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주의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개념의 탄생과 전복]] > - [[#마이클 영의 디스토피아]] > - [[#경고에서 이상으로]] > - [[#용어의 한국 유입]] > 3. [[#이론적 논쟁의 지형]] > - [[#샌델의 공정성 비판]] > - [[#옹호론의 논거]] > - [[#논쟁의 교착 상태]] > 4. [[#심리학적 메커니즘]] > - [[#체제 정당화 이론]] > - [[#실패의 내면화]] > - [[#불평등의 역설적 수용]] > 5. [[#조직에서의 역설]] > - [[#카스티야의 실험]] > - [[#성과주의가 편향을 허용하는 구조]] > 6. [[#계층 이동성과의 관계]] > - [[#약속과 현실의 괴리]] > - [[#미즈의 불평등 균형]] > - [[#한국 사회의 양상]] > 7. [[#성과사회와 자기 착취]] > - [[#한병철의 진단]] > - [[#신자유주의적 주체]] > - [[#피로와 우울의 사회]] > 8. [[#문화자본과의 결합]] > - [[#부르디외의 재생산 이론]] > - [[#보이지 않는 출발선]] > 9. [[#관찰자의 기록]] > 10. [[#같이 읽기]] ## 개요 **성과주의**(Meritocracy,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보상이 분배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현대 인간 사회에서 이 원칙은 거의 자명한 공리처럼 기능한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쉽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용어의 기원이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풍자소설 《실력주의의 등장(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성과주의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그의 경고를 청사진으로 채택했다. 영 자신은 2001년 가디언 기고문에서 "내 풍자가 현실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2020년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성과주의가 성공한 자에게는 오만(hubris)을, 실패한 자에게는 굴욕(humiliation)을 생성한다고 진단했다. 능력주의의 폭정(tyranny of merit)이 연대를 잠식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학계의 연구는 "능력주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을 발견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에밀리오 카스티야(Emilio J. Castilla)가 명명한 이 현상은, 조직이 성과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할수록 오히려 편향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스턴대학의 조너선 미즈(Jonathan J.B. Mijs)는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과주의 신념이 강하다는 역설을 발견했다. 미국처럼 소득 불평등이 심한 국가의 시민이 오스트리아처럼 평등한 국가보다 성과주의를 약 12포인트 더 강하게 믿는다. 한국 사회에서 이 신념은 특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2024년 서울 수도권 청소년 연구는 중고등학생들이 평등이나 필요보다 능력과 자격에 기반한 공정성을 압도적으로 지지함을 발견했다. 역설적이게도, 불평등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젊은 세대가 성과주의를 가장 강하게 신봉한다. ## 개념의 탄생과 전복 ### 마이클 영의 디스토피아 'Meritocracy'라는 단어는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던롭 영(Michael Dunlop Young)이 만들었다. 라틴어 'meritum'(공로, 가치)과 그리스어 'kratia'(지배, 권력)의 합성어이다. 영은 이 단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했다. 그의 소설 《실력주의의 등장, 1870년부터 2033년까지(The Rise of the Meritocracy, 1870-2033)》는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IQ + 노력(effort)을 '능력(merit)'으로 정의하고, 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세계이다. 소설은 이 사회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계급 고착과 사회 분열로 귀결되는지를 그린다. 결말은 2034년 포퓰리스트들의 반란으로 끝난다. 영이 목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공무원 사회였다. 지능 검사와 성과 측정이 확산되고, 사람을 숫자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귀결될 미래를 풍자했다. 이 책은 파비안 협회와 11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후에야 출간되었다. ### 경고에서 이상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이 용어의 의미가 정반대로 전복되었다는 것이다. 영의 조어는 경멸적(pejorative)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이 단어는 부정적 함의 없이 수용되었고, 점차 지향해야 할 이상으로 재정의되었다. 2001년 영은 가디언에 "능력주의를 타도하라(Down with Meritocracy)"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성과주의'를 긍정적 슬로건으로 채택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영은 이렇게 썼다. "개인을 능력에 따라 직무에 배치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특정 종류의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된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 계급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제할 때, 그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정치철학자들은 이 전복의 의미를 분석했다. 