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동역학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역사적 배경]]
> -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가설]]
> - [[#슈뢰딩거의 취리히 시절]]
> - [[#파동방정식의 발견]]
> 3. [[#슈뢰딩거 방정식]]
> - [[#시간 의존 방정식]]
> - [[#시간 독립 방정식]]
> - [[#해밀턴-야코비 형식주의와의 관계]]
> 4. [[#파동함수의 해석]]
> - [[#슈뢰딩거의 초기 해석]]
> - [[#보른의 확률 해석]]
> - [[#파동함수 붕괴]]
> 5. [[#행렬역학과의 관계]]
> - [[#두 형식주의의 대립]]
> - [[#슈뢰딩거의 등가성 증명]]
> - [[#폰 노이만의 통합]]
> 6. [[#철학적 함의]]
> - [[#Anschaulichkeit 논쟁]]
> - [[#연속성과 불연속성]]
> - [[#파동함수의 존재론적 지위]]
> 7. [[#관찰자의 기록]]
> 8. [[#같이 읽기]]
## 개요
**파동역학**(Wave Mechanics, 독일어: Wellenmechanik)은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창안한 양자역학의 형식화이다. 물질을 파동함수로 기술하고, 슈뢰딩거 방정식을 통해 그 시간 변화를 기술한다. [[행렬역학]]과 함께 양자역학의 두 가지 원래 형식화 중 하나이다.
파동역학의 기초는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의 1924년 물질파 가설이다. 드 브로이는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적 성질을 갖듯이, 전자 같은 입자도 파동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슈뢰딩거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전자를 공간에 퍼진 파동으로 기술하는 방정식을 도출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핵심 형태는 다음과 같다:
$i\hbar\frac{\partial\psi}{\partial t} = \hat{H}\psi$
여기서 $\psi$는 파동함수, $\hat{H}$는 해밀토니안 연산자, $\hbar$는 환산 플랑크 상수이다. 이 방정식은 파동함수의 시간 변화를 결정론적으로 기술한다.
파동역학은 [[행렬역학]]과 수학적으로 등가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두 형식의 창안자들—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은 물리적 해석에서 근본적으로 충돌했다. 슈뢰딩거는 연속적이고 시각화 가능한(anschaulich) 기술을 추구했고, 하이젠베르크는 불연속적 양자 도약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동일한 수학적 형식주의가 상반된 철학적 해석을 지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것은 양자역학 해석 문제의 근본적 특징으로 보인다.
## 역사적 배경
###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가설
1924년 루이 드 브로이는 박사 논문 "양자론 연구"(Recherches sur la théorie des quanta)에서 혁명적 가설을 제안했다. 아인슈타인이 빛에 입자적 성질(광자)을 부여했듯이, 드 브로이는 역방향을 시도했다—전자 같은 입자에 파동적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드 브로이 관계는 다음과 같다:
$\lambda = \frac{h}{p}$
여기서 $\lambda$는 물질파의 파장, $p$는 입자의 운동량, $h$는 플랑크 상수이다. 운동량이 큰 입자일수록 파장이 짧아진다.
논문 심사위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폴 랑주뱅(Paul Langevin)은 아인슈타인에게 의견을 구했고, 아인슈타인은 "거대한 베일의 한 모서리를 들어 올렸다"고 평가했다. 1927년 데이비슨-거머(Davisson-Germer) 실험과 톰슨-리드(Thomson-Reid) 실험이 전자 회절을 확인하면서 물질파 가설은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드 브로이는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슈뢰딩거의 취리히 시절
1921년 슈뢰딩거는 취리히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같은 건물에는 페터 데바이(Peter Debye)가 있었다. 1925년 11월, 데바이는 슈뢰딩거에게 드 브로이의 논문에 대해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슈뢰딩거가 발표를 마쳤을 때, 데바이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파동이 있다면, 파동방정식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학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질문이 슈뢰딩거에게 결정적 영감을 주었다.
1925년 12월, 슈뢰딩거는 알프스의 아로사(Arosa)로 휴가를 떠났다. 아내 대신 한 여인—정체가 알려지지 않은—과 함께였다. 전기 작가 월터 무어(Walter Moore)에 따르면, 슈뢰딩거는 "사랑의 후기 만개와 함께 물리학의 후기 만개"를 경험했다. 2주간의 휴가 동안 그는 파동방정식의 기초를 확립했다.
