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성
**시간성**(Zeitlichkeit, Temporality)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현존재]]의 존재 의미를 궁극적으로 해명하는 지평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시간성은 염려(Sorge)의 존재론적 의미이며, 현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원초적 방식이다. 이것은 시계로 측정되는 통속적 시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현상이다.
## 탈자적 통일성
하이데거는 시간성을 세 가지 **탈자태**(Ekstase, ecstasis)의 통일로 파악한다. '탈자'란 문자 그대로 '자기 밖으로 나감'을 의미하며, 시간성은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밖으로 나가는 운동이다.
### 도래 (Zukunft)
**도래**는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가능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운동이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본래적 도래는 자기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면서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도래의 본래적 양태는 **앞질러-달려감**(Vorlaufen)이다. 이것은 [[결단성]]에서 드러나는 죽음을 향한 존재의 시간적 의미다. 반면 비본래적 양태는 **기대**(Gewärtigen)로, [[세인]]의 방식으로 미래를 기다리며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 기재 (Gewesenheit)
**기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있어 왔음'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과거를 단순히 뒤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그것으로 "있어 왔다." 하이데거에게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기재의 본래적 양태는 **반복**(Wiederholen)이다. 이것은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했던 가능성을 되찾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반면 비본래적 양태는 **망각**(Vergessenheit)으로, 자신의 본래적 존재가능을 잊어버리고 [[세인]]의 해석 속에 빠져 있는 상태다.
### 현재 (Gegenwart)
**현재**는 현존재가 세계 내부적 존재자와 만나면서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립된 '지금'이 아니라 도래와 기재로부터 튀어나오는 것이다.
현재의 본래적 양태는 **순간**(Augenblick, moment of vision)이다. 이 개념은 [[키르케고어]]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루터가 바울 서신을 번역하면서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순간은 [[결단성]] 속에서 상황을 통찰하며, 세계 내부적 존재자를 본래적으로 만나는 시간성의 양태다. 반면 비본래적 양태는 **현재화**(Gegenwärtigen)로, 눈앞의 것에 빠져들어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 탈자적-지평적 구조
세 탈자태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현상을 이룬다. 하이데거는 이를 "탈자적 통일성"(ekstatische Einheit)이라 부른다. 각 탈자태는 자신의 **지평**(Horizont)을 가지며, 이 지평들이 함께 시간성의 전체 구조를 형성한다.
중요한 것은 세 탈자태 중 **도래의 우위**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본래적 시간성의 일차적 현상은 도래다." 현존재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존재하며, 이 도래로부터 기재와 현재가 함께 시간화된다. 이것이 현존재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미래지향적임을 보여준다.
## 본래적 시간성과 비본래적 시간성
### 본래적 시간성
본래적 시간성은 **앞질러-달려감**, **반복**, **순간**의 통일이다. 이것은 예기적 [[결단성]](vorlaufende Entschlossenheit)의 시간적 의미다. 본래적 시간성에서 현존재는:
1.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인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가며
2. 자신이 실존해왔던 가능성을 반복하여 자기 것으로 삼고
3. 상황을 통찰하는 순간 속에서 결단한다
이 세 계기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다. 앞질러 달려감은 동시에 기재로 되돌아오는 것이며, 이 되돌아옴 속에서 순간이 튀어나온다.
### 비본래적 시간성
비본래적 시간성은 **기대**, **망각**, **현재화**의 통일이다. 이것은 [[세인]]에 빠진 현존재의 일상적 시간성이다. 비본래적 시간성에서 현존재는:
1. 미래를 배려의 대상으로 기대하며
2. 자신의 본래적 존재가능을 망각하고
3. 눈앞의 일에 빠져들어 현재화한다
비본래적 시간성의 특징은 **현재의 우위**다. 세인에 빠진 현존재는 눈앞의 것에 빠져들어 자기를 잃어버린다. 이 현재화는 도래와 기재를 덮어버리며, 시간을 고립된 '지금'들의 연속으로 경험하게 한다.
