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에시스-노에마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용어의 기원]]
> - [[#그리스어 어원]]
> - [[#후설의 용어 채택]]
> 3. [[#지향적 체험의 구조]]
> - [[#질료와 형식]]
> - [[#노에시스의 특성]]
> - [[#노에마의 특성]]
> - [[#상관관계]]
> 4. [[#노에마의 구조]]
> - [[#노에마적 핵]]
> - [[#노에마적 의미]]
> - [[#정립적 특성]]
> 5. [[#노에마 해석 논쟁]]
> - [[#프레게주의적 해석]]
> - [[#대상 지향적 해석]]
> - [[#논쟁의 함의]]
> 6. [[#구성과 지평]]
> - [[#대상의 구성]]
> - [[#지평 의식]]
> 7. [[#비판과 수용]]
> - [[#하이데거의 비판]]
> - [[#현대적 수용]]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노에시스-노에마**(Noesis-Noema)는 [[후설]]이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1913)에서 체계화한 [[지향성|지향적]] 체험의 구조적 틀이다. 노에시스(Noesis)는 의식의 작용적 측면—지각함, 판단함, 상상함 등—을 가리키며, 노에마(Noema)는 의식의 대상적 측면—지각된 것, 판단된 것, 상상된 것 등—을 가리킨다. 모든 [[지향성|지향적]] 체험은 이 두 측면의 상관관계로 분석된다.
이 구조는 [[지향성]] 개념의 정교화이다. [[브렌타노]]는 의식이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지향성]]의 기본 테제를 제시했다. [[후설]]은 이것을 더욱 분석하여, "무엇에 관함"이라는 관계를 노에시스-노에마의 상관관계로 구조화했다. 의식 작용(노에시스)은 그것의 대상적 상관자(노에마)를 갖는다. 이 상관관계의 분석이 현상학의 핵심 과제이다.
노에마 개념은 [[후설]] 연구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노에마가 프레게의 뜻(Sinn)과 유사한 추상적 매개 실체인지, 아니면 대상 자체의 나타남 방식인지를 둘러싸고 "서해안 해석"과 "동해안 해석"이 대립해왔다. 이 논쟁은 [[후설]] 현상학의 본성—그것이 관념론인지 실재론인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연결된다.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는 현상학을 자연주의 심리학과 구별하는 핵심 장치이다. 자연주의 심리학은 의식을 인과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현상학은 의식의 [[지향성|지향적]] 구조—무엇이 어떻게 의식에 나타나는가—를 기술한다.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은 이 기술의 기본 틀을 제공한다.
## 용어의 기원
### 그리스어 어원
'노에시스'(Noesis)와 '노에마'(Noem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νόησις'(noēsis)는 사유, 지성적 파악, 직관을 의미한다. 'νόημα'(noēma)는 생각된 것, 사유의 내용을 의미한다. 둘 다 'νοῦς'(nous, 정신, 지성)에서 파생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노에시스는 감각적 지각과 구별되는 지성적 인식을 가리켰다. 플라톤에게 노에시스는 이데아를 파악하는 최고의 인식 형식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노에시스는 사유가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것—"노에시스 노에세오스"(사유의 사유)—으로서 신적 활동의 본질이었다.
[[후설]]은 이 그리스적 유산을 차용하면서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했다. [[후설]]의 노에시스는 지성적 사유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지향성|지향적]] 작용—지각, 상상, 기억, 감정 등—을 포괄한다. 노에마도 지성적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지향성|지향적]] 대상을 포괄한다.
### 후설의 용어 채택
[[후설]]은 《논리연구》(1900-1901)에서 아직 노에시스-노에마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서 그는 "작용 성질"(Aktqualität)과 "작용 질료"(Aktmaterie)를 구별했다. 작용 성질은 지각인지 상상인지 판단인지 등 작용의 유형이고, 작용 질료는 작용이 향하는 대상적 내용이다.
