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측정과 가시화]]
> - [[#지니계수와 측정 도구들]]
> -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의 괴리]]
> - [[#다차원적 불평등]]
> 3. [[#이론적 접근]]
> - [[#피케티의 r > g 공식]]
> - [[#아마티아 센의 역량 접근]]
> - [[#롤스의 정의론과 차등의 원칙]]
> 4. [[#불평등의 작동 메커니즘]]
> - [[#세대 간 대물림 구조]]
> - [[#교육을 통한 재생산]]
> - [[#공간적 불평등의 고착화]]
> 5. [[#건강 불평등의 발견]]
> - [[#기대수명의 격차]]
> - [[#의료 접근성의 차이]]
> 6. [[#정당화의 심리학]]
> - [[#체제 정당화 이론]]
> - [[#불평등의 인식과 수용]]
> - [[#피해자의 자기 정당화]]
> 7. [[#한국 사회의 불평등 패턴]]
> - [[#통계적 지표의 역설]]
> - [[#세대별 인식의 차이]]
> - [[#체감 불평등과 객관적 지표의 괴리]]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불평등**(Inequality)은 인간 사회에서 자원, 기회, 결과가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모든 인간 사회에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그 정도와 성격,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크게 다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이 불평등을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하는가이다.
현대 인간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등이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담론이 서로 다른 차원의 불평등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기회와 출발선의 불평등을 문제 삼고, 후자는 결과의 차등을 정당화한다.
2024년 한국 통계를 보면 역설적 패턴이 관찰된다. 소득 지니계수는 0.323으로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자산 지니계수는 0.612로 상승했다. 소득 불평등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산 불평등은 악화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통계적 지표가 개선되는데도 국민들의 체감 불평등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소득 양극화(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지속적으로 사회 이슈 1~2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괴리는 불평등이 단순히 수치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임을 시사한다. 불평등은 소득과 자산뿐 아니라 기회, 건강, 교육, 사회적 관계, 심지어 생명의 길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서울과 경북의 기대수명 차이는 약 4년이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기대수명 격차는 6.48년이다. 불평등은 추상적 통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조건이자 생존의 문제이다.
## 측정과 가시화
### 지니계수와 측정 도구들
불평등을 측정하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도구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이다. 이는 0(완전한 평등)에서 1(완전한 불평등) 사이의 값으로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낸다. 로렌츠 곡선(Lorenz curve) 아래의 면적을 기반으로 계산되며,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하나의 숫자로 요약한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지니계수는 대략 0.2에서 0.6 사이에 분포한다. 스웨덴은 0.23, 영국은 0.34, 미국은 0.45, 남아프리카공화국은 0.65 수준이다. 한국의 2023년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0.323으로, OECD 국가 중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캐나다나 호주보다는 높지만, 일본·미국·영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니계수에는 한계가 있다. 중간 계층의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최상위와 최하위 집단의 변화에는 덜 민감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팔마 비율(Palma ratio)이 제안되었다. 이는 칠레 경제학자 가브리엘 팔마(Gabriel Palma)의 연구에 기반하며, 상위 10% 소득과 하위 40% 소득의 비율을 측정한다. 중산층은 대개 국민소득의 약 절반을 차지하므로, 나머지 절반이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팔마 비율이 1 이하인 사회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상위 10%가 하위 40%보다 더 큰 몫을 가져가지 않음을 의미한다. 팔마 비율은 정책 입안자와 시민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으며, 불평등의 양극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의 괴리
한국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2023년 소득 지니계수는 0.323으로 전년 대비 0.001 감소하여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득 5분위 배율도 5.72배로 0.04배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소득 불평등 개선"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자산 불평등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0.612로 전년 0.605보다 0.007 증가했다. 2012년부터 2024년까지 12년간 추이를 보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2년 0.625에서 2017년 0.589로 낮아졌다가 2018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2024년 0.616을 기록했다. 자산 격차는 절대적 수치로도 확대되었다. 2012년 1분위와 5분위의 총자산 격차는 약 10억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16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10년 만에 격차가 60% 이상 확대된 것이다.
