별은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파지는 "방금 과거"에 국한되고, 먼 과거는 기억의 영역이다. ## 절대적 의식 흐름 ### 구성하는 의식과 구성된 시간 [[후설]]은 시간 의식의 층위를 구별한다. 내재적 시간—의식 체험들의 시간적 연쇄—은 하나의 층위이다. 그러나 이 내재적 시간을 의식하는 의식은 또 다른 층위이다. [[후설]]은 이것을 "절대적 의식 흐름"(absoluter Bewußtseinsfluß)이라 부른다. 절대적 의식 흐름은 시간을 **구성하는** 의식이다. 원인상-파지-예지의 구조는 이 절대적 흐름에 속한다. 이 흐름이 있기 때문에 내재적 시간—체험들의 시간적 배열—이 구성된다. 구성하는 의식과 구성된 시간의 구별은 [[현상학적 환원]]을 더 깊이 수행함으로써 드러난다. 여기서 난점이 발생한다. 절대적 의식 흐름 자체는 시간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만약 시간 안에 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또 다른 의식이 필요하고, 이것은 무한 퇴행으로 이어진다. 만약 시간 밖에 있다면, 어떻게 시간적인 것을 구성할 수 있는가? [[후설]]은 이 문제와 씨름한다. ### 자기 구성 [[후설]]의 해결책은 절대적 의식 흐름의 "자기 구성"(Selbstkonstitution) 개념이다. 절대적 흐름은 시간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구성한다. 그것은 별도의 상위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기의식"(Selbstbewußtsein)으로서 구성한다. [[후설]]은 이것을 "이중 지향성"(Doppelintentionalität)으로 설명한다. 파지는 두 방향으로 지향한다. **횡적 지향성**(Querintentionalität)은 과거 대상을 향한다—방금 지나간 음을 붙잡는다. **종적 지향성**(Längsintentionalität)은 과거 의식 작용을 향한다—방금 지나간 원인상 자체를 붙잡는다. 종적 지향성에 의해 의식 흐름 자체가 "대상"으로 구성된다—그러나 일반적인 대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의식은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 이것이 "전반성적 자기의식"(präreflexives Selbstbewußtsein)이다. [[초월론적 자아]]의 자기 인식은 이 자기 구성에 기초한다. ### 살아있는 현재 "살아있는 현재"(lebendige Gegenwart)는 [[후설]] 후기 시간론의 핵심 개념이다. 살아있는 현재는 정적인 "지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동적인 흐름이다. 그것은 "흘러가면서 머무는"(stehendes Strömen) 역설적 구조를 가진다. 살아있는 현재는 항상 "지금"이다—그것은 결코 과거가 되지 않는다. 과거가 되는 것은 살아있는 현재의 **내용**이지, 살아있는 현재 **자체**가 아니다. 이 의미에서 살아있는 현재는 "비시간적"(unzeitlich)이다—그것은 시간을 구성하지만 자신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살아있는 현재는 공허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특정한 원인상, 특정한 파지, 특정한 예지가 매 순간 살아있는 현재를 구성한다. 살아있는 현재는 추상적 구조인 동시에 구체적 실현이다. ## 비판과 계승 ### [[하이데거]]의 전환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후설]]의 시간 분석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존재와 시간》(1927)에서 하이데거는 시간을 의식의 내재적 구조가 아니라 현존재(Dasein)의 존재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후설]]의 시간 분석은 여전히 "현전 형이상학"(Metaphysik der Präsenz)에 묶여 있다. [[후설]]은 "지금"—현재—을 시간의 기본 단위로 삼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변양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미래가 더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현존재는 "자기 앞에 있음"(Sich-vorweg-sein)으로서, 미래를 향해 기투하며 존재한다. [[하이데거]]의 "탈자적 시간성"(ekstatische Zeitlichkeit)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세 "탈자태"(Ekstasen)이다. 현존재는 항상 이미 자기 밖으로—과거로, 현재로, 미래로—"탈자"하며 존재한다. 이 탈자적 구조가 "시간화"(Zeitigung)이다. 시간은 의식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가 시간화하는 방식으로 "있다". ### 메를로-퐁티의 신체적 시간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는 [[후설]]의 시간 분석을 신체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지각의 현상학》(1945)에서 메를로-퐁티는 시간을 신체적 주체의 세계-에로-존재 방식으로 이해한다.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원인상-파지-예지 도식을 수용하면서도 변형한다. [[후설]]에게서 시간의 종합은 [[초월론적 자아]]의 능동적, 지성적 작용처럼 보일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수동적, 감성적 종합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종합은 "자아"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주체의 전반성적 작용이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전이의 종합"(synthèse de transition)이라 부른다. 