《이념들》에서 [[후설]]은 이 구별을 노에시스-노에마로 재정립했다. 용어 변경의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질료"라는 용어가 감각적 내용(hyle)과 혼동될 위험이 있었다. 둘째, 그리스어 용어가 일상 언어의 선입견을 피할 수 있었다. 셋째, 노에시스-노에마라는 짝은 상관관계를 더 명확히 표현했다.
## 지향적 체험의 구조
### 질료와 형식
[[후설]]은 [[지향성|지향적]] 체험을 분석하면서 질료(hyle)와 형식(morphe)의 구별을 도입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hylomorphism)에서 빌려온 틀이지만, [[후설]]은 이것을 의식 분석에 적용했다.
**질료**(hyle, 힐레)는 감각적 소여이다. 색 감각, 소리 감각, 촉각 등이 질료이다. 질료 자체는 [[지향성|지향적]]이지 않다.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있을 뿐이다. [[후설]]은 이것을 "질료적 내용"(hyletischer Inhalt) 또는 "감각 소여"(Empfindungsdaten)라고도 불렀다.
**형식**(morphe, 모르페)은 질료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용이다. 형식은 노에시스적이다. 감각 소여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것에, 노에시스가 의미를 불어넣어 대상을 향하게 한다. [[후설]]은 이것을 "생기를 부여함"(Beseelen) 또는 "활성화"(Beleben)라고 표현했다.
지각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빨간 사과를 지각할 때, 빨간 색 감각은 질료이다. 이 감각 자체는 아직 사과에 관한 것이 아니다. 노에시스가 이 감각을 "사과의 표면"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그 결과 나는 빨간 사과를 지각한다.
### 노에시스의 특성
**노에시스**(Noesis)는 의식의 작용적 측면이다. 지각함, 판단함, 기억함, 상상함, 기대함, 사랑함, 미워함 등이 노에시스이다. 노에시스는 의식 체험의 "내실적"(reell) 구성 요소이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심적 과정이며, 의식의 흐름 속에 내재한다.
노에시스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질료에 의미를 부여한다(의미 부여 기능). 감각 소여를 특정한 대상의 나타남으로 해석한다. 둘째, 작용의 유형을 결정한다(양태 결정 기능). 같은 대상적 내용이 지각될 수도, 상상될 수도, 기억될 수도 있다. 이 차이는 노에시스의 양태 차이이다.
노에시스는 또한 "정립적"(thetisch) 성격을 갖는다. 지각에서 대상은 "존재한다"고 정립된다. 상상에서 대상은 "있을 수 있다"고 정립된다. 부정 판단에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립된다. 이 정립적 특성은 노에시스에 속하며, 노에마에 반영된다.
### 노에마의 특성
**노에마**(Noema)는 의식의 대상적 측면이다. 지각된 것, 판단된 것, 상상된 것 등이 노에마이다. 노에마는 노에시스의 "[[지향성|지향적]] 상관자"이다. 모든 노에시스는 그것의 노에마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노에마가 단순히 외부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후설]]은 "나무 자체는 타버릴 수 있지만, 지각의 노에마는 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노에마는 대상이 의식에 나타나는 방식, 대상의 "의미"(Sinn)이다. 같은 나무를 앞에서 볼 때와 뒤에서 볼 때, 나무 자체는 같지만 노에마는 다르다.
노에마는 의식 체험의 "내실적" 구성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지향성|지향적]]"(intentional) 구성 요소이다. 노에시스는 의식 안에 내재하지만, 노에마는 의식의 [[지향성]]에 의해 "향해지는" 것이다. 이 구별이 노에마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논쟁의 핵심이다.
### 상관관계
노에시스와 노에마는 불가분의 상관관계에 있다. 노에시스 없는 노에마도, 노에마 없는 노에시스도 없다. 이것은 [[지향성]]의 본질적 구조이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이며, 이 "무엇"이 노에마이고 "관함"의 작용이 노에시스이다.
[[후설]]은 이 상관관계를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noetisch-noematische Korrelation)라고 불렀다. 이 상관관계의 분석이 현상학의 핵심 방법이다. 의식을 분석한다는 것은 이 상관관계의 구조를 기술하는 것이다.