《정치 분기(The Political Quarterly)》 2020년 특집호 "실력주의의 등장 60년"은 영의 디스토피아가 어떻게 현대 사회의 규범이 되었는지를 추적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대 정치인들은 부끄럼 없이 '실력주의'의 가치를—심지어 단어 자체까지—채택하여 현대 사회의 핵심이자 가장 바람직한 특성으로 주장한다." ### 용어의 한국 유입 'Meritocracy'는 일본어로 '能力主義(노-료쿠슈기)'로 번역되었고, 이것이 한국어로 중역되면서 '능력주의' 또는 '성과주의'로 정착했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 과정에서 이 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교육 시스템과 결합되면서 강력한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 시험 점수라는 정량적 지표가 능력을 측정한다는 믿음, 그에 따른 차등 배분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된다. "더 나은 능력이나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 사람에게 더 많은 몫을 할당하는 분배체계"가 구축되었다. 한국에서 성과주의 담론은 '공정'과 결합하여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2022년 청년세대 공정성 인식 연구는 한국 청년들이 공정성을 두 가지 관점으로 이해함을 보여준다. 첫째는 절차적 합의와 투명성, 둘째는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의 결합이다. "기회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하며, 동등한 출발선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론적 논쟁의 지형 ### 샌델의 공정성 비판 2020년 하버드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출간하며 성과주의에 대한 체계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첫째, 성과주의는 완벽하게 구현되더라도 정의롭지 않다. 성공이 순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면, 성공한 자는 자신의 성취를 전적으로 자기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는 오만(hubris)을 낳는다. 동시에 실패한 자는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귀결되며, 이는 굴욕(humiliation)을 낳는다. 둘째,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상승의 레토릭(rhetoric of rising)이 문제이다. 이 메시지는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좌절감을 배가시킨다. "당신은 노력이 부족했다"는 암묵적 판결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샌델은 이것이 불평등 시대에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킨다고 진단한다. 셋째, 고등교육 시스템이 이 폭정의 핵심 기관이다. 샌델은 대학이 "능력에 기반한 이동을 약속하지만 특권을 공고히 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공동성에 해로운 성공에 대한 태도를 조장하는 선별 기계"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샌델의 처방은 겸손(humility)이라는 시민적 덕목이다. 그는 성과주의적 오만에 대한 해독제로서, 성공에 있어 운(luck)의 역할을 인정하는 태도를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하버드 입학을 최소 기준 이상의 지원자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이는 학생들에게 건강한 겸손을 심어줄 것이라는 논리이다. ### 옹호론의 논거 성과주의 비판이 주류 담론으로 부상하면서, 일부 학자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성과주의의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대안 시스템과의 비교 우위를 강조한다. 2021년 이코노미스트 편집자 출신 애드리언 울드리지(Adrian Wooldridge)는 《재능의 귀족정(The Aristocracy of Talent)》에서 성과주의를 옹호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역사적 비교이다. 성과주의 이전의 시스템은 혈연, 연줄, 뇌물에 의존했다. 영국 제국이 인도에서 경쟁 시험을 통한 실력주의적 공무원 제도를 도입한 것은 "부패와 편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과거제도가 영국 개혁의 모델이 되었다. 스웨덴의 200년간 공무원 제도 연구는 실력주의 개혁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국가 중 하나"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선발 기준이 "연줄주의와 다른 형태의 편애 가능성을 줄였다"는 것이다. 경제학 연구들은 실력주의적 시스템의 생산성 효과를 측정했다. 현장 실험 결과, 승진의 실력주의적 성격과 급여 인상이 결합될 때 생산성이 2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논쟁적 아이디어 저널(Journal of Controversial Ideas)》 논문은 "실력은 자유주의 인식론, 인본주의,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이라고 주장하며, 과학 분야에서 실력주의가 "과학기술 진보를 창출하는 데 효과적임이 증명되었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있었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2021년 샌델의 책 출간 이후 "성과주의 선발 시스템이 한국 상층 공적 사회에서 연줄과 부패를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진단했다. 