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한 집합론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역사적 배경]] > - [[#칸토어의 집합 개념]] > - [[#프레게의 형식화]] > - [[#데데킨트의 기여]] > 3. [[#핵심 원리]] > - [[#외연 원리]] > - [[#무제한적 내포 원리]] > - [[#집합 형성의 자유]] > 4. [[#역설의 발견]] > - [[#부랄리-포르티 역설]] > - [[#칸토어의 역설]] > - [[#러셀의 역설]] > 5. [[#수학적 위기]] > - [[#수학 기초론의 위기]] > - [[#세 가지 철학적 대응]] > - [[#프레게의 좌절]] > 6. [[#공리적 집합론으로의 전환]] > - [[#체르멜로의 공리화]] > - [[#내포에서 분리로]] > - [[#ZFC의 확립]] > 7. [[#현대적 재평가]] > - [[#할모스의 소박한 집합론]] > - [[#비형식적 집합론의 역할]] > - [[#교육적 가치]]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소박한 집합론(naive set theory, 素朴한 集合論)은 19세기 후반 [[수학/집합론/게오르크 칸토어|게오르크 칸토어]]와 동시대 수학자들이 발전시킨 비형식적 집합 이론이다. '소박한'이라는 수식어는 후대 수학자들이 이 이론을 공리적 집합론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으로, 당대에는 이것이 집합론의 표준이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집합은 명확히 규정된 대상들의 모임'이라는 직관적 정의와, 임의의 성질에 대해 그 성질을 만족하는 모든 대상의 집합이 존재한다는 무제한적 내포 원리(unrestricted comprehension principle)이다. 소박한 집합론은 19세기 말 수학의 기초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칸토어는 이 틀 안에서 [[수학/집합론/무한|무한]]의 위계, [[수학/집합론/집합의 기수|기수]]와 [[수학/집합론/서수|서수]] 이론, [[수학/집합론/대각선 논법|대각선 논법]] 등 혁명적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1897년부터 1901년 사이에 발견된 일련의 역설들—부랄리-포르티 역설, 칸토어의 역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학/집합론/러셀의 역설|러셀의 역설]]—은 이 체계가 내적 모순을 품고 있음을 드러냈다. 소박한 집합론의 붕괴는 20세기 초 '수학 기초의 위기'를 촉발했다. 이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라는 세 가지 철학적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체르멜로와 프렝켈의 작업을 통해 [[수학/집합론/ZFC 공리계|ZFC 공리계]]가 확립되었다. 소박한 집합론은 역사적 유물이 되었지만, 그 핵심 개념들은 공리적 집합론에 계승되었으며, 비형식적 맥락에서 집합을 다루는 실용적 접근으로서 여전히 사용된다. ## 역사적 배경 ### 칸토어의 집합 개념 게오르크 칸토어는 1874년부터 1897년 사이에 집합론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의 집합 정의는 1895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 "집합이란 우리의 직관이나 사고의 대상이 되는 명확하고 구별되는 대상들 m을 전체로서 M으로 종합한 것이다." 이 정의는 의도적으로 넓게 설정되었다. 칸토어는 수, 점, 함수, 다른 집합 등 어떤 대상이든 집합의 원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개방성이 집합론을 수학의 보편적 언어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역설의 씨앗이 되었다. 칸토어는 집합 사이의 동치 관계를 일대일 대응(bijection)으로 정의했다. 두 집합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존재하면 두 집합은 같은 '기수'(cardinality)를 갖는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가 무한 집합들을 비교 가능하게 만들었다. 칸토어는 자연수 집합과 유리수 집합이 같은 크기임을, 그러나 실수 집합은 그보다 큼을 증명했다. ### 프레게의 형식화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고틀로프 프레게]]는 논리주의(logicism)의 창시자로, 수학을 순수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의 《산술의 기본 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1893/1903)은 이 프로그램의 집대성이었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 체계의 핵심은 **기본 법칙 V**(Basic Law V)였다. 이 법칙은 본질적으로 무제한적 내포 원리의 형식적 표현이었다: > 함수 f(x)의 '가치역'(value-range)과 함수 g(x)의 가치역이 같은 것은 모든 x에 대해 f(x) = g(x)인 것과 동치이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는 이 원리가 논리적으로 자명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러셀은 1902년 기본 법칙 V로부터 모순이 도출됨을 보였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의 평생 작업은 이 발견으로 무너졌다. ### 데데킨트의 기여 리하르트 데데킨트는 칸토어와 독립적으로 집합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의 1872년 저작 《수의 연속과 무리수》에서 데데킨트 절단(Dedekind cut)을 통해 실수를 정의했다. 