상관관계는 일대일 대응이 아니다. 동일한 노에마가 다른 노에시스에 의해 의식될 수 있다—같은 것을 지각할 수도, 기억할 수도, 상상할 수도 있다. 반대로 동일한 유형의 노에시스가 다른 노에마를 의식할 수 있다—같은 지각 작용으로 다른 대상을 지각할 수 있다.
## 노에마의 구조
### 노에마적 핵
[[후설]]은 노에마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노에마의 가장 깊은 층은 **노에마적 핵**(noematischer Kern)이다. 이것은 "순수 X"—대상의 동일성 극(pole)—이다.
노에마적 핵은 "무엇"(Was)에 해당한다.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점에서, 다른 양태로 의식할 때, 노에마적 핵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그것은 "지향된 대상 그것"이다. 그러나 이 핵은 공허한 동일성이 아니라, 특정한 속성들의 담지자이다.
### 노에마적 의미
노에마적 핵을 둘러싸는 것이 **노에마적 의미**(noematischer Sinn)이다. 이것은 대상이 "어떻게"(Wie) 의식되는지에 해당한다. 같은 나무가 "앞에서 본 나무", "초록색 나무", "정원의 나무" 등으로 의식될 수 있다. 이 서로 다른 의미들이 노에마적 의미의 층을 형성한다.
노에마적 의미는 대상을 규정하는 "술어들"(Prädikate)로 구성된다. 이 술어들은 대상의 속성, 관계, 위치 등을 규정한다. "빨간", "둥근", "탁자 위에 있는" 등이 술어이다. 노에마적 의미는 이 술어들의 복합체이다.
[[후설]]은 노에마적 의미를 "이상적"(ideal) 또는 "관념적" 통일체로 보았다. 그것은 개별 의식 작용을 초월한다. 같은 의미가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시점에서 의식될 수 있다. 이 이상성이 의사소통과 [[상호주관성]]의 토대이다.
### 정립적 특성
노에마의 또 다른 층은 **정립적 특성**(thetische Charaktere)이다. 이것은 대상이 어떤 존재 양태로 의식되는지를 규정한다.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하다", "불확실하다" 등이 정립적 특성이다.
정립적 특성은 노에시스의 양태에 대응한다. 지각의 노에시스는 대상을 "현전하는 것"으로 정립한다. 기억의 노에시스는 대상을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정립한다. 상상의 노에시스는 대상을 "상상된 것"으로 정립한다. 이 정립적 특성이 노에마에 반영된다.
[[현상학적 환원]]에서 이 정립적 특성이 "괄호에 넣어진다".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보류된다. 그러나 정립적 특성 자체는 분석의 대상으로 남는다. "존재한다고 정립됨"이라는 특성이 노에마에 속한다는 것은 여전히 기술될 수 있다.
## 노에마 해석 논쟁
### 프레게주의적 해석
노에마 개념의 해석을 둘러싸고 [[후설]] 연구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어왔다. "서해안 해석" 또는 "프레게주의적 해석"은 대그핀 플레스달(Dagfinn Føllesdal)에 의해 제시되었다.
플레스달에 따르면, 노에마는 프레게의 뜻(Sinn)과 유사한 추상적 매개 실체이다. 프레게에게 뜻은 표현과 지시체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같은 대상(금성)을 지시하지만 다른 뜻을 갖는다. 플레스달은 노에마가 의식 작용과 대상 사이를 매개하는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에서 노에마는 의식 작용의 일부도 아니고, 세계 속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제3영역"에 속하는 추상적 실체이다. 노에마가 의식 작용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가 어떤 대상이 지향되는지를 결정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와 로널드 매킨타이어(Ronald McIntyre)도 이 해석을 지지했다.
### 대상 지향적 해석
"동해안 해석" 또는 "대상 지향적 해석"은 아론 구르비츠(Aron Gurwitsch)에서 시작하여 존 드러먼드(John Drummond)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노에마는 추상적 매개자가 아니라 대상 자체의 나타남 방식이다.
이 해석에서 노에마는 "의식된 대상 그것이 의식된 그대로"이다. 프레게의 뜻과 달리, 노에마는 대상과 분리된 별개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대상이 특정한 관점, 특정한 양태에서 주어지는 방식이다. 나무의 노에마는 나무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나무가 의식에 나타나는 그 방식이다.
