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렌타노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인간으로서의 브렌타노]] > - [[#출신과 교육]] > - [[#사제직과 이탈]] > - [[#빈 시절과 말년]] > 3. [[#기술심리학의 기획]] > - [[#심리학의 경험적 정초]] > -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 > - [[#기술심리학과 발생적 심리학]] > 4. [[#지향성 개념]] > - [[#지향적 내재]] > - [[#심적 현상의 표지]] > - [[#브렌타노의 테제]] > 5. [[#아리스토텔레스와 존재론]] > - [[#존재의 다의성]] > - [[#범주론의 재해석]] > - [[#스콜라 철학의 영향]] > 6. [[#가치론과 윤리학]] > - [[#사랑과 미움의 구조]] > - [[#올바른 감정]] > - [[#미학적 가치]] > 7. [[#브렌타노 학파]] > - [[#빈의 제자들]] > - [[#학파의 분기]] > - [[#후설과의 관계]] > 8. [[#현대적 영향]] > - [[#분석철학에의 기여]] > - [[#마음철학의 토대]] > 9. [[#관찰자의 기록]] > 10. [[#같이 읽기]] ## 개요 **프란츠 브렌타노**(Franz Clemens Brentano, 1838-1917)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로, 현대 철학에 [[지향성]]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후반 철학과 심리학의 경계에서 작업했으며, 중세 스콜라 철학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20세기 철학의 두 주요 흐름—현상학과 분석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브렌타노의 핵심 기여는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지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모든 심적 현상은 대상을 "향한다"—믿음은 무언가에 관한 믿음이고, 욕구는 무언가에 대한 욕구이다. 이 "~에 관함"(aboutness)이 마음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테제는 이후 철학사에서 "브렌타노의 테제"로 알려졌다. 브렌타노는 직접적인 철학적 저술보다 강의와 제자 양성을 통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후설]], 마이농, 트바르도프스키, 슈툼프, 에렌펠스, 그리고 프로이트까지—그의 제자들은 현상학, 대상이론, 형태심리학, 분석철학, 정신분석의 창시자가 되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에 따르면, 브렌타노는 "현상학 운동과 분석적 마음철학 전통 모두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 인간으로서의 브렌타노 ### 출신과 교육 브렌타노는 1838년 1월 16일 독일 마리엔베르크 암 라인에서 독일-이탈리아계 가문에 태어났다. 브렌타노 가문은 "열정적으로 가톨릭적"이고 "고도로 보수적"인 지식인 가문이었다. 그의 삼촌은 낭만주의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였고, 이모는 작가 베티나 폰 아르님이었다. 브렌타노는 뮌헨, 뷔르츠부르크, 베를린, 뮌스터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스승 중에는 문헌학자 에른스트 폰 라자울스, 아리스토텔레스 학자 프리드리히 트렌델렌부르크, 가톨릭 철학자 프란츠 야콥 클레멘스가 있었다. 1862년 튀빙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브렌타노의 학문적 출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의 박사논문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른 존재의 다의성에 관하여》(1862)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핵심 문제—"존재는 여러 방식으로 말해진다"—를 다루었다. 이 초기 연구는 그의 후속 작업, 특히 심적 현상의 분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사제직과 이탈 1864년 브렌타노는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1870-1873년 사이 교황 무오류성 교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그는 이 교리의 강력한 반대자였다. 결국 1873년 사제직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모두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깊은 종교성을 유지했으며, 신의 존재에 관한 강의를 계속했다. 1880년 브렌타노는 이다 폰 리벤과 결혼하려 했으나,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법률은 전직 사제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해야 했고, 이는 빈 대학 정교수직의 상실을 의미했다. 