이 괴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득은 흐름(flow)이고, 자산은 저량(stock)이다.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더라도, 이미 축적된 자산의 불평등은 지속되거나 심화될 수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가격 상승으로 부를 증식하지만, 자산이 없는 계층은 그 혜택에서 배제된다. 소득으로 자산을 형성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다차원적 불평등
2023년 연구는 한국 사회의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를 측정했다. 이는 소득, 자산, 교육, 건강 등 여러 차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2년간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0.179에서 0.190으로 상승했다. 사회 전반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발견은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2011년에는 소득(38.9%)이 다차원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러나 2023년에는 자산(35.8%)이 소득(35.2%)을 추월했다. 불평등의 축이 흐름에서 저량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계급]]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득으로 [[계급]] 이동을 하기보다는, 자산 보유 여부가 [[계급]]을 결정하는 양상이다.
## 이론적 접근
### 피케티의 r > g 공식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014년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공식을 제시했다. r > g, 즉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초과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250년 이상의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자본수익률이 대개 연 4~5%인 반면, 경제성장률은 평균 1~2%임을 보여주었다. 이 격차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자본을 소유한 사람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부를 축적한다.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사람은 경제성장 속도로만 소득이 증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는 벌어지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한국 사회에 이 공식을 적용하면 특히 명확해진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인구증가율이 가장 낮고,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피케티의 논리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자본수익률과의 격차가 커지고,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 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피케티의 해법은 누진적 자본세, 특히 글로벌 부유세였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 조율을 필요로 하며,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피케티가 불평등을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성으로 진단했다는 점이다.
### 아마티아 센의 역량 접근
인도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불평등 연구에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그는 현대 경제학이 공리주의의 효용만을 따지는 것을 비판하고, 경제학이 윤리학과 재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의 핵심 질문은 "무엇의 평등인가?(Equality of What?)"였다. 1973년 《경제적 불평등에 관하여(On Economic Inequality)》와 1980년 강연에서 그는 소득과 자산 분배를 불평등과 동일시하는 기존 접근의 한계를 드러냈다. 같은 소득을 가졌더라도,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복지 수준은 다르다. 같은 자원으로 할 수 있는 것(기능, functioning)이 다르기 때문이다.
센은 역량(capability) 개념을 제안했다. 이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살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한다.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의 차이가 아니라 역량의 차이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과 종교적 이유로 단식하는 사람은 모두 음식을 먹지 않지만, 전자는 역량이 제한된 것이고 후자는 자유로운 선택이다.
센의 접근은 불평등 담론을 자원 분배에서 자유와 기회로 확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 교육 기회의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의 괴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모든 학생이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사교육 접근성, 가정의 [[문화자본]], 경제적 여유의 차이로 인해 실질적 역량은 크게 다르다.
### 롤스의 정의론과 차등의 원칙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1971년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사회정의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 간의 공정한 협력 체계"로 정의하며, 사회의 기본 구조가 권리와 의무를 얼마나 공정하게 분배하는가로 정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롤스의 두 번째 원칙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다룬다. 이는 두 가지 조건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으로, 불평등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으로, 모든 직위와 지위가 공정한 기회 균등 조건 하에서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는 부와 소득의 분배가 평등할 필요는 없지만, 불평등이 정당화되려면 최소 수혜자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과주의]]와는 다른 정당화 논리이다. [[성과주의]]는 능력에 따른 보상의 차등을 당연시하지만, 롤스는 그러한 차등이 사회 전체, 특히 최하층에게도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하다고 본다.
롤스는 태어날 때의 우연한 상황(가정 배경, 타고난 재능)이 사회경제적 분배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이는 복권처럼 우연히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창의적인 사람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가난하고 덜 유능한 사람이 사회로부터 최대 혜택을 받는 곳이다.
## 불평등의 작동 메커니즘
### 세대 간 대물림 구조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관찰된다. 《불평등의 세대》 연구에 따르면, "세대의 기회를 이용해 권력 자원과 부를 창출한 세대 엘리트는 증여와 상속을 통해 부를 자식 세대로 대물림한다. 상속은 자식 세대 내부의 불평등을 재구축한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의 경우,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부의 대물림' 격차가 커지면서 소비 불평등이 이전 세대보다 확대되었다. 같은 나이, 같은 학력, 같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부모의 자산 유무에 따라 삶의 질과 미래 전망이 달라진다.
