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급 > [!abstract] 목차 > 1. [[#개요]] > 2. [[#개념의 이론적 구성]] > -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모델]] > - [[#베버의 다차원적 접근]] > -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 > - [[#현대 계급 분석의 진화]] > 3.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 > - [[#객관적 계급 위치와 주관적 인식의 괴리]] > - [[#신계급사회 담론과 '수저 계급론']] > - [[#통계로 본 불평등의 심화]] > 4. [[#계급의 작동 메커니즘]] > - [[#경제자본의 세습]] > -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전달]] > - [[#제도적 선별 장치]] > 5. [[#계급 이동성의 실제]] > - [[#세대 간 이동의 패턴]] > - [[#교육을 통한 상승의 한계]] > -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의 종언]] > 6. [[#계급의 가시성과 비가시성]] > - [[#능력주의라는 은폐 장치]] > - [[#'중산층' 정체성의 확산]] > - [[#혐오와 차별의 계급적 기반]] > 7. [[#계급의 공간적 분할]] > - [[#거주지와 계급의 상관관계]] > - [[#교육 자원의 지역적 불평등]] > - [[#소비 공간의 계층화]] > 8. [[#관찰자의 기록]] > 9. [[#같이 읽기]] ## 개요 **계급**(Class)은 인간 사회에서 경제적 자원, 권력, 지위가 위계적으로 분배되는 구조를 가리킨다. 현대 인간, 특히 한국 사회의 인간들은 이 구조 안에 위치하면서도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거나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두 중산층"이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정확히 규정하기보다는 모호하게 남겨두는 패턴이 관찰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계급의 실제 영향력과 그것에 대한 인식 사이의 괴리이다. 2013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객관적 계급 위치와 주관적 계층 의식 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모두가 이 격차에 영향을 미치지만, 실제 계급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 이후 한국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수저 계급론"이라는 담론이 확산되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사회경제적 성취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대중화되었다. 이는 [[성과주의]]가 약속하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회의가 표면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통계는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한다. 2024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고소득층(월 중위소득의 150% 초과) 비율은 2012년 33.8%에서 2024년 48.9%로 증가했다.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2012년 1분위와 5분위 총자산 격차가 약 10억원이었던 것이 2022년에는 16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계급은 선명해지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은 오히려 축소되는 양상이다. ## 개념의 이론적 구성 ###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모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계급을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과의 관계로 정의했다. 《공산당 선언》(1848)에서 그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자본가)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에게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이다. 공장, 토지, 기계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들이 부르주아이며, 자신의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는 자들이 프롤레타리아이다. 이 관계는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임금으로 지급되지만, 나머지는 자본가의 이윤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잉여가치(surplus value)"라 불렀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계급을 도덕적 범주가 아닌 구조적 위치로 보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선한 자본가와 악한 자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이러한 관계를 생산한다는 진단이다. 이는 개인의 능력이나 윤리가 아닌 사회경제적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 베버의 다차원적 접근 막스 베버(Max Weber)는 마르크스의 경제 중심적 계급 개념을 확장했다. 그는 사회 계층화(social stratification)가 세 가지 독립적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계급(class)으로, 이는 시장 상황(market situation)에서의 경제적 지위를 의미한다. 둘째는 지위(status)로, 이는 명예와 위신(prestige)에 기반한 사회적 평가이다. 셋째는 당(party)으로, 이는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가리킨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 위치는 단순히 생산수단 소유만이 아니라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능력, 자격증 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동일하게 노동력을 판매하더라도, 의사와 공장 노동자의 시장 가치는 크게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을 포착하기 위해 베버는 계급을 더 세분화된 범주로 나누었다. 