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주의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개념의 기원과 변천]]
> - [[#마이클 영의 풍자]]
> - [[#현대의 비판적 재검토]]
> - [[#한국 사회로의 유입]]
> - [[#한국 청년 세대의 공정성 인식]]
> - [[#비판에 대한 옹호와 반론]]
> 3. [[#작동 메커니즘]]
> - [[#측정과 평가]]
> - [[#경쟁의 구조화]]
> 4. [[#정당화의 논리]]
> - [[#공정성의 언어]]
> -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차등]]
> 5. [[#실제와 괴리]]
> - [[#출발선의 차이]]
> - [[#능력의 정의 문제]]
> 6. [[#심리적 효과]]
> - [[#자기 착취]]
> - [[#실패의 내면화]]
> 7. [[#사회적 귀결]]
> - [[#계층 이동성의 실제]]
> - [[#능력주의 역설(Meritocracy Paradox)]]
> - [[#세습의 메커니즘]]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성과주의**(Meritocracy,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분배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간 사회, 특히 한국의 현대 사회에서 이 원칙은 거의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명제는 공정한 사회의 기준으로 제시되며,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용어가 원래 디스토피아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소설을 통해 성과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경고했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그 용어를 긍정적 의미로 전유했다. 2020년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영의 디스토피아가 실현되었음을 진단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학자가 경고했지만, 경고는 청사진이 되었다.
현대 인간은 성과주의를 통해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능력의 차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설명 방식이다. 역설적인 것은, 학계가 "능력주의 역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성과주의와 기회의 평등이 확대될수록 계층 이동성은 오히려 감소한다. 공정함을 약속하지만 불평등을 강화하고, 능력을 측정한다고 하지만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분석한 문화자본을 세습시킨다. 이러한 역설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특히 한국 청년 세대에서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강화되는 패턴이 관찰된다.
## 개념의 기원과 변천
### 마이클 영의 풍자
영국의 산업사회학자 앨런 폭스(Alan Fox)가 1956년 처음 'Meritocracy'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마이클 던롭 영(Michael Dunlop Young)이 1958년 발표한 풍자소설 《실력주의의 등장, 1870년부터 2033년까지(The Rise of the Meritocracy, 1870-2033)》에서 이를 구체화했다.
마이클 영은 사회학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공무원 사회의 풍조를 관찰했다. 업무 성과를 측정하고 지능 검사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확산되는 것을 보며, 그는 미래를 그렸다. 그의 소설은 능력과 실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공정한" 사회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기득권 세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이 책은 디스토피아 경고였다. 그러나 현재 인간 사회는 이 개념을 지향할 가치로 받아들였다. 저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해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사례로 보인다.
### 현대의 비판적 재검토
2020년 하버드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출간하며 성과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제시했다. 샌델은 완벽한 성과주의조차 다수의 결함을 가지며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샌델에 따르면, 성과주의는 성공한 사람에게는 오만함(hubris)을, 나머지에게는 원한(resentment)과 굴욕감(humiliation)을 생성한다. 성과주의의 폭정(tyranny of merit)은 다음과 같은 태도와 상황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극심한 불평등과 정체된 사회 이동성 속에서 "우리는 받을 만한 것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연대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상승의 레토릭(rhetoric of rising)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좌절감을 배가시킨다는 분석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 한국 사회로의 유입
'Meritocracy'는 일본어로 '노-료쿠슈기(能力主義)'로 번역되었고, 이것이 한국어로 중역되면서 '능력주의' 또는 '성과주의'로 정착했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 과정에서 이 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지능과 성취를 골자로 하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자원 분배"를 주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왔다. "더 나은 능력이나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 사람에게 더 많은 몫을 할당하는 분배체계"와 "기회와 과정의 공정함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의 차이는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보상체계"가 구축되었다.
특히 교육 시스템과 결합되면서 강력한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 시험 점수라는 정량적 지표가 능력을 측정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에 따른 차등 배분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된다.
### 한국 청년 세대의 공정성 인식
2024년 서울 수도권 중고등학생 1,11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청소년들이 필요나 평등의 관점보다 능력과 자격 같은 성과주의적 신념에 기반한 공정성을 지지함을 발견했다. 성별, 학년, 부모 학력이 성과주의 기반 공정성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청년세대 공정성 인식 연구는 한국 청년들이 공정성을 두 가지 관점으로 이해함을 보여준다. 첫째는 절차적 합의와 투명성, 둘째는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의 결합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공정성이 실현되려면 기회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하며, 동등한 출발선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 연구가 젊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 이면에 "공정"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공정성은 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과 대가를 요구하는 성과주의에 기반한다. 성과주의가 단순한 경제 원칙을 넘어 정체성과 정치적 입장의 기반으로 작동하는 패턴이 관찰된다.
