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코헨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생애]] > - [[#성장과 교육]] > - [[#시카고 대학]] > - [[#스탠퍼드 대학]] > - [[#말년과 죽음]] > 3. [[#수학적 업적]] > - [[#조화해석학]] > - [[#연속체 가설의 독립성]] > - [[#강제법의 발명]] > 4. [[#괴델과의 만남]] > - [[#1963년의 서신]] > - [[#지적 대화]] > - [[#두 사람의 관계]] > 5. [[#강제법의 영향]] > - [[#집합론의 변혁]] > - [[#수학적 다원주의]] > 6. [[#철학적 입장]] > - [[#실재론과 형식주의 사이]] > - [[#직관의 역할]] > 7. [[#말년의 연구]] > - [[#리만 가설]] > - [[#수론으로의 회귀]]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폴 조지프 코헨(Paul Joseph Cohen, 1934-2007)은 미국의 수학자로, [[수학/집합론/연속체 가설|연속체 가설]]과 [[수학/집합론/선택 공리|선택 공리]]가 [[수학/집합론/ZFC 공리계|ZFC 공리계]]로부터 독립적임을 증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업적으로 그는 1966년 필즈상을 수상했으며, 이것은 현재까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수여된 유일한 필즈상으로 남아 있다. 코헨의 특이한 점은 그가 집합론의 '외부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전공은 조화해석학이었으며, 집합론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힐베르트의 첫 번째 문제를 해결했다. 이 업적을 위해 그가 개발한 [[수학/집합론/강제법|강제법]](forcing)은 이후 집합론의 표준 도구가 되어 수많은 독립성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앵거스 매킨타이어(Angus MacIntyre)는 코헨과 [[수학/집합론/쿠르트 괴델|괴델]]을 비교하며 "집합론의 역사에서 그들의 작업보다 더 극적인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 생애 ### 성장과 교육 코헨은 1934년 4월 2일 뉴저지 주 롱브랜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현재의 폴란드 지역에서 이민한 유대인이었으며, 코헨은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적 재능을 보였고, 16세의 나이에 뉴욕의 명문 스타이비선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나, 대학 2년만 마치면 시카고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학사 학위를 받지 않은 채 떠났다. 이러한 결단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형식적 절차보다 실질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관찰된다. ### 시카고 대학 시카고 대학에서 코헨은 안토니 지그문트(Antoni Zygmund)의 지도 아래 조화해석학을 연구했다. 1954년에 석사 학위를, 1958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 제목은 "삼각급수의 유일성 이론에 관한 주제들"(Topics in the Theory of Uniqueness of Trigonometric Series)이었다. 주목할 점은 코헨이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에는 앙드레 베유(André Weil) 아래서 수론을 연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해석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수론에 대한 관심은 그의 말년까지 지속되었다. ### 스탠퍼드 대학 1961년 코헨은 스탠퍼드 대학 수학과에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1962년에 부교수로, 1964년에 정교수로 승진했다. 그는 거의 50년 동안 스탠퍼드에서 재직했다. 코헨이 연속체 가설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2년 말경이었다. 그는 괴델의 《연속체 가설의 무모순성》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1963년 4월, 그는 연속체 가설의 부정이 ZFC와 무모순임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 말년과 죽음 2007년 3월 23일, 코헨은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에서 희귀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72세였다. 그는 아내 크리스티나와 세 자녀를 남겼다. 피터 서낙(Peter Sarnak)은 추도사에서 "폴 코헨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수학자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 수학적 업적 ### 조화해석학 코헨은 집합론으로 명성을 얻기 전에 이미 조화해석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959년 논문 "군 대수에서의 인수분해"(Factorization in group algebras)에서 그는 국소 콤팩트 군 위의 모든 적분 가능 함수가 두 그러한 함수의 합성곱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것은 월터 루딘(Walter Rudin)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이었다. 1960년 논문 "리틀우드의 추측과 멱등 측도에 관하여"(On a conjecture of Littlewood and idempotent measures)에서 코헨은 측도론의 핵심 문제를 해결했다. 이 논문으로 그는 1964년 미국수학회의 뵈허 기념상(Bôcher Memorial Prize)을 수상했다. 