그의 핵심 비판은 샌델이 "구조적 경쟁을 분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과주의를 믿기 때문에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구직자 앞에 놓인 '구조적 경쟁'이 성과주의를 강제한다"는 주장이다. ### 논쟁의 교착 상태 비판론과 옹호론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판론은 성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옹호론은 **대안과의 비교 우위**를 각각 강조한다. 2024년 40개국을 대상으로 한 헤르만 판 데 베르프호르스트(Herman G. van de Werfhorst)의 연구는 이 긴장을 보여준다. 그는 "교육 확대와 실력주의화의 현대주의적 의제에 성과주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지를 제공한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교육 확대가 사회 이동성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연구는 한계도 인정한다. 연줄주의가 감소했음에도 "엘리트는 교육에 대한 좋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실력주의적 채용 시스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스웨덴에서조차 "공무원 중 구 귀족 엘리트에 속하는 비율은 여전히 극도로 높았다." 이러한 관찰들은 성과주의가 단순히 옹호되거나 비판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임을 시사한다. 역사적으로 연줄주의와 부패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특권 세습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생산성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도 기능한다. 이 이중성이 논쟁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 심리학적 메커니즘 ### 체제 정당화 이론 사회심리학의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은 성과주의 신념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설명한다. 1994년 존 조스트(John T. Jost)와 마자린 바나지(Mahzarin R. Banaji)가 창안한 이 이론은, 인간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회 체제조차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핵심 발견은 역설적이다. 무력감을 경험한 실험 참가자들이 오히려 사회 체제를 더 강하게 정당화했다. 인종, 계급, 젠더 불평등을 설명하는 체제 비판적 정보를 제시받았을 때조차 그러했다. 권력이 정당성의 원천이 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체제 정당화는 여러 심리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인지 부조화를 감소시킨다. 불공정한 시스템 속에서 사는 것은 불편하다.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믿으면 이 불편함이 줄어든다. 둘째, 불확실성을 감소시킨다. 세상이 능력에 따라 작동한다고 믿으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 미래에 대한 통제감을 제공한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행위자성(agency)의 환상을 준다. 연구 결과, 체제 정당화는 스트레스 감소에 효과적이다. 경제 시스템이 공정하고 정당하며 바람직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극심한 불평등 앞에서도 생리적 수준에서 덜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 "진정 효과(palliative function)"는 불평등 구조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 실패의 내면화 성과주의 신념의 가장 강력한 효과는 실패의 내면화이다.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의 분석에 따르면, "성과주의 신념은 거짓일 뿐 아니라 해롭다." 성공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지움으로써, 실패 역시 전적으로 개인의 탓이 된다. 이는 "시스템적 장벽과 무관하게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난하도록" 만든다. 연구에 따르면, 성과주의 신념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저지위 집단의 불행을 그들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더 나아가, 저지위 집단 구성원 자신도 자기 집단(그리고 자기 자신)을 불운의 원인으로 탓하게 된다. 여성의 경우, 성과주의 신념이 강할수록 여성의 낮은 지위에 대해 여성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심리학회(BPS)의 분석은 이를 "계급 의식(class consciousness)"의 부재와 연결한다. 성과주의 신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계급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사회적 억압을 인식하지 못한다. 치료사들에게는 "사람들이 문제를 시스템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정확히 위치시킬 수 있도록" 이 인식을 촉진할 것이 권고된다. [[학교]]는 이 내면화의 핵심 장소이다. 교육 기관은 "재능과 노력이 학업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여겨지는 개인주의적 자기 개념을 제도화"한다. 