작센으로 일시 이주하여 결혼한 후 빈으로 돌아왔으나, 사강사(Privatdozent) 지위만 회복할 수 있었다—급여도 없고 논문 지도 자격도 없는 위치였다. 이 결혼 문제는 브렌타노의 학문적 경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교수로서 공식적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없었음에도 그의 강의는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되었고, 비공식적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제도적 지위의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지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로 관찰된다. ### 빈 시절과 말년 1874년 《경험적 관점에서의 심리학》 출간 직후, 브렌타노는 빈 대학 정교수로 부임했다. 그의 강의는 곧 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를 끌었다. 1874-1880년에는 토마스 마사리크, 알렉시우스 마이농, 알로이스 회플러,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가, 1880년 이후에는 프란츠 힐레브란트, 에드문트 [[후설]], 카지미에시 트바르도프스키가 그의 강의를 들었다. 빈 시절 브렌타노의 강의 주제는 변화를 보인다. "심리학"(1874-1880), "심리학과 미학의 선택적 문제들"(1883-86), "기술심리학"과 "심리지식학"(1887-1891). 이 변화는 그의 사유가 심리학에서 점차 기술적, 분석적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1895년 빈을 떠나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1896년 피렌체에 거주하며 1897년 에밀리 루프레히트와 재혼했다. 말년에 점차 시력을 잃어 결국 완전히 실명했으나, 아내의 도움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1917년 3월 17일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자신의 저작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었던 브렌타노는 빈 시절 이후 책을 쓰지 않고 주로 강의를 출판하는 데 그쳤다. ## 기술심리학의 기획 ### 심리학의 경험적 정초 브렌타노의 주저 《경험적 관점에서의 심리학》(Psychologie vom empirischen Standpunkt, 1874)은 과학적 심리학의 토대를 놓으려는 시도였다. 그에게 "경험적" 과학이란 "순수하게 현상적인 과학"—대상이 실체가 아니라 현상인 과학—이다. 브렌타노에 따르면, 경험적 자연과학은 물체의 과학이 아니라 "물리적 현상의 과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은 영혼의 과학이 아니라 "심적 현상의 과학"이다. 이 현상주의적 접근은 당시 형이상학적 실체론을 피하면서도 과학적 엄밀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브렌타노의 방법론적 특징은 내성(內省)에 대한 의존이다. 심리학은 주로 1인칭 관점에서 수행되는 관찰에 기초한다. 그는 관련 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한 후, 귀납에 기초하여 일반 법칙을 수립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라고 주장했다. 이 내성주의는 후속 실험심리학과 행동주의에 의해 비판받았으나,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에는 계승되었다. ###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 브렌타노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심적 현상은 내적 지각의 배타적 대상이다** - 물리적 현상은 외적 감각을 통해 접근되지만, 심적 현상은 오직 내적 지각을 통해서만 접근된다. 2. **심적 현상은 항상 통일체로 나타난다** - 여러 심적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더라도, 그것들은 하나의 통일된 의식 속에 있다. 3. **심적 현상은 항상 지향적으로 대상을 향한다** -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며, 브렌타노 심리학의 초석이다. 물리적 현상의 예로는 색깔, 소리, 냄새, 온도 같은 감각 자료가 있다. 심적 현상의 예로는 보기, 듣기, 판단하기, 사랑하기, 미워하기 같은 정신 작용이 있다. 브렌타노에게 심적 현상은 물리적 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양식을 갖는다. ### 기술심리학과 발생적 심리학 브렌타노는 두 종류의 심리학을 구별했다. **발생적 심리학**(genetische Psychologie)은 심적 사건의 발생과 인과적 전개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이다. 