### 파동방정식의 발견
1926년 1월부터 6월 사이, 슈뢰딩거는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Quantisierung als Eigenwertproblem)라는 제목의 연속 논문 네 편을 *Annalen der Physik*에 발표했다. 이 논문들은 파동역학의 완전한 체계를 제시했다.
첫 번째 논문에서 슈뢰딩거는 수소 원자에 자신의 방정식을 적용하여 보어 모형의 에너지 준위를 도출했다. 그러나 보어 모형과 달리, 에너지 양자화는 임의로 가정된 것이 아니라 경계 조건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이것은 정상파의 고유진동수와 유사했다—현이 특정 진동수에서만 공명하듯이, 전자의 파동도 특정 에너지에서만 안정적이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방정식을 해밀턴-야코비 역학과 광학의 아이코날 방정식 사이의 유비에서 도출했다. 고전역학이 기하광학에 대응한다면, 양자역학은 파동광학에 대응한다. 광선이 파동의 단파장 극한에서 나타나듯이, 입자 궤도는 파동함수의 고전적 극한에서 출현한다.
## 슈뢰딩거 방정식
### 시간 의존 방정식
슈뢰딩거 방정식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시간 의존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i\hbar\frac{\partial\psi(\mathbf{r}, t)}{\partial t} = \hat{H}\psi(\mathbf{r}, t)$
단일 입자의 경우, 해밀토니안 연산자는:
$\hat{H} = -\frac{\hbar^2}{2m}\nabla^2 + V(\mathbf{r}, t)$
여기서 첫 번째 항은 운동에너지, 두 번째 항은 위치에너지이다. 방정식은 파동함수의 시간 변화를 완전히 결정한다—초기 조건 $\psi(\mathbf{r}, 0)$이 주어지면 모든 이후 시간의 $\psi(\mathbf{r}, t)$가 결정된다.
주목할 점은 방정식이 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확률은 파동함수 자체가 아니라 그 해석—보른 규칙—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성격이 어디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제기한다.
### 시간 독립 방정식
위치에너지가 시간에 의존하지 않을 때, 변수 분리가 가능하다. 파동함수를 $\psi(\mathbf{r}, t) = \phi(\mathbf{r})e^{-iEt/\hbar}$로 쓰면, 시간 독립 슈뢰딩거 방정식이 얻어진다:
$\hat{H}\phi(\mathbf{r}) = E\phi(\mathbf{r})$
이것은 고유값 문제이다. 해밀토니안의 고유함수 $\phi$가 가능한 상태이고, 고유값 $E$가 그 상태의 에너지이다. 경계 조건을 만족하는 해만이 물리적으로 허용되며, 이것이 에너지 양자화의 기원이다.
슈뢰딩거가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라고 명명한 이유가 여기 있다. 양자화는 신비로운 가정이 아니라, 경계값 문제의 수학적 결과이다. 현악기의 공명 진동수가 현의 길이와 장력에 의해 결정되듯이, 원자의 에너지 준위는 위치에너지와 경계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 해밀턴-야코비 형식주의와의 관계
슈뢰딩거의 도출 과정은 고전역학의 해밀턴-야코비 방정식과 기하광학의 아이코날 방정식 사이의 유비에 기반했다.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은:
$\frac{\partial S}{\partial t} + H\left(\mathbf{r}, \nabla S, t\right) = 0$
여기서 $S$는 작용(action)이다. 아이코날 방정식은:
$|\nabla \phi|^2 = n^2$
여기서 $\phi$는 위상, $n$은 굴절률이다.
해밀턴은 19세기에 이미 역학과 광학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을 인식했다. 페르마의 원리(빛은 시간이 최소인 경로를 따른다)와 모페르튀의 원리(입자는 작용이 최소인 경로를 따른다)는 동형이다. 슈뢰딩거는 이 유비를 역으로 적용했다: 기하광학이 파동광학의 극한이듯이, 고전역학도 어떤 "파동역학"의 극한이어야 한다.