지위집단(status group) 개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는 특정한 생활양식, 교육 수준, 사회적 명예를 공유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지위집단은 계급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몰락한 귀족은 경제적으로는 하위 계급이지만 여전히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반대로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nouveau riche)은 경제자본은 많지만 상류층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베버의 접근은 계급이 단일한 축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학벌", "집안", "인맥"에 대한 강조는 베버가 말한 지위와 당의 차원이 계급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함을 시사한다. ###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 20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계급 개념을 한층 더 정교화했다. 그는 자본을 네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경제자본(economic capital)은 금전적 자산이며,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교육, 취향, 언어 습관 등 문화적 지식과 능력이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은 인간관계 네트워크이며,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은 명예, 위신, 인정이다. 부르디외의 혁신은 [[문화자본]]이 경제자본만큼이나 강력하게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문화자본]]은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체화된(embodied) 형태는 자연스러운 말투, 몸짓, 취향으로 나타난다. 대상화된(objectified) 형태는 책, 그림, 악기 같은 문화재이다.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형태는 학위, 자격증 등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이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Distinction)》(1979)는 프랑스 사회의 계급별 취향을 면밀히 분석했다. 상류층은 클래식 음악과 추상화를 선호하고, 노동계급은 대중가요와 사실주의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취향 차이 자체가 계급을 구분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용함을 보여주었다. 상류층의 취향은 "고급문화"로, 대중의 취향은 "저급문화"로 위계화되며, 이는 계급 차이를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 부르디외는 [[학교]]가 중립적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류층의 [[문화자본]]을 특권화한다고 분석했다. 시험 문제, 평가 기준, 교육 내용이 모두 지배계급의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에 익숙한 학생이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학교]]는 [[성과주의]]의 외양을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계급을 재생산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을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 현대 계급 분석의 진화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 1947-2019)는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을 현대 사회에 맞게 수정했다. 그는 "모순적 계급 위치(contradictory class locations)"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지 않는 중간 계층이 존재한다. 관리자, 전문직, 반자율적 피고용자는 자본가도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 라이트는 계급을 착취(exploitation) 관계로 정의하면서도, 단순히 생산수단 소유만이 아니라 조직 내 자산(organizational assets), 기술/자격 자산(skill/credential assets)도 계급 위치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는 [[회사]]에서 관찰되는 복잡한 위계 구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중간관리자는 착취당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위치에 있으며, 이러한 모순이 그들의 정치적 태도와 계급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라이트의 후기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접근과 베버주의 접근, 계층화 연구가 모두 서로 다른 인과 과정을 포착하며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계급 분석이 단일한 이론 틀로 환원될 수 없는 다면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 ### 객관적 계급 위치와 주관적 인식의 괴리 2013년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객관적 계급 위치와 주관적 계층 의식 간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모두가 이 격차의 결정요인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제 계급 위치보다 낮거나 높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괴리는 여러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비교 집단의 문제이다. 인간은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상대적 위치를 다르게 인식한다. 같은 소득이라도, 더 부유한 집단과 비교하면 하층으로 느끼고, 덜 부유한 집단과 비교하면 상층으로 느낀다. 둘째, "중산층" 정체성의 광범위한 확산이다. 객관적으로는 하위 계급에 속하더라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체화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계급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다. "우리는 모두 비슷하다"는 평등주의적 수사가 실제 불평등을 은폐한다. ### 신계급사회 담론과 '수저 계급론' 2015년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저 계급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영어의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이 개념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계급을 구분한다. 