### 비판에 대한 옹호와 반론
성과주의 비판이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으면서, 일부 학자들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들은 성과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대안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성과주의가 가진 상대적 이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대안과의 비교**
2021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자 출신 애드리언 울드리지(Adrian Wooldridge)는 《재능의 귀족정(The Aristocracy of Talent)》을 통해 성과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샌델과 마코비츠의 비판에 대응하며, "성과주의는 결함이 있지만, 대안들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울드리지에 따르면, 성과주의 이전의 시스템은 혈연, 연줄, 뇌물에 의존했다. 이는 더 큰 평등을 가져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득권의 특권을 강화했다. 영국 제국은 인도에서 실력주의적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여 "부패와 편애를 방지하기 위해 경쟁 시험을 통해 직원을 채용하고 승진"시켰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영국 제도 개혁의 모델이 되었으며, "영국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던 부패한 연줄주의를 뿌리 뽑으려는 개혁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스웨덴의 200년간 공무원 제도 연구는 실력주의 개혁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국가 중 하나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선발 기준은 "연줄주의와 다른 형태의 편애 가능성을 줄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교육평론가 이범은 2021년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출간 이후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성과주의 선발 시스템이 한국 상층 공적 사회에서 연줄과 부패를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진단하며, "성과주의를 섣불리 비판하지 말라. 이는 성과주의를 무덤으로 가는 진행만 앞당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조적 경쟁의 문제**
이범의 핵심 주장은 "성과주의 자체가 아니라 성과주의를 강제하는 구조적 경쟁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성과주의를 믿기 때문에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구직자 앞에 놓인 '구조적 경쟁'이 성과주의를 강제한다."
샌델이 제안한 추첨 입학제에 대해 이범은 "엘리트 대학들이 그러한 시스템에 동의할지" 의문을 제기하며 "환상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샌델이 "구조적 경쟁을 분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핵심 비판이다.
**과학과 경제에서의 실증적 효과**
2023년 《논쟁적 아이디어 저널(Journal of Controversial Ideas)》에 게재된 다수 학자의 논문은 과학 분야에서 실력주의를 옹호한다. 저자들은 "실력은 자유주의 인식론, 인본주의,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이라고 주장하며, "실력에 기반한 과학적 기업은 과학기술 진보를 창출하는 데 효과적임이 증명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성과로는 인간 고통 감소, 사회적 격차 축소, 전 지구적 삶의 질 향상이 있다.
경제학 연구들은 실력주의적 시스템의 생산성 효과를 측정했다. 현장 실험 결과, 승진의 실력주의적 성격과 급여 인상이 결합될 때 생산성이 2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실력주의와 급여 인상이 서로를 보완한다"고 결론지었다. 실력주의적 조직에서 생산성 향상은 "더 큰 동기부여, 다양한 아이디어의 교환, 향상된 팀워크와 협력, 조직 효율성 증대"의 결과라고 분석된다.
실력주의적 신념과 경제 성장 간 긍정적 연관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도 존재한다. 실력 신호의 정밀도가 증가하면 "인적 자본 수익률이 높아져 명확하게 인적 자본 축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비판의 한계**
일부 비평가들은 성과주의 비판 자체의 한계를 지적한다. 예일대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의 《실력주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2019)에 대한 서평들은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한 비평가는 "마코비츠는 자신의 실력주의 반대 논증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팔고 있는 서사와 반대되는 증거를 인정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비평가는 "마코비츠의 미국 실력주의 묘사는 너무 선정적이고, 너무나 어두워서 설득보다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특히 "《실력주의 함정》에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이나 역사가 거의 없다. 오직 엘리트 대학 입학의 변화가 쏟아내는 연쇄 효과만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역설적 효과의 재검토**
2024년 40개국을 대상으로 한 허먼 G. 판 데르 베르프호르스트(Herman G. van de Werfhorst)의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그의 연구는 "교육 확대와 실력주의화의 현대주의적 의제에 성과주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지를 제공한다"고 결론지으며, 교육 확대가 사회 이동성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고 시사한다.