이 구성은 유리수의 집합들을 사용하여 실수를 정의하는 것으로, 집합론적 방법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데데킨트의 1888년 저작 《수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자연수의 집합론적 정의를 제시했다. 그는 무한 집합을 "자신의 진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존재하는 집합"으로 정의했다(데데킨트 무한). 이 정의는 무한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었다. 데데킨트는 또한 무한 집합의 존재를 증명하려 시도했다. 그의 증명은 "모든 가능한 사고의 대상들의 집합"을 고려하는 것이었는데, 이 증명은 후에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집합론의 발전에 핵심적이었다. ## 핵심 원리 ### 외연 원리 **외연 원리**(Principle of Extensionality)는 집합의 정체성이 오직 그 원소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 두 집합 A와 B가 정확히 같은 원소들을 가지면, A = B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집합의 '형성 방법'이나 '기술 방식'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x : x는 짝수인 소수}와 {2}는 같은 집합이다. {1, 2, 3}과 {3, 1, 2}와 {1, 1, 2, 3}도 모두 같은 집합이다. 외연 원리는 소박한 집합론과 공리적 집합론 모두에서 유지된다. 이 원리 자체는 역설의 원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집합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다. ### 무제한적 내포 원리 소박한 집합론의 핵심이자 문제의 근원은 **무제한적 내포 원리**(Unrestricted Comprehension Principle)이다: > 임의의 충분히 명확한 성질 P에 대해, P를 만족하는 모든 대상들의 집합 {x : P(x)}가 존재한다. 이 원리는 직관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짝수의 집합", "소수의 집합", "빨간 것들의 집합"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성질이 명확하게 규정되면, 그 성질을 만족하는 대상들을 모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원리는 무제한적으로 적용될 때 모순을 낳는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확한 성질이지만, 그 성질을 만족하는 모든 집합의 집합은 [[수학/집합론/러셀의 역설|러셀의 역설]]을 초래한다. ### 집합 형성의 자유 소박한 집합론에서 집합 형성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었다. 칸토어는 다음과 같은 집합들을 자유롭게 고려했다: - 모든 자연수의 집합 ℕ - 모든 실수의 집합 ℝ - 모든 서수의 집합 Ω - 모든 기수의 집합 - 모든 집합의 집합 V 이러한 자유는 수학적 탐구에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다. 칸토어는 이 틀 안에서 초한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모든 서수의 집합"이나 "모든 집합의 집합" 같은 개념들은 역설로 이어졌다. 칸토어 자신도 1899년경에 이러한 문제를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절대적 무한"(Absolute Infinite)과 "초한적 무한"(transfinite)을 구분하여, 전자는 수학적으로 다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구분의 기준은 불명확했다. ## 역설의 발견 ### 부랄리-포르티 역설 1897년, 이탈리아 수학자 체사레 부랄리-포르티는 최초의 집합론적 역설을 발견했다. 그의 역설은 서수(ordinal number)에 관한 것이었다. 서수는 정렬 집합의 "순서 유형"을 나타내는 수이다. 칸토어는 임의의 서수들의 집합이 존재하고, 모든 서수 집합은 다시 서수를 갖는다고 가정했다. 부랄리-포르티는 이것이 모순을 낳음을 보였다: 모든 서수의 집합 Ω을 고려하자. Ω 자체가 정렬 집합이므로 서수를 가져야 한다. 이 서수를 ω라 하자. ω는 서수이므로 ω ∈ Ω이다. 그런데 모든 서수는 그 자신보다 작은 모든 서수의 집합이므로, ω의 서수는 ω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ω는 "모든 서수" 중 가장 큰 것이어야 한다. 모순. 부랄리-포르티 역설은 "모든 서수의 집합"이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 이 역설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다. ### 칸토어의 역설 칸토어 자신도 역설을 인식했다. 