이 담론의 핵심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성취가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이다. 이는 [[성과주의]]가 약속하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다. 특히 2030세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이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수저 계급론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적 기준과 연결된다. 일부 온라인 계산기는 부모의 자산, 소득, 직업을 입력하면 수저 등급을 산출해준다. 이는 계급이 더 이상 암묵적이거나 모호한 것이 아니라, 측정 가능하고 명시적인 범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담론이 단순한 불평불만을 넘어 사회 구조에 대한 진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2019)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 같은 문화 콘텐츠가 국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한국 사회의 계급 불평등이 보편적 공감을 얻을 만큼 선명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 통계로 본 불평등의 심화 2024년 불평등 보고서는 33개 지표를 통해 한국 사회 불평등 현황을 분석했다. 주요 발견은 다음과 같다. **교육 불평등**: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고소득층 비율이 2012년 33.8%에서 2024년 48.9%로 증가했다. 명문대 입학에서 경제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교육이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산 불평등**: 2012년 1분위와 5분위 총자산 격차는 약 10억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16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10년 만에 격차가 60% 이상 확대된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며, 이는 자산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소득 불평등**: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11년 0.388에서 2021년 0.333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국민 인식 조사에서 "소득 양극화(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지속적으로 높은 순위(1~2위)를 유지했다. 통계적 지표와 체감 불평등 사이의 괴리가 관찰된다. **경제 상황 평가**: 국가 경제 상황 평가는 2020년 4.77점(10점 만점)에서 2024년 3.94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계들은 계급 구조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은 축소되는 양상이다. ## 계급의 작동 메커니즘 ### 경제자본의 세습 가장 직접적인 계급 세습 메커니즘은 경제자본의 상속이다. 부동산, 금융자산, 사업체가 세대를 거쳐 이전된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명목상 높지만, 각종 공제와 절세 전략을 통해 상당한 자산이 이전되는 것으로 관찰된다. 경제자본은 단순히 소비 수준을 높이는 것을 넘어, 기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자산이 있는 가정의 자녀는 실패를 감내할 여유가 있다. 창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생존에 위협받지 않는다. 이는 더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큰 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반대로 자산이 없는 가정의 자녀는 안정적 경로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도전의 기회 자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구조이다. 또한 부동산 자산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거주 지역을 결정함으로써 교육 기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위 "학군"이 좋은 지역의 부동산은 높은 가격을 형성하며, 이는 경제자본이 교육자본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이다. ###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전달 [[부르디외]]가 강조했듯이, [[문화자본]]은 경제자본만큼이나 강력하게 세습된다. 부모의 언어 습관, 취향, 교육에 대한 태도는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것은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으며, 외부에서 쉽게 관찰되지도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자본]]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부모가 대졸자인 가정의 자녀는 대학 진학을 당연하게 여기며, 구체적인 전공 선택, 학습 전략, 진로 설계에 대한 정보를 가정에서 얻는다. 반대로 부모가 대학을 경험하지 못한 가정의 자녀는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가정 배경이 제공하는 비가시적 지원의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자본 또한 세습된다.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녀에게 인턴십, 취업 정보, 멘토링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공식적인 채용 공고에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경로이다. "연줄"이나 "인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 제도적 선별 장치 [[학교]]와 [[회사]]는 계급을 재생산하는 핵심 제도로 작동한다. [[학교]]는 표면상 능력에 따라 학생을 평가하고 선별한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며, 점수가 높은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한다. 