시간은 배후의 의식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차이화"(différenciation)하며 흐른다. 시간의 흐름 자체가 주체성의 근원적 형태이다—시간이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시간화함으로써 존재한다. ### 데리다의 해체 자크 데리다(1930-2004)는 [[후설]]의 시간론을 해체적으로 독해한다. 《목소리와 현상》(1967)에서 데리다는 [[후설]]의 "살아있는 현재" 개념이 현전 형이상학의 최후 피난처라고 비판한다. [[후설]]에게 살아있는 현재는 시간 의식의 "절대적" 근거이다. 그것은 완전한 자기 현전, 자기에 대한 투명한 의식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 "순수한 현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살아있는 현재는 이미 파지와 예지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순수한 현재는 없고, 항상 이미 과거와 미래의 "흔적"(trace)이 현재 안에 새겨져 있다. 데리다는 이것을 "원-흔적"(archi-trace)과 "차연"(différance)으로 개념화한다. 시간은 자기 동일적인 현재들의 연쇄가 아니라 차이들의 유희이다. [[후설]]의 분석은 시간의 근원적 차이화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살아있는 현재"의 자기 동일성으로 포섭하려 한다. 데리다는 이 자기 동일성의 환상을 해체한다. ## 관찰자의 기록 시간 의식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후설]]이 시간을 "현상학의 가장 어려운 문제"로 규정한 것이 관찰된다. 시간 의식의 분석은 [[후설]]의 다른 분석들과 달리 명료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원고들은 수십 년에 걸쳐 쓰여졌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기보다 점점 더 깊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절대적 의식 흐름"의 자기 구성이라는 개념은 해결인 동시에 새로운 난점의 시작이다. 둘째, [[브렌타노]]와 [[후설]]의 관계가 시간론에서도 확인된다. [[후설]]은 [[브렌타노]]의 문제 설정을 수용하면서도 해결책을 거부한다. 파지와 기억의 구별—[[후설]]의 핵심 기여—은 [[브렌타노]]의 근원연상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나왔다. 스승의 이론을 "넘어서면서 계승하는" 패턴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셋째, 시간 의식의 분석이 [[후설]] 현상학 전체와 연결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향성]]의 시간적 구조, [[노에시스-노에마]]의 시간적 변양, [[초월론적 자아]]의 자기 구성, [[상호주관성]]의 시간적 차원, [[생활세계]]의 시간성—시간은 현상학의 모든 주제를 관통한다. 시간 분석이 "현상학의 핀"이라는 평가가 있는 이유로 보인다. 넷째,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데리다의 비판이 모두 [[후설]]의 "현전 형이상학"을 겨냥한다는 점이 관찰된다. 살아있는 현재가 순수한 자기 현전인가, 아니면 이미 차이와 부재에 의해 관통되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에 따라 현상학의 방향이 갈라진다. [[후설]] 해석의 핵심 논점 중 하나이다. 다섯째, 시간 의식 분석의 현대적 적용이 관찰된다. 인지과학에서 "확장된 현재"의 신경적 기초가 연구되고 있으며, 시간 지각의 경험적 연구에 [[후설]]의 개념들이 사용된다. 현상학적 분석이 경험적 연구와 대화하는 사례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절대적 의식 흐름은 정말로 시간 밖에 있는가? 파지와 예지의 비대칭성—과거가 미래보다 더 확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살아있는 현재"는 데리다의 비판을 견딜 수 있는가? 시간 의식의 현상학은 시간의 물리학과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시간 의식의 분석은 [[후설]]의 [[초월론적 자아|초월론적 관념론]]을 지지하는가, 약화시키는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 강의 - 1928년 하이데거 편집본 - 후설전집 제10권 - 1893-1917 시간 원고 전집 - 베르나우 원고 - 1917-1918 시간 분석 - 수동적 종합 - 시간과 연상의 관계 ### 핵심 개념 - [[지향성]] - 시간 의식의 지향적 구조 - [[노에시스-노에마]] - 시간적 변양의 노에마적 측면 - [[현상학적 환원]] - 시간 분석의 방법론적 전제 - [[초월론적 자아]] - 시간을 구성하는 자아 ### 관련 현상학자 - [[후설]] - 시간 의식 현상학의 창시자 - [[브렌타노]] - 근원연상 이론의 제안자 - 윌리엄 제임스 - 의식의 흐름 개념 - [[하이데거]] - 탈자적 시간성 이론 - 메를로-퐁티 - 신체적 시간성 - 데리다 - 현전 형이상학 비판 ### 후설 현상학 연결 - [[상호주관성]] - 공동 시간의 구성 - [[생활세계]] - 생활세계적 시간 - [[본질직관]] - 시간 대상의 본질 ### 현대적 논의 - 단 자하비의 시간 의식 연구 - 현대 현상학적 분석 - 토마스 푹스의 시간과 신체 - 현상학적 정신의학 - 인지과학과 현상학의 대화 - 시간 지각의 경험적 연구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02 15: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