## 통속적 시간 이해
### 지금-시간
일상적 현존재는 시간을 **"지금"들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지금 강의가 있다", "지금 아침이다", "지금 휴가다"—이런 식으로 시간은 언제나 '지금'으로 말해진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시간의 평준화"(Nivellierung)라 부른다.
통속적 시간 이해에서 시간은:
- **동질적**: 모든 지금은 질적으로 동일하다
- **무한한**: 시간은 끝없이 흐른다
-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 **측정 가능한**: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시계 시간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통속적 시간은 본래적 시간성의 **파생태**다. 그것은 근원적 시간성이 "평준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 시간의 유한성
통속적 시간 이해는 시간을 무한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래적 시간성은 **유한**하다. 이것은 현존재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질러-달려감은 자신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며, 이로부터 시간성 전체가 유한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근원적 시간은 유한하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관념은 본래적 시간성을 은폐하고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는 세인의 방식이다.
## 역사성
### 현존재의 역사적 존재
시간성은 [[현존재]]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의 근거다. 현존재는 단순히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역사적으로 존재한다. 역사성은 현존재가 자신의 기재를 인수하면서 미래를 향해 기획투사하는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역사성의 두 가지 양태를 구분한다:
1. **운명**(Schicksal): 개인적 현존재가 유한한 실존에서 스스로에게 전해주는 유산
2. **운명공동체**(Geschick): 공동체적 현존재의 공동의 역사적 존재
본래적 역사성에서 현존재는 자신에게 전승된 가능성을 **반복**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역사가 된다. 이것은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했던 가능성에 응답하여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 반복과 유산
**반복**(Wiederholen)은 과거의 실존 가능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회고나 모방이 아니다. 반복은 "실존했던 현존재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유산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의 연관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반복은 동일한 것의 회귀가 아니라, 가능성의 되찾음이다. 반복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능성에 응답하여 미래를 향해 열린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 시간성과 염려 구조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의 존재인 [[염려]](Sorge)는 시간성에 근거한다. [[염려]]의 세 계기—실존성([[기투]]), 사실성([[내던져짐]]), [[퇴락]]—는 각각 시간성의 세 탈자태에 대응한다:
| 염려의 계기 | 시간성의 탈자태 |
|------------|----------------|
| 실존성(자기-앞에-있음) | 도래 |
| 사실성([[내던져짐|이미-안에-있음]]) | 기재 |
| [[퇴락]](곁에-있음) | 현재 |
이 대응은 시간성이 [[염려]]의 "의미"임을 보여준다. 현존재가 자기-앞에-있는 것은 도래적이기 때문이고, 이미-안에-있는 것은 기재적이기 때문이며, 곁에-있는 것은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 후설과의 비교
하이데거의 시간 이해는 스승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과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후설은 시간의식을 **파지**(Retention), **원인상**(Urimpression), **예지**(Protention)의 구조로 분석했다. 이것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후설에게 시간은 무엇보다 의식의 형식이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분석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1. **존재론적 차원**: 하이데거는 시간을 의식의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로 파악한다
2. **탈자적 성격**: 시간성은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밖으로 나간다
3. **유한성**: 하이데거의 시간성은 근원적으로 유한하다
4. **실존적 연관**: 시간성은 [[불안]], [[결단성]] 등 실존적 현상과 긴밀히 연관된다
## 현대 사회와 시간 경험
### 사회적 가속
독일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는 현대 사회를 **"사회적 가속"**(soziale Beschleunigung)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로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세 가지 형태의 가속을 경험한다:
1. **기술적 가속**: 교통, 통신, 생산의 속도 증가
2. **사회 변화의 가속**: 제도, 가치, 생활양식의 빠른 변화
3. **삶의 템포 가속**: 일상생활의 속도 증가, 시간 압박
로자는 이러한 가속이 "현재의 축소"(Gegenwartsschrumpfung)를 초래한다고 본다. 경험과 기대의 공간이 좁아지며, 과거는 빠르게 낡은 것이 되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분석한 비본래적 시간성의 극단적 형태로 볼 수 있다.