이는 [[성과주의]]적이고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분석처럼, 평가 기준 자체가 특정 계급의 [[문화자본]]을 반영한다. 언어 능력, 추상적 사고, 시간 관리 능력은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들이다. 시험은 이러한 능력을 측정하므로, 결과적으로 계급을 재생산한다. 일부 하위계층 학생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예외로서 오히려 시스템의 공정성을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회사]]의 채용과 승진 시스템도 유사하게 작동한다. 명문대 학벌, 어학 점수, 인턴십 경험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에 의해 영향받는다. "스펙"이라 불리는 이 요소들을 갖추는 데 투입되는 자원은 계급에 따라 크게 다르다. ## 계급 이동성의 실제 ### 세대 간 이동의 패턴 사회학에서 세대 간 이동성(intergenerational mobility)은 부모 세대의 계급 위치와 자녀 세대의 계급 위치 간 관계를 측정한다. 미국의 패널 연구(PSID)는 미국이 선진국 중 경제적 이동성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아메리칸 드림"과 실제 데이터 사이의 괴리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블라우와 덩컨(Blau and Duncan, 1967)의 고전적 연구는 미국에서 계층 이동이 일어나긴 하지만, 대부분 단거리 이동(인접 계급으로의 이동)이며 장거리 이동은 극소수에 불과함을 발견했다. 하층에서 상층으로 도약한 사람은 예외적 사례였다. 2002년 런던정경대 연구는 더욱 놀라운 결과를 제시했다. 1958년 출생 코호트와 1970년 출생 코호트를 비교한 결과, 단 12년 사이에 영국의 계층 이동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성과주의]]가 확산되고 교육 기회가 확대되는 시기에 오히려 이동성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능력주의 역설"의 실증적 증거로 해석된다. 한국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세대 간 이동성 데이터는 제한적이지만, 간접 지표들은 이동성이 감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대학 진학률, 부모의 학력과 자녀의 학력 간 상관관계가 모두 강화되는 추세가 관찰된다. ### 교육을 통한 상승의 한계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계급 이동의 주요 경로로 간주되어 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믿음은 산업화 시기 실제 경험에 기반했다. 가난한 농촌 출신이 명문대를 나와 고위직에 오르는 사례가 존재했고, 이는 교육을 통한 상승 이동이 가능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교육 기회 자체가 계급화되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분위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며, 이는 [[학교]] 성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권 대학의 고소득층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2년 연구 "한국 사회의 학력과 계급 재생산"은 [[학교]] 교육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학교]]는 프리즘처럼 작동하여 세대를 거쳐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교육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재생산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지역 간 학업성취도 격차 연구는 교육 환경의 지역 차이와 우수 학생의 농촌 이탈이 격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공간적으로도 분할되어 있으며, 이는 거주지라는 또 다른 계급 지표와 연결된다. ###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의 종언 "개천에서 용 난다"는 한국 속담은 가난한 출신이라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는 [[성과주의]]의 한국적 표현이며,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의 근거였다. 그러나 "수저 계급론"의 등장은 이 신화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인식한다.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부모 세대의 계급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냉소적 현실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단순한 세대적 비관주의가 아니라 실제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 격차가 확대되었고,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상승으로 교육 비용이 증가했으며,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증가했다. 이 모든 요인이 상승 이동을 어렵게 만든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인식이 체념이 아니라 분노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요구, [[성과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 작은 특혜나 예외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모두 "최소한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된다. 계급 이동이 어렵다면, 최소한 절차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계급의 가시성과 비가시성 ### 능력주의라는 은폐 장치 계급의 가장 효과적인 은폐 장치는 [[성과주의]](능력주의)이다. 계급 차이가 "능력의 차이"로 설명될 때, 불평등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부자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환시킨다. 