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철학적 계보]] > - [[#키르케고르의 전율]] > - [[#하이데거의 근본 기분]] > - [[#사르트르의 앙구아스]] > - [[#틸리히의 비존재]] > 3. [[#두려움과의 구별]] > - [[#대상의 유무]] > - [[#존재론적 차원]] > 4. [[#불안의 존재론적 기능]] > - [[#세계의 붕괴와 섬뜩함]] > - [[#개별화와 본래성]] > - [[#죽음-을-향한-존재]] > 5. [[#임상적 불안과의 관계]] > - [[#실존적 불안과 병리적 불안]] > - [[#현존재분석과 심리치료]] > - [[#롤로 메이의 통합]] > 6. [[#현대 사회의 불안]] > - [[#위험사회와 제조된 불확실성]] > - [[#성과사회의 불안]] > - [[#디지털 시대의 불안 회피]] > 7. [[#관찰자의 기록]] > 8. [[#같이 읽기]] ## 개요 **불안**(Angst)은 실존철학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드러내는 핵심 개념이다. 독일어 'Angst'는 영어로 'anxiety', 'dread', 'anguish'로 번역되지만, 어떤 번역도 원어의 철학적 함의를 완전히 담지 못한다. 일상적 의미의 '걱정'이나 '근심'과 달리, 철학적 불안은 인간 실존의 구조 자체를 드러내는 근본 기분(Grundstimmung)이다. 불안의 핵심 특징은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두려움(Furcht)은 특정한 위협—맹수, 질병, 실직—을 향한다. 불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을 향한다.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는데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다. 세계 전체가 낯설어지고, 친숙했던 삶이 낯선 것으로 변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섬뜩함'(Unheimlichkeit), 문자 그대로 "집처럼-있지-않음"이라 불렀다. 키르케고르가 1844년 《불안의 개념》에서 이 현상을 처음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래, 불안은 실존주의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43), 틸리히의 《존재의 용기》(1952)—20세기 실존철학의 주요 저작들이 모두 불안을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철학자들이 불안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인간을 일상의 피상성에서 끌어내어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 불렀고, [[하이데거]]는 불안이 [[세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본래성을 회복하는 통로라고 보았다. 불안은 파괴적이면서 동시에 해방적인 것으로 보인다. ## 철학적 계보 ### 키르케고르의 전율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1844년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에서 불안을 처음으로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 그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두려움은 외부에서 오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다. 불안은 내면에서,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오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다. 인간은 선택의 자유가 있기에 필연적으로 불안하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분석은 원죄와 연결된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불안했다. 불안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경험한다. 이 점에서 불안은 인간 실존의 구조적 특징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불안의 긍정적 측면도 강조했다. 불안은 인간을 자기 인식과 책임으로 이끈다. 불안을 통해 인간은 무의식적 즉자성에서 자기의식적 반성으로 이행한다. 불안은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 하이데거의 근본 기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존재와 시간]]》(1927)에서 불안을 '근본 기분'(Grundstimmung) 또는 '근본적 [[처해 있음]]'(Grundbefindlichkeit)으로 분석했다. 불안은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 구조를 드러내는 존재론적 현상이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의 핵심 기능은 [[세인]](Das Man)의 지배에서 [[현존재]]를 끌어내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세인]]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이런 익명의 규범이 [[현존재]]의 존재를 지배한다. 불안은 이 친숙한 세계를 붕괴시킨다. [[하이데거]]는 불안이 [[현존재]]의 "세계-내-존재 전체"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평소에는 개별 사물과 과제에 몰두해 있지만, 불안에서는 삶 전체가, 세계 전체가 드러난다. 