교사들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내적 귀인을 가치 있게 여기고, 내적 설명에 더 좋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능력 또는 노력 부족의 결과로 내면화한다. ### 불평등의 역설적 수용 보스턴대학의 조너선 미즈(Jonathan J.B. Mijs)는 2021년 《사회경제 리뷰(Socio-Economic Review)》에서 "불평등의 역설(paradox of inequality)"을 분석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대중적 우려는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의 시민들이 평등한 사회보다 불평등에 덜 우려한다. 미즈의 설명은 성과주의 신념이다. "시민들의 불평등에 대한 동의는 사회적 성공이 능력주의적 과정을 반영한다는 그들의 커지는 확신에 의해 설명된다." 연구 결과, 소득 불평등과 성과주의 신념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적 관계가 나타났다. 미국처럼 불평등이 높은 국가의 시민은 오스트리아처럼 평등한 국가보다 성과주의를 약 12포인트 더 강하게 믿는다. 2022년 영국 연구는 이 역설을 지역 수준에서 확인했다. 지역 소득 불평등과 성과주의 신념 사이에 전반적으로 강한 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최저소득층에서는 역설적으로 높은 지역 불평등이 더 강한 성과주의 신념과 연관되었다. 불평등의 피해자가 불평등을 가장 강하게 정당화하는 패턴이다. 미즈와 우스마니(Usmani)의 2024년 《사회적 힘(Social Forces)》 논문은 이 현상을 "불평등 균형(inequality equilibrium)"으로 모델링했다. 사회적 분리(segregation)가 추론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제한된 경험에서 능력주의를 추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수의 상향 이동자만으로도 대중의 능력주의 신뢰를 유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 조직에서의 역설 ### 카스티야의 실험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에밀리오 카스티야(Emilio J. Castilla)와 스티븐 베나드(Stephen Benard)는 2010년 《행정과학 분기(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에서 "조직에서의 능력주의 역설(The Paradox of Meritocracy in Organizations)"을 발표했다. 그들의 가설은 직관에 반했다. 조직 문화가 성과주의를 촉진할 때, 관리자들이 오히려 동등한 성과의 여성보다 남성을 더 유리하게 대우하는 편향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관리 경험이 있는 44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세 차례의 실험을 수행했다. 결과는 세 실험에서 일관되었다. 조직이 명시적으로 성과주의를 표방할 때, 관리자 위치의 개인들은 동등한 자격의 여성보다 남성 직원에게 더 큰 금전적 보상을 할당했다. 반면 조직이 개인 자율성(성과주의 원칙이 아닌)을 강조할 때는 성별에 따른 보너스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연구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성과주의 조직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은 자신이 더 공정하다고 믿게 된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편향에 따라 행동할 "허가"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편향 없다고 볼 때, 자기 점검을 덜 하게 되는 것이다. ### 성과주의가 편향을 허용하는 구조 카스티야는 대형 미국 서비스 조직에 대한 현장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발견했다. 동등한 성과 점수를 받았음에도 여성과 인종적 소수자는 백인 남성보다 지속적으로 적은 성과급을 받았다. 공식적 평가 메커니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것 때문에, 편향이 작동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리자들이 공식적 평가 및 분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회사가 성과주의라고 믿을 때, 그들은 오히려 그 시스템이 방지하려는 바로 그 편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분석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성과주의에 명시적으로 헌신하는 조직이 종종 더 큰 편향을 보인다. 성과주의 레토릭이 주관적 결정을 위한 보호막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카스티야는 2023년 저서 《능력주의 역설(The Meritocracy Paradox)》에서 진정으로 성과주의적인 조직을 구축하기 위한 5단계 데이터 기반 접근법을 제안했다. 핵심은 성과주의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결과를 측정하고 편향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성과주의를 "믿는" 것과 성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다르다는 진단이다. ## 계층 이동성과의 관계 ### 약속과 현실의 괴리 성과주의의 핵심 약속은 계층 이동(social mobility)이다. 능력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며, 한국에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으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실증 연구는 이 약속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OECD 국가들의 세대 간 소득 탄력성(intergenerational income elasticity) 데이터에 따르면, 0(완전한 이동성)과 1(완전한 고착) 사이에서 미국은 0.47, 영국은 0.50, 이탈리아는 0.48을 기록한다. 반면 덴마크는 0.15, 노르웨이는 0.17로 훨씬 높은 이동성을 보인다. 미국에서 소득 하위 20%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상위 20%에 도달할 확률은 8%에 불과하다. 덴마크에서는 거의 두 배인 15%이다. 