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던져짐
**내던져짐**(Geworfenheit, Thrownness)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현존재]]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 속에 이미 자신을 발견한다는 존재론적 사실을 표현한다. 독일어 'geworfen'은 '던지다'(werfen)의 과거분사로, [[현존재]]가 세계 속에 "던져져" 있음을 지시한다. 이 개념은 [[염려]](Sorge)의 세 계기 중 사실성(Faktizität)의 구체적 현상이며, 기투(Entwurf)와 함께 [[현존재]]의 이중 구조를 구성한다.
## 개념의 구조
### 내던져짐의 의미
[[하이데거]]는 내던져짐을 [[현존재]]의 "사실성의 피투성"이라 규정한다. [[현존재]]는 특정 시대, 특정 문화, 특정 가족, 특정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조건들은 [[현존재]]가 결정한 것이 아니지만 [[현존재]]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현존재]]는 자신이 "어디로부터"(Woher) 왔는지 모르면서 세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케임브리지 하이데거 사전에 따르면, "내던져짐"은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수동적 존재-개시, 즉 [[현존재]]의 탄생, 기원, 근거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내던져짐은 [[현존재]]가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물질적 환경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 넘겨짐(Überantwortetheit)
내던져짐은 '넘겨짐' 또는 '맡겨짐'(Überantwortetheit)과 연결된다. [[현존재]]는 더 높은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의하지 않고 아무 곳을 향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에게로 넘겨져 있다. [[하이데거]]의 표현에 따르면, "[[현존재]]는 던져진 채로 존재하는 바, 그것이 거기-있음으로서 [[세계-내-존재]]이도록 던져져 있다."
이 넘겨짐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야 하는 부담을 함축한다. 선택하지 않은 존재를 자기 것으로 인수해야 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존재의 부담"(Last des Seins)이라 부르는 것이다. [[현존재]]는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으면서 존재해야 한다.
### 사실성과의 관계
내던져짐은 사실성(Faktizität)의 존재론적 표현이다. [[하이데거]]는 "사실성은 내던져짐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사실성은 [[현존재]]의 "주어진 것들"—성별, 민족, 문화적 배경, 역사적 시대—을 포괄한다. 이것들은 [[현존재]]가 미리 결정할 수 없었던 "사전 주어진"(vorgegeben) 조건들이다.
그러나 사실성과 사실(Tatsache)은 구별된다. 사실은 눈앞에 있는 존재자(Vorhandenes)의 성질이고, 사실성은 [[현존재]]의 실존 성격이다. 돌이 특정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존재]]가 특정 상황에 던져져 있다는 것은 사실성이다. 사실성은 단순한 속성이 아니라 [[현존재]]가 그것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 내던져짐과 기투
### 던져진 기투(geworfener Entwurf)
[[현존재]]는 "던져진 기투"(geworfener Entwurf)이다. 이것이 《[[존재와 시간]]》 제1편 5장의 핵심 주장이다. [[현존재]]는 던져져 있으면서(내던져짐)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기투]]).
내던져짐은 [[현존재]]의 수동적 측면이다. [[현존재]]는 선택 없이 세계 속에 있다. [[기투]](Entwurf)는 [[현존재]]의 능동적 측면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기획한다. 이 두 계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현존재]]는 던져진 조건 위에서 [[기투]]하고, [[기투]]하면서 던져짐을 인수한다.
시몬 크리츨리(Simon Critchley)의 해석에 따르면, [[현존재]]는 던져진 조건을 "벗어던질" 수 있는 운동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붙잡는다. 이 운동이 [[기투]]이며, [[하이데거]]가 나중에 '자유'라 부르게 될 것의 경험이다. [[기투]]는 내던져짐의 부정이 아니라, 내던져짐을 떠맡으면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제약과 가능성
내던져짐은 [[현존재]]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특정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그 시대의 언어, 기술, 관념의 범위 안에서 사유한다. 특정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 신체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 행위한다. 순수한 자유, 모든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은 환상이다.
그러나 내던져짐은 가능성의 부정이 아니라 조건이다. [[현존재]]는 이미 있는 바로부터 될 수 있는 바를 향해 나아간다. 던져진 상황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준다. 윌리엄 블래트너(William Blattner)에 따르면, "나는 항상 이미 세계와 내 삶 속에 '던져져' 있는데, 내가 그것에 중요하게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조율들이 나의 기투의 '끌림'(drag)을 위치시키고 구체화한다."
실존주의가 흔히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묘사되지만, [[하이데거]]의 사실성 개념은 인간의 자유가 그 안에서 작동하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내던져짐은 절대적 자유도 절대적 결정론도 아닌, 상황 지어진 자유를 함축한다.