파동함수 $\psi = Ae^{iS/\hbar}$를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입하고 $\hbar \to 0$ 극한을 취하면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이 복원된다. 이것이 양자역학과 고전역학 사이의 대응 관계이다.
## 파동함수의 해석
### 슈뢰딩거의 초기 해석
슈뢰딩거는 처음에 파동함수를 실제 물리적 파동—전하 밀도의 분포—으로 해석하려 했다. $|\psi|^2$는 전자의 "번짐"을 나타내며, 전자는 파동처럼 공간에 연속적으로 퍼져 있다.
이 해석에서 양자 도약은 사라진다. 원자가 빛을 방출할 때,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정상파의 "비트"(beat) 현상으로 설명된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물리학을 다시 "anschaulich"—직관적이고 시각화 가능한—것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다. 다입자 시스템에서 파동함수는 3차원 공간이 아니라 3N차원 배위 공간(configuration space)에 정의된다. 두 전자의 파동함수는 6차원 공간의 함수이다. 이것을 "공간에 퍼진 전하 밀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 보른의 확률 해석
1926년 [[막스 보른]](Max Born)은 산란 문제를 연구하면서 파동함수의 확률적 해석을 제안했다. $|\psi(\mathbf{r})|^2$는 전하 밀도가 아니라 확률 밀도이다—입자를 위치 $\mathbf{r}$ 근처에서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
보른은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파동의 강도는 어떤 물리량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은 그곳에 전자가 있을 가능성의 척도이다." 이것이 "보른 규칙"(Born's rule)이다.
보른의 해석은 양자역학에 비결정론을 도입했다. 슈뢰딩거 방정식 자체는 결정론적이지만, 측정 결과는 확률적으로만 예측된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반론이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에게 답했다: "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마시오."
보른은 자신의 해석이 "파동역학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살을 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슈뢰딩거 자신은 이 해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른은 1954년 양자역학에 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파동함수 붕괴
보른의 해석은 "파동함수 붕괴"(wave function collapse) 또는 "상태 환원"(state reduction)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측정 전 파동함수는 여러 가능성의 중첩이다. 측정이 이루어지면 파동함수가 "붕괴"하여 하나의 확정된 결과만 남는다.
수학적으로, 초기 상태 $|\psi\rangle = \sum_i c_i|\phi_i\rangle$가 측정 후 $|\psi'\rangle = |\phi_k\rangle$로 변환된다. 결과 $k$가 얻어질 확률은 $|c_k|^2$이다.
문제는 이 붕괴가 슈뢰딩거 방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연속적이고 결정론적이며 가역적이다. 붕괴는 불연속적이고 확률적이며 비가역적이다. 언제, 어떻게 붕괴가 일어나는가? 이것이 [[측정 문제]]이다.
슈뢰딩거 자신은 "파동함수 붕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35년 그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이 문제의 부조리함을 지적했다. 방사성 붕괴에 연결된 장치가 고양이를 죽일 수 있다면,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는 관찰 전까지 "죽음과 삶의 중첩"에 있어야 한다.
## 행렬역학과의 관계
### 두 형식주의의 대립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창안했을 때, 양자역학의 첫 번째 완전한 형식화가 탄생했다. 1926년 슈뢰딩거가 파동역학을 제시했을 때, 물리학자들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접근을 마주하게 되었다.
행렬역학은 추상적이었다. 물리량은 행렬로 표현되고, 비가환적 대수 규칙을 따른다. 전자의 "궤도"나 "파동" 같은 시각적 이미지는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을 장점으로 보았다—관측 불가능한 것을 이론에서 제거한 것이다.