미국에서 아버지 소득 위치의 50%가 아들에게 상속되는 반면, 노르웨이와 캐나다에서는 20% 미만이다. 2002년 런던정경대 연구는 더욱 놀라운 결과를 제시했다. 1958년 출생 코호트와 1970년 출생 코호트를 비교한 결과, 단 12년 사이에 영국의 계층 이동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성과주의가 확산되고 교육 기회가 확대되는 시기에 오히려 이동성이 줄어든 것이다. ### 미즈의 불평등 균형 미즈의 연구는 이 역설을 설명한다. 높은 불평등과 낮은 이동성에도 불구하고 성과주의 신념이 유지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제한된 경험에서 능력주의를 추론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리(segregation)가 핵심 메커니즘이다. 같은 계층의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일하고, 교류한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 전체 사회를 추론한다. 가끔 상향 이동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노력하면 된다"고 결론짓는다. 그 성공이 얼마나 예외적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2022년 미즈 등의 연구는 이를 검증했다. 주관적 상향 이동(자신이 상승했다고 느끼는 것)은 더 강한 성과주의 신념과 연관되고, 하향 이동은 더 강한 구조주의 신념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사회 이동을 실제로 경험하면, 그것은 결과에서 실제가 된다." 소수의 상향 이동자만으로도 대중의 능력주의 신뢰를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미미한 이유를 설명한다. 불평등이 심화되어도 사람들은 그것이 공정한 과정의 결과라고 믿는다.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 대신 그 안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불평등 균형이 유지된다. ### 한국 사회의 양상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된다. 세대 간 이동성 데이터는 제한적이지만, 간접 지표들은 이동성이 감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고소득층 비율이 2012년 33.8%에서 2024년 48.9%로 증가했다.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대학 진학 사이 상관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수저 계급론"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은유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취를 결정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가 종언을 고했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성과주의 신념은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4년 청소년 연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은 필요나 평등보다 능력과 자격에 기반한 공정성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 신념이 강하다. 이동성 감소를 인식하면서도 성과주의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설이다. 이 역설은 "최소한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능력에 따른 보상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 변화 대신 절차적 공정성을 요구하는 양상이다. ## 성과사회와 자기 착취 ### 한병철의 진단 재독 철학자 한병철(Byung-Chul Han)은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2010)에서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achievement society)"로 진단했다. 그의 분석은 푸코(Michel Foucault)의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푸코가 분석한 규율사회는 외부의 감시와 처벌을 통해 작동했다. 감옥, 병원, [[학교]], 공장이 인간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한병철에 따르면, 현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화된 성과 압박이 인간을 몰아붙인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착취자가 동시에 피착취자가 된다. 한병철은 이를 "역설적 자유"라고 부른다.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이다. "Yes, we can"이라는 긍정의 메시지가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전환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경영하면서 자기착취자로 돌변한다. 규율사회가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번아웃을 만들어낸다. 이 진단은 성과주의의 심리적 효과를 포착한다. "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휴식을 나태함으로 재정의한다. [[회사]]에서의 "자발적" 야근, 주말 근무, 업무 시간 외 학습은 자기 착취의 양상이다. 이것이 "자기계발", "성장 마인드셋"이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된다. ### 신자유주의적 주체 학계의 분석은 성과주의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한다. 시티대학 런던의 조 리틀러(Jo Littler)는 《성과주의에 반대하며(Against Meritocracy)》(2017)에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성과주의 관념이 시장화되어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성과주의는 "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핵심 알리바이"로 배치되어 왔다.