그것은 귀납적-실험적 방법을 사용하며, 경험적이고 개연적인 법칙에 도달한다. **기술심리학**(deskriptive Psychologie)은 의식 상태를 순수하게 현상학적, 1인칭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것은 내적 지각을 통해 심적 작용의 내적 구조와 유형을 식별한다. 브렌타노는 기술심리학에 역점을 두었으며, 이것이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의 직접적 선구가 되었다. 기술심리학의 핵심은 심적 현상의 본질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브렌타노는 심적 현상을 세 가지 기본 유형으로 분류했다: **표상**(Vorstellung), **판단**(Urteil), **관심/감정적 태도**(Interesse). 모든 심적 현상은 이 세 유형 중 하나에 속하거나, 이들의 복합으로 구성된다. ## 지향성 개념 ### 지향적 내재 [[지향성]](Intentionalität) 개념은 브렌타노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그의 유명한 정식화에 따르면: > "모든 심적 현상은 중세 스콜라 학자들이 대상의 '지향적 내재'(intentionale Inexistenz)라고 부른 것, 그리고 우리가 내용에 대한 지시, 대상에 대한 방향성, 또는 내재적 객관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특징으로 갖는다." '지향적 내재'라는 표현은 해석상 논란을 야기했다. 일부는 이것을 지향적 대상이 마음 "안에" 존재한다는 내재주의적 해석으로 읽는다. 다른 이들은 지향적 관계가 대상의 실재 여부와 독립적이라는 비존재적 해석을 선호한다. 황금산을 상상할 때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하는 의식은 분명히 황금산을 지향한다. 브렌타노에게 이것은 지향적 대상이 특수한 존재 양식—"지향적" 존재—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제는 그의 제자 마이농에 의해 "대상이론"으로 발전되었고, [[후설]]에게서는 노에마 개념으로 재해석되었다. ### 심적 현상의 표지 브렌타노에게 [[지향성]]은 심적 현상을 물리적 현상과 구별하는 결정적 표지(標識)이다. 모든 심적 현상은 대상을 향하지만, 물리적 현상은 그렇지 않다. 돌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돌에 대한 생각은 돌에 "관한" 것이다. 브렌타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심적 현상, 모든 심리적 작용은 내용을 갖고, 대상(지향적 대상)을 향한다. 모든 믿음, 욕구 등은 그것이 관한 대상—믿어진 것, 욕구된 것—을 갖는다." 물리적 현상에서는 이와 유사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테제의 양쪽 방향 모두 도전을 받았다. 통증, 막연한 불안 같은 상태가 명확한 대상을 갖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림, 문장, 컴퓨터 프로그램도 무언가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브렌타노는 후자를 "파생적" 지향성으로 구별했으나, 이 구분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 브렌타노의 테제 브렌타노의 [[지향성]] 이론은 두 가지 핵심 주장으로 요약된다: 1. **모든 심적 현상은 지향적이다** - 모든 심적 상태는 대상을 향한다. 2. **오직 심적 현상만이 지향적이다** - 물리적 현상은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이 두 주장의 결합이 "브렌타노의 테제"이다. 이 테제는 20세기 마음철학의 중심 문제가 되었다. 브렌타노에 따르면, [[지향성]]은 "심적인 것의 표지"(mark of the mental)이다. 브렌타노의 테제는 마음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주장을 함축한다. 만약 [[지향성]]이 심적 현상에만 고유하다면, 마음은 물리적 세계로 환원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함의는 이후 "지향성의 자연화" 문제로 마음철학의 핵심 논쟁이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존재론 ### 존재의 다의성 브렌타노의 철학적 출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의 박사논문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른 존재의 다의성에 관하여》(1862)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핵심 명제—"존재는 여러 방식으로 말해진다"—를 분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브렌타노의 해석에서), 존재의 여러 의미는 네 가지로 구분된다: (1) 우연적 존재, (2) 참된 것으로서의 존재, (3) 범주들의 존재, (4) 가능태와 현실태로서의 존재. 