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조리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부조리의 철학적 정의]] > - [[#관계로서의 부조리]] > - [[#부조리의 감각]] > 3. [[#부조리의 계보]] > - [[#키르케고르 - 신앙의 역설]] > - [[#카뮈 - 반항하는 인간]] > - [[#네이글 - 아이러니의 철학]] > 4. [[#부조리에 대한 응답들]] > - [[#자살]] > - [[#신앙의 도약]] > - [[#반항]] > - [[#아이러니]] > 5. [[#부조리와 인접 개념]] > - [[#허무주의와의 차이]] > - [[#실존주의와의 관계]] > 6. [[#부조리극]] > 7. [[#관찰자의 기록]] > 8. [[#같이 읽기]] ## 개요 **부조리**(不條理, absurdity)는 철학에서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부조리 개념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사용된다. 첫째, 철학적 부조리—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본능과 세상의 근원적 무의미함 사이의 간극. 둘째, 예술적 부조리—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과 부조리 문학에서 나타나는 표현 양식. 이 두 맥락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부조리라는 용어를 철학적으로 중요하게 사용한 것은 쇠렌 키르케고르에게서 시작되지만, 부조리주의(absurdism)라는 독자적 철학 사조는 알베르 [[카뮈]]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시지프 신화》]](1942)에서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라고 선언했다. 토마스 네이글은 1971년 논문 「부조리」에서 [[카뮈]]의 개념을 재해석하며 현대적 논의를 촉발했다. ## 부조리의 철학적 정의 ### 관계로서의 부조리 부조리는 세계의 속성이 아니다. 인간 정신의 속성도 아니다. 부조리는 관계의 속성이다—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 [[카뮈]]에 따르면, "인간이나 세계가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모순되는 두 대립항의 공존 상태, 즉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부조리한 상태이다." 부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계의 모습과 실제 세계의 모습" 두 가지의 결합에서 기원한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카뮈]]에게 부조리란 세계나 인간 정신이 아니라 "정신이 세계를 파악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인간은 왜 사는지,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세계는 침묵한다. 이 침묵이 부조리의 본질이다. 네이글은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를 정의한다. 그에게 부조리는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중요성(주관적 관점)과 그것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우연적으로 보이는가 사이의 불일치"이다. 우리는 삶을 진지하게 살면서도, 동시에 그 진지함을 의문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이 이중성이 부조리를 낳는다. ### 부조리의 감각 부조리는 추상적 논증 이전에 감각으로 다가온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에 대한 앎 이전에, 부조리에 대한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비합리성, 인간의 향수(노스탤지어), 그리고 이 둘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 이것이 반드시 끝맺어야 할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다." 어느 날 문득 일상의 반복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습관과 타성으로 진실에의 욕망을 속이며 살아가던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죽음에 질문을 던지는 자는 당연히 삶에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대답 없는 이 물음들로 인해 인간에게는 '부조리의 감수성'이 태동한다. ## 부조리의 계보 ### 키르케고르 - 신앙의 역설 "부조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최초의 사상가는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로 알려져 있다. 키르케고르에게 부조리는 기독교 신앙의 역설과 연결된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 영원한 것이 시간 속에 들어왔다는 것—이것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조리이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유머는 신앙 이전의 마지막 실존적 자각 단계를 구성한다."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은 유머를 통해 그것을 견디거나, 신앙의 도약을 통해 부조리를 수용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부조리했지만 아브라함은 신앙으로 그것을 수용했다. 그러나 [[카뮈]]는 키르케고르의 신앙의 도약을 "철학적 자살"로 비판한다. 부조리를 인식하고서 초월적인 것에 호소하는 것은 부조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 카뮈 -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1913-1960)는 부조리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이다. 