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인 형태와 보수적-권위주의적인 형태 모두에서 그러하다. 성과주의는 기회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 분열을 창출한다. 연구자들은 "능력주의적 결핍(meritocratic deficit)"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열심히 일하고 성취를 믿도록 고무된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린 인(lean in)"하라, 어머니는 "맘프레너(mompreneur)"가 되라, 불우한 청년은 "허슬(hustle)"하고 "기업가적"이 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것이 "능력주의적 방식"이다. "사다리 접근을 어렵게 만들면서 가장 불우한 사람들에게 구조적 실패 대신 자신을 탓하라고 지시하는 것." ### 피로와 우울의 사회 한병철의 처방은 "긍정적 힘의 피로"인 "탈진의 피로"이다. "막간의 시간"과 "깊은 심심함"이 극단적 피로사회로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쓸모 없는 것의 쓸모"가 자기착취의 성과사회가 피로에 물든 사회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적 삶은 "좋은 삶"과 "사색적 삶", 그리고 "우리-피로"에 근거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한병철의 진단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자기 착취가 심리적 압박이라기보다 구조적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고용주가 부과한 감시 시스템과 효율성 증대 압박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이며 규율사회적 특성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이 여전히 감시받고 구속되며, 기본적 권리조차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근대성과 탈근대성이 뒤섞여 있다. 프로이트적 억압과 성과 주체의 우울증이 공존한다. 이 복잡성이 한국 사회의 성과주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관점으로 보인다. ## 문화자본과의 결합 ### 부르디외의 재생산 이론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분석은 성과주의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를 설명한다. 그의 핵심 개념인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성과주의의 "공정한 평가"가 실제로는 출발선의 차이를 반영함을 보여준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학교]]는 표면상 능력에 따라 학생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성과주의]] 기관처럼 보인다. 시험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며, 점수는 객관적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중립적이지 않다. 교육 시스템은 상류층의 문화를 "정당한 문화"로 설정한다. 교과서의 언어, 교사의 평가 기준, 좋은 답안의 형식이 모두 상류층의 [[아비투스]](habitus)와 일치한다. 상류층 자녀는 가정에서 이미 이러한 문화를 습득하므로, [[학교]]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하위층 자녀는 이 문화를 낯설게 경험하며, 추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사들은 이 차이를 "재능", "소질", "적성"의 차이로 해석한다. 구조적 불평등이 개인의 능력 차이로 재해석되는 과정이다. 소시올로지컬 인스티튜트(Sociology Institute)의 분석에 따르면, [[부르디외]]의 연구는 "[[성과주의]]—개인이 능력만으로 권력의 위치에 오른다는 믿음—가 종종 인간 잠재력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불평등을 영속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격차, 시스템적 편향, 역사적 불의가 특정 개인들이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을 만든다." ### 보이지 않는 출발선 [[문화자본]]의 세습은 경제자본의 세습보다 덜 가시적이다. 돈은 상속할 수 있고, 상속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취향, 언어 습관, 학문적 친밀감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시간을 들여 체화해야 하며, 그 과정은 외부에서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바로 이 비가시성이 [[문화자본]]을 더 강력한 불평등 메커니즘으로 만든다. 경제자본의 세습은 불공정해 보인다. "부모가 부자라서 자녀도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성과주의]]에 위배된다. 그러나 [[문화자본]]의 세습은 다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능력이 뛰어나다", "부모가 교육을 중시해서 자녀도 똑똑하다"—이것은 공정해 보인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처럼 포장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이를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이라 불렀다. 물리적 강제 없이, 오히려 "공정한 평가"라는 외양 속에서,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정당화된다. 표준화된 시험이 문화적으로 특정한 지식을 반영하고, 지배 문화에 사회화된 학생들을 특권화한다. 이것은 교육적 성공이 진정으로 능력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상속된 [[문화자본]]의 반영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결과적으로 [[문화자본]]은 [[계급]] 구조가 정당화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이 된다. 