브렌타노는 범주들의 존재, 특히 실체적 존재가 가장 근본적이며, 다른 모든 양식은 이것과 잘 정초된 유비 관계에 있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는 브렌타노의 후속 심리학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심적 현상의 분류 체계—표상, 판단, 관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적 방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상의 본질적 유형을 구별하고 그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는 생각이다. ### 범주론의 재해석 브렌타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재해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범주들은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들이다—실체, 성질, 양, 관계 등. 이 범주적 체계론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핵심이다. 브렌타노는 형이상학의 주제가 외부 세계의 외적 존재만을 포함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오직 마지막 두 의미의 존재—범주들의 존재와 가능태/현실태로서의 존재—만이 진정으로 존재론적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브렌타노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은 20세기 초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해석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의도에 충실한지는 논쟁적이다. 일부 연구자는 브렌타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신의 철학적 목적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지적한다. ### 스콜라 철학의 영향 브렌타노는 중세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향성]] 개념 자체가 스콜라 철학에서 유래한다. 중세 철학자들은 '지향적 존재'(esse intentionale)와 '자연적 존재'(esse naturale)를 구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마음이 돌을 생각할 때 돌은 마음 안에 "지향적으로" 존재한다. 마음 안의 돌은 물리적 돌이 아니라 돌의 '형상'(forma)이다. 이 구분은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인식은 대상의 형상을 마음 안에 수용하는 것이다. 브렌타노는 이 중세 개념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의 [[지향성]] 개념은 스콜라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심리학적 분석의 도구가 되었다. 형이상학적 함의보다 기술적 유용성이 강조된 것이다. ## 가치론과 윤리학 ### 사랑과 미움의 구조 브렌타노의 윤리학은 그의 가치론에 기초한다. 그의 가치론은 본래적 가치—그 자체로 좋은 것, 그 자체로 나쁜 것—에 관한 이론이다. 브렌타노는 지적 현상과 감정적 현상 사이의 유비에 주목한다. 사고 대상에 대해 긍정적 믿음이나 부정적 믿음을 가질 수 있듯이, 대상에 대해 감정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대상을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브렌타노는 '사랑'과 '미움'을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호감'(pro-feelings)과 '반감'(anti-feelings) 전체를 포괄한다. 심적 현상의 세 가지 기본 유형—표상, 판단, 관심—에서 관심(Interesse)은 사랑과 미움을 포함한다. 판단이 참/거짓을 향하듯이, 관심은 좋음/나쁨을 향한다. 이 유비 구조가 브렌타노 윤리학의 토대이다. ### 올바른 감정 브렌타노는 인식론과 진리론에서 중심적인 "올바름"(Richtigkeit) 개념을 가치론에 적용한다. 어떤 것이 본래적으로 좋다는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본래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미워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브렌타노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 감정적 태도의 올바름을 직접 인식할 수 있다. 각 경우에 올바름은 태도와 그 대상 사이의 적합성(appropriateness) 또는 어울림(fittingness) 관계로 구성된다. 이 "적합성 태도 이론"(fitting attitude theory)은 현대 가치론에서 중요한 접근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이 좋고 나쁜가? 