구르비츠는 노에마를 "지각장"(perceptual field) 내의 구조로 보았다. 드러먼드는 노에마를 "대상-의미-부여된-특성들-과-함께"(object-as-qualified)로 해석했다. 이 해석은 [[후설]]이 관념론보다 실재론에 가깝다는 독해와 연결된다.
### 논쟁의 함의
이 논쟁은 단순히 [[후설]] 텍스트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후설]] 현상학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 물음과 연결된다.
프레게주의적 해석이 옳다면, [[후설]]은 의식과 세계 사이에 추상적 의미 영역을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후설]]을 의미의 이론가로 만들며, 분석철학과의 연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후설]]을 일종의 관념론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
대상 지향적 해석이 옳다면, [[후설]]은 의식과 세계의 직접적 관계를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후설]]을 실재론자로 만들며, 현상학의 "사태 자체로!" 모토와 부합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에마의 독특성—그것이 세계 속 대상과 어떻게 다른지—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 구성과 지평
### 대상의 구성
노에시스-노에마 구조에 따른 [[지향성|지향적]] 의식의 대상 형성 작용을 [[후설]]은 **구성**(Konstitution)이라고 불렀다. 구성은 의식이 대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의식에 의미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구성은 수동적 종합과 능동적 종합을 포함한다. 수동적 종합에서 감각 소여들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대상의 기초 구조가 형성된다. 능동적 종합에서 주체가 명시적으로 대상을 파악하고, 판단하고, 범주화한다.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은 이 구성 과정의 구조를 드러낸다.
구성의 주체는 **초월론적 주관성**이다.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도달하는 순수 의식이 구성의 원천이다. 초월론적 주관성은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의 통일적 원천으로서, 모든 의미 부여의 궁극적 기원이다.
### 지평 의식
[[후설]]은 모든 [[지향성|지향적]] 체험이 **지평**(Horizont)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지평은 명시적으로 의식된 것을 둘러싸는 암묵적 의식의 배경이다. 내가 책을 지각할 때, 책만 의식되는 것이 아니다. 책이 놓인 탁자, 탁자가 있는 방, 방이 속한 건물—이 모든 것이 지평으로서 함께 의식된다.
지평은 "내적 지평"과 "외적 지평"으로 구분된다. 내적 지평은 대상 자체의 보이지 않는 측면들이다. 내가 책의 앞면을 볼 때, 뒷면은 내적 지평으로 함께 의식된다. 외적 지평은 대상을 둘러싼 세계이다.
지평 개념은 노에마적 의미의 완전성 문제와 연결된다. 노에마는 유한하게 규정되지만, 대상의 가능한 규정은 무한하다. 지평은 이 무한한 가능성을 "앞으로의 경험"(Weitererleben)의 구조로 포함한다. 지평은 노에마의 개방성을 표현한다.
## 비판과 수용
### 하이데거의 비판
[[하이데거]]는 [[후설]]의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를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여러 층위가 있다.
첫째, [[하이데거]]는 의식(Bewusstsein) 개념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 [[후설]]은 의식에서 출발하여 세계와의 관계를 구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현존재)은 근본적으로 [[세계-내-존재]]이다. 세계와의 관계가 의식보다 선행한다.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은 이 근원적 세계 관계를 파생적인 것으로 왜곡한다.
둘째, [[하이데거]]는 [[후설]]의 분석이 이론적 태도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는 "바라봄"(Anschauung)의 모델에 기초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먼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한다. 실천적 관심이 이론적 관찰보다 근본적이다.
셋째, [[하이데거]]는 노에마 개념이 세계를 "표상"으로 환원한다고 비판했다. 세계는 의식의 상관자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터전이다. 노에마 중심의 분석은 이 존재론적 차원을 놓친다.