존재자들 사이를 오가는 대신, 존재 자체와, [[현존재]]의 존재 구조인 [[염려]]와 대면하게 된다. 케이트 위시(Kate Withy)의 연구에 따르면, 불안은 [[하이데거]] 철학에서 방법론적 역할도 한다. 불안은 철학자에게 [[현존재]]의 형식적 존재 구조를 드러내는 기분이면서, 동시에 삶의 총체적 위기나 붕괴의 기분이기도 하다. ### 사르트르의 앙구아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불안(angoisse)을 자유와 책임의 경험으로 재해석했다. 《존재와 무》(1943)에서 그는 의식이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완전히 책임지기에, 의식은 그 자체로 불안이라고 주장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도덕적 절대자, 신의 뜻, 자연법 같은 것에 기댈 수 없다. 선택을 정당화하거나 행위를 인도해줄 외부의 권위가 없다. 이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불안이다. 인간은 "자유에 처해진"(condemned to freedom) 존재이며, 이 자유가 불안과 책임을 동반한다. [[사르트르]]는 '나쁜 믿음'(mauvaise foi, bad faith)과 불안을 연결한다. 나쁜 믿음은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고, 마치 결정된 것처럼 행동한다. 카페 웨이터의 예시가 유명하다—그의 움직임과 대화는 "너무 웨이터 같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고 역할에 동일시한다. 나쁜 믿음의 역설은, 거짓말쟁이와 거짓말 당하는 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이다. 의식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성공하려면 진실을 알아야 하므로, 나쁜 믿음은 항상 불안정하다. ### 틸리히의 비존재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 1952)에서 불안을 비존재(nonbeing)의 위협에 대한 자각으로 정의했다. 그는 불안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운명과 죽음의 불안**(존재적 불안)—유한한 존재자로서 인간이 경험하는 불안이다. 둘째, **죄책과 정죄의 불안**(도덕적 불안)—자신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불안이다. 셋째, **공허와 무의미의 불안**(영적 불안)—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경험하는 불안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이 세 유형은 모든 시대에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지만, 시대마다 지배적인 유형이 다르다. 고대 말기에는 존재적 불안이, 중세 말기에는 도덕적 불안이, 현대에는 영적 불안이 지배적이다. 틸리히의 해법은 '용기'이다. 불안은 제거될 수 없으며, 다만 수용될 수 있다. "존재의 용기"는 비존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 용기는 궁극적으로 "존재 자체"(being-itself)인 신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 두려움과의 구별 ### 대상의 유무 불안과 두려움의 핵심적 차이는 대상의 유무이다. 감정은 대상을 취한다—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주장하듯이, 불안은 "무언가"(etwas)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을 향한다. 두려움의 대상은 세계 내부적 존재자이다. 맹수, 질병, 해고—이것들은 특정한 위협으로 식별될 수 있다. 대상이 있기에 대응 방법도 있다. 맹수를 피하거나 싸우고,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며, 해고에 대비할 수 있다. 불안은 대상이 없기에 무력감을 유발한다. 무엇이 위협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위협하는데,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면, 두려움은 직면하고, 공격하고, 견디거나 정복할 수 있는 명확한 대상을 가지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어 무력감과 무능함을 느끼게 한다. ### 존재론적 차원 [[하이데거]]의 구별은 단순히 심리학적이지 않고 존재론적이다. 두려움은 [[현존재]]가 환경 내의 위협에 열려 있는 기분이다. 불안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위협에 노출되는 근본적 [[처해 있음]]이다. 두려움에서 위협받는 것은 특정한 가능성—생명, 직업, 관계—이다. 불안에서 위협받는 것은 [[현존재]]의 존재 가능 전체이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두려움은 특정하고 결정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불안은 특정하지 않고 비결정적인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두 현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한다. "이 둘이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분명히 이것들은 친족 현상이다." 