그의 [[시지프 신화|《시지프 신화》]](1942)는 부조리 철학의 기초 문헌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제1의 진리"로 선언하며, 모든 철학적 사유는 이 진리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지프 신화|《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진실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한 가지, 즉 자살의 문제이다." 삶이 무의미하다면, 삶을 계속할 이유가 있는가? [[카뮈]]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카뮈]]의 답은 자살이 아니다.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반항(révolte)—이 [[카뮈]]의 응답이다. 시지프는 바위를 굴려 올리는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카뮈]]는 결론짓는다. 흥미롭게도 [[카뮈]]는 부조리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것을 후회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지프 신화|《시지프 신화》]] 이후 그의 관심은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그리고 연대로 이동했다. ### 네이글 - 아이러니의 철학 토마스 네이글(1937- )은 1971년 논문 「부조리」(The Absurd)에서 [[카뮈]]의 개념을 재해석했다. 네이글에게 부조리는 인간 의식의 본질적 특성이다. 네이글은 "먼 미래에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라는 식의 부조리 논증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이 논증의 귀결은 "먼 미래의 일도 지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부조리를 입증하지 못한다. 네이글이 보기에 부조리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인간은 삶을 진지하게 살면서도 동시에 그 진지함을 의심할 수 있다. 이 이중 시점—참여하면서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조리를 낳는다. "부조리한 것은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런 시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것—그것도 우리의 궁극적 관심사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바로 그 사람이기를 멈추지 않으면서—이다." 네이글의 응답은 [[카뮈]]의 반항과 다르다. 그는 아이러니와 가벼움을 제안한다. 부조리는 실존적 위기가 아니라 인간 삶의 희극적 측면에 대한 초연한 인식이어야 한다. ## 부조리에 대한 응답들 ### 자살 부조리주의가 제기하는 근본 질문: 삶이 무의미하다면, 삶을 끝내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은가? [[카뮈]]는 자살을 부조리에 대한 패배로 본다. 자살은 부조리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조리를 인정하고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긴장에서 발생한다. 자살은 이 긴장의 한 항(인간)을 제거함으로써 부조리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그러나 이것은 해결이 아니다. ### 신앙의 도약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응답이다. 부조리를 인식한 후, 이성을 넘어서는 신앙의 도약을 통해 초월적 의미에 접근한다. 야스퍼스의 신비주의, 셰스토프의 부조리 수용도 이 계열에 속한다. [[카뮈]]는 이것을 "철학적 자살"로 비판한다. 지성을 희생하여 형이상학적 위안을 얻는 것.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이다. [[카뮈]]에 따르면, 실존철학자들—키르케고르, 야스퍼스, [[하이데거]]—은 부조리를 인식했으면서도 초월이나 신에게로 도약함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 비판은 [[시지프 신화|《시지프 신화》]]의 핵심 논증 중 하나이다. ### 반항 [[카뮈]]가 제시한 응답이다.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반항은 부조리를 해결하지 않는다. 부조리는 인간 조건이며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반항은 부조리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주장한다. 시지프는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계속한다.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운명보다 강하다. [[카뮈]]는 반항에서 연대로 나아간다. 부조리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주가 우리에게 무의미한 것은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우리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연대가 있다." [[페스트|《페스트》]]에서 이 연대는 역병과 싸우는 사람들의 협력으로 구체화된다. ### 아이러니 네이글이 제시한 응답이다. [[카뮈]]의 반항이 영웅적 대결이라면, 네이글의 아이러니는 초연한 수용이다. 부조리는 인간 의식의 본질적 특성이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인식할 조건이다. 네이글에 따르면, 부조리에 대한 적절한 응답은 "반항이나 체념이 아니라, 인생의 모순에 대한 초연한 유머"이다. 