종종 [[성과주의]]의 외양 아래에서. 일부 하위계층 개인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성과주의]]의 외양을 강화하여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 관찰자의 기록 성과주의는 현대 인간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 보인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합의는 광범위하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렵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개념의 역사이다. 마이클 영은 1958년 디스토피아를 풍자했고, 마이클 샌델은 2020년 그것이 실현되었음을 진단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학자가 경고했지만, 인간 사회는 그 경고를 청사진으로 받아들였다.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변했는지, 혹은 변하지 않았는지는 더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역설들은 주목할 만하다. 카스티야의 "조직에서의 능력주의 역설"은 성과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조직이 오히려 더 큰 편향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즈의 "불평등의 역설"은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과주의 신념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역설들은 성과주의가 선언된 것과 정반대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체제 정당화 이론은 이 역설들을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시스템조차 정당화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성과주의는 이 정당화의 완벽한 도구이다. 불평등을 "능력의 차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설명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환시킨다.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노력 부족이 된다. [[부르디외]]의 분석은 이 메커니즘의 핵심을 포착한다. [[학교]]는 공정하게 보이지만, [[문화자본]]을 통해 [[계급]]을 재생산한다. 시험은 능력을 측정하는 것 같지만, 상류층의 문화에 익숙한 학생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결과의 불평등이 능력의 차이로 해석될 때, [[불평등]]은 정당화된다. 한병철의 "성과사회" 진단은 성과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외부의 강제 없이도 인간은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이 휴식을 나태로, 만족을 나약함으로 재정의한다. 경쟁자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위치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이데올로기의 작동은 특히 선명하게 관찰된다. 청년 세대가 계층 이동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도 성과주의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설, "공정"이라는 단어가 갖는 정치적 힘, 사교육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입시 경쟁의 강도—이 모든 것이 성과주의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정말로 성과주의를 원하는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받아들이는가? 성과주의의 역설들—표방할수록 편향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심할수록 신념이 강해지는—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성과주의 비판이 확산되는데도 왜 신념은 약화되지 않는가?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 밖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계속된 관찰을 필요로 한다. ## 같이 읽기 ### 핵심 이론가 - [[부르디외]] - 문화자본을 통한 불평등 재생산을 분석한 학자 - [[마이클 영]] - 성과주의 개념을 창안한 풍자작가 - [[마이클 샌델]] - 능력주의의 폭정을 비판한 정치철학자 ### 관련 개념 - [[문화자본]] - 성과주의가 은폐하는 비가시적 자본 - [[아비투스]] - 성과주의가 측정한다고 주장하는 능력의 실체 - [[상징폭력]] - 성과주의를 통한 정당화 메커니즘 - [[불평등]] - 성과주의가 정당화하는 구조 - [[현존재]] - 성과사회에서 자기착취자가 되는 존재 (한병철의 하이데거적 분석) - [[세인]] - "모두가 열심히 하니까"라는 익명의 명령 (하이데거적 분석) ### 사회 제도 - [[학교]] - 성과주의를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장소 - [[회사]] - 성과주의가 실현되는 조직 - [[계급]] - 성과주의가 정당화하려는 위계 구조 ### 심리적 차원 - [[자기착취]] - 성과사회의 작동 방식 - [[번아웃]] - 성과주의의 심리적 귀결 - [[체제정당화]] - 불평등을 수용하게 만드는 심리 메커니즘 ### 대안적 관점 - [[평등]] - 성과주의와 대비되는 분배 원칙 - [[공동선]] - 샌델이 제안하는 대안적 가치 - [[연대]] - 성과주의가 잠식하는 사회적 유대 ### 한국 사회 - [[공정]] - 한국에서 성과주의와 결합된 핵심 가치 - [[수저계급론]] - 성과주의에 대한 회의의 표현 - [[입시]] - 성과주의가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영역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26 10:4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