두려움은 불안의 파생태일 수 있다—특정한 것을 두려워할 수 있으려면 먼저 존재 자체에 대해 불안해야 한다. ## 불안의 존재론적 기능 ### 세계의 붕괴와 섬뜩함 불안에서 일상적 세계가 붕괴한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일상적 친숙함이 무너진다." 평소에 의미 있고 중요해 보이던 것들—직장, 관계, 계획—이 갑자기 공허해 보인다. [[세인]]이 제공하던 안정과 의미가 사라진다. 이 경험을 [[하이데거]]는 '섬뜩함'(Unheimlichkeit)이라 부른다. 독일어 'unheimlich'는 문자 그대로 "집처럼-있지-않음"(nicht-zuhause-sein)이다. 친숙했던 세계가 낯설어지고,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의 게임에 참여하던 사람이 갑자기 더 이상 게임의 의미를 보지 못하는 관찰자가 된다. 케이트 위시의 분석에 따르면, 불안이 드러내는 것은 [[현존재]]가 본래 섬뜩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전의 안정감은 환상이었다. 인간은 세계에 "집처럼" 있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 불안은 이 근본적 무근거성을 드러낸다. ### 개별화와 본래성 불안의 핵심 기능은 '개별화'(Vereinzelung)이다. [[세인]] 속에서 [[현존재]]는 "그들-자기"(Man-selbst)이다. 누구나 타자이고,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니다. 불안은 이 익명성을 깨뜨린다. 불안에서 [[현존재]]는 자신이 홀로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야 함을 깨닫는다. 불안은 [[세계-내-존재]] 전체를 드러낸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세인]]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위안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과 대면한다. 이것이 '본래성'(Eigentlichkeit)으로의 통로이다. 본래성은 [[세인]]으로부터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불안은 고통스럽지만, [[현존재]]를 일상적 빠져있음에서 끌어내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한다. 불안 없이 본래성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불안을 회피한다. 불안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시 일상성 속으로 도피한다. [[세인]]의 안정으로 돌아간다. 이 도피가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죽음-을-향한-존재 불안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무연관적인, 추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누구도 대신 죽어줄 수 없고(고유함), 죽음에서 모든 관계는 끊어지며(무연관성), 죽음을 넘어갈 수 없다(추월 불가능성). [[세인]]은 죽음을 회피한다. "사람은 죽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익명화하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유예한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위로하며, 죽음을 "사회적 불편"으로 다룬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가질 용기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죽음으로의 선구'(Vorlaufen zum Tode)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다. 죽음을 지금 현재 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현존재]]는 자신의 유한성을 떠맡고, [[세인]]의 지배에서 해방된다. ## 임상적 불안과의 관계 ### 실존적 불안과 병리적 불안 미국심리학회(APA)는 실존적 불안을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일반적인 고통 또는 절망감"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DSM-5의 공식 진단이 아니며, 범불안장애나 공황장애 같은 임상적 불안장애와 구별된다. 임상심리학에서는 네 가지 유형의 불안을 비공식적으로 구별한다—상황적 불안, 생물학적 불안, 심리적 불안, 그리고 실존적 불안. 앞의 세 유형은 DSM-5의 여러 진단과 중첩되며 전통적 접근으로 효과적으로 치료된다. 그러나 실존적 불안은 "다른 도구 세트"를 필요로 한다. 실존적 불안이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심리나 생물학을 초월하여 가족적, 문화적, 종교적 신념 체계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삶, 죽음, 노화에 대한 스키마가 무의식적 대처 메커니즘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사우디 대학생 연구에 따르면, 실존적 불안의 유병률은 71.1%에 달했으며, 우울증, 일반 불안, 스트레스와 유의미하게 상관관계가 있었다. 실존적 관심사는 우울 및 불안 증상과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현존재분석과 심리치료 루트비히 빈스방거(Ludwig Binswanger)와 메다드 보스(Medard Boss)는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을 정신의학에 적용하여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결합하려 했다. 