## 내던져짐의 개시: [[처해 있음]]
### [[처해 있음]](Befindlichkeit)
내던져짐은 '[[처해 있음]]'(Befindlichkeit)을 통해 개시된다. [[처해 있음]]은 [[현존재]]가 자신의 내던져짐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영어로는 'affectedness', 'disposedness', 'attunement', 'state-of-mind' 등으로 번역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는 표준 번역인 'state-of-mind'가 잘못이며 'affectedness'가 낫다고 지적했다.
[[처해 있음]]은 [[현존재]]가 내던져짐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내던져짐은 본질적으로 정동(affect)을 통해, 특히 기분(Stimmung)을 통해 개시된다. 인간은 항상 어떤 기분 속에 있으며, 기분을 피할 수 없다. 기분 없음도 하나의 기분이다.
### 기분(Stimmung)
기분은 주관적 감정 상태가 아니다. 기분은 [[현존재]]가 세계 내에 있음을 드러낸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파토스(pathos)를 상기시킨다. 기분은 영혼의 열정이자 정동이며, [[현존재]]에게 닥치는(befallen) 것이고 그 안에서 [[현존재]]가 자신을 발견한다.
기분은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오지 않는다. [[세계-내-존재]]로부터 발생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분위기들은 미리 결정된 어떤 것이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매번 먼저 빠져드는 분위기로, 그것이 우리를 완전히 관통하며 조율한다." 기분은 세계가 [[현존재]]에게 "중요하게 됨"(mattering)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불안]](Angst)은 내던져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불안]]에서 일상적 친숙함이 붕괴하고, [[현존재]]는 자신이 [[세계-내-존재]]로서 던져져 있음을 직면한다. [[불안]]은 [[현존재]]를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을 향한 존재로 되던진다(zurückwirft).
## 내던져짐과 죄책
### 존재론적 죄책(Schuld)
내던져짐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죄책' 또는 '탓이 있음'(Schuldigsein)과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도덕적 죄책감과 구별한다. 존재론적 죄책은 [[현존재]]가 근거 없는 근거라는 존재론적 사실을 표현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내던져짐의 구조에도 기투의 구조에도 본질적으로 '무성'(Nichtheit, nullity)이 놓여 있다. 이 무성이 [[염려]]의 근거이다. [[염려]] 자체가, [[현존재]]의 존재가, 그 본질상 무성으로 관통되어 있다. [[현존재]]는 스스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거로부터 해방되어 근거로서 존재하도록 풀려나 있다.
"본래적으로 그대인 바의 '탓이 있음'을 인수하라"—이것이 양심의 부름이 [[현존재]]에게 알리는 바이다. [[현존재]]는 내던져짐으로부터도, 그 내던져짐과 함께 오는 정당화의 결여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인간 존재의 결정적 책임인데, 우리가 어떻게 던져졌는지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이다.
### 무고함과 책임
내던져짐에서 [[현존재]]는 절대적으로 무고하다. 태어난 것, 특정 조건을 갖는 것은 [[현존재]]의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현존재]]는 그 내던져짐과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책임이 있다. 던져진 상황을 자기 것으로 전유하는 것, 그것을 떠맡거나 회피하는 것은 [[현존재]]의 몫이다.
이것이 [[본래성]]과 비본래성의 갈림길이다. 본래적 [[현존재]]는 내던져짐을 인수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결단하여 기투한다. 비본래적 [[현존재]]는 내던져짐을 망각하거나 회피하고, [[세인]]의 해석에 따라 살아간다. 본래성으로의 이행에서 [[현존재]]는 먼저 내던져짐이라는 사실을 자기 것으로 전유하며, 존재의 결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결단하여 자신이 되기를 선택"한다.
## 내던져짐과 시간성
### 기재(Gewesenheit)
내던져짐은 [[시간성]]의 세 탈자태 중 기재(Gewesenheit)와 대응한다. 기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있어 왔음'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과거를 단순히 뒤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그것으로 "있어 왔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역사성의 근거가 [[시간성]]이라면, 역사성은 무엇보다도 본래적이든 비본래적이든 기재에서 시간화해야 한다. 내던져짐은 [[현존재]]가 이미 있어 왔음, 과거가 현재 속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구성한다.
기재의 본래적 양태는 반복(Wiederholen)이다. 이것은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했던 가능성을 되찾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비본래적 양태는 망각(Vergessenheit)으로, 자신의 본래적 존재가능을 잊어버리고 [[세인]]의 해석 속에 빠져 있는 상태다.