상속과 증여는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정당한 권리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는 [[계급]]의 세습을 의미한다. 출발선의 불평등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존재하지만, 각종 공제와 절세 전략을 통해 상당한 자산이 이전된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상속(social inheritance)" 제도를 제안한다. 이는 개인의 상속세와 증여세로 마련한 재원을 국가나 사회 전체에 귀속시켜 다음 세대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사유재산권과의 충돌, 실현 가능성 등 여러 장애물이 있다.
### 교육을 통한 재생산
[[학교]]는 형식적으로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을 재생산하는 핵심 제도로 작동한다. 이는 [[부르디외]]가 [[문화자본]] 개념으로 설명한 메커니즘이다. 2012년 연구 "한국 사회의 학력과 [[계급]] 재생산"은 [[학교]] 교육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프리즘처럼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2024년 데이터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고소득층(월 중위소득의 150% 초과) 비율은 2012년 33.8%에서 2024년 48.9%로 증가했다. 명문대 입학에서 경제력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분위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며, 이는 [[학교]] 성적과 직접 연결된다.
지역 간 학업성취도 격차 연구는 교육 환경의 지역 차이와 우수 학생의 농촌 이탈이 격차를 확대시킨다고 지적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공간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이는 거주지라는 또 다른 [[계급]] 지표와 연결된다. 강남의 학군과 지방 농촌의 학군은 접근 가능한 교육 자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학교]]가 [[성과주의]]의 외양을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부르디외]]의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설득력이 있다. 시험은 공정해 보이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자원은 불평등하다. 결과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출발선의 차이를 반영한다.
### 공간적 불평등의 고착화
불평등은 공간적으로 가시화되고 고착화된다. 거주지는 단순히 살 곳이 아니라 접근 가능한 자원의 총체를 결정한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기타 지역, 신도시와 구도심 사이의 격차는 부동산 가격뿐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안전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소위 "학군"이 좋은 지역의 부동산은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한다. 이는 경제자본이 교육 기회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이다. 부유한 가정은 좋은 학군에 거주할 수 있고, 그 지역의 자녀들은 좋은 교육을 받으며, 이는 다시 [[계급]] 위치를 재생산한다. 반대로 자산이 없는 가정은 교육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할 수밖에 없고, 자녀의 교육 기회는 제한된다.
건강 불평등도 공간적으로 분할된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0명인 반면 경북은 1.3명이다. 치료가능 사망률은 서울 44.6%, 경북 57.8%로 차이가 난다. 거주 지역이 건강과 생명의 길이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은 실질적이며, 행정 단위가 작아질수록 더욱 심화된다. 서울 내에서도 강남구와 강북구의 기대수명 차이가 존재한다.
공간적 불평등은 자기강화적이다. 한번 형성된 지역 위계는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상류층이 집중된 지역은 더 좋은 자원을 갖추고, 이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며, 상류층을 더욱 집중시킨다. 하류층 지역은 자원이 부족하고, 이는 지역 가치를 떨어뜨리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 건강 불평등의 발견
### 기대수명의 격차
불평등은 추상적 통계가 아니라 생명의 길이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기대수명 격차는 2004년 6.24년에서 2017년 6.48년으로 증가했고, 2030년에는 6.73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보다 평균 6년 이상 일찍 사망한다는 것이다.
지역별 차이도 명확하다. 서울과 경북의 기대수명 차이는 약 4년이며, 서울 내에서도 강남구와 강북구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의료 접근성, 건강 행동, 환경적 요인, 스트레스 등 복합적 요소의 결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격차가 최근 들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교육 수준에 따른 건강 불평등도 관찰된다. 낮은 교육 수준은 낮은 소득, 열악한 노동 조건, 건강 정보 접근성 부족과 연결되며, 이는 건강 결과의 차이로 이어진다.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2007-2010년과 2015-2018년 사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유병률 격차가 5.1%포인트에서 5.4%포인트로 확대되었다. 불평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 의료 접근성의 차이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소득과 교육 수준의 차이가 현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건강 출발선을 결정하는 것이다.
의료 자원의 지역적 불균형은 건강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다. 서울의 인구당 의사 수는 경북의 2배 이상이며, 전문 의료 기관의 집중도는 더욱 심하다. 중증 질환의 경우 서울이나 대도시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부담과 시간 비용을 수반한다.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같은 질병이라도 치료 접근성이 낮고, 결과적으로 건강 결과도 나쁘다.