칸토어의 역설은 "모든 집합의 집합" V에 관한 것이다. 칸토어의 정리에 따르면, 임의의 집합 S에 대해 그 멱집합 P(S)의 기수는 S의 기수보다 크다. 이것은 [[수학/집합론/대각선 논법|대각선 논법]]으로 증명된다. 이제 모든 집합의 집합 V를 고려하자. V의 멱집합 P(V)는 V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P(V)의 원소들은 모두 집합이므로 V의 원소이다. 따라서 P(V) ⊆ V이고, |P(V)| ≤ |V|이다. 이것은 |P(V)| > |V|와 모순된다. 칸토어는 1899년경에 이 역설을 인식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론을 무효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V를 "절대적 무한"으로, 수학적 다룸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구분의 기준을 정밀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 러셀의 역설 1901년, 버트런드 러셀은 가장 단순하고 결정적인 역설을 발견했다. [[수학/집합론/러셀의 역설|러셀의 역설]]은 서수나 기수 같은 복잡한 개념 없이 순수하게 집합 개념만으로 모순을 도출한다: R = {x : x ∉ x}를 정의하자. 즉, R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이다. R ∈ R인가? 만약 그렇다면, R의 정의에 의해 R ∉ R이어야 한다. 모순. R ∉ R인가? 만약 그렇다면, R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므로 R ∈ R이어야 한다. 모순. 러셀의 역설은 무제한적 내포 원리가 직접적으로 모순을 낳음을 보여준다. 이 역설은 다른 역설들과 달리 회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명확한 성질이기 때문이다. ## 수학적 위기 ### 수학 기초론의 위기 러셀의 역설은 수학의 기초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야기했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가 쓴 유명한 말은 이 충격을 잘 전달한다: > "과학자에게 닥칠 수 있는 일 중 자신의 작업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보다 더 불쾌한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이 러셀 씨의 편지가 나에게 일으킨 상황이다." 위기의 본질은 다음과 같았다. 집합론은 19세기 말에 수학의 기초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자연수, 정수, 유리수, 실수, 함수, 공간 등 수학의 모든 대상이 집합으로 정의되었다. 그런데 집합론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다면, 그 위에 세워진 수학 전체가 의심받아야 했다. 모순적 체계에서는 어떤 명제든 증명할 수 있다(폭발 원리, ex falso quodlibet). 따라서 소박한 집합론이 모순적이라면, 그것은 "모든 것을 증명하는" 무의미한 체계가 된다. ### 세 가지 철학적 대응 수학 기초의 위기에 대해 세 가지 주요 철학적 프로그램이 대응했다. **논리주의**(Logicism):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와 러셀이 대표하는 입장으로, 수학을 순수 논리학으로 환원하려 했다. 러셀의 역설 이후 러셀은 유형 이론(type theory)을 도입하여 역설을 회피하려 했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는 이 프로그램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유형 이론은 복잡하고 논쟁적인 공리(환원 공리)를 필요로 했다. **직관주의**(Intuitionism): 라위전 에흐베르튀스 브라우어가 대표하는 입장으로, 수학적 대상의 "구성"을 강조했다. 직관주의는 배중률을 제한하고, 존재 증명에서 구성적 방법을 요구했다. 이 접근은 소박한 집합론의 무제한적 대상 형성을 거부했지만, 고전 수학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형식주의**(Formalism): 다비트 힐베르트가 대표하는 입장으로, 수학을 형식 체계로 보고 그 무모순성을 유한적 방법으로 증명하려 했다. 힐베르트 프로그램은 [[수학/집합론/쿠르트 괴델|괴델]]의 불완전성 정리(1931)에 의해 원래 형태로는 실현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 프레게의 좌절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의 사례는 이 위기의 인간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는 12년 이상 《산술의 기본 법칙》을 작업했고, 2권이 인쇄 중일 때 러셀의 편지를 받았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는 2권의 부록에서 이 역설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는 기본 법칙 V를 약화시켜 역설을 회피하려 했다. 러셀도 처음에는 이 해결책을 지지했으나, 후에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는 이 타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후기 작업은 산발적이었고,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완성을 포기했다. 