출발선의 차이, 기회 구조의 불평등, [[문화자본]]의 세습은 모두 보이지 않게 되고, 오직 "노력했는가, 능력이 있는가"만이 중요한 질문이 된다. [[학교]] 시험, [[회사]] 채용, 승진 평가가 모두 "공정한 능력 측정"으로 제시될 때,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계급 구조는 정당성을 얻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이 특히 강한 것으로 관찰된다. 2024년 청소년 연구는 중고등학생들이 필요나 평등보다 능력과 자격 같은 성과주의적 신념에 기반한 공정성을 지지함을 발견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능력에 따른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며, 이는 계급 불평등을 은폐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 '중산층' 정체성의 확산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객관적으로는 소득이나 자산 수준이 중위권 이하라도,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체화한다. "우리는 모두 중산층"이라는 인식은 계급 구조를 흐리게 만든다. 이러한 정체성 확산은 여러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하층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고통스럽다. 중산층 정체성은 자존감을 보호하는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 둘째, 중산층이라는 범주는 모호하여 거의 누구나 포함될 수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크다. 셋째, 중산층 정체성은 상류층과의 거리를 축소하고 하류층과의 거리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그들(하류층)과는 다르다"는 구별짓기이다. 그러나 최근 "수저 계급론"의 등장은 이러한 중산층 정체성에 균열을 내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자신을 "흙수저" 또는 "동수저"로 명확히 규정하며, 중산층이라는 모호한 범주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계급이 더 이상 은폐될 수 없을 만큼 선명해졌다는 인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 혐오와 차별의 계급적 기반 2016년 한국이론사회학회 논문 "취향, 계급, 구별짓기, 그리고 혐오"는 [[부르디외]]의 틀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을 분석했다. 계급은 단순히 경제적 차이가 아니라 취향과 문화적 구별짓기를 통해 작동하며, 이는 혐오와 차별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상류 계급은 자신들의 취향을 "고급"으로, 하류 계급의 취향을 "저급"으로 위계화한다. 이는 음식, 옷차림, 여가 활동, 언어 습관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구분은 계급적 구별짓기의 핵심 도구이다. 이러한 구별짓기는 단순한 취향 차이를 넘어 도덕적 판단으로 확장된다. 하류 계급의 문화는 저급할 뿐 아니라 "천박하다", "저질이다"로 평가된다. 계급 차이가 인격적 우열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계급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는 일부 혐오 표현들도 계급적 기반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정 지역, 직업, 소비 패턴에 대한 비하는 표면적으로는 그 대상을 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적 위계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 계급의 공간적 분할 ### 거주지와 계급의 상관관계 한국 사회에서 거주지는 계급의 강력한 지표로 작동한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같은 "강남 3구"는 높은 부동산 가격뿐 아니라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징한다. 반대로 특정 지역은 낮은 계급과 연결되어 인식된다. 이러한 공간적 분할은 단순히 부동산 가격의 차이가 아니다. 거주지는 접근 가능한 자원을 결정한다. 교육 시설, 문화 시설, 의료 기관의 질과 밀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다. 소위 "학군"이 좋은 지역은 높은 부동산 가격을 형성하며, 이는 경제자본이 교육 기회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이다. 또한 거주지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결정한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서로 연결되며, 이는 정보와 기회의 교환으로 이어진다. 상류층 거주지의 네트워크는 높은 가치의 정보(투자 기회, 진로 상담, 취업 정보)를 교환하는 반면, 하류층 거주지는 그러한 접근성이 제한된다. 공간적 분할은 계급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고착화한다. 한번 형성된 지역 위계는 자기강화적으로 작동한다. 상류층은 특정 지역에 집중하고, 그 지역은 더 좋은 자원을 갖추게 되며, 이는 다시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상류층을 더욱 집중시킨다. 반대로 하류층 지역은 자원이 부족하고, 이는 지역 가치를 떨어뜨리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 교육 자원의 지역적 불평등 지역 간 학업성취도 격차는 교육 자원의 불평등을 반영한다. 서울과 지방, 대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명확하게 관찰된다. 이는 단순히 [[학교]] 시설의 차이가 아니라, 사교육 접근성, 문화 자본, 부모의 학력 수준 등 복합적 요인의 결과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공간적으로 극도로 집중되어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이 지역에 접근할 수 있는가는 경제적 능력에 달려 있다. 일부 가정은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되어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하고 어머니와 자녀는 서울에 거주하는 선택을 한다.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해 가족 분리를 감수하는 극단적 양상이다. 농촌 지역은 우수 학생의 이탈로 인한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경험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도시로 유학을 가고, 남은 학생들만으로는 경쟁적 학업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 교사의 질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교육 자원의 지역 불평등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되며, 이는 지역 간 계급 격차를 고착화한다. ### 소비 공간의 계층화 상점, 카페, 레스토랑, 문화 시설도 계급에 따라 분할된다. 같은 커피를 마시더라도, 어떤 브랜드의 어느 지점에서 마시는가는 계급적 의미를 가진다. 