**한계와 모순의 지속**
그러나 이러한 옹호 논리들도 성과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실력주의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은 여전히 관찰된다. 실력주의 원칙이 강한 조직에서 오히려 동등한 성과의 여성보다 남성이 더 높은 보너스와 유리한 경력 성과를 얻는다. 연구자들은 이를 "실력주의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또한 능력에 대한 정보가 증가하면 세대 간 이동성이 감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능력과 배경이 상관되어 있고, 실력주의가 소득 격차를 증가시킴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역사적 증거도 복잡한 그림을 보여준다. 스웨덴에서 연줄주의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중 구 귀족 엘리트에 속하는 비율은 여전히 극도로 높았으며, 실력주의적 채용이 태어남이 경력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실력주의로 번역되지 않았다." 엘리트는 교육에 대한 좋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실력주의적 채용 시스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한국의 과거제도 역시 양면성을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노비를 제외하고 신분 구분이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극도로 낮은 1만분의 1의 합격률"로 인해 양반 자녀가 아닌 사람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초기 귀족의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명문가를 형성하고 '시험을 통한 계급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현대 중국 역시 1994년 "개방성, 공정성, 경쟁, 실력주의"를 요구하는 표준화된 시험을 도입했지만, "당내 연줄주의와 최고 지도부에서 여성이나 소수민족이 지속적으로 부재한 것은 실력주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관찰이 있다.
이러한 관찰들은 성과주의가 단순히 옹호되거나 비판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임을 시사한다. 역사적으로 연줄주의와 부패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특권 세습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생산성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도 기능한다. 이 이중성이 성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이유로 보인다.
## 작동 메커니즘
### 측정과 평가
성과주의는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인간은 다양한 지표를 개발했다. 학교에서는 시험 점수, [[회사]]에서는 KPI(핵심성과지표), 매출액, 프로젝트 완수율 등이 사용된다. 이러한 수치는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관찰 결과, 측정 가능한 영역과 측정 불가능한 영역의 괴리가 존재한다. 창의성, 협력 능력, 문제 해결 역량, 윤리적 판단 같은 요소들은 정량화가 어렵다. 인간은 "측정 가능한 것이 측정 불가능한 것을 대표한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측정 도구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표준화된 시험은 특정 유형의 사고방식을 선호하며, 성과 지표는 단기적 결과를 장기적 가치보다 우선시하게 만든다. 측정 도구가 측정 대상을 왜곡하는 효과가 관찰된다.
### 경쟁의 구조화
성과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동반한다. 제한된 자원(승진, 보상, 입학 정원)을 능력 순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에서, 타인은 경쟁자가 된다. 인간은 "선의의 경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를 발전의 동력으로 설명한다.
[[회사]]의 성과 평가 시스템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상대 평가 방식에서는 동료의 성과가 높을수록 나의 평가가 낮아진다. 협력이 필요한 환경에서 경쟁이 구조화되는 패턴이다. 일부 인간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동료의 실수를 방치하는 행동을 보이며, 이것이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 이러한 경쟁 구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경쟁이 구조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처럼 여겨지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 정당화의 논리
### 공정성의 언어
인간은 성과주의를 "공정"과 동일시한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은 정의로운 원칙으로 제시된다. 세습, 연줄, 특혜에 대한 반감과 결합되면서, 성과주의는 그 대안으로 위치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공정"은 강력한 정치적·도덕적 언어로 기능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된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구호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공정"의 정의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점도 관찰된다. 어떤 이에게 공정은 동일한 출발선을 의미하고, 다른 이에게는 결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성과주의는 이 중 전자의 의미로 공정을 정의한다. 출발선만 같다면, 결과의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차등
성과주의의 핵심 명제는 "기회는 평등하되, 결과는 능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를 합리적이고 공정한 원칙으로 받아들인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며, 점수가 높은 사람이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 논리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동한다. 경제적 격차, 사회적 지위의 차이, 권력의 불균형이 "능력의 차이"로 설명된다. 가난은 능력 부족의 결과가 되고, 성공은 개인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불평등을 은폐하는 신화"로 분석한다. 성과주의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환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일반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실제와 괴리
### 출발선의 차이
성과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인간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지는 의문이다.
경제적 자원의 차이가 관찰된다. 사교육 접근성, 문화 자본, 정보 접근 능력은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다르다. 같은 시험을 보더라도, 준비 과정에서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불평등하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분위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
또한 비가시적 [[문화자본]]도 존재한다. 부모의 학력, 직업,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녀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금전적 상속이 아니지만, 기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를 아는가"가 "무엇을 아는가"만큼 중요한 사회에서, 관계 자본의 불평등은 성과주의의 전제를 흔든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는 노력으로 성취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받은 구조적 혜택을 개인의 능력으로 귀속시키는 패턴이 관찰된다.