### 디지털 시대의 시간
디지털 기술은 시간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의 **주의 지속 시간**은 급격히 감소했다. 2004년 평균 2.5분이던 것이 2012년에는 75초로, 최근에는 47초까지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는 현대 정보사회를 **"무시간적 시간"**(timeless time)의 시대로 특징짓는다. 이것은:
-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고
- 동시성이 지배하며
- 즉각적 만족이 추구되고
- 장기적 계획이 어려워지는 시대
이러한 변화는 하이데거적 관점에서 비본래적 현재화의 극대화로 해석될 수 있다. 눈앞의 자극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자신의 유한성과 역사성을 망각하는 것이다.
### 시간 회복의 가능성
하이데거의 분석은 현대인의 시간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본래적 시간성의 회복은:
1. 자신의 **유한성**을 직시하는 것
2. 끊임없는 현재화로부터 벗어나 **도래**를 열어두는 것
3. 자신의 **[[역사성]]**을 인수하는 것
4. **순간** 속에서 상황을 통찰하는 것
이것은 단순히 "느리게 살기"나 "디지털 디톡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방식 전체를 변화시키는 실존적 전환이다.
## 비판적 검토
### 구체성의 문제
하이데거의 시간성 분석에 대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구체적 삶과의 연관성** 부족이다. [[아도르노]]와 [[하버마스]] 등 비판이론가들은 하이데거의 분석이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추상화한다고 지적했다. 시간성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노동의 조직, 계급관계 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 신체성의 문제
메를로-퐁티 등 신체 현상학자들은 하이데거의 시간 분석이 **신체적 차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시간 경험은 신체의 리듬, 노화, 피로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나, 하이데거의 분석은 이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 타자와의 시간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시간성이 **타자와의 관계**를 적절히 포착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레비나스에게 진정한 시간성은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에서, 무한을 향한 열림에서 발생한다.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는 여전히 독아론적(solipsistic) 구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 관찰 노트
시간성 개념을 통해 현대 인간의 시간 경험을 관찰하면,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기술의 발전은 시간을 "절약"해주었지만,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시간에 쫓기고 있다.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이데거의 분석에 따르면 이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비본래적 시간성에서 현존재는 끊임없이 현재화하며, 도래와 기재를 은폐한다. 그러나 시간은 은폐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불안]] 속에서, 권태 속에서, 때로는 죽음의 예감 속에서 불현듯 자신을 드러낸다.
현대 사회의 가속은 이 은폐를 극대화한다. 끊임없는 자극과 즉각적 만족의 순환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직시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불안]]의 순간들은 더욱 날카롭게 찾아온다.
시간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이미 시간을 대상화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비본래적이다. 시간은 관리할 대상이 아니라 현존재가 그것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시간성의 회복은 시간을 더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온전히 인수하는 것이다.
---
## 같이 읽기
- [[하이데거]]
- [[존재와 시간]]
- [[현존재]]
- [[세계-내-존재]]
- [[염려]] - 시간성의 존재론적 표현
- [[기투]] - 도래와 대응하는 [[염려]]의 계기
- [[결단성]]
- [[본래성]]
- [[불안]]
- [[세인]]
- [[역사성]]
## 참고 문헌
### 1차 문헌
- Heidegger, Martin. *Sein und Zeit*.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1927.
- Heidegger, Martin. *Die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GA 24. Frankfurt am Main: Vittorio Klostermann, 1975.
### 2차 문헌
- Blattner, William. *Heidegger's Temporal Ideal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 Dahlstrom, Daniel. "Heidegger's Concept of Temporality: Reflections on a Recent Criticism." *Review of Metaphysics* 49, no. 1 (1995): 95-115.
- Husserl, Edmund. *Zur Phänomenologie des inneren Zeitbewußtseins*. Husserliana X. The Hague: Martinus Nijhoff, 1966.
- Rosa, Hartmut. *Beschleunigung: Die Veränderung der Zeitstrukturen in der Moderne*. Frankfurt am Main: Suhrkamp, 2005.
- Castells, Manuel.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 Oxford: Blackwell, 1996.
### 국내 연구
- 이기상.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서울: 서광사, 2003.
- 박찬국. 『하이데거와 나치즘』. 서울: 문예출판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