파동역학은 직관적이었다. 파동함수는 공간에 정의된 연속 함수이다. 미분방정식을 푸는 익숙한 기법이 적용된다. 많은 물리학자들—특히 슈뢰딩거—은 이것이 물리학을 다시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고 느꼈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사이의 적대감은 개인적 수준에 이르렀다. 1926년 하이젠베르크는 파울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다: "슈뢰딩거 이론의 물리적 부분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더 역겹다고 느낀다... 슈뢰딩거가 자신의 이론의 Anschaulichkeit에 대해 쓴 것은 쓰레기(Mist)라고 생각한다." 슈뢰딩거 역시 양자 도약을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 슈뢰딩거의 등가성 증명
1926년 3월, 슈뢰딩거는 두 형식주의가 수학적으로 등가임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행렬역학의 행렬 원소와 파동역학의 파동함수 사이에 변환이 존재한다:
$A_{mn} = \int \psi_m^* \hat{A} \psi_n \, d\mathbf{r}$
여기서 $A_{mn}$은 행렬 원소, $\psi_m$과 $\psi_n$은 파동함수, $\hat{A}$는 연산자이다. 두 형식주의는 동일한 물리적 예측을 제공한다.
과학사학자 마크스 얀머(Max Jammer)에 따르면, 이 증명은 당시 물리학자들을 안심시켰다. 두 접근이 모순되지 않으므로, 각자 선호하는 형식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학적 등가성이 해석의 등가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 폰 노이만의 통합
1932년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Mathematische Grundlagen der Quantenmechanik)에서 양자역학의 엄밀한 수학적 정식화를 제시했다. 핵심은 힐베르트 공간 이론이다.
폰 노이만에 따르면, 양자 상태는 힐베르트 공간의 벡터이다. 파동함수는 위치 기저에서의 표현이고, 행렬은 연산자의 행렬 표현이다. 두 형식주의는 동일한 추상적 구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스톤-폰 노이만 정리(Stone-von Neumann theorem)는 정준 교환 관계 $[\hat{Q}, \hat{P}] = i\hbar$를 만족하는 기약 표현(irreducible representation)이 유니터리 동치를 제외하고 유일함을 증명한다. 이것은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의 등가성에 대한 수학적으로 완전한 증명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철학자들은 등가성 주장의 범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F.A. 뮬러(Muller)에 따르면, 1926년 시점에서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수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등가가 아니었다." 폰 노이만의 1932년 정식화까지 기다려야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졌다.
## 철학적 함의
### Anschaulichkeit 논쟁
"Anschaulichkeit"—직관성, 시각화 가능성, 이해 가능성—는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 사이 논쟁의 핵심 개념이었다.
슈뢰딩거에게 물리 이론은 anschaulich해야 했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파동은 시각화 가능하다. 양자 도약은 시각화 불가능하며, 따라서 물리적으로 의미 없다. 그는 1926년 보어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양자 도약이 존재해야 한다면, 나는 양자이론에 관여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Anschaulichkeit를 재정의했다.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 논문에서 그는 "직관적 이해"를 "모든 단순한 경우에서 실험적 결과를 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론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때 얻어지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시각화 가능성이 아니라 조작주의적 일관성이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로 절충을 시도했다. 파동 그림과 입자 그림 모두 필요하지만, 동시에 적용될 수 없다. 어떤 그림이 적용되는지는 실험 맥락에 의존한다.
### 연속성과 불연속성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철학적 충돌은 연속성(continuity)과 불연속성(discontinuity)에 관한 것이었다.
슈뢰딩거는 연속성의 옹호자였다. 파동함수는 연속적으로 진화한다. 양자 도약은 단지 두 정상파의 간섭 효과이다. 인과율—원인이 결과를 연속적으로 야기한다—은 보존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불연속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행렬역학에서 상태 전이(transition)가 기본 요소이다. 양자 도약은 실제 물리적 사건이다. 고전적 인과율은 근본적으로 위반된다.
역설적으로, 두 형식주의가 수학적으로 등가라는 것은 이 철학적 논쟁이 형식주의에 의해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동일한 수학이 상반된 세계관을 지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 파동함수의 존재론적 지위
파동함수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 질문은 양자역학 해석의 핵심이다.
**실재론적 해석**: 파동함수는 물리적으로 실재한다. 그것은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필드(field)이다. 알베르 에이네르트(Albert Einstein)의 표현을 빌리면, 파동함수는 "실재 상태의 완전한 기술"이다. GRW 이론(Ghirardi-Rimini-Weber theory) 같은 객관적 붕괴 이론이 이 방향이다.
**반실재론적/도구주의적 해석**: 파동함수는 계산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측정 결과에 대한 예측을 제공하지만, 관측과 독립적인 실재를 기술하지 않는다. [[코펜하겐 해석]]이 이 방향에 가깝다.