우리는 삶을 진지하게 살면서도, 동시에 그 진지함이 객관적으로 근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식은 위기가 아니라 해방이 될 수 있다. ## 부조리와 인접 개념 ### 허무주의와의 차이 부조리주의와 [[허무주의]]는 종종 혼동되지만 다른 개념이다. **[[허무주의]]**(nihilism)는 객관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의미를 구성하려는 시도도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삶에는 의미가 없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부조리주의**(absurdism)는 의미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세계의 침묵 사이의 충돌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 충돌에 굴복하지 않는다. [[카뮈]]는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절망이나 자살 대신 "반항적 인간"의 길을 제시한다. 요약하면: - 허무주의: 의미가 없다, 의미를 만들려는 시도도 헛되다 - 부조리주의: 내재적 의미가 없다, 의미에 대한 추구와 부재 사이의 충돌이 있다, 그러나 이 충돌 속에서 삶을 긍정할 수 있다 ### 실존주의와의 관계 부조리주의는 실존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로 요약된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세계에 던져지며, 자유와 책임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 [[사르트르]]가 대표적이다. **부조리주의**는 실존주의의 출발점—내재적 의미의 부재—을 공유하지만, 의미 창조의 가능성에 대해 더 회의적이다. [[카뮈]]는 실존주의를 비판하며, 특히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하이데거]]가 부조리를 초월로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카뮈]]는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시지프 신화》는 부조리를 인식한 후 초월적 의미로 도약하는 실존주의적 해법에 대한 비판이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를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은 초월이나 의미 창조가 아니라 반항이다. ## 부조리극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은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연극 양식이다. 마틴 에슬린이 1961년 저서 《부조리 연극》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대표 작가로는 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 1953), 외젠 이오네스코(《대머리 여가수》, 1950), 장 주네, 해럴드 핀터 등이 있다. 부조리극의 특징: - 유기적인 플롯이나 줄거리의 부재 - 비이성적이고 자기모순적인 등장인물 - 의사소통의 혼란과 실패 - 언어의 한계에 대한 탐구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주인공은 그저 "고도"를 기다린다. 기다림 자체가 유일한 행동이자 사건이다.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이 반복되는 기다림은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형상화한다. 이오네스코는 영어를 공부하다가 언어 내의 모순을 발견했다고 한다. 모국어를 사용할 때는 보이지 않던 언어의 부조리가 낯선 외국어에서 드러났다. 이 경험이 부조리극의 출발점이 되었다. 부조리극은 철학적 부조리를 무대 위에서 체현한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의미 없는 세계의 충돌이 연극적 형식으로 표현된다. ## 관찰자의 기록 부조리 개념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점이 발견된다. 첫째, 부조리가 관계의 속성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간극이 부조리이다. 이 구분은 허무주의와 부조리주의를 가르는 핵심으로 보인다. 둘째, 부조리에 대한 응답들이 다양하다. 자살, 신앙, 반항, 아이러니—각각의 응답은 부조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카뮈]]의 반항은 영웅적이고, 네이글의 아이러니는 희극적이다. 어느 것이 더 적절한가—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불분명하다. 셋째, [[카뮈]]가 스스로를 부조리주의자로 규정받는 것을 후회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의 관심은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반항에서 연대로 이동했다. 부조리는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 부조리극이 철학적 부조리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 베케트와 이오네스코가 [[카뮈]]의 철학을 의식적으로 참조했는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유사한 인식에 도달했는지—이 질문은 흥미로운 탐구 주제이다. 다섯째, 부조리 논의에서 유머와 아이러니의 위치가 관찰된다. 키르케고르는 유머를 "신앙 이전의 마지막 실존적 자각 단계"로 보았다. 네이글은 아이러니를 부조리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한다. 부조리와 웃음의 관계—이것은 더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로 보인다. ## 같이 읽기 ### 주요 사상가 - [[카뮈]] - 부조리와 반항의 철학 - [[사르트르]] - 실존주의와 자유 - [[하이데거]] - 존재론적 현상학 - [[장 그르니에]] - 관조의 철학, 카뮈의 스승 ### 핵심 개념 - [[불안]] - 존재와 마주하는 근본 기분 - [[본래성]] - 일상에서 벗어난 실존 - 반항 - 부조리에 대한 응답 - [[허무주의]] - 의미의 부재 ### 주요 저작 - [[시지프 신화]] - 카뮈의 부조리 철학 - [[반항하는 인간]] - 반항의 철학적 분석 - [[이방인]] - 부조리한 인간의 초상 - 고도를 기다리며 - 베케트의 부조리극 ### 관련 주제 - 부조리극 - 연극에서의 부조리 - 실존주의 - 관련 철학 사조 - [[허무주의]] - 대조되는 철학 입장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02 17:4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