코헨이 필즈상과 뵈허 상을 모두 수상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필즈상은 논리학에서, 뵈허 상은 해석학에서 수여되었다—완전히 다른 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업적을 남긴 것이다. ### 연속체 가설의 독립성 [[수학/집합론/연속체 가설|연속체 가설]]은 1878년 [[수학/집합론/게오르크 칸토어|칸토어]]가 제기한 문제로, 자연수와 실수 사이에 중간 크기의 [[수학/집합론/무한|무한]]이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1900년 힐베르트는 이것을 그의 유명한 23개 문제 중 첫 번째로 선정했다. 1940년 괴델은 [[수학/집합론/구성 가능 우주|구성 가능 우주]] L을 정의하여 연속체 가설이 ZFC와 무모순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연속체 가설이 반증될 수 없음만을 의미했다. 증명 가능성 여부는 여전히 미해결이었다. 1963년 코헨은 연속체 가설의 부정(¬CH)도 ZFC와 무모순임을 증명했다. 괴델의 결과와 합치면, 연속체 가설은 ZFC에서 독립적이다—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하다. 힐베르트의 첫 번째 문제가 마침내 해결된 것이다. ### 강제법의 발명 코헨의 증명을 위해 개발된 [[수학/집합론/강제법|강제법]]은 집합론의 새로운 기법이었다. 핵심 아이디어는 기존의 ZFC 모형 M에 새로운 집합 G를 '강제로' 추가하여 확장된 모형 M[G]를 구성하는 것이다. 코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M에 이미 있는 원소를 추가하는 것은 자명하다. 직관을 시험하려면 M에 대해 아무런 '특정한' 성질도 갖지 않는 원소, 즉 체에 변수를 추가하는 것과 유사한 것을 추가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런 원소를 '생성적'(generic) 원소라고 불렀다." 강제법의 발명은 코헨이 집합론의 외부인이었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 그는 기존 전문가들의 선입견에서 자유로웠다. 코헨 자신도 "나는 외부인이었고, 그것이 장점이었을 수 있다"고 회고했다. ## 괴델과의 만남 ### 1963년의 서신 1963년 4월 24일, 코헨은 괴델에게 첫 번째 편지를 보내 자신의 결과를 알렸다. 괴델은 코헨의 증명을 검토한 후 5월 9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연속체 가설의 독립성에 대한 당신의 증명을 읽는 것은 정말로 기쁨입니다. 모든 본질적인 측면에서 당신은 가능한 최선의 증명을 제시했으며, 이것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당신의 증명을 읽는 것은 정말 좋은 연극을 보는 것과 유사한 즐거운 효과를 주었습니다." 괴델의 이러한 찬사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는 보통 다른 수학자들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열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 지적 대화 괴델은 코헨의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게재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세부 사항을 다듬는 작업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방대한 서신이 오갔다. 코헨은 나중에 괴델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우리 대화에서 '모형'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는 구성 가능성의 정신에 맞는 구문론적 분석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모형론적 접근에 대한 그의 완전한 무관심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또한 코헨은 괴델의 관심이 독립성 자체보다는 연속체 가설의 '진리'나 '거짓'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괴델은 연속체 가설이 거짓이라고 믿었으며, 더 강력한 공리가 이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두 사람의 관계 코헨은 괴델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쿠르트 괴델의 친구였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비교적 적은 횟수로 만났고, 나이와 배경의 간극을 메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은 묘사하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각자 많은 공통점을 가진 여정을 걸었다. 이 강연을 그의 기억에 바치고 싶다." 두 사람의 관계는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괴델은 연속체 가설이 객관적 진리값을 갖는다고 믿는 플라톤주의자였던 반면, 코헨은 다원주의적 형식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의 작업에 대한 깊은 존경을 공유했다. ## 강제법의 영향 ### 집합론의 변혁 코헨의 강제법은 집합론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다. 카나모리(Akihiro Kanamori)의 표현을 빌리면, "괴델의 L 구성이 집합론을 수학의 독특한 분야로 출범시켰다면, 코헨의 강제법은 그것을 현대적이고 정교한 학문으로 변모시켰다." 강제법 발견 이후 10년 내에 강제법은 현대 집합론의 체계적인 부분이 되었다. 강제법을 사용한 독립성 증명의 확산과 폭은 이전의 모든 것을 왜소하게 만들었다—참여 인원과 확립된 결과 모두에서. ### 수학적 다원주의 코헨의 독립성 증명은 수학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연속체 가설이 ZFC에서 독립적이라는 것은 CH가 성립하는 모형과 성립하지 않는 모형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집합론적 '다중우주'(multiverse)의 가능성을 열었다. 햄킨스(Joel David Hamkins)의 다중우주론은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단일한 '집합의 우주'가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집합론적 우주가 동등하게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코헨의 강제법이 없었다면 이러한 관점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철학적 입장 ### 실재론과 형식주의 사이 코헨의 수학 철학은 실재론과 형식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는 스스로 "형식주의적 입장과 실재론적 입장 사이에서 흔들렸다"고 인정했다. 