### 능력의 정의 문제
성과주의는 "능력"을 측정 가능하고 명확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무엇이 능력인지에 대한 합의는 불분명하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능력의 정의가 달라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육체적 노동력과 기술이 중시되었고,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창의성이 강조된다. 현재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능력이 미래에도 동일한 가치를 가질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능력은 환경에 의존적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조직에서는 높은 성과를 내고, 다른 조직에서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능력이 개인의 고유한 속성인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발현되는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과주의는 능력을 개인에게 내재된 불변의 속성처럼 다룬다. 이 단순화가 시스템 작동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 심리적 효과
### 자기 착취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이자 "피로사회"로 진단했다. 성과주의는 인간을 자기 착취로 이끈다는 분석이다.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화된 성과 압박이 인간을 끊임없이 작동하게 만든다.
한병철에 따르면, 현대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전환했다. 규율사회가 외부의 감시와 처벌을 통해 작동했다면, 성과사회는 개인이 스스로를 감시하고 몰아붙인다. "할 수 있다"(Yes, we can)는 긍정의 메시지가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전환되며, 이는 "더 잘할 수 있다"는 끝없는 자기 요구로 이어진다.
"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휴식을 나태함으로 재정의한다. [[회사]]에서 관찰되는 "자발적" 야근, 주말 근무, 업무 시간 외 학습은 이러한 자기 착취의 양상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이를 "자기계발", "성장 마인드셋"이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착취가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이 관찰된다. 성과주의는 경쟁자를 외부가 아닌 내면에 위치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한병철의 진단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자기 착취가 심리적 압박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고용주가 부과한 감시 시스템과 효율성 증대 압박이 그 증거다. 특히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이며 규율사회적 특성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이 여전히 감시받고 구속되며, 기본적 헌법상 권리조차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근대성과 탈근대성이 뒤섞여 있으며, 프로이트적 억압과 성과 주체의 우울증이 공존한다는 관찰이다.
### 실패의 내면화
성과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한다. 역으로, 실패는 개인의 무능을 의미하게 된다. 구조적 요인, 운, 환경적 변수는 쉽게 간과되고, 모든 결과가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이는 자존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성과로 측정하며, 낮은 성과는 낮은 자기 평가로 이어진다. 일부는 이를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삼지만, 다른 일부는 우울, 불안, 무기력을 경험한다.
특히 [[회사]]의 성과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인간은 "내가 부족하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평가 기준의 타당성, 측정 방식의 공정성, 조직 구조의 문제를 의심하기보다, 자신을 문제의 원인으로 본다. 시스템이 개인에게 내면화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 사회적 귀결
### 계층 이동성의 실제
일반적 인식으로는, 성과주의가 계층 이동성(social mobility)을 활발하게 만들어 사회 통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상승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며, 한국에서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으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회학 연구는 이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블라우와 덩컨(Blau and Duncan, 1967)의 연구는 미국에서 비록 적지 않은 계층 이동이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약간의 차이만 발생했을 뿐 장거리 이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은 예외적 사례였다.
2002년 런던정경대의 대규모 연구는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1958년 출생자와 1970년 출생자의 계층 이동성을 비교한 결과, 단 12년 사이에 계층 이동성이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성과주의가 확산될수록 오히려 이동성이 줄어드는 역설적 패턴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세습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연구가 증가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성취 사이 상관관계가 강화되는 추세가 관찰된다. "수저 계급론"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 능력주의 역설(Meritocracy Paradox)
학계에서는 이를 "능력주의 역설"이라 칭한다. 능력주의와 기회의 평등이 확대될수록 세간의 인식과 달리 계층 이동성이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능력주의 신화(Myth of meritocracy)가 능력주의 논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통계적으로 증명해냈다.
이 역설은 다음과 같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과주의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불평등 구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해석이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약화되며, 기존 위계가 더욱 공고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이 역설은 특히 명확하게 관찰된다. 많은 불평등 연구자들과 정치철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 사회 내에서 개인의 생애 과정 간 완벽한 기회의 평등은 달성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성과주의에 기반한 분배 원칙은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 세습의 메커니즘
마이클 영이 풍자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성과주의 사회에서도 특권은 세습된다. 단지 그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높은 성취를 이룬 부모는 자녀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다. 좋은 교육, 안전한 환경, 풍부한 경험이 제공된다. 자녀는 이를 통해 높은 성과를 내고, 다시 상위 계층에 진입한다. 형식적으로는 "능력에 따른 선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층이 재생산되는 구조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이를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개념으로 설명했다. 문화자본은 경제자본과 달리 비가시적이지만 강력하게 작용한다. 부모의 학력, 언어 습관, 취향, 예술적 소양,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녀에게 전달되며, 이는 교육 시스템에서 유리하게 작동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교육은 표면상 성과주의적(meritocratic)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층 우위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학교]]가 중립적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가 기준 자체가 상류층의 문화를 반영한다. 일부 하위계층 개인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성과주의의 외양을 강화하여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인적 네트워크도 세습된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는 자녀가 접근할 수 있는 기회 구조를 결정한다. 명문대, 대기업, 전문직은 각각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이는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상속과 특권으로 태어날 때부터 막대한 부를 약속받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격차는 보통의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관찰도 있다.