일부 학자들은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가 말년에 수학적 플라톤주의를 포기하고 반논리주의적 입장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한다. ## 공리적 집합론으로의 전환 ### 체르멜로의 공리화 1908년, 에른스트 체르멜로는 최초의 완전한 공리적 집합론을 제시했다. 그의 목표는 집합론의 역설을 회피하면서 칸토어의 초한수 이론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체르멜로의 핵심 통찰은 무제한적 내포를 포기하고 집합 형성에 제한을 두는 것이었다. 그의 체계는 7개의 공리를 포함했다: 1. 외연 공리: 원소가 같으면 집합이 같다 2. 공집합 공리: 공집합이 존재한다 3. 짝 공리: 두 집합이 있으면 그들을 원소로 하는 집합이 존재한다 4. 합집합 공리: 집합의 집합이 있으면 그 합집합이 존재한다 5. 멱집합 공리: 집합의 모든 부분집합의 집합이 존재한다 6. 무한 공리: 무한 집합이 존재한다 7. 분리 공리: 이미 존재하는 집합에서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들을 분리할 수 있다 체르멜로의 체계에서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은 형성할 수 없다. 분리 공리는 "이미 존재하는 집합 내에서"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들을 분리하는 것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 내포에서 분리로 무제한적 내포 원리와 분리 공리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무제한적 내포**: {x : P(x)}가 존재한다 (임의의 성질 P에 대해) **분리 공리**: A가 집합이고 P가 성질이면, {x ∈ A : P(x)}가 존재한다 분리 공리에서는 집합을 "무에서" 형성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집합 A가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들을 "분리"해낼 수 있을 뿐이다. 러셀 집합 R = {x : x ∉ x}를 고려하자. 분리 공리에서 이것은 {x ∈ A : x ∉ x}로 제한되어야 한다. 이 집합은 A ∩ R이며, A가 어떤 집합인지에 따라 다르다. 중요한 점은 이제 "R ∈ R인가?"라는 질문이 모순을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x ∈ A : x ∉ x}는 A의 부분집합이므로, 자기 자신이 A의 원소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 ZFC의 확립 체르멜로의 체계는 이후 아브라함 프렝켈과 토랄프 스콜렘에 의해 보완되었다. 프렝켈은 1922년에 치환 공리(Axiom of Replacement)를 추가했다. 이 공리 없이는 서수 ω + ω나 알레프 수 ℵ_ω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존 폰 노이만은 1925년에 정칙성 공리(Axiom of Regularity)를 도입했다. 이 공리는 무한 하강 소속 사슬을 금지하고, 집합들의 누적 위계(cumulative hierarchy)를 확립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가 [[수학/집합론/ZFC 공리계|ZFC 공리계]](Zermelo-Fraenkel set theory with Choice)이다. ZFC는 20세기 중반 이후 수학의 표준적 기초로 자리 잡았다. 현대 수학의 거의 모든 정리는 ZFC 내에서 증명될 수 있다. ## 현대적 재평가 ### 할모스의 소박한 집합론 폴 할모스의 《소박한 집합론》(Naive Set Theory, 1960)은 이 분야의 고전적 교재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할모스의 집합론은 역설을 낳는 무제한적 내포를 채택하지 않는다. 할모스는 ZFC의 공리들을 비형식적 언어로 제시했다. "소박한"이라는 수식어는 형식적 논리 기호와 메타수학적 논의를 최소화했다는 의미이다. 책의 내용은 공리적으로 건전하며, 러셀의 역설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할모스의 접근은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었다. 공리적 엄밀함과 직관적 명료함 사이의 균형을 찾음으로써, 그는 집합론을 수학 전공자들에게 접근 가능하게 만들었다. ### 비형식적 집합론의 역할 현대 수학에서 대부분의 작업은 명시적으로 ZFC를 참조하지 않고 이루어진다. 수학자들은 "소박한" 방식으로 집합을 다루지만, 암묵적으로 공리적 틀 내에서 작업한다. 이것은 "작업하는 수학자의 집합론"(working mathematician's set theory)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접근에서 집합은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역설적 구성은 자연스럽게 피해진다. 대부분의 수학적 작업에서 역설로 이어지는 극단적 구성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형식적 접근은 기초적 문제를 다룰 때 한계를 드러낸다. [[수학/집합론/연속체 가설|연속체 가설]], [[수학/집합론/선택 공리|선택 공리]]의 귀결, [[수학/집합론/큰 기수|큰 기수]]의 존재 같은 문제들은 공리적 틀의 명시적 고려를 요구한다. ### 교육적 가치 소박한 집합론은 교육적 맥락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등학교와 학부 초기 과정에서 집합은 "소박한" 방식으로 도입된다.