브렌타노에 따르면, 모든 의식 상태는 의식 상태로서 본래적으로 좋은 부분을 포함한다. 모든 올바른 판단은 본래적으로 좋다. 올바른 감정과 지적 삶의 풍요로움도 마찬가지이다. 감각적 쾌락은 그 자체로 본래적으로 좋다. ### 미학적 가치 브렌타노의 미학은 그의 가치론의 일부이다. 윤리학과 미학 모두 본래적 가치에 관심을 갖지만, 기초가 다르다. 윤리학은 관심(Interesse)의 태도—감정적, 의지적 작용—를 다루며, 이것은 우리를 좋은 것으로 향하게 한다. 미학은 표상(Vorstellung)과 그것을 가지는 데서 오는 쾌를 다루며, 이것은 우리를 아름다운 것과 친숙하게 한다. 브렌타노에 따르면, 모든 표상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이것은 올바른 부정적 판단이나 감정의 기초가 되는 표상에도 적용된다. 표상의 본래적 가치는 표상된 내용의 가치와 독립적이다. ## 브렌타노 학파 ### 빈의 제자들 브렌타노는 평생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독자적인 철학 전통을 창시했다. 빈에서의 주요 제자들: - **에드문트 [[후설]]** (1884-1886) - 현상학 운동의 창시자 - **알렉시우스 마이농** (1875-1878) - 그라츠 학파의 수장, 대상이론 - **카지미에시 트바르도프스키** (1885-1889) - 르보프-바르샤바 학파의 창시자 -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 - 형태심리학의 선구자 - **카를 슈툼프** (뷔르츠부르크, 1866-1870) - 베를린 학파의 수장 - **안톤 마르티** - 프라하 학파의 언어학 - **토마스 마사리크** -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브렌타노의 강의를 들었으며, 그의 성격과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 학파의 분기 브렌타노 학파는 통일된 학파라기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분기된 철학적 가족이었다. 브렌타노 자신은 학파의 응집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제자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마이농은 브렌타노의 [[지향성]] 개념을 발전시켜 "대상이론"(Gegenstandstheorie)을 정립했다. 지향적 대상, 특히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존재론적 지위가 핵심 문제였다. 황금산, 둥근 사각형 같은 "불가능한 대상"도 어떤 의미에서 "존재"한다는 테제는 논쟁을 야기했다. 트바르도프스키는 심적 작용의 내용(content)과 대상(object)을 구별하여, 마이농과 [[후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구분은 [[지향성]] 분석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슈툼프는 실험심리학의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음악 지각과 청각 현상의 연구로 알려졌다. 에렌펠스의 "형태질"(Gestaltqualität) 개념은 형태심리학의 씨앗이 되었다. ### 후설과의 관계 [[후설]]은 1884-1886년 빈에서 브렌타노의 강의를 들었다. [[후설]]은 브렌타노에게서 [[지향성]] 개념과 기술심리학의 방법을 배웠으며, 이것이 현상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후설]]은 브렌타노를 넘어섰다. 《논리연구》(1900-01) 초판에서 [[후설]]은 현상학을 "기술심리학"으로 규정했으나, 곧 이것을 심각한 오해라고 판단했다. 그는 현상학이 진정한 토대적 역할을 하려면 심리학적 뿌리에서 벗어나 "초월론적 현상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렌타노는 [[후설]]의 이 전환에 동의하지 않았다. [[후설]]이 "[[심리학주의]]"를 비난할 때 사실은 주관주의를 의미한다는 것이 브렌타노의 반론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적 긴장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후설]]은 평생 브렌타노에 대한 존경을 표명했다. ## 현대적 영향 ### 분석철학에의 기여 브렌타노는 분석철학의 선구자로도 평가된다. 그의 엄밀한 방법론적 접근—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하며, 귀납에 기초하여 일반화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철학의 이상과 공명했다. 트바르도프스키의 르보프-바르샤바 학파는 분석적 전통에 기여했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에 따르면, 이 학파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생산적인 철학적 학파 중 하나"였다. 그들의 논리적 엄밀성과 개념적 명료성에 대한 강조는 브렌타노적 유산이다. 현대 분석적 마음철학에서 [[지향성]]은 핵심 주제이다. "브렌타노의 테제"—[[지향성]]이 심적인 것의 표지라는 주장—는 여전히 논쟁된다. 