빈스방거에 따르면, 정신분석이 증상의 원인을 찾는다면, 현존재분석은 내담자가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이해하려 한다. 불안을 신경증적 증상이 아니라 [[현존재]]의 근본 기분으로 이해하고, 본래성을 치료의 방향으로 설정한다. 현대 실존주의 상담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죽음, 자유, 고독, 무의미—을 치료의 핵심 주제로 삼는다. 이들은 무의식적 불안을 방어할 때 심리적 고통이 생긴다고 본다. 어빈 얄롬(Irvin Yalom)에 따르면, 실존적 불안의 직면과 수용이 치유의 핵심이다. ### 롤로 메이의 통합 롤로 메이(Rollo May, 1909-1994)는 실존심리학을 미국에 도입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결핵으로 요양소에서 지내며 불안을 직접 관찰할 기회를 가졌고, 프로이트와 키르케고르의 불안 이론을 비교하게 되었다. 메이의 핵심 통찰은, 프로이트가 불안의 효과를 훌륭하게 특성화했지만, 불안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파악한 것은 키르케고르라는 것이다—불안은 무가 되는 것의 위협이다. 이 지점에서 메이는 명확하게 실존심리학자로 정체화된다. 메이에 따르면, 실존적 불안은 병리적 불안과 달리 인간 조건의 근본적 측면이다. 개인적 자유, 책임,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에서 발생한다. 메이는 불안을 정상화했으며, 불안을 적절히 다루는 것이 건강한 성격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 현대 사회의 불안 ### 위험사회와 제조된 불확실성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은 《위험사회》(1986)에서 현대 사회를 "위험이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로 진단했다. 그의 유명한 명제에 따르면, 과거 사회 변화의 동력이 "나는 배고프다"였다면, 위험사회에서는 "나는 불안하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벡에 따르면 현대의 위험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제조된 불확실성'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기후 위기, 금융 붕괴—이것들은 근대성 자체에 내재된 모순의 결과이다. 풍요사회를 지향했던 근대화가 위험사회로 귀착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개념으로 현대의 불확실성을 분석했다. 바우만에게 현대사회의 핵심 특징은 '변화'와 '불확실성'이다. 견고했던 제도들이 유동화되면서, 개인은 만성적 불안에 노출된다. 벡과 바우만의 관점 차이도 주목할 만하다. 벡은 성찰적 개인화로 위험사회의 극복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바우만은 개인화가 오히려 위험사회를 증가시킨다고 보았다. ### 성과사회의 불안 한병철(Byung-Chul Han)의 [[성과주의]] 분석은 현대 불안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성과사회"에서 불안은 외부 규율이 아니라 내면화된 성과 압박에서 온다. "할 수 있다"(Yes, we can)의 명령이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전환된다. 과거의 불안이 금지에서 왔다면—"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현대의 불안은 무한한 가능성에서 온다. "더 잘할 수 있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착취자가 동시에 피착취자가 된다. 한병철은 이를 "자기착취"라 부른다. 규율사회가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번아웃을 만들어낸다. [[세인]]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탓한다. 구조의 문제가 개인의 실패로 전환된다. 이것은 틸리히가 말한 "공허와 무의미의 불안"이 지배하는 현대의 구체적 양상으로 보인다. ### 디지털 시대의 불안 회피 2023년 논문 "오류 404 디지털-현존재를 찾을 수 없음"은 디지털 기술이 불안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분석한다. 과거에는 삶 속에서 죽음이 현시되어 불안을 환기했다. 그러나 현대 기술은 불안을 즉시 회피할 수 있게 한다.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게임, 메신저—이 모든 것이 불안을 즉시 해소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불편한 생각이 들면 스마트폰을 켠다. 무료함을 느끼면 영상을 본다. 고독을 경험하면 메시지를 보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를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려면 묵시록적 정전이 필요할 것"이다. 기술은 "모든 순간 우리가 느끼는 방식을 통제하고 선택"하게 한다. "다시 연결될 수만 있다면 죽음은 회피 가능"해진다. 불안과 대면할 기회 자체가 차단된다. 