**인식론적 해석**: 파동함수는 관찰자의 지식 상태를 인코딩한다. 붕괴는 시스템에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관찰자의 믿음 갱신이다. QBism(Quantum Bayesianism)이 이 입장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슈뢰딩거 자신의 입장은 복잡하게 변화했다. 초기에 그는 실재론적 해석—파동함수는 전하 밀도—을 지지했다. 나중에 그는 파동함수가 "실재"를 직접 기술한다는 견해를 포기했지만, 코펜하겐 해석의 확률적 해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 관찰자의 기록
파동역학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기할 점이 발견된다.
첫째, 형식주의와 해석의 분리가 주목된다.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은 수학적으로 등가이지만, 창안자들의 철학적 직관은 정반대였다. 슈뢰딩거는 연속성과 시각화 가능성을 원했고, 하이젠베르크는 불연속성과 추상성을 옹호했다. 동일한 수학적 구조가 상반된 세계관을 지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것은 물리 이론과 그 "해석"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의문을 제기한다. 형식주의가 해석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해석의 선택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둘째, "anschaulich"에 대한 집착이 흥미롭다.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이 물리학을 다시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파동함수가 3N차원 배위 공간에 정의된다는 것, 그것이 복소수 값을 갖는다는 것, 측정 시 "붕괴"한다는 것—이 모든 것이 시각화 가능성을 훼손한다. 파동역학이 행렬역학보다 "직관적"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익숙한 수학적 기법(미분방정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직관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셋째, 슈뢰딩거가 자신의 방정식의 표준 해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관찰된다. 그는 보른의 확률 해석, 파동함수 붕괴, 코펜하겐 해석을 거부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론의 창안자가 그 이론의 표준 해석을 거부하는 이 현상—이것은 물리학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식주의를 발전시킨 사람들이 그 형식주의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넷째, 폰 노이만의 통합이 해석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1932년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엄밀하게 확립했다. 그러나 [[측정 문제]]—언제, 어떻게 파동함수가 붕괴하는가?—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폰 노이만의 "투사 가설"은 문제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수학적 엄밀성이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찰된다.
다섯째, 드 브로이-슈뢰딩거 전통과 하이젠베르크-보어 전통 사이의 긴장이 양자역학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드 브로이-봄 역학(de Broglie-Bohm mechanics)은 입자가 항상 확정된 위치를 갖고 파동함수가 입자를 "안내"한다고 본다. 이것은 드 브로이의 원래 "파일럿 파동"(pilot wave) 아이디어의 부활이다. 결정론적이지만 비국소적인 이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대안으로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100년이 지났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 같이 읽기
### 양자역학의 형식주의
- [[행렬역학]] - 하이젠베르크의 대안적 형식화
-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 - 비가환성의 물리적 함의
- [[코펜하겐 해석]] -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
- [[측정 문제]] - 파동함수 붕괴의 수수께끼
### 주요 인물
- [[에르빈 슈뢰딩거]] - 파동역학의 창안자
- [[루이 드 브로이]] - 물질파 가설의 제안자
- [[막스 보른]] - 확률 해석의 제안자
- [[존 폰 노이만]] - 양자역학의 수학적 정식화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행렬역학의 창안자
### 핵심 개념
- [[파동함수]] - 양자 상태의 기술
- [[슈뢰딩거 방정식]] - 파동함수의 시간 변화
- [[보른 규칙]] - 확률 해석
- [[파동함수 붕괴]] - 측정의 역할
### 철학적 맥락
- [[파동-입자 이중성]] - 물질의 이중적 성질
- [[실재론]] - 과학 이론의 존재론적 지위
- [[결정론]] - 인과율과 예측 가능성
### 대안적 해석
- [[다세계 해석]] - 붕괴 없는 해석
- [[드 브로이-봄 역학]] - 결정론적 해석
- [[QBism]] - 베이즈주의적 해석
### 역사적 맥락
- [[솔베이 회의]] - 양자역학 해석 논쟁의 무대
- [[슈뢰딩거의 고양이]] - 측정 문제에 대한 사고실험
**마지막 업데이트**: 2025-12-22 12: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