### 역사성과의 연결
내던져짐을 떠맡는 것은 유산(Erbe)을 떠맡는 것이기도 하다. [[현존재]]는 특정한 역사적 가능성들의 영역 속으로 던져진다. 언어, 문화, 제도, 가치—이 모든 것이 전승된 유산이다. 본래적 [[역사성]]에서 [[현존재]]는 이 유산 중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선택하고 반복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자신의 내던져짐으로 결단하며 되돌아옴에는, 전승된 가능성들을 자기 자신에게 넘겨줌이 숨어 있다." 내던져짐으로의 귀환은 유산을 떠맡는 것이며, 이것이 본래적으로 실존하는 사실적 가능성을 개시하는 근거이다.
## 드레이퍼스의 해석
### 숙련된 대처와 내던져짐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는 《세계-내-존재》(1991)에서 내던져짐을 '숙련된 대처'(skillful coping)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드레이퍼스에 따르면, 내던져짐은 [[현존재]]가 공유된 세계 내의 신체적 대처에 흡수되어 있음을 지시한다.
드레이퍼스는 내던져짐을 AI 환원주의에 대항하여 옹호한다. 인간의 기술과 이해는 규칙 기반 표상이나 시뮬레이션으로 환원될 수 없다. 실천적 맥락 속으로의 이 전반성적 던져진 기투—일상 활동에서의 직관적 전문성과 같은—는 형식적 모델링을 벗어난다. 이것은 본래적 실존에서 신체화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강조한다.
### 비판적 검토
그러나 드레이퍼스의 해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드레이퍼스가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숙련된 신체적 조정"으로 환원함으로써 [[현존재]]의 자기-관계적 차원을 놓친다고 주장한다. 내던져짐은 단순히 세계와의 대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구조이다.
테일러 카먼(Taylor Carman)은 드레이퍼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 해석을 발전시켰다. 카먼의 《하이데거의 분석론》(2003)에서 [[하이데거]]는 관념론자가 아니라 실재론자로 이해된다. 카먼에 따르면 내던져짐의 본질은 실천적 능력의 신체화에 머무르지 않고, 유한한 실존의 존재론적 구조에 관계한다.
## 사르트르와의 비교
### 사르트르의 사실성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하이데거]]의 내던져짐을 '유기'(délaissement, abandonment)로 번역했다. 《존재와 무》(1943)에서 [[사르트르]]는 사실성(facticité)을 인간 실존의 불변적 측면—과거, 생물학, 사회적 위치—으로 규정한다.
[[사르트르]]의 사실성 개념은 [[하이데거]]의 것과 유사하지만, [[사르트르]]는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며, [[하이데거]]가 과거를 강조하는 반면 [[사르트르]]는 인간 실존의 객관적 차원을 강조한다. [[사르트르]]에게 유기는 미리 정의도 없고 미리 결정된 기획도 없이 던져져 있다는 신의 부재에 대한 주장의 출발점이 된다.
### 사실성과 초월성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자기가 완전히 자유롭지도(사실성 바깥에 있는 것처럼) 완전히 결정되지도(전적으로 사실성으로 환원되는)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동시에 사실성이면서 초월성인 "이중 속성"이다.
나쁜 믿음(mauvaise foi)은 이 이중성의 한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성에 과잉 동일시하면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고, 초월성에 과잉 동일시하면 조건 지어짐을 부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실존은 사실성과 초월성 사이의 긴장을 인정한다.
## 현대적 적용
### 실존치료에서의 내던져짐
내던져짐 개념은 실존치료(Existential Therapy)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실존치료는 내담자가 자신의 과거나 환경의 특정 측면을 바꿀 수 없을 수 있지만, 자신의 상황과 어떻게 관여하는가를 선택할 자유는 항상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치료는 우리가 사실성의 조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우리의 상황을 재해석하고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낼 자유는 항상 있다고 강조한다. [[하이데거]]의 내던져짐 개념은 치료적 맥락에서 "주어진 것"—변경할 수 없는 삶의 조건—과 "선택된 것"—그 조건에 대한 반응—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다.
메다드 보스(Medard Boss)의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은 이 통찰을 직접 적용한다. 보스에 따르면, 심리적 고통은 종종 내던져짐을 떠맡지 못함에서 온다. 치료의 방향은 내담자가 자신의 던져진 상황을 인수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투하도록 돕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의 내던져짐
현대 디지털 사회는 내던져짐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특정한 기술적 환경 속으로 던져진다. 알고리즘,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이것들은 현대인의 "사전 주어진" 조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기술이 내던져짐의 인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연결과 즉각적 만족이 [[불안]]을 회피하게 하며, [[불안]]이 회피되면 내던져짐과의 대면도 회피된다. 던져진 조건을 성찰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비본래적 실존의 심화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디지털 기술은 전통적으로 던져진 조건—출신, 지역, 계급—을 넘어서는 가능성도 열 수 있다. 정보 접근의 민주화, 대안적 공동체 형성이 새로운 기투의 지평을 열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내던져짐과 기투의 관계는 추가 탐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 비판적 검토
### 구체성의 문제
내던져짐 분석은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이데거]]는 내던져짐의 형식적 구조를 제시하지만, 구체적 사회적 조건—계급, 젠더, 인종—과의 연관은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내던져짐은 사회적 구조의 물질적 토대를 간과한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1949)에서 이 공백을 채우려 했다. 여성이 "타자"로 던져져 있다는 것, 그 내던져짐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분석했다. 여성 해방은 던져진 조건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내던져짐 개념의 사회적 확장이다.