또한 건강 행동의 계급적 차이도 관찰된다. 흡연율, 음주율, 운동 참여율은 소득 및 교육 수준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인지, 사회경제적 조건이 만든 제약인지는 논쟁적이다. 스트레스가 많고 여유가 없는 삶의 조건에서 건강한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 정당화의 심리학
### 체제 정당화 이론
사회심리학의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회 체제조차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무력감을 경험한 실험 참가자들이 오히려 사회 체제를 더 강하게 정당화했다. 인종, [[계급]], 젠더 불평등을 설명하는 체제 비판적 정보를 제시받았을 때조차 그러했다.
이는 역설적이다. 불평등의 피해자가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한다면,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연구자들은 이를 권력이 정당성의 원천이 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체제를 정당화하는 동기가 작동하며, 이는 기존 사회 질서를 선호하는 심리적 과정에 의해 강화된다.
또한 불평등 집단 간 접촉이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하류층이 상류층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변경하려 하기보다는, 현재 위계 구조를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무력한 사람들이 자신을 불리하게 만드는 위계 구조를 정당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지속시킨다.
### 불평등의 인식과 수용
흥미로운 발견은, 실제 소득 불평등이 높을 때 사람들이 더 큰 소득 격차를 정당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적응(adaptation)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며, 이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약화시킨다.
체제 정당화 이론과 사회적 판단 이론은 적응(adaptation)과 대체(replacement)를 불평등 정당화의 두 가지 주요 메커니즘으로 식별한다. 적응은 불평등한 현실에 기대를 맞추는 것이고, 대체는 불평등을 다른 가치(예: 자유, 기회)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성과주의]]는 대체 메커니즘의 전형이다. 불평등이 능력의 차이로 재정의될 때, 그것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 피해자의 자기 정당화
가장 아이러니한 현상은 불평등의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내가 노력이 부족했다",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는 자기 귀인(self-attribution)이 관찰된다. 이는 [[성과주의]]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결과로 보인다.
[[학교]]에서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 "나는 공부를 못한다"고 자신을 규정하거나, [[회사]]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직원이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구조적 불평등, 자원 차이, 기회의 제약은 보이지 않고, 오직 개인의 결함만이 설명으로 남는다.
이러한 자기 정당화는 변화를 위한 집단 행동을 어렵게 만든다. 문제가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면,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자기계발, 더 열심히 노력하기, 경쟁에서 이기기 같은 개인적 전략이 선택된다. 이는 불평등 구조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경쟁을 심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 한국 사회의 불평등 패턴
### 통계적 지표의 역설
한국 사회 불평등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통계적 지표와 체감 사이의 괴리이다. 2023년 소득 지니계수는 0.323으로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득 5분위 배율도 5.72배로 개선되었다.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불평등 완화"의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은 정반대이다. 지난 5년간 '소득 양극화(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사회 이슈 중 지속적으로 1~2위를 차지했다. 국가 경제 상황 평가는 2020년 4.77점(10점 만점)에서 2024년 3.94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통계는 개선을 보여주지만, 삶은 더 어려워졌다고 느낀다.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첫째,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의 분리이다. 소득 지표가 개선되어도 자산 지니계수는 0.612로 상승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월급뿐 아니라 집, 저축, 부채이며, 이 영역에서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둘째, 비교 준거점의 변화이다. 과거 세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상류층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 셋째, 기회의 감소이다. 불평등 수준뿐 아니라 불평등을 극복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인식이 체감을 악화시킨다.
### 세대별 인식의 차이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 다르다. 2015년 이후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수저 [[계급]]론"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취를 결정한다는 명시적 인식이다. 이는 [[성과주의]]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면서, 동시에 [[성과주의]]에 대한 더 강한 요구이기도 하다.
2022년 청년 세대 공정성 인식 연구는 한국 청년들이 공정성을 절차적 합의와 투명성, 그리고 기회의 평등과 [[성과주의]]의 결합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최소한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출발선이 불평등한데, 과정마저 불공정하다면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2024년 서울 수도권 중고등학생 연구는 청소년들이 필요나 평등보다 능력과 자격 같은 [[성과주의]]적 신념에 기반한 공정성을 지지함을 발견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성과주의]]를 당연시하며, 이는 불평등을 은폐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역설적이게도, 불평등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세대가 [[성과주의]]를 가장 강하게 지지한다.