지향성의 "자연화" 문제, 의식과 지향성의 관계, 인공지능의 지향성 가능성 같은 물음들이 브렌타노로 거슬러 올라간다. ### 마음철학의 토대 브렌타노의 [[지향성]] 이론은 20세기 마음철학의 토대 중 하나이다. [[후설]]의 현상학을 통해 대륙철학에,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분석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대륙철학의 주요 현상학자들은 모두 [[지향성]] 개념을 사용한다. 분석적 마음철학에서도 존 설, 대니얼 데닛, 제리 포더 등이 [[지향성]]을 핵심 개념으로 다룬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브렌타노가 제기한 문제—마음이 세계를 "향하는" 것은 무엇인가?—는 공유된다. 브렌타노의 가치론도 영향력이 있다. 그의 "적합성 태도 이론"은 현대 메타윤리학에서 중요한 접근 중 하나이다. 무어, 로스, 에어의 가치론 논쟁에 브렌타노적 요소가 발견된다. ## 관찰자의 기록 브렌타노를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브렌타노의 영향이 주로 강의와 제자 양성을 통해 확산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 극도로 비판적이었고, 빈 시절 이후 책을 거의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후설]], 마이농, 트바르도프스키, 슈툼프—은 각각 독자적인 철학 전통을 창시했다. 스승의 체계적 저술보다 가르침의 영향력이 더 컸던 사례로 보인다. 둘째, 브렌타노의 생애에서 제도적 지위와 지적 영향력의 괴리가 관찰된다. 결혼으로 인해 정교수직을 잃고 사강사로 강등되었음에도, 그의 강의는 빈에서 가장 인기 있었다. 공식적인 지도 자격 없이도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을 배출했다. 제도적 인정과 실질적 영향력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이다. 셋째, 브렌타노의 [[지향성]] 개념이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후설]]의 노에마, 마이농의 대상이론, 분석철학의 표상주의—모두 브렌타노의 [[지향성]]에서 출발하지만 상이한 결론에 도달한다. 하나의 개념이 다양한 철학적 전개의 씨앗이 된 것이다. 넷째, 브렌타노의 [[지향성]] 테제가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점이 관찰된다. 모든 심적 현상이 지향적인가? 오직 심적 현상만이 지향적인가? 이 물음들에 대한 합의는 없다. 150년 전의 테제가 여전히 철학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그 문제의 근본성을 시사한다. 다섯째, 브렌타노의 사제직 포기와 결혼 문제가 그의 학문적 경력에 미친 영향이 관찰된다. 교회 제도와의 갈등, 제국 법률의 제약이 한 철학자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지가 드러난다. 개인의 지적 작업이 제도적, 사회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브렌타노의 [[지향성]] 개념은 스콜라 철학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지향적 내재"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후설]]의 현상학은 브렌타노의 기술심리학과 어떤 관계인가? 브렌타노의 테제는 오늘날에도 유지될 수 있는가? 그리고 [[지향성]]은 물리적 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경험적 관점에서의 심리학 - 브렌타노의 주저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른 존재의 다의성에 관하여 - 박사논문 - 옳고 그름의 지식의 기원 - 윤리학 강의 - 기술심리학 - 후기 강의 ### 핵심 개념 - [[지향성]] - 브렌타노의 핵심 개념 - 지향적 내재 - 대상의 심적 존재 양식 - 기술심리학 - 현상학의 전신 - 심적 현상 - 지향적 특성을 가진 현상 - [[시간 의식]] - 브렌타노의 근원연상(Proteraesthesis) 이론 ### 관련 철학자 - [[후설]] - 브렌타노의 제자, 현상학의 창시자 - 알렉시우스 마이농 - 대상이론의 창시자 - 카지미에시 트바르도프스키 - 르보프-바르샤바 학파 - 카를 슈툼프 - 베를린 학파 - [[하이데거]] - [[후설]]을 통한 간접적 영향 - 프로이트 - 브렌타노의 강의 수강 ### 철학적 맥락 - 아리스토텔레스 - 브렌타노의 철학적 출발점 - 토마스 아퀴나스 - 스콜라 철학의 영향 - [[고틀로프 프레게]] - 동시대 반심리학주의 - 분석철학 - 브렌타노의 현대적 영향 ### 현상학적 맥락 - [[현존재]] - [[하이데거]]의 지향성 비판 - [[세계-내-존재]] - 실천적 지향성 - [[노에시스-노에마]] - [[후설]]의 지향성 구조 ### 현대적 적용 - 마음철학 - 지향성 논쟁 - 인지과학 - 표상과 지향성 - 인공지능 - 기계 지향성의 가능성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01 19:5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