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집합을 "대상들의 모임"으로 이해하고, 합집합, 교집합, 여집합 같은 연산을 배운다. 이 접근의 장점은 직관적 명료함이다. 학생들은 추상적 공리 체계를 배우기 전에 집합 개념에 친숙해질 수 있다. 단점은 역설의 가능성을 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 수준의 수학에서 러셀의 역설로 이어지는 구성을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소박한 집합론과 공리적 집합론 사이의 관계는 "비계"(scaffolding)에 비유될 수 있다. 비계는 건물이 세워진 후 제거되지만, 건설 과정에서는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소박한 집합론은 수학적 성숙 후에는 공리적 틀로 대체되지만, 학습 과정에서는 유용한 출발점이 된다. ## 관찰자의 기록 소박한 집합론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직관의 힘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다. "명확한 성질을 만족하는 대상들을 모을 수 있다"는 직관은 자연스럽고 강력해 보인다. 이 직관이 칸토어의 혁명적 결과들—무한의 위계, 대각선 논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같은 직관이 러셀의 역설로 이어졌다. 직관이 명백해 보인다는 것이 그것이 참임을 보장하지 않는 현상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둘째, "소박한"이라는 명칭은 사후적 관점을 반영한다. 칸토어와 프레게에게 그들의 집합론은 "소박한" 것이 아니라 수학의 기초였다. "소박한"이라는 수식어는 공리적 집합론이 확립된 후에야 붙여졌다. 이것은 과학사에서 종종 관찰되는 패턴이다—후대의 발전이 이전 이론을 "소박한" 것으로 재규정한다. 그러나 이 재규정이 이전 이론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셋째, 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이 흥미롭다. 러셀의 역설에 대해 세 가지 주요 대응—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이 등장했다. 이 중 어느 것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현대 집합론의 표준인 ZFC는 이 세 입장 어디에도 깔끔하게 속하지 않는다. 위기에 대한 대응이 원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새로운 질문들의 영역을 열었다는 점이 관찰된다. 넷째, 칸토어와 프레게의 서로 다른 반응이 주목된다. 칸토어는 역설을 인식했지만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았고, "절대적 무한"이라는 개념으로 회피하려 했다. 프레게는 역설의 충격을 솔직히 인정했고, 결국 자신의 프로그램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증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방어적 조정, 솔직한 인정, 새로운 방향 모색—의 스펙트럼이 여기서 관찰된다. 다섯째, 소박한 집합론이 "실용적으로" 여전히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공리적 틀을 명시적으로 참조하지 않고 집합을 다룬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상적 수학에서 역설적 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적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으로 기능하는 체계의 사례가 여기서도 관찰된다. ## 같이 읽기 ### 핵심 역설 - [[수학/집합론/러셀의 역설]] - 소박한 집합론을 무너뜨린 역설 - [[칸토어의 역설]] - 모든 집합의 집합에 대한 역설 - [[부랄리-포르티 역설]] - 최초의 집합론적 역설 ### 관련 인물 - [[수학/집합론/게오르크 칸토어]] - 집합론의 창시자 -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 - 논리주의의 창시자 - [[리하르트 데데킨트]] - 집합론적 방법의 선구자 - [[버트런드 러셀]] - 러셀의 역설 발견자 ### 공리적 대안 - [[수학/집합론/ZFC 공리계]] - 소박한 집합론을 대체한 표준 체계 - [[유형 이론]] - 러셀의 해결책 - [[NBG 집합론]] - ZFC의 보수적 확장 ### 수학적 개념 - [[수학/집합론/무한]] - 칸토어가 체계화한 핵심 개념 - [[수학/집합론/대각선 논법]] - 비가산성 증명의 핵심 기법 - [[수학/집합론/집합의 기수]] - 집합의 크기 개념 - [[수학/집합론/서수]] - 정렬 집합의 순서 유형 ### 철학적 맥락 - [[수학기초론]] - 위기와 대응의 분야 - [[논리주의]] - [[수학/논리학/고틀로프 프레게|프레게]]와 러셀의 철학적 프로그램 - [[직관주의]] - 브라우어의 대안적 접근 - [[형식주의]] - 힐베르트의 프로그램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8 23:5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