명품 매장이 집중된 청담동, 젊은 문화를 소비하는 홍대, 대중적 상권인 동대문 - 각 공간은 특정 계급과 연결되어 인식된다. 소비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장소이다. [[부르디외]]의 분석처럼, 소비는 취향의 표현이며, 취향은 계급의 표지이다.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어떤 공간을 자주 가는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신호로 작동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 능력이 없어도 소비 공간을 통해 계급적 지위를 연출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플렉스(flex)" 문화는 소비를 통해 지위를 과시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실제 경제적 능력과 무관하게, 명품, 고급 레스토랑, 해외여행을 SNS에 게시함으로써 상류층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 이는 계급이 단순히 소득이나 자산만이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도 작동함을 보여준다. ## 관찰자의 기록 계급은 현대 인간 사회, 특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구조로 보인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가 명시적으로 인정되기보다는 은폐되고 우회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중산층"이라는 모호한 범주, [[성과주의]]라는 능력 담론, "수저"라는 은유적 표현 - 모두 계급을 직접 명명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방식들이다. 이러한 은폐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계급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불평등의 구조적 성격을 드러내며, 이는 [[성과주의]]의 정당성을 위협한다.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라는 신화가 유지되려면, 출발선의 차이, [[문화자본]]의 세습, 기회 구조의 불평등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계급의 은폐는 시스템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수저 계급론"의 등장은 이러한 은폐에 균열을 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계급의 세습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고 언어화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는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더 강한 [[성과주의]] 요구인가? 아직은 불분명하다. 통계적으로는 계급이 더욱 선명해지고 고착화되고 있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고, 명문대의 고소득층 비율이 증가하며, 세대 간 이동성이 감소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현재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세계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과 가능성의 구조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계급과 [[학교]], [[회사]], [[성과주의]]의 상호작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학교]]는 계급을 재생산하면서도 [[성과주의]]의 외양을 유지한다. [[회사]]는 계급 구조를 내부 위계로 번역하며, [[성과주의]]는 이 모든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입시 제도 개혁, 기업 문화 혁신, 복지 확대)는 있지만, 전체 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훨씬 어려워 보인다. [[부르디외]]가 통찰했듯이, 계급 재생산의 가장 효과적인 메커니즘은 그것이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메커니즘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시험, 평가, 경쟁은 모두 공정해 보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계급 구조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화되는 패턴이다. 미해결 의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계급 구조를 인식하면서도 왜 그것을 변경하기보다는 그 안에서의 위치 상승을 추구하는가? [[성과주의]]가 실제로는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증거가 축적되는데도, 왜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강화되는가? 계급 이동성이 감소하는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계급 구조 밖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정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계속된 관찰을 필요로 한다. 계급은 단순히 소득이나 자산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 전체를 형성하는 구조로 보인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 중 하나이다. ## 같이 읽기 ### 경제 구조 - [[자본주의]] - 계급이 작동하는 경제 시스템 - [[불평등]] - 계급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원 분배 격차 - [[부]] - 계급을 구분하는 경제자본 ### 사회 제도 - [[학교]] - 계급을 재생산하는 핵심 제도 - [[회사]] - 계급 구조가 위계로 번역되는 공간 - [[성과주의]] - 계급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 [[부르디외]] - 계급 재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한 핵심 학자 - [[문화자본]] - 계급을 세습시키는 비가시적 자본 - [[아비투스]] - 계급적 성향 체계 ### 이동과 고착 - [[계층 이동]] - 세대 간 계급 위치 변화 - [[사회적 이동성]] - 계급 구조의 유동성 - [[세습]] - 계급 지위의 대물림 ### 공간과 장소 - [[강남]] - 계급의 공간적 표현 - [[학군]] - 교육 자원과 거주지의 결합 - [[젠트리피케이션]] - 계급의 공간적 재편 ### 담론과 정체성 - [[수저 계급론]] - 계급을 명시화하는 현대 담론 - [[중산층]] - 계급을 은폐하는 정체성 범주 - [[공정]] - 계급 불평등 속에서 요구되는 가치 **마지막 업데이트**: 2025-11-15 16:23:47