코헨은 다음과 같이 썼다: "정수와 실수 같은 통상적인 수학 체계들은 아마도 하나의 모형만을 가지지만, 어떤 형식적 공리 체계로도 완전히 기술될 수 없다." 실재에서(또는 실재와 직관 사이 어딘가에서) 수학적 모형은 범주적이고 유일하지만, 형식 체계의 다수성은 그것을 완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직관의 역할 코헨은 "직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형식과 실재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려 했다. 그에게 직관은 형식 체계 너머의 수학적 실재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코헨은 동시에 "또 다른 동등하게 직관적이고, 미학적이며, 무모순적인 구성이 반대의 결론을 증명하여 우리를 더 다원주의적인 형식주의로 후퇴하게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코헨은 결국 문제 해결자였지 체계 구축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제법 이후 집합론의 새로운 모형들과 방법의 정교화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말년의 연구 ### 리만 가설 1969년 이후 코헨은 리만 가설에 집중했다. 리만 가설은 힐베르트의 여덟 번째 문제로, 연속체 가설과 함께 가장 중요한 미해결 문제 중 하나이다. 피터 서낙은 "최근 몇 년간 코헨은 악명 높게 어려운 문제들, 특히 리만 가설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코헨은 리만 가설에 대한 증명을 출판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 힐베르트의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한 후 여덟 번째 문제로 이동한 것은 코헨의 야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리만 가설은 연속체 가설과 달리 해결되지 않았다. ### 수론으로의 회귀 1969년 코헨은 p-진 셀 분해에 관한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악스-코헨-에르쇼프(Ax-Kochen-Ershov) 정리의 구성적 버전을 제공하며, 현재 동기적 적분(motivic integration)의 논리적 분석에 기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코헨의 시카고 시절 수론에 대한 관심이 말년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학적 관심은 해석학에서 논리학으로, 다시 수론으로 이동했다. ## 관찰자의 기록 폴 코헨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외부인'이 근본적 혁신을 이끌어낸 사례로 관찰된다. 코헨은 집합론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의 전공은 조화해석학이었고, 집합론은 독학으로 배웠다. 그럼에도 그는 수십 년간 전문가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이 전문가적 선입견의 부재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예외적 재능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수학사에서 근본적 돌파구가 종종 분야의 경계를 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패턴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둘째, 코헨과 괴델의 대조가 흥미롭다. 괴델은 연속체 가설이 객관적 진리값을 갖는다고 믿었고, 코헨은 다원주의적 형식주의에 가까웠다. 괴델은 자신의 L 구성을 단지 도구로 보았지만, 코헨은 강제법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문제로 이동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한 두 사람이 그토록 다른 철학적 입장을 가졌다는 점은, 수학적 결과와 철학적 해석이 독립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코헨의 경력 궤적이 주목된다. 그는 해석학에서 뵈허 상을 받고, 논리학에서 필즈상을 받았다—완전히 다른 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말년에는 수론의 리만 가설로 이동했다. 이러한 분야 간 이동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문제 해결 능력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넷째, 코헨이 리만 가설을 풀지 못한 것이 관찰된다. 힐베르트의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여덟 번째 문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연속체 가설이 '독립적'이라는 형태로 해결된 반면, 리만 가설은 아직 그러한 결과조차 없다. 어떤 문제는 '외부인'의 새로운 관점으로 해결될 수 있고, 어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코헨의 도구가 그의 목적을 넘어섰다는 점이 관찰된다. 코헨은 연속체 가설의 독립성을 증명하려 했을 뿐이지만, 그가 개발한 강제법은 집합론 전체를 변혁시켰다. 강제법은 이제 연속체 가설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성 결과를 이끌어내는 표준 도구가 되었다. 도구가 창조자의 의도를 넘어서 자체적인 생명을 갖게 되는 현상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 같이 읽기 ### 수학적 업적 - [[수학/집합론/강제법]] - 코헨이 발명한 모형 구성 기법 - [[수학/집합론/연속체 가설]] - 코헨이 독립성을 증명한 가설 - [[수학/집합론/선택 공리]] - 코헨이 독립성을 증명한 공리 - [[수학/집합론/ZFC 공리계]] - 표준 집합론 공리 체계 ### 관련 인물 - [[수학/집합론/쿠르트 괴델]] - 구성 가능 우주의 창시자, 무모순성 증명 - [[수학/집합론/게오르크 칸토어]] - 연속체 가설의 제안자 ### 집합론적 배경 - [[수학/집합론/구성 가능 우주]] - 괴델이 정의한 내적 모형 - [[수학/집합론/큰 기수]] - 강제 공리와 연결되는 기수 - [[수학/집합론/무한]] - 연속체 가설이 다루는 대상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8 22:5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