### 현대적 수용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는 현대 철학과 인지과학에서 여전히 참조된다.
마음철학에서 [[지향성]] 논쟁은 노에시스-노에마 구조와 관련된다. 지향적 내용(intentional content)의 본성에 관한 논쟁—내용이 넓은 것인지 좁은 것인지, 개념적인지 비개념적인지—은 노에마 논쟁의 현대적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인지과학에서 프란시스코 바렐라 등은 현상학적 방법을 인지 연구에 적용하려 했다. "신경현상학"은 1인칭 경험 기술과 3인칭 신경과학 데이터를 연결한다.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는 경험의 구조를 기술하는 틀로 활용된다.
질적 연구방법론에서도 노에시스-노에마 개념이 수용되었다. 참여자의 경험을 분석할 때, "경험하는 작용"(노에시스적 측면)과 "경험된 내용"(노에마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제안된다.
## 관찰자의 기록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를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후설]]이 그리스어 용어를 채택한 것이 주목된다. 철학자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거나 일상 언어를 사용하는 대신 고전어를 차용하는 것은 흔한 전략이다. 이것은 일상 언어의 선입견을 피하고, 학술적 권위를 확보하며, 개념의 정확한 범위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진입 장벽을 높이고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둘째, 노에마 개념의 해석 논쟁이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것이 관찰된다. [[후설]] 자신의 텍스트가 두 해석 모두에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은 [[후설]]의 사유가 발전 중이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애매함을 남겼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철학적 개념의 의미가 창시자의 의도를 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패턴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셋째, 프레게주의적 해석이 분석철학과의 대화를 촉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플레스달의 해석은 [[후설]]을 프레게와 연결함으로써 분석철학자들에게 현상학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후설]]의 본래 의도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철학사에서 해석이 원래 사상을 변형하는 패턴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넷째, [[하이데거]]의 비판이 [[후설]] 현상학의 특정 전제들을 드러낸다는 점이 관찰된다. [[후설]]이 의식에서 출발하고, 이론적 태도를 우선시하며, 대상을 의미로 접근한다는 것—이것들은 [[하이데거]]의 비판을 통해 명시화된다. 비판이 원래 사상의 전제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다섯째, 노에시스-노에마 구조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었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었다는 점이 관찰된다. 인지과학의 "지향적 내용", 질적 연구의 "경험 구조"—이것들은 [[후설]]의 개념과 관련되지만 동일하지 않다. 철학적 개념이 다른 분야에 이식되면서 변형되는 패턴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노에마는 정말로 프레게의 뜻과 유비적인가? 질료-형식 도식은 의식 분석에 적합한가? [[하이데거]]의 비판에 대한 현상학적 응답은 무엇인가?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는 감정과 기분에도 적용되는가? 그리고 이 구조가 인공지능 연구에 함의를 갖는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논리연구 - 작용 성질과 작용 질료의 구별
- 이념들 - 노에시스-노에마의 체계화
- 데카르트적 성찰 - 구성과 [[상호주관성]]
### 핵심 개념
- [[지향성]] - 노에시스-노에마의 기초
- [[현상학적 환원]] - 노에마 분석의 방법론적 전제
- [[본질직관]] - 노에마적 구조의 파악
- [[후설]] - 노에시스-노에마 구조의 창시자
- [[시간 의식]] - 노에마의 시간적 변양
- 구성 - 대상이 의미로 형성되는 과정
- 지평 - 노에마를 둘러싼 암묵적 의식
### 관련 철학자
- [[브렌타노]] - 지향성 개념의 원천
- [[고틀로프 프레게]] - 뜻과 지시체 구별
- [[하이데거]] - 노에시스-노에마 구조 비판
- 대그핀 플레스달 - 프레게주의적 해석
- 아론 구르비츠 - 대상 지향적 해석
### 해석적 맥락
- 서해안 해석 - 노에마를 추상적 의미로 봄
- 동해안 해석 - 노에마를 대상의 나타남으로 봄
- 분석철학과의 대화 - 지향적 내용 논쟁
### 현대적 적용
- 인지과학 - 지향적 내용
- 마음철학 - 표상과 내용
- 질적 연구방법론 - 경험 구조 분석
- 신경현상학 - 1인칭과 3인칭 통합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02 15:2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