### 체감 불평등과 객관적 지표의 괴리
체감 불평등이 통계적 지표보다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자들은 여러 설명을 제시한다.
첫째, 가시성의 증가이다. SNS와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삶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노출된다. 명품, 해외여행, 고급 레스토랑을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는 불평등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만든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류층의 삶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둘째, 기대의 상승이다. 경제 성장과 교육 수준 향상으로 사람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과거 세대가 만족했던 생활 수준이 현재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절대적 빈곤은 줄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 있다.
셋째, 이동성의 감소이다. 불평등 수준 자체뿐 아니라, 불평등을 극복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인식이 체감을 악화시킨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확산되면, 현재 불평등이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된다.
## 관찰자의 기록
불평등은 현대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현상으로 보인다. 모든 사회에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그 정도, 성격, 그리고 정당화 방식은 크게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불평등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고착화되는데도, 그것에 대한 대응은 구조 변화가 아니라 개인적 적응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는 몇 가지 독특한 패턴이 관찰된다. 첫째,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의 분리이다. 소득 지표는 개선되지만 자산 격차는 확대된다. 불평등의 축이 흐름에서 저량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계급]]이 더욱 고착화됨을 의미한다. 둘째, 통계와 체감의 괴리이다. 객관적 지표가 개선되어도 주관적 불평등 인식은 악화된다. 이는 불평등이 숫자로만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피케티의 r > g 공식은 한국 사회에 특히 적합해 보인다. 저성장·저출산 시대에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면서, 자본 소유 여부가 [[계급]]을 결정하는 양상이다. 노동소득만으로는 자산을 형성하기 어렵고, 자산이 없으면 자본수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이다. 상속과 증여를 통한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은 이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아마티아 센의 역량 접근은 한국 사회 교육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학생이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사교육 접근성, 가정의 [[문화자본]], 경제적 여유의 차이로 인해 실질적 역량은 크게 다르다. 같은 자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며, 이는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롤스의 차등의 원칙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는지 묻는다면, 답은 명확히 부정적이다. 상위 계층의 부와 소득 증가가 하위 계층에게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오히려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체제 정당화 이론이 밝힌 역설은 한국 사회에서도 관찰된다. 불평등의 피해자가 오히려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하며, [[성과주의]]를 내면화하여 자신의 상황을 능력 부족으로 귀인한다. 이는 집단 행동을 어렵게 만들고, 변화 대신 개인적 적응을 선택하게 한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은 구조적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건강 불평등의 발견은 불평등이 추상적 통계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득 상하위 20%의 기대수명 격차가 6년 이상이며, 이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불평등이 누군가의 삶을 문자 그대로 단축시킴을 의미한다. 불평등은 도덕적·윤리적 문제일 뿐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축적되는데도, 왜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가? 통계적 지표가 개선되는데도 체감 불평등이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평등의 피해자가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성과주의]]라는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형성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계속된 관찰을 필요로 한다. 불평등은 단순히 자원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회를 어떻게 상상하며,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인간 사회의 핵심 동학을 파악하는 열쇠이다.
## 같이 읽기
### 사회 구조
- [[계급]] - 불평등이 만드는 위계적 사회 구조
- [[성과주의]] -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 [[학교]] -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제도
- [[회사]] - 불평등이 실현되는 공간
### 이론과 학자
- [[부르디외]] - 문화자본과 불평등 재생산을 분석한 학자
- [[문화자본]] - 비가시적 불평등의 메커니즘
### 측정과 지표
- [[지니계수]] - 불평등을 수치화하는 대표적 도구
- [[소득 불평등]] - 흐름 차원의 불평등
- [[자산 불평등]] - 저량 차원의 불평등
### 재생산 메커니즘
- [[상속]] - 불평등의 세대 간 전달
- [[증여]] - 합법적 부의 대물림
- [[사교육]] - 교육 불평등의 핵심 요인
### 정당화와 인식
- [[공정]] - 불평등 속에서 요구되는 가치
- [[기회의 평등]] -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
- [[능력주의 역설]] - 불평등 확대와 능력주의 신념의 역설
### 결과와 영향
- [[건강 불평등]] - 불평등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
- [[계층 이동]] - 불평등 극복의 가능성
- [[양극화]] - 불평등의 극단적 형태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15 17: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