### 신체성의 문제
내던져짐 분석에서 신체의 역할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현존재]]가 특정 신체를 가지고 던져져 있다면, 이 신체성은 어떻게 내던져짐의 구조에 들어오는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이 공백을 신체 현상학으로 채우려 했다.
드레이퍼스의 '숙련된 대처' 해석은 신체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하이데거]]의 원래 의도에 충실한지는 논쟁적이다. 내던져짐이 순전히 존재론적 구조인지, 신체화된 경험을 포함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 관찰 노트
내던져짐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내던져짐과 기투의 이중 구조가 인상적이다. [[현존재]]는 수동적으로 던져져 있으면서 능동적으로 기투한다. 이 이중성이 인간 실존의 독특성을 포착한다. 순수한 수동성(완전한 결정론)도 순수한 능동성(절대적 자유)도 [[현존재]]의 구조를 기술하지 못한다.
둘째, 내던져짐이 '죄책'과 연결되는 점이 주목된다. 선택하지 않은 존재를 떠맡아야 하는 부담, 근거 없는 근거라는 존재론적 조건이 죄책을 구성한다. 이것은 도덕적 죄책감과 다르지만, 도덕적 책임의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처해 있음과 기분을 통한 내던져짐의 개시가 흥미롭다. 내던져짐은 이론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통해 체험된다. 특히 [[불안]]이 내던져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분석은, 정동과 존재론의 연결을 보여준다.
넷째, 내던져짐 개념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이 관찰된다. [[하이데거]]의 원래 분석은 개인적 차원에 집중하지만, [[보부아르]], [[사르트르]], 이후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사회적 억압의 분석에 적용했다. 던져진 조건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통찰은 해방의 기획에 중요하다.
다섯째, [[하이데거]]의 정치적 실패와 내던져짐 개념의 관계는 미해결이다. 운명과 공동운명 개념을 통해 내던져짐을 민족적 역사성과 연결한 것이 나치즘과의 친화성을 낳았다는 비판이 있다. 개념 자체의 문제인지, 정치적 적용의 문제인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내던져짐은 변경 가능한가, 불변적인가? 사회적 조건은 내던져짐의 일부인가, 그것과 구별되는가? 내던져짐을 "떠맡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인가? 디지털 기술은 내던져짐의 구조를 변형시키는가? 그리고 내던져짐 개념은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과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
## 같이 읽기
### 핵심 저작
- [[존재와 시간]] - 내던져짐 분석의 출처
-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내던져짐과 [[시간성]]의 심화
- 존재와 무 - [[사르트르]]의 사실성 개념
### 근본 개념
- [[현존재]] - 내던져진 존재
- [[세계-내-존재]] - 내던져짐이 드러나는 전체 현상
- [[염려]](Sorge) - 내던져짐을 계기로 포함하는 존재 구조
- 사실성 - 내던져짐의 존재론적 명칭
- [[기투]](Entwurf) - 내던져짐과 대립하면서 통일되는 계기
### 관련 개념
- [[처해 있음]](Befindlichkeit) - 내던져짐의 개시 방식
- 기분(Stimmung) - 내던져짐을 드러내는 정동
- [[불안]] - 내던져짐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근본 기분
- 죄책(Schuld) - 내던져짐의 존재론적 부담
- [[시간성]] - 내던져짐의 시간적 의미(기재)
- [[역사성]] - 내던져짐의 역사적 차원
### 철학적 맥락
- [[하이데거]] - 내던져짐 개념의 창안자
- [[사르트르]] - 사실성과 유기로 전유
- [[보부아르]] -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
- [[메를로-퐁티]] - 신체적 차원의 보완
- 드레이퍼스 - 숙련된 대처로 해석
### 현대 사회와의 연결
- [[성과주의]] - 던져진 조건의 자기착취적 전유
- [[회사]] - 내던져진 조건이 구조화된 공간
- [[학교]] - 사회적 내던져짐이 강화되는 제도
- 디지털 사회 - 기술적으로 매개된 내던져짐
### 심리치료적 적용
- 현존재분석(Daseinsanalyse) - 빈스방거와 보스
- 로고테라피 - 프랭클의 의미치료
- 실존주의 상담 - 내던져짐의 치료적 탐구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