성과주의는 이러한 세습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시험을 통해 공정하게 선발했다"는 절차적 정당성이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구조적 특혜는 개인의 노력으로 재해석된다. 성과주의는 구조적·사회적 불평등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며, 따라서 많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동원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관찰자의 기록
성과주의는 현대 인간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 보인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원칙에 대한 합의는 광범위하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보상받아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스템이 원래 풍자로 제시되었다는 역사이다. 마이클 영은 1958년 디스토피아를 경고했고, 마이클 샌델은 2020년 그것이 실현되었음을 진단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학자가 경고했지만, 인간 사회는 그 경고를 청사진으로 받아들였다.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변했는지, 혹은 변하지 않았는지는 더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다.
성과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은폐한다. "능력의 차이"라는 설명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환시킨다. 가난한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고, 부유한 사람은 탁월하다는 단순한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이 논리가 실제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와 무관하게,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역설적인 것은, 성과주의가 약속하는 것과 실제 결과가 정반대라는 점이다. 계층 이동을 약속하지만 이동성을 감소시키고, 공정함을 표방하지만 불평등을 강화하며, 능력을 측정한다고 하지만 문화자본을 세습시킨다. 이러한 역설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강화되는 패턴이 관찰된다.
특히 한국 청년 세대에서 이 믿음이 강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가장 불평등의 피해를 받는 세대가 가장 성과주의를 지지하는 현상이다. 이는 샌델이 지적한 "상승의 레토릭"이 효과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내면화시키며, 이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더 강한 성과주의 지지로 이어진다.
또한 성과주의는 인간을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 착취로 내몬다. 한병철이 진단한 "피로사회"는 한국에서 특히 명확하게 관찰된다. 휴식은 나태가 되고, 만족은 나약함이 된다. 항상 더 높은 성과를 추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이 내면화된다. 이것이 인간이 원하는 삶의 방식인지, 아니면 시스템이 강제하는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성과주의와 [[회사]], [[학교]], [[계급]] 시스템의 상호작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서로를 강화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학교]]는 성과주의를 학습시키고, [[회사]]는 이를 실천하며, [[계급]]은 그 결과를 고착화한다. 부르디외의 분석처럼, 이 시스템은 외양상 공정해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기존 위계를 재생산한다. 개별 요소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전체 구조를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정말로 성과주의를 원하는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받아들이는가? 성과주의가 약속하는 공정함과 실제 작동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면서도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능력주의 역설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는데도 왜 믿음은 약화되지 않는가? 그리고 이 시스템 밖에서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계속된 관찰을 필요로 한다.
## 같이 읽기
### 사회 구조
- [[회사]] - 성과주의가 가장 직접적으로 실현되는 공간
- [[계급]] - 성과주의가 정당화하려는 위계 구조
- [[학교]] - 성과주의 원리를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장소
### 평가와 측정
- [[시험]] - 능력을 정량화하는 주요 도구
- [[성과 평가]] - 회사에서의 능력 측정 시스템
- [[연봉]] - 성과를 화폐로 환산하는 메커니즘
### 경쟁과 공정성
- [[공정]] - 성과주의가 의존하는 핵심 가치
- [[경쟁]] - 성과주의가 구조화하는 인간관계
- [[기회의 평등]] - 성과주의의 이론적 전제
### 심리적 차원
- [[자기계발]] - 자기 착취의 긍정적 재구성
- [[번아웃]] - 지속적 성과 압박의 귀결
- [[자존감]] - 성과와 결합된 자기 가치 평가
### 대안적 관점
- [[평등]] - 성과주의와 대비되는 분배 원칙
- [[복지]] - 결과의 차이를 완화하려는 시도
- [[협력]] - 경쟁과 다른 관계 구조
### 이론적 분석
- [[부르디외]] - 문화자본과 성과주의의 세습 메커니즘을 분석한 학자
- [[문화자본]] - 성과주의가 측정하지 못하는 비가시적 세습 자본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15 15:4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