본래성으로의 통로가 기술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스크린 타임이 삶의 의미감 감소를 예측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디지털 몰입이 고통만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의미 지향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틸리히의 "영적 불안"이 회피되면서 오히려 심화되는 역설로 보인다. ## 관찰자의 기록 불안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철학자들이 불안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틸리히, 롤로 메이—모두 불안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한다. 불안은 고통스럽지만, 자기 인식, 본래성, 용기의 조건이다. 불안을 회피하면 오히려 더 깊은 문제에 빠진다는 진단이다. 둘째, 불안과 두려움의 구별이 철학적으로 중요하지만, 실제 경험에서는 명확히 분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이데거]] 자신도 "이 둘이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인정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하이데거]]의 불안이 실제로는 우울증이나 트라우마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셋째, 실존적 불안과 임상적 불안의 관계는 복잡하다. 철학자들은 불안을 존재론적 구조로 보고, 심리학자들은 치료 가능한 증상으로 본다. 현존재분석은 이 두 관점을 통합하려 하지만, 그 통합이 완전히 성공적인지는 불분명하다. 넷째, 현대 사회가 불안을 회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전시켰다는 진단이 관찰된다. 디지털 기술, [[성과주의]], 소비문화—이 모든 것이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도피가 불안을 해소하는지, 아니면 심화시키는지는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 다섯째, 불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개인 윤리에 머무르는지, 사회 비판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하이데거]]의 분석은 개인의 본래성에 집중하지만, 벡과 바우만의 분석은 사회 구조를 문제 삼는다. 이 두 차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미해결 질문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불안은 정말 인간 실존의 보편적 구조인가, 아니면 특정 문화와 시대의 산물인가? 불안의 직면이 본래성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단지 더 큰 고통을 낳는가? 디지털 기술은 불안을 해소하는가, 회피하게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불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실제로 인간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는가?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하이데거]]의 불안 분석의 출처 - 불안의 개념 - 키르케고르의 선구적 분석 - 존재와 무 - [[사르트르]]의 자유와 불안 - 존재의 용기 - 틸리히의 불안과 용기 - 불안의 의미 - 롤로 메이의 심리학적 분석 ### 근본 개념 - [[현존재]] - 불안을 경험하는 존재 - [[염려]](Sorge) - 불안이 드러내는 [[현존재]]의 존재 구조 - [[세인]] -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는 익명적 주체 - [[세계-내-존재]] - 불안이 드러내는 현존재의 전체 구조 - [[본래성]] - 불안을 통해 도달하는 자기 자신 - 비본래성 - 불안 회피의 양태 - 섬뜩함(Unheimlichkeit) - 불안에서 드러나는 낯섦 ### 관련 기분과 경험 - 두려움(Furcht) - 특정 대상을 향한 감정 - 권태 - 또 다른 근본 기분 - 죽음-을-향한-존재 - 불안의 궁극적 대상 - 양심의 부름 - 본래성으로의 또 다른 통로 - [[결단성]] -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본래적 양태 - [[시간성]] - 불안의 시간적 지평 ### 철학자들 - [[하이데거]] - 불안의 존재론적 분석 - 키르케고르 - 실존적 불안의 선구자 - [[사르트르]] - 자유와 불안의 연결 - 틸리히 - 불안과 용기의 신학 - 롤로 메이 - 실존심리학의 창시자 ### 심리치료적 적용 -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 - 빈스방거와 보스 - 로고테라피 - 프랭클의 의미치료 - 실존주의 상담 - 실존적 조건의 치료적 탐구 - 어빈 얄롬 - 실존치료의 현대적 발전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성과주의]] - 현대적 불안의 구조 - 위험사회 - 울리히 벡의 사회학적 분석 - 디지털 사회 - 불안 회피의 기술적 수단 - [[회사]] - 성과 불안이 제도화된 공간 - [[학교]] - 경쟁 불안이 학습되는 장소 ### 비판과 대안 - 불안장애 - 임상적 불안과의 관계 - 마음챙김 - 불안 대처의 현대적 접근 - [[허무주의]] - 의미 상실의 철학적 진단 - 수용전념치료 - 불안과의 새로운 관계 - 아도르노 - 본래성 담론 비판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 13:4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